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동과 진실화해위와 윤석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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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12-13 18:34 조회4,67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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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동과 진실화해위와 윤석열(3)
2022년 김광동 위원장의 발언
“4.3폭동을 경찰에 대한 정당한 항거 행위로 규정짓는 건 대한민국 역사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4.3은 남조선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세력에 의한 폭동이다”
2010년 이영조 위원장의 발언
'4.3사건은 공산주의자가 주도한 모반·폭동(communist-led rebellion)'이었다“
2005년, 노무현이 제작한 [4.3정부보고서] 내용
“4.3은 평화롭게 살고 있는 제주도 주민을 미군정과 이승만이 배후조종하는 서북청년단이 아무런 명분 없이 침입하여 학대하고 학살하는 데에서 제주도민이 자기방어수단으로 저항한 정당한 민중항쟁이었다. 무력 충돌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었다.”
1998년 11월 23일, 김대중의 CNN 인터뷰 내용
“제주4.3은 공산당의 폭동으로 일어났지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으니 진실을 밝혀 누명을 밝혀줘야 한다.”
(원문) However, on November 23, 1998, after the democratization of South Korea, former president Kim dae-jung stated that "the Jeju uprising was a communist rebellion, but there are a lot of people who died under false accusations as innocents, so now we have to reveal the truth and clear their false charges.“
https://en.wikipedia.org/wiki/Jeju_uprising(Jeju uprising – Wikipedia)
CNN 이후 빨갱이들의 주장
“김대중 대통령은 ‘제주 4·3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으니 진실을 밝혀 누명을 벗겨줘야 한다.’까지만 말씀하셨다.”
1991년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의 ‘력사과학론문집’ (129-192쪽)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단독 괴뢰 정부 조작 책동을 반대하여 벌린 제주도 인민들의 4.3봉기는 남조선에 대한 미제의 식민지 예속화 정책과 민족분렬 책동을 반대하고 민족 자주적인 힘에 의하여 나라의 통일 독립을 이룩하기 위한 대중적인 반미 애국 항쟁이였으며 성스러운 민족 해방 투쟁이였다.”
통일을 방해하는 미제에 맞서 통일을 쟁취하기 위해 제주인민들이 일으킨 봉기였다는 것이다.
1982년 북괴가 펴낸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 117-122쪽
“미제의 남조선 단독 선거를 저지 파탄시키기 위한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에서 맨 선참으로 폭발한 적극적인 투쟁은 제주도에서 일어난 4.3인민 봉기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었다. <제주도를 비롯한 남조선의 여러 지방들에서는 선거를 반대하는 인민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조총련이 규정한 4.3사건
1988년 4월 8일,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제주도 4.3인민봉기 40주년 평양시 보고회, 서울에서도”라는 제목으로' 지난 2일 공화국에서 평양시 보고회 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4.3봉기는 남조선에 대한 미국 식민지 종속화정책과 민족분열 책동의 분쇄, 자주적 평화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애국적 무장 투쟁이었다.” 적화통일을 위한 폭동이었다는 뜻이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정의한 4.3사건
