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 류근일, 김지하, 5.18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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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만토스 작성일17-02-15 08:51 조회5,710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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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길, 류근일, 김지하, 5.18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는가
김동길, 류근일, 김지하, 당신들은 1980년의 광주5.18을 지금에 와서 어떻게 평가할까 그것이 궁금합니다. 세 분들은 유독 박정희 집권 시기에 소위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남 다르게 모진 고초를 겪었던 훌륭한 인사들임을 대부분 국민들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박정희가 장기집권을 하면서 국가경제와 국방체제의 기초를 튼튼하게 다지는 것은 물론 국민들의 생활의식을 개조했던 단군이래 초유의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던 그늘에서, 이 땅의 정치 민주화를 위해 온 몸을 바쳤던 당신들 또한 대한민국 발전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다는 점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소위 민주화 인사들 중에 수 많은 종북 좌익 인사들도 끼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가 그런 사람들을 이 자리에서 언급하지 않는 이유가 있지요. 5.18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성서처럼 믿고 지금도 그들은 대한민국을 향해 5.18광주 비극에는 비판마저 불허하는 부류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그나마 보수적 민주화 인사라고 지칭할 수 있는 김동길, 류근일, 김지하 당신들은 36년이 지난 1980년 5.18광주 역사를 지금도 민주화 운동이라고 단언 합니까? 만일 그렇다면, 필자는 부득이 당신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5.18을 지금도 “민주화 운동”이라고 주장한다면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에 반드시 명확한 해명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서 5.18을 타성적으로 “민주화 운동”이었다고 말 한다면, 저는 당신들을 향해 외칠 것입니다. “당신들도 1980년 5월의 혼란스러운 정국을 틈타 김일성의 대남적화공작이 난무한 상황에서, 김대중을 위시한 정치 패거리와 좌익 반역자들이 뭉쳐 최규하 과도정부를 전복하고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정당하고 합법적인 민주화 운동이었다고 주장하는 빨갱이 세력 동조자입니다”
이 땅의 상징적인 민주화 인사이신 김동길, 류근일, 김지하 어르신들, 이제부터 5.18사태는 폭동반란의 역사였다는 사실들을 먼저 열거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역사적 사실에도 침묵한다면, 저는 당신들을 모두 박정희 증오심에 눈이 먼 사이비 민주화 인사라고 혹평할 것입니다. 당신들은 군사독재에 목숨 걸고 싸웠으면서도, 폭도들의 불법적 반란 행위에는 비겁하게 눈을 감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북한군이 개입되어 총포로 무장한 폭도들이 광주를 해방구로 만들려 했던 5.18광주의 비극을 대한민국 민주화를 위한 활동이었다고 침묵하기 때문입니다. 폭동반란 역사에 반대하고 싸우지 않는다면, 그것은 5.18폭동반란을 인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1. 전라도지역 38개(북한의 기록은 44개)의 무기고를 단 4시간 만에 모두 털어 무기를 탈취한 행위가 민주화 운동을 위해 정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까?
1995년 7월18일 검찰이 내 놓은 ‘5.18관련사건수사결과’보고서와 1985년에 안기부가 작성한 ‘5.18상황일지 및 피해현황’을 보면, 1980년 5월21일 12시부터 16시까지 4시간 대에 17개 시와 군에 산재한 38개 무기고에서 5.403정의 총기를, 화순광업소에서 8톤 분량의 TNT, 뇌관, 도화선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탈취한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렇게 전광석화처럼 수 많은 무기고를 털어 탈취하려면 적어도 몇 개월을 두고 각 무기고의 세부 정보를 미리 탐색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5.18이 사전에 철저하게 계획된 무장폭동이었다는 정황이 설명되는 부분이다
2. 그렇게 탈취한 총기로 무장한 시위대가 당시 반 국가 사범들이 많이 수감된 광주교도소를 습격했던 무장폭동을 어떻게 민주화 운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까?
