[지만원 메시지(67)] 역사의 위기(Emergency of the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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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4-24 18:00 조회5,89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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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메시지(67)] 역사의 위기(Emergency of the History)
민주주의와 자유 봉쇄하는 대통령과 여당
역사는 ‘국가혼’이다. 사람은 혼을 지배하는 사람의 종이 되고, 국가는 역사를 지배하는 사람의 소유가 된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 여당이 앞장서서 공산주의자들이 왜곡한 공산화 역사의 종이 되어 다른 역사관을 피력하지 못하게 독재를 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외치고 자유를 외치지만 매우 놀랍게도 지금의 대통령과 여당은 민주주의를 봉쇄하고 자유를 탄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위험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여당
태영호는 여당의 최고위원이다. 김재원도 그렇다. 그런데 이 두 중진의원은 역사에 대한 소신을 말했다는 이유로 이지매를 당하고 당내에서 처벌까지 받는다고 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인민재판과 독재가 민주주의 깃발 아래서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수많은 사람들의 지혜와 지식을 동원하여 공공의 선(Public Good)을 추구하는 정치제도”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공론의 시장에 내놓을 수 있어야 민주주의 사회가 되는 것이다. 틀린 생각도, 좋은 생각도 공론의 시장에서 각축돼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힘을 가진 사람이 A는 맞고 B는 틀리다, B는 처벌받으라고 하면 이는 민주주의가 절대 아니다. 독재인 것이다. 어떻게 민주와 자유를 외치는 대통령과 여당에서 이런 전근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넌센스가 자행되고 있는 것인지, 민주주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태영호의 김구 발언과 4.3발언, 정확한 역사다.
“김구는 김일성에 동조하고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한 반역자다.” 이것이 정확한 역사다. 그런데 국힘당 김기현은 이광수가 쓴 ‘백범일지‘만 읽어서 그런지 거꾸로 알고 있다. 거꾸로 알고 있을 수는 있다. 그런데 그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자기와 다른 역사관을 표현하는 당 최고위원을 이지매하고 처벌한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의 구동 엔진인 공론의 시장을 폐쇄시키는 엄청난 저지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김구는 누구인가?
김구(1876~1949)의 본명은 김창수, 이조반정에 공을 세워 조정을 주무르다 효종의 북벌계획을 청나라에 밀고한 죄로 능지처참을 당했던 김자점의 손자다. 그는 1896.1.24.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의 한 주막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일본인 행상 ’쓰치다 조스케‘를 몽둥이와 돌멩이로 무참하게 살해한 후 그가 타고 왔던 쪽배에 들어가 금품을 훔쳤다. 그래놓고 ’백범일지‘에서는 국모를 살해한 일본 중위 ’쓰치다 조스케‘를 살해했다고 미화시켰다. 이로 인해 그는 종신형을 선고 받고 인천 감옥에 갇혀 있다가 1896.3.19. 탈옥했다. 이것을 놓고 ’백범일지‘에서 고종이 인천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극적으로 살려주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서울과 인천 사이에 전화가 개통된 시점은 그가 탈옥한지 6개월이 지난 9월이었다. 일본군 중위가 쪽배를 타고 다니면서 장사를 했다니 아무리 거짓말이라해도 지나친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탈옥을 해놓고도 고종이 사면시켜 주었다고 사실을 둔갑시킨 것이다.
김구의 반역 행위 3가지
① 간첩 성시백에 넘어가 이승만을 공격했다. 평양 신미리에는 애국열사릉이 있고, 거기에는 남한에 반역한 인물들이 1.5m의 대리석 비를 세우고 누워 있다. 그 제1호가 성시백이다. 성시백이 김일성에게 애국열사 1호로 뽑힌 이유는 그가 김구를 포섭했다는 것이었다.
② 김구는 1948년 제주도 등에서 건국을 방해하는 붉은 세력들이 준동할 때 부하들이 지키고 있는 집의 담을 몰래 타넘어 4월 19일 북으로 갔다. 김일성이 괴뢰 정권을 세우기 위한 연석회의에 나가 “남한은 거지 사회인데 반해 북은 풍요롭다”는 투의 내용으로 김일성을 띄우는 연설을 했다. 일본이 투자한 자산들이 북에 집중됐기 때문에 당시 북은 남보다 3배 더 부자였다.
