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탐구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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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8-26 17:05 조회3,27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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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탐구 [30]
집권과정에 하자가 있다?
세간에는 “전두환은 정치는 잘 했는데 집권 과정에 하자가 있다”는 말이 떠돈다. 그리고 이 말은 거의 국민적 상식처럼 유통되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저자는 우리나라 대통령 역사상 그를 둘러싼 주위의 선후배들로부터 전폭적인 추대를 받아 자기 의사와는 관계없이 대통령 자리로 떠밀려 올라간 대통령은 전두환이 유일한 케이스다.
미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만일 당신이 기르는 개가 당신을 최고라고 인정하면 당신은 더 이상 당신의 평판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저자는 중위-대위 시절 장군의 전속부관을 했다. 전숙부관들이 어쩌다 한 공간에 보이게 되면 대부분의 전속부관들은 자기가 모시는 장군들에 대한 못 마땅한 점들을 늘어놓는다. 장군을 가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때 묻지 않은 초급장교들의 평판이 정확한 것이다. “내가 모시는 장군이 최고야” 이런 평가를 받는 장군이 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당시 전두환은 자기보다 선배 되는 3-4성 장군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마치 홍수에 강아지가 불가항력으로 떠내려가듯이 그 역시 선배들의 강력한 추대로 대통령 자리로 떠밀려 간 것이다.
12.12가 어째서 쿠데타인가?
많은 사람들이 12.12를 쿠데타라고 믿고 있다. 12.12가 쿠데타라는 말은 진실이 아니라 모략이다. 5.18이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이 진실이 아니듯, 12.12가 쿠데타라 하는 것도 진실이 아니다. 1979년 당시 정승화는 4성 장군으로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이었고, 전두환은 2성 장군으로 계엄사 합수부(합동수사본부) 부장이자 보안사령관이었다. 1979년 12월 12일은 박태통령이 시해당한 10월 26일로부터 46일째 되는 날이다. 이 46일은 정승화가 릴레이 범행을 이어가는 직권남용 기간이었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이 직위와 계급 상 자기보다 새까맣게 위에 있는 정승화를 체포한 것은 하극상도 아니고, 쿠데타도 아니었다. 정승화가 46일 동안 저지른 범죄혐의가 엄청나서 체포한 것이다. 법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는 말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하늘의 명령으로 알고 살아간다. 4성 장군에 범죄혐의가 수사당국은 당연히 수사를 해야 한다.
육군참모총장인 정승화는 김재규와 함께 시해현장 가까이 있었다. 그런데 증승화는 이 사실을 감쪽같이 숨기고, 10월 26일 밤중에 계엄사령관으로 지명됐다. 이 자체가 범죄인 것이다. 시해 후 정승화는 김재규와 함께 같은 차를 타고, 시해현장으로부터 육군분부 B2 벙커로 이동했다. 벙커에서는 국방장관을 제치고 손수 전화기를 들고 김재규가 원하는 대로 병력을 이동시켰다. 경호실장만이 지휘할 수 있는 수경사령관을 직접 지휘하여 청와대를 포위하고, 경호실 차장에게 명령하여 경호실 병력을 시해현장으로 가지 못하게 조치했다. 이는 그가 차지철이 죽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취할 수 있는 조차였다.
10.26의 밤 11시 40분은 국민의 머리에 기록돼야 할 중요한 역사적 이정표다. 시해 당시 김재규 편에 섰던 청와대 비서실장 김계원이 김재규를 배신한 순간이다. “각하의 시해범은 김재규다.” 이 말을 들은 노재현 국방장관이 곧바로 정승화에 명했다. “김재규를 체포하라.” 하지만 정승화는 보안사령관 정두환을 불러 다른 명령을 내렸다. “부장을 정동 안가로 정중히 모시라.”
이러한 사실 모두를 깜깜하게 몰랐던 내각은 회의를 열어 정승화를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했다. 한편 전두환은 김재규를 정동 안가 대신 서빙고 조사실로 데려갔다. 조사실에서 김재규는 자기가 정승화와 함께 할 혁명 마스터 플랜을 털어놨다. 조사관들의 시선이 정승화로 집중됐다. 이 엄청난 자백내용을 알 리 없는 정승화는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되자 안하무인 식으로 직권을 남용했다. 김재규를 재판하는 군법회의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정치 인물들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전방 고위 장군들을 차례로 불러 김재규를 옹호하고, 박정희를 비하하는 정치발언을 했다. 김재규 처리에 대한 수사를 방해했다.
이런 정승화를 조사하는 것은 합수부의 당연한 임무요 의무였다. 수사팀이 정승화를 방문해 예의바른 자세로 조사실로 가자고 앙청했지만 정승화가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부려 여러 사람들이 총상을 당했다. 이런 불상사를 저지르고서야 정승화는 순순히 수사관 요구에 응했고, 조사실에서 그는 그때까지 숨겨온 사실들을 고백했다. 그리고 그 고백의 내용은 당시 군 내부의 인식과 일치했다.
전두환이 제11대 대통령에 오른 날짜는 1980년 8월 27일이었다. 1979년 12월 12일에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켰다면 그 즉시 대통령이 되어야지, 어떻게 9개월 넘게 최규하 대통령을 극진히 모셨는가? 모략이라 해도 너무 어처구니없는 모략임을 국민은 깨달아야 할 것이다.
2022.8.26.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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