그 해 5월 21일에는 충격적인 교도소 습격 사건이 무장시위대에 의해 6차례나 저질러 졌다. 광주교도소에는 당시에 간첩 및 좌익수가 170명 복역 중이었고, 총 복역수가 2,700명이었다고 한다. 시민군이 복면을 쓰고 장갑차를 앞세워 총 6차례나 교도소를 습격했었고 쌍방간에 피해가 가장 심한 사건으로 기록 되었다. 시민 군 사망자만도 28명이었다고 한다. 대체 민주화 운동을 한다는 시위대가 무슨 이유로 그토록 극렬하게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광주교도소를 공격하였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 많은 간첩들과 좌익수들을 교도소에서 빼 내려고 한 짓이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민주화 운동이다.
3. 이처럼 무장폭동으로 변한5.18의 주동인물들이 모두 좌익 빨치산 혹은 간첩들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1980년 5월18의 비극을 민주화 운동이었다고 공공연하게 말 할 수 있습니까?
5.18 핵심인물들은 윤기권, 윤상원, 황석영, 서경원, 문익환, 김대중 등입니다.
윤기권: 5.18당시 18세로서 5.18에서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웠다. 5월18일 첫날 그는 누구의 도움을 받았는지 경찰 15명을 인질로 잡았다. 이런 공로에 의해 그는 민주화 보상법으로 2억 원이라는 높은 보상금을 받았고, 1991년 3월 월북하여 김일성 수령의 품 안에 안겼다(전남일보, 광주일보, 월간 말지에서). 그는 광주민중폭동의 영웅으로 북한 전역을 돌아 다니며 5.18간증을 하고 있다고 한다.
윤상원: 김대중과 광주를 연결하는 인물은 광주 폭동 주동자 윤상원이었다. 김대중이 당시 5월 22일로 예정되었던 쿠데타(민중봉기로 최규하 대통령을 강제 하야 시키고 김대중 스스로 대통령 되려 했던 내란) 준비를 하던 "민주회복 국민회의" 사무국장으로 임명한지 불과 한달 여 만에 광주사태가 터졌다. 그러나, 윤상원 본인은 김대중을 위해서라기보다 공산주의 사상 동지들을 위해 폭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국가권력을 타도하기 위해 5.18무장봉기를 일으킨 자다.
황석영: 그는 1989년 3월 20일 북한에 밀입국하여 1993년 4월 29일 귀국 체포 시까지 ‘범민련 해외본부’를 결성하고, ‘홍철’이라는 가명으로 다섯 차례나 북한에 들어 가서 김일성을 일곱 차례나 접견했고, 같은 시기에 북한에 들어와 김일성을 만났던 윤이상과 5.18광주를 주제로 한 대남-반미의식 고취를 위한 “님을 위한 교향시”라는 영화를 제작해 줌으로써 김일성으로부터 “재간둥이”라는 칭호와 함께 25만 달러라는 공작금을 받았던 반 국가사범으로, 1993년 국가보안법에 의해 징역 7년의 형을 받아 복역 중, 1998년 특별사면을 받아 석방됐고, 5.18과 빨/갱/이들의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도 작사했다.
서경원: 한명숙과 함께 크리스찬 아카데미 출신이며 5.18때에는 폭동의 한 축을 이루는 카톨릭농민회 회원이었다. 간첩 서경원은1988년 2월 김일성에게 올라가 10만 달러의 공작금을 받았었고 반공법으로 10년 형을 선고 받고 9년을 감옥에서 살았다.
문익환: 김대중내란음모사건 관련자,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그는 북한에서 ‘조국통일상 수상자’라는 글자와 함께 얼굴 초상이 50전짜리 북한 우표에 담겨 있는 전형적인 빨치산이다.
