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는 쿠데타가 아니라 쿠데타를 저지시킨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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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7-27 16:24 조회3,35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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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는 쿠데타가 아니라 쿠데타를 저지시킨 사건
12.12는 2개의 사건으로 구성돼 있다. 하나는 정승화 체포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정승화 체포에 반항하는 정승화 군벌의 불법 난동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군부 상호간의 충돌사건이다.
정승화 체포 사건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했던 장소에 김재규와 함께 있었던 정승화는 10월 26일 밤 김재규가 시해범이라는 사실을 2차례에 걸쳐 알았다. 시해 현장에서 화약 냄새 진동하고 피범벅이 된 김재규 와이셔츠를 보고 알았고, 11:30분, 노재현과 정승화가 함께 한 자리에서 비서실장 김계원이 “각하의 살해범은 김재규”라 밀고하는 자리에서 또 확인했다.
11:30분, 정승화는 국방장관 노재현으로부터 김재규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럼에도 정승화는 전두환의 김재규 체포를 방해했고, 김재규와 함께 혁명정부를 세우려 정치적 행각을 드러냈다.
당시 전두환은 검찰과 경찰까지를 포함한 국가 전체의 수사기관을 총괄하는 계엄사 합수부의 수장이었다. 합수부는 10월 26일부터 12월 6일까지 40여 일간 정승화의 정치행각을 내사하여 12월 6일 결심을 했다. 수사국장 이학봉에게 12월 12일을 기해 김재규와 함께 혁명을 주도하려는 정승화를 전격 체포하라고 명했고, 이학봉은 이를 이행하였다. 대통령 재가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빨갱이들의 억지였다.
정승화 군벌의 난동 수습 사건
정승화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정승화 군벌이 들고 일어났다. 전두환을 체포하려 했다. 서빙고에 체포돼간 김재규를 구하고, 최규하를 인질로 삼아 정승화를 구출해내려는 난동을 부렸다. 가장 앞장선 사람이 정승화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수경사령관 장태완이었다. 헌병감 김진기, 특전사령관 정병주, 육군참모차장 윤성민 등이 국방장관을 따돌리고 장태완과 함께 했다.
장태완은 대통령을 위해 사용해야 할 포병과 탱크 등을 동원하여 12.12 관련 장군들이 모여 있었던 수경사 소속의 30경비단을 포격하라 명령했다. 그리고 특전사령과 정병주는 제9 공수여단을 출동시켰다. 이어서 30경비단에 있었던 자기 부하 김진영 대령과 장세동 대령을 사살하라 명령했다.
김재규와 정승화 체포한 것은 순전히 전두환의 구국 결단
이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눈치 챈 부하들이 장태완의 명령에 불복하고, 장태완 등 동조 장군들을 긴급 체포함으로써 난동은 수습됐다. 그 과정에서 장태완과 정병주가 30경비단을 공격하고 합수부를 포위하려고 병력을 움직였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합수부가 병력을 움직였다. 당시 상황은 아군끼리의 내전 직전 상태였다. 전두환이 재빨리 난동 지휘자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체포하지 않았다면 정승화 군벌과 합수부에 찬동하는 군벌 사이에 내전이 발생했을 것이다.
결 론
5.18이 빨갱이들에 의해 민주화운동으로 각색됐듯이 12.12도 빨갱이들에 의해 쿠데타로 각색된 것이다.
2022.7.27.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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