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민전의 불씨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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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10-17 22:05 조회3,95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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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전의 불씨 [6]
혼숙집단, 남민전에 남녀 성은 없다.
남민전 가족들에는 1가족 3명이 관련돼 있는 경우도 있다. 이원희와 전수진은 부부이고, 이들의 장남이 이해경인데 이해경은 무기징역을 언도 받았고, 전수진은 3년형을 언도받았다. 이재문은 1934년생, 그의 내연녀인 이문희(7년형)는 53년생이다. 이재문은 그의 친족인 이원희(신림동)을 찾아가 그 집에서 아지트를 정하고 그의 막내딸인 이문희를 내연의 처로 만들었다. 사회적 무녀리들의 원시 공동생활, 이것이 빨갱이들의 생태인 것이다.
남민전은 혼숙을 예사로, 공생활이 사생활 지배한다
남민전 강령 중에는 '사생활은 공생활에 예속된다.'는 항목이 있다. 이 강령 때문에서인지 이 집단에는 난잡한 관계들이 드러나 있다. 1975년 7월, 이재문, 신향식, 전수진(가정부, 3년형)은 전수진 명의의 당산동 강마을 아파트에서 동거생활을 하면서 한동안 그곳을 아지트로 하였고, 1976년 2월, 같은 아파트에서 비밀단체 이름을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이라 명했다.
1976년 4월 26일, 이재문은 용산구 후암동에 그의 내연의 처 이문희의 이름으로 방을 얻어 한동안 아지트로 삼았다. 1978년 12월 21일, 이재문은 잠실시영 아파트 11동 408호로 거점을 옮겨 이수일(15년형)과 함께 3명이 살았다. 이웃에는 이문희와 이수일을 부부로 위장하고, 이재문은 이수일의 처삼촌으로 위장했다.
이들은 위안부 김문자 집에서도 한동안 아지트를 정하고 수많은 포섭자들에게 선서를 시켰다. 이재오는 1976년 ‘상황극단’ 사무실에서 신향식 등에 의해 포섭되었고, 10월 3일, 20;00시에 주부인 전수진 집에서 이재문, 신향식, 이해경 앞에서 남민전의 깅령, 규약 등을 읽고, 선서문을 낭독한 후 조직 가명 한국주를 부여받았다.
여기에서 강조돼야 할 것은 사생활을 공생활에 예속시킨다는 강령 아래 남남인 남녀가 한방에서 합숙생활을 하고, 자기 내연의 처를 동지의 부인으로 위장하고, 자기는 내연의 처의 삼촌으로 위장까지 하는 집단에서, 그리고 동지가 혈육보다 더 상위의 개념으로 자리하고 있는 특수집단이 바로 간첩집단인 것이다. 빨갱이들은 인격이 없는 짐승들이다.
민족문제연구소장 임헌영은 이재오가 포섭하여 키운 민투 간첩
임헌영 이재오
이재오는 반국가 활동을 하다가 5번씩이나 투옥되어 실제로 10년 이상 옥살이를 했다. 그는 김영삼에 의해 신한국당에 들어와 정체를 위장했다. 좌익들은 자신들이 벌였던 반국가활동을 민주화 통일 민족 등 애국적 명분으로 위장한다. 그들이 옥살이를 한 것은 과거의 군사정부가 뒤집어씌운 것이라고 호도한다.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부를 작성한 민족문제연구소장 임준열(임헌영)은 1976년 11월 하순, 15:00시 경, 주욱 필동 소재 근무지인 태극출판사 사무실로 찾아온 이재오로부터 “민주화투쟁의 핵심 조직”(민투)에 참여할 것을 권유받자마자 이를 쾌히 승낙하고,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20:00경 서대문구 냉천동 소재 이재오의 집에서 이재문의 주재와 이재오의 추천 및 사회로 민투의 강령과 규약을 선서하는 의식을 치름으로써 남민전에 가입했다.
수일 후 20:00경 은평구 홍은동 4거리 중국집에서 이재문과 접선하여 ’민주화운동‘에 대한 교육을 받았고, 12월 초에도 같은 음식점에서 이재문과 접선하여 점조직에 대한 교양을 받았다. 1979년 1월4일 20:00 이재오의 집에서 이재문과 접선하여 민투의 첫 활동으로 삐라를 뿌려야 하니 삐라 문안을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고, 익일인 1월 5일, 22:00시 삐라 문안을 작성했다. “오늘 박정희 1인 학정은 군대와 경찰의 사병화 . . 한국 민주투쟁국민위원회를 결성하여 박정희 1인 폭정과 무제한 투쟁할 것을 . .” “인권을 유린한 박정희 1인 폭정을 타도하기 위하여 . .” 그리고 이를 이재오에게 전달했다.
2022.10.17.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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