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탐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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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8-10 20:38 조회3,30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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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탐험 [12]
전화기가 곧 신분이었던 1970년대
지금은 식구마다 핸드폰을 소유하고 있다. 시장 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 리서치는 2021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소매 판매량 기준 18.9%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고, 애플이 17.2%로 2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한국이 전화기 시장을 선도하고, 1인 1전화기 시대가 전개돼 있는 것에는 그 뿌리가 있다.
1970년대에는 특권층이나 부잣집만 거실에 가정용 전화기를 설치했다. 공중 전화기도 없었다. 전두환은 1973년 1월에 장군으로 진급하면서 일반 전화기 신청을 했지만, 전화 회선에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신청이 접수되기도 어려웠지만, 접수됐다 해도 서울에서는 여러 달이 걸렸고, 지역에 따라서는 2-3년씩 걸렸다고 한다. 1978년 당시 전화 신청을 해놓고 기다리는 사람이 60만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청색전화 백색전화
당시 전화기는 ‘청색전화’와 ‘백색전화’가 있었다. 청색전화는 소유권이 없고 사용권만 있어서 이사를 하면 반납해야 했다. 사고 팔 수 있는 전화기는 ‘백색전화’였다. 강남지역 30평 아파트 값이 200만 원이었는데 백색전화 값이 260만 원으로 치솟을 때도 있었다 한다. 1980년, 전 가구의 87%가 TV를 소유했고, 농촌 가정에도 냉장고와 세탁기가 다 있었다. 그런데 전화기는 4가구에 1가구 꼴로 설치돼 있었다. 전두환은 우리나라 통신 사정이 다른 문명의 이기에 비해 낙후한 이유를 진단했다. 그리고 전화기에 대한 인식이 잘못돼 있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전화를 단순한 ‘통화 수단’인 것으로만 여기고, ‘정보 유통 수단’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지 못했기 때문에 사업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전두환의 이 생각이 IT강국의 씨앗이 된 것이다.
최우선 사업이 전자식 교환기 개발
이런 생각에 미친 전두환은 육사 18기 오명 비서관을 불러 자기 생각을 이야기 했다. 그랬더니 오명이 통신 분야의 문제점과 비전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주었다. 전두환은 오명 박사를 체신부 차관으로 보내 통신 현대화 사업을 총괄하도록 했다. 이어서 오명은 체신부 장관에 오래도록 유임하면서 우리나라를 IT 강국으로 키우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외에도 김성진 박사, 서정욱 박사 등이 힘을 모았다.
비서실 경제팀은 공무원, 기업인 전문가, 학자 등으로 TF를 만들어, 전자 도약 사업 3개를 선택했다. 반도체 사업, 컴퓨터 사업, 전자교환기 사업을 전략 사업으로 선정한 것이다. 막대한 예산을 소요로 하는 것이라 냉소를 보내는 공무원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돈이 많다면 차라리 한강다리 하나를 더 놓자”는 막말까지 나돌았다. 1981년, 전두환은 정부 5개년 계획에서 통신 사업비를 대폭 높였다. 통신 사업 기업들로 하여금 수입의 3%를 무조건 떼어 연구개발비로 쓰게 하는 법도 제정했다. 돈이 모였다.
당시까지 교환기는 외국에서 사다가 썼다. 기계식이 아닌 전자식 교환기는 선진 6개국만 생산하는 아주 비싼 것이어서 국가 재정으로는 1가구 1전화기의 꿈을 실현할 수 없었다. 유일하게 남은 길이 국산 개발이었다. 인도와 브라질이 전자식 교환기를 개발하다가 실패했다는 뉴스들이 떴다. 기술자들도 무모한 사업이라며 코웃음을 쳤다. 교환기 수입업체들은 자기들의 이익이 침해된다는 이유로 집요하게 저항했다.
교환기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하지만 이 모든 반대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전두환은 전자 교환기 사업을 1982년 5차 5개년 계획에 반영시켰다. 사업단이 구성됐다. 800억 원이 투자되는 대형 연구개발 사업이었다. 4년만인 1986년, 드디어 모두가 불가능한 사업이라며 비웃음을 보냈던 전자 교환기 개발이 성공했다. 기적에 속하는 성공이었다. 금성반도체, 동양정밀, 삼성반도체 개발자들이 세계 IT업계의 신화적 존재로 부각됐다. 우리가 성공하자 외국산 교환기 가격이 20% 가격으로 내려앉았다. 필리핀을 시작으로 베트남, 몽골, 러시아 등으로 수출되었다.
전두환의 꿈 1가구 1전화 시대 현실로!
수백만 원을 호가하던 백색전화기 가격이 일반 상품 가격으로 내려앉았다. 1987년, 1,000만 회선이 돌파되었고, 드디어 전두환이 꿈꿨던 1가구 1전화 시대가 눈앞에 전개되었다. 신청만 하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즉각 가설이 됐다. 이사를 할 때에도 철거와 개통이 하루에 다 이루어졌다. 당시 선진국에서도 이런 서비스는 불가능했다. 일본의 경우, 전화기를 놓으려면 여러 날 걸려야 하는 일, 유럽에서는 1개월 이상 기다려야 하는 일을 우리는 단 하루에 해낼 수 있었다. IT선진국 아니라 IT선두국이 된 것이다.
2022.8.6.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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