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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최종보고서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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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4-09-14 19:21 조회7,6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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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년 연구의 결과물
                                       5.18 최종보고서

                                                          머 리 말 

 

5.18은 국가전복을 목적으로 하여 북한특수군 600명이 광주에 내려와 주도한 반란 폭동이었습니다. 금방 받아들이기 어려울 이 엄청난 결론은 제가 5.18을 연구한지 만 12년이 지난 2014년 9월에 최종적으로 도출한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대남공작 세력과 이 땅의 반역자들이 결탁하여 이를 민주화운동으로 둔갑시켜 놓았습니다. 감쪽같이, 국가도 속고 국민도 속았습니다. 이들 반역자들은 지금까지 국민으로부터 엄청난 세금을 뜯어다 호의호식하면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국가에 대한 적개심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국가와 국민을 능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5.18의 사기극이 있기에 4.3유족, 세월호 유족 등 점점 더 많은 정체불명의 세력들이 5.18의 사기극을 모방하여 금전적 이득과 신분상승을 꾀하면서 사회갈등을 일으키고 국가 사회발전에 제동을 걸고 있습니다.  

저는 5.18 수사-재판기록 18만 쪽을 정리하였습니다. 이 18만 쪽에서 이 나라에 알려진 5.18에 대한 상식 모두가 거꾸로 날조된 거짓들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이라는 책에 정리해 놓았습니다. 2008년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북한이 발간한 대남공작 역사 자료들, 북한이 만든 5.18영화, 탈북자들이 쓴 5.18증언집, 통일부 자료, 일본자료 등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자료들을 검찰보고서에 나타난 상황일지, 안기부 상황일지들과 다시 대조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저는 5.18에 북한특수군 600명이 광주에 와서 모략작전을 기획-연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장 상황들을 자세하게 기록까지 해가지고 돌아갔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광주에서 북한특수군이 주도했던 작전에는 북한의 기막힌 전략과 전술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들의 책에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2010년이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광주에는 광주의 운동권이 조직한 광주시위대와 북한특수군 600명이 병존했던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2014년 9월, 저는 민주화를 위해서든 또는 폭동을 위해서든 광주인들이 주도하여 구성한 광주시위대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음을 밝혀냈습니다. 5.18은 순전히 북한군 600명이 벌인 특공-모략작전이었다는 가공할 결론을 도출한 것입니다. 그리고 폭동에 뛰어든 광주인들은 개념 없는 부나비들에 불과했다는 결론도 도출하였습니다.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에도 많이 갔습니다. 김일성이 직접 제작한 북한의 5.18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가 보관돼 있고, 이는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미국과 한국을 모략하는 내용으로 제작되었습니다. 1989년 김일성이 직접 황석영과 윤이상을 불러들여 황석영에게는 시나리오를 쓰게 했고, 윤이상에게는 영화음악을 작곡케 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주제곡이 바로 “님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북한에서는 오직 김일성만 “님”의 호칭을 소유하고 있으며, 영화제목의 “님”이나 영화주제곡에서의 “님”은 바로 김일성을 의미하는 것임도 알아냈습니다. 5.18이 김일성에 바치는 교향시였다는 의미가 그 영화제목에 내포돼 있다는 것도 탈북자들을 통해 확인하였습니다.  

북한의 최고인 것들에 “5.18”이라는 호칭을 명예로 수여한다는 사실을 수많은 탈북자들이 증언록 “화려한 시기극의 실체 5.18”에서 이구동성으로 증언하였습니다. 실제로 룡성기업에 있는 1만 톤짜리 프레스에 “5.18청년호”라는 글이 새겨진 사진도 입수돼 있고, “5.18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이라는 글씨가 있는 철도역 사진도 입수돼 있습니다. 그리고 2001년 09월 28일 연합뉴스는 “이제까지 막연하게 존재만 알려졌던 북한 `5.18영화연구소`의 실체가 최초로 밝혀졌다”고 보도하였습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북한에서는 모든 지역에서 여러 날 동안 5.18을 기념하고 추념하는 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린다는 내용을 탈북자들의 증언록에서 읽었고, 이것을 통일부 ‘주간정세보고서’를 통해 재확인하였습니다. 북한이 발행한 대남공작 역사책들에는 5.18이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상 최고수준의 작품이라고 자랑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5.18은 순전히 600여 명의 북한특수군이 일으킨 모략작전이었고, 광주인들은 민주화 또는 폭동 그 어느 것을 위한 독자적인 시위대를 구성한 바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머리말의 아래 공간은 이에 대한 개념을 요약하는데 할애하고자 합니다.  

