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기념재단과 이동욱의 범죄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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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6-27 14:39 조회3,40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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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의 발표제목: “5.18 허위 조작 정보 분석 집담회” (참고: 集談會)
장소: 5.18기념재단 오월기억저장소
발표 일시: 2022.4.21.
영상 게시일: 2022.6.15
연사: 이동욱
이동욱 발언시간: 81분
발언 중 ‘지만원’ 이름 거론 회수: 47회
결론: 이동욱 한 사람만이 5.18연구자였고, 이동욱의 연구초점은 지만원이었다. 지만원이 연구를 한 것이 아니라 허위 조작을 했다는 내용으로 발표를 했고, 5.18기념재단은 이 영상을 2022.6.15.에 게시했다.
5.18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시간이 만료돼 가는 시점에서 이 내용을 81분 동안이나 5.18기념재단 간부들에 전해 주었다는 사실은 5.18진상규명조사위의 활동이 진정한 조사를 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허위조작 업무에 치중해왔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81분 동안 이동욱이 발표한 내용은 거의 모두 고소/고발장에 기재돼 있는 허위의 범죄사실로 정리돼 있다. 위 81분 동안의 이둥욱 발표는 66쪽짜리 고소/고발장 내용을 요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 동영상을 게시한 5.18기념재단도 이둥욱과 공범으로 고소/고발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OYBlonen1qc
녹 취 록 |
녹음일시 |
2022. 6. 15. (영상 게재일) |
녹음장소 |
유튜브 영상 [5‧18 허위 조작 정보 분석 집담회 '유령을 키우는 사람들'(이동욱 위원)] |
대 화 자 |
이동욱 외 본문기재 |
번 문 일 |
2022년 6월 24일 |
註 |
- “…”는 음성언어의 인식 및 기록이 불가능한 부분임. - 녹음일시, 장소, 대화자 정보는 의뢰인의 증언내용임. - 본 문서는 속기사의 동의 없이 수정할 수 없음. |
이 기록은 녹음된 음성언어와 상위 없음을 확인함.
다 인 속 기 사 무 소 ㊞
속 기 사 정 주 영 ㊞
이동욱 : 반갑습니다. 조금 전에 소개 받은 이동욱입니다. 공식석상에서 광주에서 제가 메인으로 이렇게 올라와서 말씀드리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그 동안 지난 한 40년 동안 이쪽에서 주로 돌팔매질을 당했고 최근에는 이제 또 태극기부대 있는 저쪽에서도 돌팔매질을 무수히 지금 당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게 아마 한국에서 사실을 찾아서 걸어가는 사람들한테는 어쩌면 숙명이 아닐까 싶기도 한 생각도 듭니다. 누구 하나 환영해주는 사람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헤쳐 나가야 된다는 그런 사명감을 갖고 이제 계속 하는 건데 제가 작심하고 이 주제에 들러붙은 것도 사실은 진상규명조사위원회 들어올 때부터 결심을 하고 들어온 주제 중에 하나입니다. 왜냐? 아까 그 양력소개에 빠진 게 하나 있는데 저는 군 경력이 7년입니다. 장교도 아니고 사병도 아니고 하사관으로 7면입니다. 왜 하사관으로 7년이냐? 80년 초에 서울에서 그 난리가 나고 나서, 여기에서 그 난리 나고 나서 그러고 나서 신군부가 갑자기 가정교사 금지시켰죠? 