김대중: 23세 때 남로당에 가입한 사람. 1971년에 일본에서 반국가조직 한민통을 결성하여 북으로부터 공작금을 받아 반국가활동을 했고, 1997년 북한 부주석 김병식으로부터 1971년에 김대중에게 20만 달러를 공작금으로 주었다면서 그 증거를 편지로 김대중에게 전하여 과거의 행적을 공갈 협박함으로써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5억 달러라는 대한민국 국부를 갖다 바치는 일이 발생했다. (이상 지만원의 “솔로몬 앞에 선 5.18”에서 인용 참조))
4. 북한특수군이 광주에 침투하여 전투하고 공작했던 5.18폭동반란
인민군 대장 리을설이 이끌고 내려온 478명(현재까지 밝혀진 숫자)의 북한툭수군이 광주에 사전에 침투하여 전투조와 공작조로 나뉘어 5.18폭동반란에서 치밀하게 후방교란적전을 수행함으로써 대한민국 계엄군을 일시적으로 광주에서 몰아 내고 광주를 해방시켰으며, 광주교도소를 6차례나 무장 습격하여 수 많은 반 국가사범과 간첩들이 수감된 교도소를 해방시키려 했던, 대한민국 적군의 침략작전이었다고 지만원의 시스템클럽이 만 천하에 폭로했습니다. 5.18이 민주화운동 이라고 믿고 있는 당신들은 관심도 없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애써 무른 척 할 것입니다. 2016년에는 5.18북한군의 얼굴과 이름들을 모조리 사진으로 추적하여 화보집을 만들어 온 세상에 밝혔습니다. 세상 누구도 이런 과학적 사실 입증에 반대하거나 거부하지 못합니다. 다만, 역사적 사실 폭로에 원천 봉쇄하려는 소위 민주화 빨갱이들만 우글댈 뿐입니다.
김동길, 류근일, 김지하 여러 선생님들은, 이제 이상과 같은 5.18의 붉은 색 반 대한민국 폭동반란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며, 여러분들은 이런 엄청난 사실들을 알고 난 후에도 여전히 1980년 5.18역사를 “민주화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그 비극적 사건을 민주화 운동으로 부르건 반대하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혹시 반문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5.18을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고 公的으로 말해 주는 것은 필자 같은 사람들 수 백만이 외치는 목소리보다 더 큰 영향력이 있습니다.
훌륭하신 민주화 인사 여러분, 당신들은 김대중이 만든 민보상위법에 의해 “민주화인사”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받았었는데, 그 법이 바로 간첩과 반역자들에게까지 면죄부를 주었던 반역의 법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반역의 법률에 의해 민주화 인사라고 불려지는 것에 만족하고 있습니까? 당신들에게 민주화 인사라는 왕관을 씌워준 자가 바로 대한민국의 반역자 김대중입니다. 또 그 김대중이 바로 5.18광주의 비극의 頂点에 있는 인물입니다. 이제 당신들이 5.18에 대한 명확한 평가를 국민들을 향해 외칠 차례입니다. “5.18은 좌익 반 대한민국 세력과 북한 김일성의 인민군이 합세하여 일으켰던 국가전북을 노린 폭동반란 극이었다”
만일 그렇게 외치지 못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당신들은 그 이상 야릇한 “민주화 인사” 왕관과 국가보상조차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박정희 군사정부를 독재체제로 몰아 세웠던 당신들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향한 투쟁이 5.18폭당반란의 역사 앞에서 비겁한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당신들의 민주화운동은 이 땅의 빨갱이들이 저질러 온 반 대한민국 역적활동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제는 결정해야 합니다. 종북 역적 김대중이 만들었던 민보상위법에 의한 “민주화 인사” 칭호와 보상을 땅바닥에 팽개치고 5.18폭동반란의 역사는 남북합작 대한민국 침략의 역사였다고 온 국민 앞에서 선언하십시오. 그렇게 못하면 당신들은 비겁하고 음흉한 사이비 민주화 인사입니다. 이상.
2017. 2. 15. 만토스
댓글목록
우짜노님의 댓글
우짜노 작성일
-광주 5.18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말하는 자는 바보천치 아니면 골수 빨갱이간첩이다.
-광주 5.18이 김일성과 김대중이 직접 공모한 역적내란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자는 고정간첩이다.
-광주 5.18을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 자는 종북간첩이다.
-광주 5.18 광수를 외면하고 모른 채 하고 진실을 덮으려는 자는 부역간첩이다.
-광주 5.18 묘지를 참배하는 자는 소인배 사기꾼간첩이다.
-광주 5.18 묘지에서 '임을 향한 행진곡'을 부르는 자는 아부간첩이다.
-광주 5.18를 숭배하고,김영삼을 따르고,김대중을 따르고,노무현을 따르는 자는 무조건 종합간첩이다.
만토스님의 글은 먹구름 속을 쪼개고 번쩍하는 번개 빛 입니다.
저의 답답한 마음 속을 총정리 해주는 뻥 뚫린 고속도로 입니다.
한량없는 감사를 드립니다.늘 건강하시면서 좋은 글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