1980년 5월 18일이면, 당시 대한민국 대학생들 전체가 숨도 크게 쉬지 못했던 무서운 날이었습니다. 전두환을 처벌하기 위해 만든 1995년 8월 17일자 검찰 및 군검찰이 공동으로 작성한 최종보고서에 의하면 5월 18일 아침 9:30분 경, 200여명으로 구성된 광주 대학생들이 전남대학교 정문에 정렬해 있는 계엄군을 향해 책가방에 준비해온 각이 진 돌멩이를 던져 계엄군 얼굴에 피가 줄줄 흐르게 했습니다. 도대체 이 시각이 어떤 시각이었습니까? 이 시각에는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생들이 꼭꼭 숨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목숨을 내놓고 싸운다는 전남지역 운동권의 최고 영웅 윤한봉은 숨을 곳으로 찾느라 전남-대전-서울을 허우적거리며 다녔고,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은 흔적도 없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 무시무시했던 시각에, 감히 광주의 대학생 200여명이 떼를 지어 계엄군을 스스로 찾아가 “우리 도서관에 가야 하겠다”며 당당하게 시비를 걸고 이어서 돌멩이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배포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검찰 보고서에는 그냥 “대학생들”이라고 표현돼 있지만 이들은 광주의 대학생들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5.18영웅들이라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증언한 바에 의하면 광주 학생들과 지식인들은 “항쟁 10일 내내” 모두 숨어 있었고, 운동권은 잡혀 갔거나 더 꼭꼭 숨어있었습니다. 이렇게 숨는 것이 정상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이 정도의 행동을 보인 "200여명의 대학생들“이라면 세계적인 수준의 싸움 능력을 가진 훈련되고 기획된 사람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남들은 혹시 오해를 받아 경찰에 걸려들까 숨죽이고 있는 판에 감히 무술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계엄군이 곧 출동할 수 있는 상황에서, 금남로 충장로 등 번화가에 산재한 수십 개 파출소를 불태워, 광주에서 가장 천대받던 사회불만 세력의 잔치를 유도해내고, 구경꾼들을 대거 유인하는 작전을 펼칠 수 있는 이 사람들은 대한민국 사람일 수 없습니다. 5월 18일부터 시작하여 5월 21일 오후 5시에는 계엄군을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막다른 코너로 몰아붙여 시 외곽으로 도망가게 할 때까지 4일 동안 벌인 눈부신 북한군의 특공작전은 세계에 그 유례가 없는 기적 그 자체였습니다.  

1995년 검찰 및 군검찰의 최종보고서에 의하면 5월 21일, 오전 8시, 300명이 매복해 있다가 극비리에 이동하는 20사단 사령부를 기습하여 사단장 차를 포함한 지휘차량 14대를 빼앗아 가지고, 방위산업 업체인 아시아자동차 공장에 가서 “20사단 사단장 차를 보아라” 하면서 순종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또 다른 300명이 버스를 타고 아시아자동차공장에 왔습니다. 이들 600명은 4대의 장갑차를 몰고 나갔습니다. 370여대의 군용트럭을 탈취해 전남 17개 시군에 위장해 있는 44개 무기고를 불과 4시간 만에 털어 2개 연대를 무장할 수 있는 무기를 확보하였습니다. 총에 맞아 사망한 광주인의 70%가 이 무기고에서 꺼낸 총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당시 광주인들은 이 총상 사망자 모두를 공수부대가 죽인 것이라고 믿고 국가를 증오하였으며, 이러한 증오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런 모략작전을 통해 국군과 광주인들이 서로 총부리를 마주하고 전쟁을 하도록 유도했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돌아갔습니다.  