제가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고학생으로 열심히 공부하다가 가정교사가 금지되니까 갈 데가 없어서 결국은 이제 군입대를 해요. 그런데 군대에서 돌아가려면 학비를 모아야 되는데 돈 벌어서 갈 길을 찾다 보니까 장교로 5년을 근무하면 제대하는 코스가 있어요. 그런데 그거를 지원하려니까 장기하사관이 돼야 지원이 돼요. 그래서 이제 저는 남들보다 좀 늦지만 그렇게 돌아서 가야 되겠다 하고 하사관이 돼 가지고 이제 장교시험을 치려고 하사관 훈련을 열심히 받고 있는데 신군부가 그 장기하사관 프로그램 자체를 또 없애버렸어요. 그래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태로 이제 군에서 기왕 군생활하는 거 끝까지 가보자 하면서 수색대대 팀장으로 특수전을 아주 오랫동안 했습니다. … 교관입니다. 그 다음에 이제 배운 게 있어 가지고 어떻게 기회를 찾아서 미2사단에 미군부대에 시험을 쳐서 가가지고 미군하고 DMZ에서 또 2년을 굴렀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대한민국 군, 미군 뭐 전체 이제 어느 정도 몸으로 다 때우면서 안 거죠. 알고 와서 훗날 북한군 왔다고 하는 책들을 이렇게 보면, ‘보랏빛 호수’ 같은 걸 보면 제 전투경험으로는 이거는 말이 안 되는 게 있는데 그거는 제 개인의 판단이고 일반인들에게 보편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군사적 지식, 정보, 근거, 일반 기자생활하면서 구할 수가 없는 거죠. 더군다나 프리랜서인데, 그래서 속을 태우고 있다가 우리 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제가 들어오게 되니까 작심하고 이제 군 자료를 찾아내고 찾아내고 하고 물어보고 물어보고, 혹시 또 내가 잘못 생각한 게 있는지 또 검증해보고 하면서 이제 가게 된 거예요. 가다가 보니까 뭐 아시다시피 처음에는지만원 한 사람이 시작됐다고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그 지만원이가 만들어낸 660명의 광수의 허상을 다 꿰고 그 근거를 넘어서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고 딱 그 다음에 넘어가 보니까 이 광수를 만들어낸, 키워낸 사람들이 무지무지하게 많아지는 거죠. 심지어 정부기관도 거기 들어와 있고, 이렇게 되면 이거는 누구한테 하소연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대한민국 안에서 하소연할 데가 없어요, 저는. 제가 볼 때는, 하여튼 오늘 그 얘기를 여러분한테 한번 속 시원하게 털어보고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제목을 유령을 키우는 사람들, Ghost Breeders라고 이렇게 제목을 붙였습니다. 이게 참 시간이 지나고 나면, 2020년대를 지난 후 우리가 희한한 시대를 살았구나 하는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현대사의 문해력이라고 제가 리터러시라고 많이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가 현대사를 경험한다, 이야기한다 하는 게 사실은 5.18이 없었으면 우리가 여기에 대한 고민도 할 기회가 없었을지도 몰라요. 그게 불행 중 다행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 때문에 우리는 좀 더 정신 차리고 우리를 돌아보는 것 같아요. (5:00) 그런데 이 리터러시가 사실은 사실확인을 위한 각성이 돼야 되는 것 같고 그 각성이라는 건 눈을 떠야 되는 겁니다. ‘스스로 자’에 나오는 그 삐침, ‘눈 목’자의 삐침이 눈을 뜨는 거예요. 내면의 눈을 뜨고 우리가 사실이 뭔지 아닌지 확인해야 된다. 그래서 이 삐침이 붙어가지고 내면의 눈을 떠야 우리가 비로소 계몽주의자가 되고 거기에서부터 현대인으로 성장하는 거 아닌가, 무지하면 속게 됩니다. 권력에 무지하면 권력에 이용당하고 역사에 무지하면 역사에 이용당하듯이, 그래서 이용당하면 어떻게 됩니까? 종의 멍에를 쓰고 사는 거죠. 