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인들끼리 총질하게 한 ‘검은 세력’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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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3-06-10 18:47 조회13,40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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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인들끼리 총질하게 한 ‘검은 세력’ 있었다
‘역사로서의 5.18’ 제2권 137쪽-142쪽에는 외부의 검은 세력이 개입하여 광주인들끼리 총질을 하도록 만든 증거들이 있다. 그 증거는 폭동 참가자인 ‘시민군 최영철’이 쓴 수기였고, 그 수기는 유네스코에 올라있다.
여러 페이지에 증거 돼 있는 내용을 요악하면 5월 24일 20세의 최영철은 시내에 많이 돌아다니는 차량을 공짜로 얻어 타고 백운동으로 가려다가 강제로 외곽지역으로 끌려가 강제로 진월동 효덕국민학교에 배치되었다. 모두 5명이었다. 거기에서 정체모르는 사람들이 무기와 철모를 주었다. 최영철은 카빈과 M1소총을 다 지급받고 실탄을 받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이후 시민군끼리의 총격전이 벌어졌다. 계엄군은 광주시를 이미 5월 21일 떠나 외곽에 머물러 있었다. 이른바 ‘시민군’들은 대부분 어린 아이나 사리 분별력이 없는 막노동꾼들이었다, 배운 사람, 나이 든 사람, 사리 판단력이 있는 시람은 총을 받지 않았다.
이들 최영철 그룹 5명을 포함한 어린 시민군들이 철모를 쓰고 총을 들자 이들에게 총알이 날아왔다. 광주시내에 쫙 깔린 ‘총을 든 어린 사람들’은 외곽으로 빠졌던 계엄군이 언제 몰래 광주시로 침투할지 초 긴장상태에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멀리 철모를 쓰고 총을 두 개 씩이나 든 사람들의 실루엣을 보고 총질을 하였다.
이 책의 저자 김대령 박사는 5월 21일, 도청 앞 공방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금남로 뒷골목에서 이런 식의 시민들끼리의 총질이 이루어졌고, 장갑차 뚜껑을 열고 우뚝 솟은 상태에서 달리던 조사천이 카빈총을 맞아 푹 쓸어졌다고 밝혔다. 광주인들이 5.18 비극의 상징이라며 늘 내거는 사진이 있다. ‘어린 아이가 아버지 사진을 들고 있는 사진’이다. 이 사진속의 아버지가 바로 조사천이다.
필자는 5월 21일의 도청 앞 충돌 시, 광주시에서 총 63명이 죽었는데 계엄군에 의해 사망한 시민은 0명이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시민들끼리 총을 쏘게 만든 지혜를 짜낸 검은 그림자, 뒷골목에서 누군가가 시민을 마구 쏘아죽인 검은 그림자는 절대로 광주시민일 수 없다.
2013.6.10.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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