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했던 북괴의 518 광주 특수전 실상 (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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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빵구 작성일14-11-04 08:30 조회5,799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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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34년 전에 북괴가 광주에서 벌인 대남 특수전은 아주 정밀하고 치밀한 작전으로서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고, 미국의 정보기관도 알아채지 못했을 정도였습니다.
다만, 지금 지만원 박사님이 수사기록과 계엄기록등 객관적인 자료로 옥고를 치루면서 까지 파고들어서 북괴군 참전설이 힘을 받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냥 낭설로 받아 들여지면서 무시가 되었을 겁니다.
빨갱이들과 전라도 사람들은 소위 “증거 내놔봐” 이렇게 대들면서 “지어낸 이야기”로 몰고 갔을 것이고, 대 다수 국민들도 ”의심은 가지만 그렇게 까지 했겠어?“ 했을 겁니다.
1980년 당시는 그렇게 치밀했던 북괴 대남담당부서도 향후 30년 대한민국의 전자기술과 인터넷 망이 그렇게 발달이 될 것은 예상하지 못해서 수많은 흔적을 남겼고, 518 재단 측도 수많은 물증들을 남겼었습니다 만, 전자 기술의 발달로 그 당시 자신들의 주장을 스스로 뒤집어 엎거나, 은닉을 하는 행동을 뻔뻔하게 하고 있음은 요즘은 누구나 다 알게 되었고, 그런 결과로 국민들의 대다수 그러니까 전라도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 정말 광주사태에 북괴군들이 왔었구나.” 할 정도로 인식이 바뀌었고, 전라도 사람들도 조리있는 논법으로 달겨 들지는 못하고, 억압과 폭력 그리고 감성적인 호소뿐이 못하고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무나 518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따지고 들어도 호남에서 적의는 드러낼지언정 반론은 하지 못하게 된 정도까지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악착같이 달겨들면 공격자들도 진저리를 치게 되고 결국은 도주를 하게 되는데, 바로 지만원 박사님이 악착같이 역사 진실 밝히기를 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북괴는 아주 치밀했고, 군사작전에 관한 사항은 남한의 고첩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세포적인 역할만 부여했을 정도 였는데, 다만, 북괴는 향후 30년 동안 남한의 전자산업과 인터넷 망이 획기적으로 발달되어 실시간으로 전 국민들이 정보를 공유한다는 생각없이 그 당시 행적을 너무나 많이 노출을 했었을 뿐입니다.
실상 518 연고대생은 5월 18일부터 행동을 개시했고, 그 행동을 개시한 흔적들은 518 재단측과 계엄사 발표문 그리고 수사기록에 그대로 다 노출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노출된 자료를 조합해 본다면, 그들 연고대생 600명은 교리에 의한 철저한 특수전 작전을 벌이는데, 침투, 은닉이동, 집결, 은닉, 행동개시, 폭동유도, 폭동유발, 무기조달, 조직결성, 무장투쟁, 거점확보, 해방구 확보, 신속한 퇴각 까지 철저하게 흔적을 남기지 않고 이루어낸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을 정도의 특수작전 성공을 했었고, 남한과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냄새도 맡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518재단 측의 보상금 집착과 미화작업으로 너무나 많은 고급정보들이 유출이 되고 노출이 되면서 북괴군 특수작전의 형태가 드러나면서 입증까지 되게 된 것인데, 이런 노출된 정보의 끄나풀을 잡고 지만원 박사님이 최초로 자신이 자비로 신문광고를 내면서 주장한 북괴에 의한 518 주장을 확고하고 객관적인 증거를 들이 밀면서 입증을 하게 된 것이 그동안의 과정이라고 봅니다.
이제 정부가 권력으로 그리고 호남사람들이 폭력과 집단대응으로 518 진실규명을 말살한다고 해도 518 북괴군 특수전 참전 사실은 요지부동으로 굳혀진 상황이 되어 버렸는데, 그것은 북괴군의 허술한 관리가 아니라, 남한의 획기적인 전자기술과 인터넷 발달 그리고 호남사람들의 얕은 공 다툼과 보상금 편취 생각에다, 마지막으로 지만원 박사님의 악착같은 노력으로 그렇게 된 것 뿐입니다.
맞습니다.
북괴는 은밀한게 동서해안 주둔 특수부대를 북괴의 작계에 의해 10.26 이후에 전라남도 해안 일대에 침투시켰고, 광주에서 특수전을 벌이게 해서 해방구까지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조용히 사상자들을 처리하고 모두 북으로 귀환을 한 세계 초유의 특수전을 성공시킨 것을 한국의 군부는 부정을 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특히 특수전 부대인 공수부대는 맨손으로 침투해서 상대방 무기를 탈취해 작전을 한 열세적인 세력들에게 주둔지역에서 패주한 역사를 부끄럽게 여길 생각을 말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유사시 북한에 침투해 광주사태 보다 더 규모가 큰 특수전을 성공시켜 조국통일에 이바지 하고자 하는 커다란 마음을 내어야 합니다.
518 유공자 사진만 있다면, 연고대생 600명 전원의 얼굴을 가려낼 자신이 있을 정도로 518 재단은 너무나 많은 북괴군 특수전 정보를 흘렸습니다. 만일, 이들 얼굴을 가려 낸다면, 남한에 와 있는 북괴군 특수전 부대원에 의해 하나 하나의 얼굴이 확인되지 않을까 합니다.
실상 지금 최종적으로 발표한 지만원 박사님의 주장은 법적인 공방 때문에 축소에 축소를 한 주장이라고 할 만큼 핵심적인 사항만 발표를 한 것이지, 북괴군은 광주에 지휘소를 차리고 북괴와 직접 교신을 해 가면서 한국군을 공격했고, 무기를 자체 조달해 가면서, 훈련소 운영을 했으며, 시민군 병력의 배치까지 했었고, 간헐적으로 집합과 분산을 해 가면서 특수전을 펼치고 사상자와 부상자를 자체 처리해 버리고, 모두 퇴각을 한 것인데, 언젠가는 사관학교 출신으로 군 고급장교 출신으로 모두 다 분석을 하실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북괴는 허술한 관리를 했던 것이 아니라 정말 치밀했었습니다.
댓글목록
빵구님의 댓글
빵구 작성일
역사규명이란 보존된 역사발표를 고치거나 바꾸거나 은닉을 하면 이미 가치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518 재단측은 너무나 많은 기록의 위변조 그리고 은닉과 공개를 되풀이 했기에 주장의 신빙성을 잃고 있습니다.
반면에 지만원 박사님은 단 차례라도 말을 바꾸거나 기록을 변조하거나 저서에 기록된 내용을 부인한 적이 없습니다.
빨갱이들에게 진실은 필요 없듯이, 호남 사람들에게도 이미 진실은 필요 없고, 오직 자신들의 경솔했던 범법행위에 의한 미화적인 작업만이 필요할 뿐이게 현실적 상황은 몰려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도, 진실규명을 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을 만들 것 이라고 봅니다.
정부가 싫어도, 정보기관들이 하기 싫어도 국민적 여론은 518 역사 진실규명을 하게끔 상황이 변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