③ 건국 후에도 김구는 건국을 인정하지 않고 방해했다. 그러다 애국청년 장교 안두희의 총에 맞아 저 세상으로 갔다.
이런 김구는 누가 띄웠는가?
이 부분이 바로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다. 김구는 이승만 대통령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순전히 질투심때문이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은 김구를 역적으로 평가했다. 그다음 박정희가 대통령이 됐다. 박대통령이 이순신과 김구를 역사적 인물로 선정했다. 전두환 대통령도 이를 계승헸다. 그러면 두 대통령은 왜 김구를 띄웠을까? 전두환은 박 대통령의 후계자인데다 국가 발전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에 역사에 대해 그리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는 왜 김구를 이순신 반열에 올려놓았을까? 박정희에게 이승만은 누구이고 김구는 누구였을까? 박정희는 왜 건국대통령에게 가혹했고, 건국을 끝까지 방해한 반역자 김구를 역사적 인물로 선택했을까? 대단한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역사가 중요하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역사를 몰랐던 것이다. 그 역시 전두환처럼 무인(武人)으로 대통령이 되어 국가발전에만 전력투구했지, 역사를 따로 공부할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해방 직후 역사의 중요성을 인식한 소련과 김일성이 한국 역사를 장악하여 조작해놓은 공산당식 역사를 진실한 역사라고 잘못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가 남로당 조직책에서 인생을 시작했기 때문에 남로당이 떠받드는 김구를 비판없이 받아들였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오늘날 남한의 역사를 빨갱이 역사로 둔갑시키고 있는 주역은 단연 남민전 간첩 ’임헌영‘이 이끄는 ’민족문제 연구소‘다. 민족문제 연구소는 김구를 애국적 ’영웅‘으로 박정희를 ’매국노‘로 평가하고 있다. 박정희에게 김구를 추천하고 공훈공적서를 작성해 올린 사람은 이병도와 신석호다. 이 두 사람에 대해 민족문제 연구소는 ’친일파‘라는 굴레를 씌웠다. ’민족문제 연구소‘와 ’친일파‘ 이병도 및 신석호가 선정한 인물 ’김구‘를 애국적 영웅이라 섬기고 있는 것이다.
’백범일지‘는 이광수가 조작한 소설
이광수가 쓰면 악어가 사자가 되고, 쥐가 고양이 된다. 백범일지에는 거짓과 과장이 많다. 김구는 그가 56세였던 1932년, 이봉창과 윤봉길에게 폭탄을 주었다. 그리고 두 젊은 청춘은 사라졌다. 폭탄으로 나라를 구할 수 있다면 애초에 일본에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애국심을 가지고 이들에게 폭탄을 주었을까? 그의 근성때문이었을 것이다. 1947년 7월, 여운형, 송진우, 장덕수라는 당대의 거물들이 갑자기 암살을 당했다. 미군정은 그 배후가 김구라는 점을 지목하고 수사를 벌였지만 김구는 빠져 나갔다. 반면 김구의 졸개였던 8명(김석황, 조상항, 신일준 등)최측근들은 교수형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렇듯 김구는 폭력과 살인의 아이콘이었던 것이다.
결 론
여기까지의 이야기들에는 다 증거들이 있다. 나도 역사에 문외한이었다.그런데 5.18을 연구하면서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가 모두 왜곡됐을 것이라는 가정을 했다. 그래서 역사 그것도 해방전후사에 대해서 그리고 운동권 역사에 대해서 동시에 집중 연구하게 되었다. 김기현 국힘당 대표의 발언 “이미 평가가 종결된 역사에 대해 왜 딴소리를 하느냐?”는 매우 위험천만하고 천박한 발언이다. 이 세상에 평가가 끝난 역사가 어디 있는가? 사실 자료와 평가하는 인물들의 두뇌는 늘 새롭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모든 역사가 ’평가가 종결된 역사‘라면 역사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없어져 버려야 할 것이다. 무식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사람이 판사 출신이다. 대법원 판례에는 “모든 국가적 의혹들은 그 개연성이 있는 한 자유롭게 제기돼야 한다”는 요지의 판례들이 많다. 김기현 대표는 판사 출신인데 이런 기본조차 모르고 수많은 판결문을 썼다는 이야기다. 함량 미달인 판결문을 받아 들었을 수 많은 국민들만 불쌍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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