“1948년 2월 7일을 기해 공산주의자들은 살인, 방화, 폭력, 파업, 시위, 뇌물증여, 폭동 및 혁명 사주, 협박 및 선전을 포함하여 어떤 수단으로든지 5월 10일 선거를 교란시키고 방해하며 UN한국임시위원단을 한국에서 떠나게 하려는 강력하고 포괄적인 공작을 시작했다. 이 공세 전체가 평양에서 계획되고 보레시노프(동 시베리아 군사본부)와 모스크바로부터 지시받고 있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UN한국임시위원회 관계문서)
대검찰청 수사국의 “좌익사건실록”이 규정한 4.3사건
“얼른 보기에는 쓸데없는 유혈인 듯한 제주 폭동은 ‘모스크바’의 눈으로 보면 크게 의미가 있고 이익이 있는 것이다. 제주폭동의 목표는 결코 제주도를 점령한다거나 정말 그들의 소위 ‘단선단정’을 좌절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임을 모스크바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면 그 유혈이 의도하는 바는 무엇이었는가? 첫째, 선전자료를 만드는 것이다. ”보라! 조선인민은 죽음으로써 단선단정을 반대하고 있지 아니한가“하는 프라우다 지의 논평과 모스크바 방송의 하루 밤 자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을 공산주의에 현혹됐던 제주도 사람들이 충성스럽게 이행해 주다가 죽은 것이다. 둘째, 남조선의 민심을 선동시켜 될 수 있으면 남조선 각지에도 제2, 제3의 인민봉기를 획책해 보려는 것이다.”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가 규정한 4.3사건
“1948년 제주도에서 발생한 이른바 4.3폭동사건은 해방 후의 사회혼란기를 이용하여 소수의 공산분자들이 순박하고 가난한 섬사람들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제주도를 공산화하려고 획책한 무장폭동 사건이다”(비정규전사 1948.5-1950.6까지의 제주4.3폭동 공비소탕작전)
단칼에 해명되는 4.3의 성격, 김달삼이 평양 애국렬사릉에 안장된 사실
평양시 신미리에는 [애국렬사릉]이 있다. 남북한에서 북한에 충성한 최고의 빨갱이들이 모셔져 있는 열사묘다. 거기에 김달삼의 묘가 있다. 김일성의 지령을 받고 김구를 포섭하여 김구를 북괴정권 창설의 부역자 노릇을 하도록 공작한 그 유명한 성시백 그리고 빨치산의 전설 이현상과 나란히 묻혀 있다. 4.13사건의 원흉, 한라상 유격대 초대 사령관이 23세의 김달삼이었다는 것, 그가 행주연설의 전설이었다는 것은 이미 빨갱이 사회에서도 다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 4.3사건의 초대 사령관이 평양의 애국렬사릉에 묻혀 있다면 그 외에 4.3을 북괴가 주도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더 확실하게 증명하겠는가?
결 론
북괴는 4.3사건을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방해하고 적화통일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폭동으로 규정했다. 민주화세력이 이 나라를 통치하기 이전의 국가기관인 국방부와 역사편찬위원회는 4.3사건을 반미-반국가-친북-반 단선단정-적화통일을 위한 폭동이라고 규정했다. 대검수사국은 소련이 단선단정 반대를 위한 여론몰이를 함으로써 같은 폭동이 전국에서 발생하도록 선전선동하기 위한 심리전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남북 당국의 평가가 한결같이 4.3을 공산폭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재의 빨갱이들은 빨갱이들이 장악한 정권의 위력을 악용하여 이 모든 기록들을 뒤집어 왔다.
빨갱이들은 지금 4.3을 순수하고 정당한 민중항쟁이라고 주장한다. 북한과도 연계되지 않았고, 남로당 상위조직들로부터도 아무런 지시를 받은 적이 없고, 낙후되고 고립된 제주도의 도민을 군정이 학대하는 데 반발하여 일어선 의로운 저항이라고 포장한다. 그리고 무장유격대와 무장유격대 편에 선 항쟁세력은 절대로 민간인을 함부로 사살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제주도에서 살해된 모든 여성은 군경토벌대에 의해 살해됐다고 주장한다.
빨갱이들은 무장 공비들이 전투 훈련 장소로 이용했던 제주시 동부 봉개동에 12만평을 떼어내 ‘제주4.3평화공원’을 건립했고 그 안에 ‘제주4.3평화기념관’을 건립해 친북-반미-반대한민국 사상을 확산시키고 있다. 심지어는 화북리에서 마을의 우익 유지들을 마구 살해한 김주탁 형제까지도 '토벌대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불쌍한 사람'으로 둔갑하여 봉안돼 있다. 김주탁은 제주 동북부 지역 유격대장을 하다가 유격대사령관 김달삼과 함께 북으로 간 유격대 지역사령관이었고, 그의 동생 김주영은 경찰에 의해 사살된 자다.
2022.12.13.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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