조선시대 내내 노비 국가체제 시스템 속으로 다시 돌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자유를 위한 발돋움이 곧 스스로 눈을 뜨는데 시작하는 거 아닌가, 저는 이 자유라는 말을 평생의 화두로 삼고 오는데 우리 송승태 위원장 그분도 80년 초에 자유노트, 노트 제목을 자유로 붙여놨어요. 그 당시 고민했던 사람들의 생각이 다 저기에서 시작이 됐다는 걸 우리는 잊으면 안 된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그 자유의 시작이 사실확인이다, 현대사회에서. 사실 앞에서는 그 어떤 신념이나 이념이나 진영이나 이거 다 필요 없지 않았냐, 우리 겪어봐서 알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 사실로 투철하게 치열하게, 그 치열함, 투철함 그 정신이 저는 5.18 정신이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어요. 그때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입장에서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타인을 위해서 이렇게 쏟아 붓고 했을 때 그 마음은 뭐냐? 그 치열함 아니었나? 그 치열함을 우리는 기억하면서 가야 되겠다. 그게 진정한 5.18 정신이라고 저는 생각하고요, 사실을 확인하는 엄정한 자세로 우리 현대사에서 지난 20년간 설쳐댄 5.18 북한 특수군이라는 유령, 그 유령의 탄생과정과 진화과정을 통해서 그 동안 유령에게 밥도 주고 영양제도 주고 뭐 물도 주고 하면서 키워온 사람들 그 사람들을 한번 들여다보자 이겁니다, 여러분하고 같이. 사소한 데서 시작이 되는 건데 자, 여러분 우리의 역사입니다. 대한민국 역사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같이 살아온 대한민국 역사는 1945년에 해방이 됐지만 48년 8월 15일 날 건국을 하죠. 그렇죠? 이 건국한 뒤에 31년 뒤죠. 5.18이 터진 겁니다. 참 공교롭습니다. 숫자 뒤집으면 똑같아요. 그렇죠? 8.15 뒤집으면 5.18이 되고 5.18 뒤집으면 8.15가 되는 겁니다. 그거를 여러분들은, 광주에 계시는 여러분들은 기억하고 계셔야 돼요. 이거는 국가, 우리 대한민국의 명운과 연결돼 있는 거다. 이거 잘못 다루면 같이 알아가는 거다. 여러분들이 이 역사적 맥을 잘 살려내야 앞으로 갈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 이 5.18을 중심으로 해서 한쪽은 김대중 내란음모라고 몰아쳤고 또 한쪽은 신군부 내란목적 살인이라고 몰아쳤잖아요. 지금까지 이 사이에 해결점을 못 찾은 거예요. 또 있습니다. “기획된 시위다. 기획된 무장항쟁이었다. 배후를 대라. 조직도 대라.” 그 난리를 쳤고 이쪽에서는 “니네 의도적으로 와가지고 갈긴 거 아니냐? 의도적 살인이었다.” 그러니까 또 저쪽에서는 이제 “이거 아무래도 북한군이 온 것 같다.” 그때 뭐 일본에서 들어온 내용 보니까, 첩보 보니까 뭐 전면남침 준비를 했다더라 뭐 했다더라 이런 거 이제 깔고 앉아있고, 또 그러니까 여기에서는 “니네들은 그 권력, 그 잘난 권력 잡으려고 우리 양민 학살한 거 아니냐?” 이 대립에서 40년 동안 우리는 해결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갈등하고 온 겁니다. 자, 이렇게 오고 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떻게 되느냐 이거죠. 우리 밑에 우리 후손들이 앞으로 살아갈 그 대한민국을 우리는 뭘 어떻게 여기에서 정리하고 물려줘야 되나, 이게 우리의 사실은 숙제다 하는 겁니다. 자, 그래서 이제 본격적으로 들어가 보죠. 제1부 계엄사, 계엄사에 흔히 ‘사’를 사령부 할 때 그 ‘사’자가 아니고 이거는 히스토리입니다. 더 히스토리 오브 마셜로우라는 뜻입니다. 이 계엄사라는 자료가 있어요. 이렇게 두꺼운 거, … 선생도 필요하시면 서울에 몰래 오시면 제가 몰래 복사해서 드리겠습니다. 이게 비쌉니다. 몸값이 비쌉니다. 이게 2권이에요. 