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기념재단의 유치하고 음흉한 민주화운동 기록(만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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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만토스 작성일15-07-30 22:19 조회5,804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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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기념재단의 유치하고 음흉한 민주화운동 기록
5.18기념재단이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게시해 놓은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개 하는 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사실상 모든 내용이 그들만의 선전선동에 지나지 않는 유언비어 수준이라고 말할 정도로 부정확 하고 유치하고 소설적이다. 김일성을 70년 동안 우상화하여 3대 세습살인독재체제를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는 인민들의 세뇌공작을, 광주에서 김대중을 우상화하려는 세력이 답습하기 위해 5.18폭동반란은 절대로 무너질 수 없는 민주화의 성역으로 남아야 한다고 광분하는 모습이 공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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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의 집단 발포, 시민군의 등장, 철수하는 계엄군
5월 21일 오전 2시, 이윽고 광주와 외부를 연결하는 전화가 차단되었다. 도심 곳곳에서 계엄군에 의해 처참히 살해된 시신이 발견되었고, 도심 여기저기 화재로 말미암은 불꽃과 연기가 피어 올랐다.
오전 8시경, 계엄군 사이에서 오인에 의한 교전이 발생하여 군인 다수가 사망하기도 했다.
오후 1시경, 전남도청을 향한 시민의 물결은 더욱 거세졌고, 계엄군은 저지선을 돌파하려는 시민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저격수는 시민을 향해 조준 사격을 했고, 총탄에 맞은 시민은 차례로 금남로에 쓰러졌다. 계엄군의 사격은, 시신을 대열에서 끌어내고 부상자를 병원에 후송하려는 시민에게도 향했다. 광주 시내의 병원은 이송된 환자와 시신으로 넘쳐났다. 계엄군이 진압을 위해 총기를 사용하자 시민은 스스로를 무장하기 시작했다. 아시아자동차 공장에서 장갑차 등의 차량을 확보하고 광주·전남 일대의 경찰서와 예비군 탄약고에서 무기를 꺼냈다. 무기를 확보한 시민들은 점차 ‘시민군’이란 이름으로 편제되었고 이후 금남로와 충장로에서 벌어진 계엄군과의 공방은 시가전 양상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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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기념재단의 엉터리 유언비어 혹은 왜곡 날조된 기록들을 알아 본다.
첫째, “5월21일 2시에 도심 곳곳에서 계엄군에 의해 처참히 살해된 시신이 발견되었고”는,
검찰수사기록: 그날 새벽에 사망한 사람들은 계엄군이 있지도 않았던 시민군 점령지역인 광주역에서 발견된 김재화와 김만두 두 사람이었으며, 사망자 시신에서 시민군이 사용했던 카빈총탄이 적출되었다고 한다. 더구나 그 시신은 그날 21일 온 종일 시민군이 리어카에 싣고 다니면서 계엄군이 죽였다고 선전 선동하였다. (지만원 솔로몬 앞에 선 5.18, 59쪽) 계엄군이 죽였다고 거짓말 한다.
둘째, 오전 8시경, 계엄군 사이에서 오인에 의한 교전이 발생하여 군인 다수가 사망하기도 했다.
검찰수사기록: 21일 오전8시경 20사단 지휘부가 광주 톨게이트를 통과할 때, 화염병 등을 가지고 매복해 있던 300여 명의 시위대가 기습 공격한 기록이 있다. (지만원 솔로몬 앞에 선 5.18, 59쪽) 그날 새벽의 교전은 사실 정체불명의 폭도들과 20사단 지휘부와의 충돌이었는데 거짓말을 하고 있다.
셋째, 오후 1시경 계엄군이 진압을 위해 총기를 사용하자 시민은 스스로를 무장하기 시작했다. 아시아자동차 공장에서 장갑차 등의 차량을 확보하고 광주·전남 일대의 경찰서와 예비군 탄약고에서 무기를 꺼냈다.
1995년 검찰수사기록: 1980년 5월21일, 12시부터 16시까지 4시간대에 17개 시군에 꼭꼭 숨어 있는 38개 무기고에서 5,403정의 총기를, 화순광업소에서는 8톤 분량의 TNT, 뇌관, 도화선 등을 동시 다발적으로 탈취한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지만원 솔로몬 앞에 선 5.18, 58쪽)
그날 21일 오전 9시30분부터 12시까지는 계엄군과 시민군(광주시장) 사이에는 폭력사용 자제와 계엄군 철수를 두고 협상이 있었지만, 그것은 시민군의 계획적인 사기극이었음이 후에 드러났다. 그 사기극이 진행되는 동안 외부세력(북한특수군) 600명은 아세아 자동자 공장에서 탈취한 군용트럭을 동원하여 전라도 무기고를 털기 위해 각 시.군으로 향하고 있었으며(김대령, 역사로서의 5.18), 실제 무기 탈취는 12시부터 16시까지이니(지만원, 솔로몬 앞에 선 5.18), 시민군 총기 사용 시간을 1시경으로 기록한 것은 확인되지도 않았고 지휘부도 몰랐던 무장 시민군을 합리화 하기 위해 후에 꾸면 낸 엉터리 기록이다.
계엄군이 진압을 위해 오후1시경에 총기를 사용하자 시민은 스스로 무장하기 시작했다는 말은 완전한 거짓말이다. 화염병, 차량에 의한 화공, 방화, 살인 등이 난무한 21일은 계엄군이 혼비백산하여 폭력시위대와 공포에 사로잡혀 협상을 추진했을 정도로 지리멸렬했던 시기였다. 차량에 의한 계엄군 공격에 공포탄으로 겨우 목숨 부지하기에 바빴던 일을 두고 총기를 사용했다고 거짓말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5.18기념재단이 5.18민주화운동의 태동에서부터 결말까지의 이야기 중에서 완전히 엉터리 같은 계엄군 집단발포와 시민군에 대한 기록들을 확인해 보았지만, 필자가 5.18기념재단에 가장 분노를 느끼는 점이 따로 있다. 즉, 5.18폭동반란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대부분 궁금해 하는 두 가지 점으로서, 그 중 한 가지는 시민군의 무장기록이 모두 엉터리이고, 다른 한 가지는 무장 시민군이 광주교도소를 6차례나 습격했던 기록을 감쪽같이 빼 버렸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너무도 음흉하고 어둡고 부정한 왜곡날조의 역사기록이라 하겠다. 북한 악마집단과 합세하여 저질렀던 폭동반란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둔갑시켜 놓고 그것을 합리화하려고 끝없는 거짓말을 둘러 대고 있으니, 정말 저 집단은 용서 받지 못할 인간군상인가 보다. 이상.
2015. 7. 30. 만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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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칸님의 댓글
없다칸 작성일거짓말참나쁩니다 하지만 35년동안 합리적의심 하지않은 대통령이하 이나라 모든공직자들 이사람들 더나쁜인간들입니다 그래도 국민세금으로 이자들을 먹여살려야하는 이나라 백성들이 불쌍할따름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병폐를 일거에해결할수있는 마스타키(117명의광수)를 손에쥐어줘도 사용할 용기와 애국심이없는 이나라 대통령을 훗날 역사가 반드시단죄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