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나 5.18유공자나, 상종 못할 광주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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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5-10-02 17:33 조회7,67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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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나 5.18유공자나, 상종 못할 광주 것들
뉴스타운 호외지 배부로 인해 피해를 보았다고 광주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인간들은 6명이다. 5.18기념재단 대표 차명석, 5.18유공자유족회대표 정수만, 5.18구속부상자회 대표 김후식,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대표 양희승, 북구 각화대로 박남선, 해남군 산이면 심복례.
차명석, 정수만, 김후식, 양희승이 주장하는 명예실추
여기에서 앞의 4인은 뉴스타운이 150민 광주시민들과 수만의 5.18관련자들의 명예를 훼손하였고, 자기들도 그들 중 한 사람이기 때문에 인격권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당하기 때문에 하루라도 속히 뉴스타운의 발행 및 배포를 금지시켜 달라 했고, 판사들(이창한, 권노을, 유정훈)은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하여 도둑질하듯이 가처분 결정을 내렸고, 송달방식도 익일특급으로 해서 익일 배달이 되었다.
재판부는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표현해야 하며 5.18을 북한과 연결 짓는 것은 피해자(신청인)들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결정이유를 밝혔다. 그런데 재판부의 이런 결정 이유는 대법원 판례에 전면 배치된다. 나는 이미 2012.12.27. 대법원의 판결을 끝으로 1,2,3심 모두에서 이와 똑같은 명예훼손 주장에 대해 무죄를 받았다.
박남선과 심복례가 주장하는 명예실추
참으로 해괴한 것은 이 소송을 준비한 5.18단체들과 박남선 및 심복례와 재판부 3명 판사들의 낯 뜨거운 행위다. 박남선은 우리가 황장엽 얼굴이라고 결론 낸 얼굴이 바로 자기라고 주장하면서, 자기 얼굴을 황장엽 얼굴이라고 허위사실을 적시해서 자기의 명예가 실추되었다고 주장했다. 시골 여인 심복례는 우리가 북한의 전설 리을설이라고 결론 낸 얼굴이 바로 자기 얼굴인데, 호외지가 리을설의 얼굴이라고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자기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주장한다.
시스템클럽의 영상분석 결과에 의하면 박남선은 당시 26세의 골채채취화물차 운전수였다. 구체적인 영상분석 공간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눈매가 매서운 58세의 황장엽의 눈매 및 다부진 몸매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그런데 이들은 26세의 화물차 운전수 박남선이 바로 58세의 황장엽이라 주장하고, 그가 날렵한 광수들 틈에 끼어 유탄발사기와 무전기를 들고 북한에서 온 다른 광수들을 인솔하였다고 주장한다. 말문이 막힌다.
리을설 사진은 5월 22-23일에 찍혔고, 심복례가 광주에 올라온 날짜는 5월 말
심복례의 경우는 차마 봐줄래야 봐줄 수 없는 막장 코미디다. 심복례는 1933년생인 김인태의 처다. ‘5.18기념재단 사이버 추모공간’에는 김인태에 대한 기본 인적사항과 심복례의 사연이 있다. 김인태는 당시 48세로 5월 20일 교도소 근방에서 타박상으로 죽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런데 5월 20일에는 계엄군이 교도소 근방에 배치돼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추모공간에 남겨진 사연에는 공수부대가 때려죽인 것으로 원망돼 있다.
6남매 중 맏아들이 광주에서 하숙을 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하숙비를 정산하지 못해 아들은 몸이 매여 있는 상태였다. 아버지인 김인태는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5월 19일 광주로 가기 위해 해남을 떠났다. 그후 10여일이 지나도록 남편으로부터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러다 5월 말이 되었다. 면사무소 직원을 우연히 만나면서 그녀는 남편이 사망했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심복례가 광주에 처음 도착한 날짜는 5월말이었다. 이 날자는 매우 중요한 날짜다. 그런데 리을설이 찍힌 사진은 상황일지 상, 5월 22일 또는 23일에 찍혔다. 얼굴생김새도 그렇고 리을설의 몸매와 손과 팔을 보면 시골에서 6남매 기르고 농사짓는 여인의 것들이 아니다. 더구나 북한 특수군들이 이상한 염탐꾼이 끼어들지 않을까 눈알을 반짝이고 있는 데, 그 중간에 감히 가서 서 있을 수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또한 북한 광수들이 독점한 도청 안에 그 시골 여인이 들어가 지휘를 하는 듯한 여러 가지 모션을 취할 수 있는 것인지 한심한 5.18단체들과 3명의 광주 판사들에 묻는다.
5월 22일과 23일, 리을설이 사진 찍히는 날, 심복례는 해남군 산이면에서 남편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광주에 도착한 5월 말에 시체들은 모두 땅속에 묻혔다. 그런데 리을설은 분명히 관을 붙잡고 꺼이꺼이 우는 흉내를 냈다.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들이나, 소송을 도둑질 하듯 처리한 판사들이나 참으로 상종 못할 인종이라는 생각 지울 수 없다. 그래도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속박하는 소송인데 이렇게 공사판보다 더 엉터리로 해도 되는 것인지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 묻고 싶다.
리을설 심복례
2015.10.2.
정경희가 밖에 전시한 관에서 울기, 같은 관이라고 말도 나오겠지만, 공작 선동조 신분이고, 순서상도 생각해 볼 것입니다. 밖의 전시되 있는 것은 새끼줄 꼬듯이 되어 있고, 계단옆 모아둔 것은 넓게 묶여 있는 메기 위해 묶은 줄.
정경희 왼쪽 옆 얼굴을 알 수는 없지만, 같은 부분들은 왼쪽 손목시계 착용, 손목시계 줄의 크기, 아래 치마는 바꿔 입었으나, 윗 상의는 덩치에 맞지 않아서 그냥 착용했거나 하여 같은 상의, 머리 파마, 덩치.
정경희 관 옆에 또 다른 관(바로 자기 앞)의 관에서 울기.
상무관? 체육관 안에서 성혜랑의 관 옆에서 울고 있는 리을설.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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