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탐험 [20]
페이지 정보
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8-16 22:13 조회4,166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전두환 탐험 [20]
도랑 교육을 바다 교육으로
전두환은 진취적인 미국식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고, 그래서 자유와 창의력을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대통령이 되어서 그가 가장 먼저 해방시킨 분야는 교육과 문화였다. 좁은 공간에 갇혀 있던 교육과 문화가 숨을 쉬게 되었다. 학업을 국가가 통제하고, 모든 학교가 붕어빵처럼 입시에만 몰두하고, 부모로부터는 고정 관념을 매일같이 잔소리처럼 들어야 하는 교육환경에서는 창의력이 자랄 수 없었다. 전두환은 각자가 소유한 다양한 재능을 살려주고, 인성을 아름답게 가꾸어주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획일화된 주입식 교육을 지양하고, 학생 각자에게 자유와 자율권을 부여했다. 각자가 선택하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교육을 시켜야 주인 의식과 주체성을 가진 국민이 탄생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교복과 교모는 통제문화의 상징이었다. 전두환은 학생들에게 교모를 쓰지 않을 자유와 교복을 입지 않은 자유를 주었다. 국민에게는 통제문화의 상징이었던 ‘야간 통행 금지’를 해제시켜 주었다. 북괴의 침투가 모두 야간을 틈타 자행되고 있는 실정에서, 야간에도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은, 북괴와 범죄자들에게 자유 공간을 허락해 주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시도는 실로 엄청난 모험이었다. 전두환은 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주위의 모든 참모들이 다 말렸다. 하지만 그는 위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발전이라고 생각했다. 반대 방향으로 뛰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다 잡는 방법은 없다. 하나는 포기해야만 했다. 전두환의 이 결심은 실로 혁명적 조치이자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었다.
점수만 따는 입시 교육을 지-덕-체 전인 교육으로
창조는 관찰력에서 출발한다. 전두환은 교육의 문제점이 입시 교육에 잉태해 있다고 관찰했다. 일류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당시 교육의 전부였다. 이러한 의식 속에서 피어난 독버섯이 과외 열풍이었다. 그가 정리한 과외의 폐해는 이러했다. 전인적 발달을 저해하고, 학교 기능을 약화시키고, 교사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가계에 부담을 주고, 그래서 부자들에게만 혜택을 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교육이 금수저 교육과 흑수저 교육으로 양분돼 있다고 진단했다. 모두가 좁은 길에서 과당 경쟁을 하면 거기에서 생산된 교육의 질은 사회의 다양성을 창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폐기하는 대신 그는 교육의 스펙을 4대 이념으로 명문화했다. 정신 교육, 과학 교육, 전인 교육, 평생 교육인 것이다. 지식만 습득하는 교육이 아니라 덕을 기르고 체력을 기르는 교육이 동행됐다.
학교 평준화
사립 학교를 장려해, 교육 시설을 확충했다. 주간 대학과 야간 대학과의 차별도 없앴다. 교원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넣어주기 위해 연수원을 활성화시켰다. 중등 교사보다 3호봉이나 낮게 책정했던 초등학교 교사의 호봉을 동일하게 만들어 초등학교 교사들의 사기를 올려주었다. 학교장의 계급을 부이사관으로 우대했다.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하기 위해 1982년을 교권 확립의 해로 설정하고,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정했다,
학교를 평준화했다. 대학별로 시험 문제를 따로 내는 대학별 본고사를 폐기하고, 국가에서 시험 문제를 내는 학력고사를 치르게 하고, 내신 성적을 입학에 반영시켰다. 학교마다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들이 삼위일체가 되어 학교의 전통을 세워서 발생하는 우열이야 국가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지만 모든 학교에 동등한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이었다.
교육 시설의 지방 확대
하고 싶은 일은 많은 반면 국가 예산은 늘 부족했다. 그래서 교육세를 목적세로 신설했다. 고질병처럼 실로 오랫동안 학생들을 괴롭혀오던 과밀 교실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의무 교육을 중학생에까지 확대했다. 방송 통신 대학을 학사 과정으로 개편하고, 산업체들로 하여금 부설 학교를 설립하여 졸업생들에게 공교육과 동등한 자격과 학위를 주도록 했다. 1981년부터 유치원교육 시설을 확대해 부자들만 다녔던 유아 교육을 서민층에까지 확대했다. 각 지방별로 전문 직업 기술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개방 대학’을 활성화시켰고, 지방 단위로 공공 도서관과 이동도서관을 확대했다. 1982년부터 88년까지 총 247억 원을 투입해 강남 서초공원에 ‘국립 중앙 도서관’을 신축했다.
국립중앙도서관
2022.8.16. 지만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