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은 북 게릴라전, 입증증거 42개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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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11-09 23:31 조회4,11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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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을 북괴가 주도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42개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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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답변서] 책에는 5.18을 북괴가 주도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42개 증거를 50-224쪽에 걸쳐 사진들과 함께 정리했다. 그런데도 많은 독자가 42개 증거가 어디에 있느냐고 질문하신다. 그래서 그 42개 증거를 따로 뽑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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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5.18에서 사망한 광주인은 154명, 그런데 한국군은 154명 중 많이 양보해도 40명 정도였다. 계엄군은 광주의 살인자가 아니라 광주의 수호자였다. 광주는 배은망던한 지역이 아닐 수 없다. 5.18의 광주사망자는 총 154명, 광주는 이들 모두가 계엄군이 살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154명 대부분이 무장괴한들이 무기고에서 탈취한 총기로 사살했다는 점을 앞에서 밝혔다. 광주인들은 주장한다. 전두환이 공수부대에 명령을 내려 전라도 70%를 다 학살해도 좋다 했고, 그 명령에 따라 공수부대 4,000명이 빼갈이라는 독주에 환각제를 타먹고 미쳐 돌아가 광주에 모인 30만 시위대를 보는 족족 사살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훈련된 공수부대 4,000여명이 10일 동안에 겨우 154명밖에 죽이지 못했겠는가? 이 하나만 보아도 계엄군은 살인자 집단이 아니었던 것이다. 계엄군이 살인집단이 아니었다면 154명의 대부분은 누가 죽였는가?
당시의 광주시는 생필품이 고갈돼 있었다. 1980년 5월 27일 이전에 광주시민들은 “속았다”, “양아치들의 잔치다”, “양아치들이 공포스럽다, 빨리 수복해 달라” 계엄군에 간청들을 했다. 계엄군은 미국이 칭찬을 아끼지 않을 만큼 광주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희생하고 골몰했다. 계엄사령부는 광주시민의 생명가치를 100으로 여기고 공수부대원의 생명가치를 1이하로 취급했다. 명령에 복종해야만 하는 공수부대의 헌신이 있었기에 철수하는 공수부대를 배웅하기 위해 수많은 광주시민들이 나와 박수를 쳐주고 포옹을 했다.
계엄군은 5월 27일 새벽, 광주시를 수복시킨 후 40일 동안 파괴된 광주시를 청소해주었다. 쌀과 생필품을 배급해주었다. 10여 명의 아이들이 보초를 서주는 계엄군 아저씨를 따르면서 웃으며 행복해 했다. 1985년 총선에서는 전국에서 전라남북도 민정당이 가장 많이 당선됐다. 박지원은 두 차례에 걸쳐 전두환을 향해 용비어천가를 불렀다. 전두환은 시대의 영웅이며 강력한 지도자라고 칭송했다. 12.12와 5.18은 영웅적 결단이라고 칭송했다. 당시에는 이러했던 전라도 민심이 지금처럼 험악하게 변한 것은 김대중을 매개체로 한 북괴의 모략 공작의 효과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광주에 물어야 한다. 광주와 전라도를 증오한다는 계엄군이 어째서 40일 동안이나 남아서 파괴된 시내를 땀 흘리며 청소해주는 것인가를. 광주인과 전라인을 보는 족족 죽이러 온 계엄군이 어째서 쌀을 배급하고 생필품을 배급해 주고 있는 것인가를. 군이 살인마 정도로 무서웠다면 어째서 광주의 어린 여식들이 계엄군 아저씨를 저토록 따르는 것인가를. 전두환 대통령이 살인마로 인식됐다면 어떻게 전두환이 이끄는 ‘민정당’ 전라도 당원들이 1985년 총선에서 전국 최고의 당첨자를 냈는가를. 1985년 총선 통계를 보라.
2022.11.9.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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