1976년 이스라엘이 멀리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 인질로 납치돼 있는 100여명의 이스라엘 국민을 구출해오기 위해 수송기 4대를 보내 특수군사작전을 감행하였습니다. 그 어느 세계의 군사전문가들도 이런 작전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엔테베 작전은 세계 군사작전에서 하나의 기적으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군 600명이 주도한 광주작전은 이보다 더 화려하고 더 기적적인 특공작전일 것입니다. 삼엄한 계엄상태에서 계엄군을 바로 앞에 두고, 6개월 동안 소규모 단위로 침투시킨 600여명의 특수군으로 하여금 남한 땅 광주에서 광주의 “쓸모 있는 바보”들을 소모품으로 동원하여 계엄군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갔던 그 전술은 이스라엘의 구출작전보다 더 어렵고 고난도이며 화려한 특공전으로 기록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북한특수군 출신으로 광주작전에 참가했던 사람이 2006년에 탈북하여 현재 서울 근교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작년 5월, 방송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코너에 몰린 5.18쪽 사람들이 이 탈북자를 고발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서울 검찰들이 그를 상대로 조사조차 하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 지은 것입니다. 고발을 받은 탈북 당사자들은 빨리 기소해서 법원에서 진실을 가리자 주장한 반면 검찰은 사건이 이미 종결되었다며 조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분명히 북한 특수군으로 광주작전에 참전해서 적어도 3명의 계엄군을 총으로 쏘아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증언을 했는데 광주사람들은 아무런 근거 없이 그를 허위사실 유포자라 주장하며 고발을 한 것입니다.  

이어서 2013년 5월, 그동안 보관만 해오던 황장엽과 김덕홍의 증언이 전 월간조선 편집장 김용삼에 의해 방송되고 출판되었습니다. “5.18은 북한의 공명주의자들이 배후 조종하여 일으킨 폭동인데 북한이 이를 남한에 뒤집어씌우고 있다. 광주사태가 끝난 이후 통전부 간부들이 일제히 훈장을 받고 술파티를 했다” 제 마지막 결론과 정확히 일치하는 증인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황석영 명의로 발간돼 온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약칭 ‘넘어 넘어’)라는 책이 바로 북한 노동당이 발간한 대남공작 역사책 2권을 섞어서 베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북한 작가가 써서 남한 반역자들에 넘겨진 것입니다. 이 책의 재료들은 김상집-소준섭-이재의-황석영 순으로 옮겨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386대학생들, 그리고 운동권 인물들, 교수들, 판검사, 변호사들 모두가 황석영 이름으로 발간된 “넘어 넘어”라는 책을 5.18의 바이블로 존경했습니다. 그리고 1996-97년 판결은 모두 이 황석영 책의 논리대로 내려졌습니다.  

사람들은 600명의 특수군이 어떻게 넘어올 수 있느냐, 의문을 제기합니다. 아무리 해안 및 휴전선이 허술하다 해도 어떻게 600명씩이나 한꺼번에 올 수 있느냐며 핵심을 호도합니다. 하지만 이 600명을 한꺼번에 적지로 떼 지어 보낼 군 지휘관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이들은 6개월여에 걸쳐 조금씩 침투한 북한병력의 합입니다. 탈북자들은 ‘남한은 북한 통전부의 안방’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역대 국정원 대공요원들은 ‘그동안 간첩을 잡은 것은 순전히 통신감청과 기존 간첩들의 제보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해안경비는 믿을 수 없다 하였습니다. 이에는 저도 찬성합니다. 1986년 저는 대령 연구원 자격으로 대한민국의 전 해안을 돌아다니며 해안 레이더 등 감시 시스템과 근무실태를 파악한 바 있습니다. “해안이 비었다” “공중이 비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결론이 보안사를 통해 대통령에 보고되자 국방장관 등으로부터 미움을 사 스스로 예편하였고 곧장 미 해군대학원 교수와 미국방성에 가서 취직을 하였습니다. 해안은 북한특수군들에는 얼마든지 열려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5.18기념사업회가 한국사회와 유네스코에 내놓은 자료들을 보았습니다. 5.18단체들이 유네스코에 자료를 내놓은 것은 이제 보니 국가차원에서 매우 바람직했습니다. 일단 유엔에 내 놓으면 문서조작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자료들은 저로 하여금 5.18이 무엇인지에 대해 마지막 결론을 얻게 했습니다. 군법회의에서 5.18의 핵심 주범이라며 사형과 무기징역을 받았던 사람들 중에서도 5월 18일부터 5월 21일까지 시위를 조직했거나 참가한 사람이 일체 없습니다. 5.18의 주역으로 중형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계엄군이 포기한 전남도청에 5월 22일 이후 들어온 호기심 많았던 20대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광주에는 대학생 시위대도 없었고, 노동자 시위대도 없었습니다.  

민주화 판사들은 1996-97년 판결문에 “광주시위대는 헌법을 지키기 위해 결집된 준-헌법기관”이라고 명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번에 내린 최종결론으로는 광주인들 중에 이런 시위대든 저런 시위대든 시위대 자체가 없었습니다. 대학생들로 위장한 600명의 북한특수군이 최초 4일작전(18-21일)의 주동군이었습니다. 결국 5.18기념사업회가 내놓은 ‘광주영웅들의 증언집’은 북한 특수군이 내려와 국가전복 작전을 하는 사실을 모르고 거기에 광주에서도 천대받던 부나비들이 부화뇌동했다는 고백집에 불과했습니다.  