이게 82년도판이 하나 있고 그리고 90년도판이 또 있어요. 이 계엄사의 1권에 보면, 1권에 예를 들어서 이게 이 페이지가 있는데 157 거기 보면 저런 식으로 이제 나와 있어요. (10:00) 노란 쪽으로 이렇게 옮겨놓은 이거 보면, 옮겨놓은 건데 “당시 정보기관에서 입수한 첩보에 의하면” 이렇게 말하면 이제 정보기관의 권위를 이용해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도망갈 구멍은 뭐냐? 첩보죠. 정보가 아니고 첩보는 확인되지 않은 얘기입니다. 그렇죠? 그러니까 도망갈 구멍도 만들어놓고 뭐라고 썼냐? “북괴가 9개조의 비정규전 부대를 투입함과 동시에 남침을 강행하기로 결정하고 광주사태가 악화일로에 있으니 더욱 전국적으로 확대되기를 기다리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게 언제냐? 이게 5월 22일 날에 그때 이랬다는 거예요. 이 첩보가 있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거를 이제 지만원은 이 책에다가 옮겨 적고 그 밑에다가 탈북자 증언들, 실제로 북한에서 그때 내려갔다고 했던 사람이 있다더라 많은 얘기를 붙여놔요. 그러면 모르는 사람이 읽으면 우리나라 정보기관에서 이런 게 있었고, 그런데 실제로 탈북자가 얘기했고 하니까 믿게 되는 거죠. 그렇죠? 그런데 이 대목 바로 밑에 무슨 문장이 있냐면 이거예요. “있었다고 한다. 북괴의 남침시도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지만” 뭐예요? 때를 놓쳐서 못했다 이 얘기예요. 그러니까 하나마나한 얘기예요. 그러나 분위기 잡기는 좋은 거죠. “그 당시에는 실로 6.25 재연의 민족적 비극 전야 바로 그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이제 이 책에다가 갖다 붙인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우리가 좀 자세히 살펴봐야 되는 것이다. 이것도 이제 계엄사인데 이거는 앞부분은요, 여러분 앞부분에 계엄사는 버전이 지금 활자체로 돼 있습니다. 그렇죠? 이게 82년판입니다. 그런데 이 82년판 계엄사를 만들어놓고, 저때는 이제 광주를 완전히 진압하고 … 통해서 권력창출하고 이제 대통령이 되고 각 부 장관들하고 군부들이 다 앉았잖아요. 그러니까 자신들이 거쳤던 기관을 가능한 자기들의 역량이 과시되는 쪽으로 이제 썼죠. 썼는데 85년 지나서 이제 국회의원 선거를 하다 보니까 여론이 잡히고 그러다 보니까 88년 국회청문회를, 광주청문회를 한단 말이에요. 82년 당시에는 광주청문회 같은 게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했을 거예요. 그렇죠?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난 뒤에 88년도까지 감히 우리 사회에 무슨 청문회? 택도 없다 하는 생각들을 다 하고 있을 때예요. 그만큼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의 성장속도가 엄청 빨랐던 거고 사실은 그 군부도 따라잡지 못한 거죠. 그러다 보니까 청문회 때 별의 별 사건들이 다 나오는데 자기들은 모르는 거예요. 알아도 자기가 참여했던 그 현장 이것만 … 알고 있고, 그 사건 이후에 군인들 스스로가 이 사건 2개를 놓고 마치 통합적인 연구를 한, 스터디를 한 경험이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러다 보니, 대신에 이 광주에 계셨던 분들은 통합적인 이해의 시간을 가졌단 말이에요. 그렇죠? 증언구술 작업도 하고 서로 이야기도 하고 하면서 같이 공통의 역사인식을 갖기 시작을 하는데 신군부 쪽은 그런 게 전혀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카메라 앞에서, 언론 앞에서, 대중 앞에서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거기에 대해서 자신 있게 맞대응하면서 논리적으로 대중을 설득시킬 능력이 없는 거예요, 저분들은. 자기들이 준비를 못한 거예요. 지금도 준비 안 해요. 조사를 안 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끊임없이 자기의 생각 속에 있는 망상에, 기억에 의존하게 되는 거죠. 그 과정 중에 하나가 이제 이겁니다. 82년도판이 있었는데 90년도판으로 넘어오면 타이핑된 글씨체로 쭉 가지만 내용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용은 또 달라요. 그러니까 82년도에 저런 첩보가 있었다. 저게 그만큼 중요하면, 그렇죠? 90년도판에도 연속이 돼야 되는데 그것 말고 다른 식의 내용이 등장하는 거예요. 이겁니다, 이제. 첩보내용, 여기는 이제 어떤 첩보내용이냐? 이거예요. “최근 북한은 한국사회” 뭐 쭉 나가 가지고 “북괴가 남침시기를 5월 중순으로 연기한 것은 뭐 학생, 근로자 소요사태가 14, 15경에 뭐 어쩌고 할 거고 김일성이가 브레즈네프를 만나고 어쩌고저쩌고”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앞부분에 82년도판하고는 전혀 다른 내용의 이야기가 나와요. 나오는 데다가 먼저 제가 이제 여러분한테 설명드리고 싶었던 건 이거예요. (15:00) 앞에 내용에 그 첩보분석내용 평가인데 이게 뭐냐면 “조선일보 동경특파원인 이도형은 일본에 정통한 군사 소식통을 인용해서 5월 중에 북괴 담당지도 내용차” 뭐 쭉 해가지고 북한이 5월 중에 전면남침 할 거라는 걸 일본에 있는 정통한 군사소식통을 통해서 들었다 하고 이도형 씨가 그 당시에 조선일보에 송고를 한 거예요, 기사를. 그런데 그거를 계엄사에서 민심이 굉장히 혼란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보도통제를 했다. 기사 못 쓰게 한 거예요. 저는 “이거 말도 안 되는 기사니까 내보내지 마.” 하고 깔아뭉갰을 것 같아요. 이 기사 처음 송고 내려올 때 이 앞에 날짜가 있는데 5월 10일 날 들어왔는데 일본에 그 첩보라고 하는 내용은 북괴가 5월 12일부터 5월 20일 사이야. 무슨 놈의 전쟁이 이틀 만에 준비하고 남침하냐고요? 지금은 우리가 정보화시대를 거쳐 가면서 어느 정도 그런 지식이 다 있기 때문에, 그렇죠? 남침하면 그게 하루이틀 만에 되는 게 아니다 하는 걸 알지만 80년 초에는 이게 먹혔던 때란 말이에요. 그런데 이거를 계엄사가 80년 초에는 사실은 묶어뒀어요. 묶어놨는데 90년판에는 이거를 다시 살려내요. 살려내 가지고 이도형이 등장해요. 그리고 북괴의 전면남침설이 이야기된 거예요. 그런데 이도형 씨가 누구냐? 87년에 한국논단 발행인으로 들어가요. 저는 처음에 따로따로 된 이야기인지 알았는데, 뒤에 가면 이제 설명을 드리겠지만 임천용이라는 탈북자가 우리나라에서 이제 자유북한탈북군인연합회 회장 하면서 나서가지고 자기가 북한에 특수부대에 있었고 그리고 우리 특수부대원들이, 처음에 자기가 내려왔다고 그랬죠. 광주에 왔고, 뭐 이런 얘기를 해요. 이 이야기를 처음 인터뷰한 잡지사가 한국논단이에요. 처음에 저는 이 관계를 이해 못했어요. 그 많은 잡지 중에 우파잡지들이 많은데 왜 한국논단이었을까 했는데 이거를 찾다 보니까 나와요. 그때는 이도형 씨가 살아계실 때야. 한국논단은 어떻게 하든 많이 강매해서 이익을 남겨서 운영을 해야 되는 상황인데, 그러니까 쎄끈한 기사가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임천용이라고 해서 직접 인터뷰를 해. 직접 인터뷰를 했어. 그거를 아무도 이야기 안 하고 가만히 있는데 그냥 나타났을까요? 아닌 것 같아요. 90년 이후에, 그렇죠? 그러면 그 당시에 90년도판 계엄사, 그 계엄사 내용 안에 있는 이도형 씨의 첩보나 기사, 그 다음에 2007년도에 이분하고 만난 임천용이가 인터뷰를 해. 그러면 이 전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이거는 지만원 씨가 아니에요. 제3의 인물이야. 그렇잖아요. 그렇죠? 뭔가 있는 거예요. 그런 걸 저는 이제 보게 된 겁니다. 이제 신문광고로 들어갈게요.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거냐? 바로 이분이죠. 설명 안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너무 잘 아시죠? 