5월 21일 저녁, 계엄군이 광주시를 포기하고 사라지자, 광주시는 갑자기 진공의 공간처럼 텅 비었습니다. 싸울 상대가 사라진 5월 22일, 특수군 600명도 잠시 지취를 감추었습니다. 북한군이 자취를 감추니 광주에는 시위대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대학생들도 시내에 얼씬하지 않았습니다. 광주에는 광주인들로 구성된 시위대가 5월 18일부터 21일까지도 없었고, 계엄군과 600명이 다 사라진 22일부터 광주 재진입작전이 끝난 27일까지에도 없었습니다.  

5월 21일, 계엄군이 도망가자 광주유지들이 도청에 모여 그 화려한 대학생들을 애타게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 신출귀몰하던 대학생들은 단 한명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광주유지들은 5월 22일부터 5월 25일까지 무기를 회수하여 계엄군에 반납하는 운동을 벌였습니다. 이 기간은 시위기간이 아니라 항복을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이때까지도 광주의 대학생들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무기회수와 반납이 대세를 이루자 이들 600명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무력시위를 하면서 자기들을 믿고 다시 싸우자 선동하고 다녔습니다.  

그래도 이상한 낌새를 챈 대부분의 지각 있는 사람들은 응하지 않았습니다. 600명은 마지막으로 교도소를 점령하여 그 안에 있는 170명의 좌익수를 포함한 1,700여명의 수용자들을 폭동에 동원하려고 6차례에 걸쳐 교도소를 공격하였습니다. 이 때 참호를 파고 대기하던 공수부대와 고지쟁탈전을 벌여 아마도 많은 특수군이 사살됐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26일 마지막으로 도청의 일부 20대들에 결사항전을 선동하고 사라졌습니다.  

이들의 영향을 받아서였는지, 극소수의 20대 노동자들이 5월 26일 낮과 밤에 “결사항전”을 선언했다가 계엄군의 진압작전을 맞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5.18사건 재판에서 중죄를 받은 사람들이 바로 이 조무래기들이었습니다. 결사항전 주창론자들은 그들 스스로가 증언했듯이 서로 일면석도 없는 남남들이었으며, 오합지졸이었고, 의견충돌로 시간을 보냈다 합니다. 이들은 또한 5월 18일부터 5월 21일까지 벌어졌던 가장 화려한 작전에 전혀 참전하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5.18은 순전히 북한특수군 600명이 벌인 남남 이간용 특수작전이었습니다. 그것이 5.18의 전부입니다. 거기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지각없는 사회불만 세력과 중고생들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소위 ‘진보’라는 간판을 내건 사람들이 이런 부나비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이런 지각없는 사람들을 “쓸모 있는 바보”(소모품)라고 지정해 놓고 있습니다.  

5.18에 대한 재판은 최규하 정권에서도 했고, 김영삼 정권에서도 다시 했습니다. 이는 헌법이 규정한 일사부재리 원칙의 위반이었습니다. 헌법을 유린하기 위해 YS는 특별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내린 최종결론이 맞다면 이 두 개의 재판 모두가 잘못된 판결을 낸 것이 됩니다. 광주에 광주인들이 독자적으로 구성한 시위대가 없었음에도 1981년 4월 1일의 대법원과 1997년 4월 17일의 대법원은 다 같이 광주시위대가 있었다고 잘못 판결하였습니다. 1981년의 대법원은 이 광주시위대를 내란 음모와 연관된 폭동이라고 단죄한 반면, 1997년의 대법원은 600명 중심의 광주시위대를 놓고 헌법수호를 위해 결집한 준-헌법기관이라 판결하였습니다. 전자는 함량미달의 판결이었고, 후자는 북한 판사의 입장에서 내린 판결이었습니다, 5.18과 같은 역사를 대한민국 판사들이 재판하기에는 판사들의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결론이 아니겠습니까? 5.18은 북한이 주도적으로 실행한 반란폭동의 역사였지만 당시의 국가기관은 그 진실을 찾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이 약점을 이용하여 북한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황석영 등을 이용하여 국가가 쓰는 5.18역사를 북한의 뜻대로 기록하게 공작하였고, 이는 성공하였습니다. 이 무슨 치욕입니까?


2014.10.
저자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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