저도 잘 압니다. 2008년 8월 16일 날 동아일보, 그리고 그 다음 날 문화일보에 광고 내죠. 제목이 “대국민 경계령! 좌익세력 최후의 발악이 시작됩니다.” 이 무렵에 이제 김대중 대통령하고 사이가 되게 이제 껄끄럽게 되기 시작하고 뭐 천용택 그 당시 실장님을 통해서 얘기를 들어보면 지만원 씨가 시스템 연구 뭐 하는 단체가 있는데 지원 좀 해달라고 수차례 요청도 하고 있는데 그게 잘 안 됐던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점점점 삐져가지고 2002년 8월 되면 이 전체가 사실은 김대중 정부에 대한 노선에 대한 비판입니다. 비판할 수 있죠. 뭐 북한하고 너무 가까워지고 북한에게 뭐 퍼준다느니 할 수 있죠. 그런데 그 안에 광주에 대한 부분이 한 문장이 딱 들어가 있는 거예요, 한 문장이. 8월 16일 날 뭐라고 돼 있냐? 내용은 이렇습니다. 여러 가지 들어가는데 “(1) 김정일의 운명이 다급하게 돌아갑니다. 두 번째, 김정일 없는 좌익은 뿌리 없는 나무입니다. (20:00) 정권 말기 들어서면 더 정신 없이 퍼줍니다. 이제 끝났습니다.” 하면서 안보불안을 굉장히 만들어내죠. 하다가 끝에 가서 “광주는 소수의 좌익과 북한에서 파견한 특수부대원들이 순수한 군중들을 선동하여 일으킨 폭동이었습니다.” 하고 이제 갖다 대놓고 쓴 거예요. 그러니까 80년 이후에 이런 소리들, 아까 거기에 북한에서 내려오려고 그랬다, 뭐 했다 하는 말들이 돌고 돌고 돌아서 여기에서 이제 이 문장으로 딱 등장한 거예요. 그때 수많은 사람들이 이거를 읽으면서도 피식피식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게 말이 되냐?” 다 그랬단 말이에요. 그랬는데 아마 지만원 씨도 이거를 가지고 싸울 생각은 자기도 생각을 못했을 거예요. ‘자기는 김대중 씨하고 싸워서 이기겠다. 김대중 대통령을 조지면 자기가 뭐가 되겠다.’ 이런 계산을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싸움이 되죠. 이 신문광고가 난 뒤에 우리 김후식 회장님, 구속 여기 아니고 부상자회 회장일 때예요. 김후식 회장님이 동료를 끌고 차에 봉고차 2대, 한 20명 가까이 된다 그러더라고요. 2대에 태워 가지고 서울에 올라가서 사무실을 찾아갔더니 그때 사무실은 충무로에 있었답니다. 충무로 가서 사무실 다 때려 엎고, 사과하라고 때려 엎는데 지만원 씨는 이제 안양에 있는 집으로 도망간 거예요. 그래서 이제 안양까지 또 쫓아 내려갔죠. 내려갔더니 지만원 씨 집은 이제 아파트여서 아파트 문 자체가 철문이잖아요. 철문을 두드려가며 밤 8시, 9시 뭐 이때까지 계속 두드려가며 하니까 지만원 씨가 급히 SOS를 쳤습니다. 누구한테? 서정갑 대령연합회 회장한테. 이제 이 대목을 제가 서정갑 회장하고 지난 가을에 만나서 인터뷰를 쭉 가서 들어봤는데 자초지종을, 저분도 대령 출신이에요. 그렇죠? 그런데 대령연합회에 한 번도 회비를 낸 적이 없고 얼굴조차 내민 적이 없었던 사람이 그날 밤에 자기한테 전화를 해서 “회장님 저 좀 도와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무슨 얘기예요?” 했더니 “지금 이런 분들이 와가지고 우리 7살짜리 애들이 막 울고 있는데 문 밖에서 난리를 치고 있다. 나 좀 살려 달라, 이거 무서워서 못 살겠다.” 그러니까 이제 서정갑 대령이 지만원 씨를 통해서 이 양반, 저쪽에 있는 대장이 있을 거예요. 대장 좀 바꿔 달라 그랬대요. 그 두 분이 통화를 해요. 그런데 이 통화내용을 보면 꼭 영화 같아요. 이분이 이제 이분한테, 서로 얼굴 한번 본 적이 없어요. 그렇죠? 그런데 물어봅니다, 서정갑 씨가. “당신이 만약에 당신 부하가 위험에 빠지면 도와줄 거냐, 안 도와줄 거냐?” 그랬더니 김후식 회장이 “도와주죠.” “내 부하가 지금, 저 사람이 내 부하인데, 우리 대령연합회 회원이고, 그런데 지금 상당히 곤란한 지경에 빠져있다. 그러니 내가 나섰다. 나하고 우리 단둘이 해결하자.” 해가지고 이 두 분이 약속을 해요. “좋다. 밤 12시에 전쟁미술관 앞에서 1대1로 만나자.” 그래 가지고 서정갑 씨는 자기 그 군화를 꺼내 신고 예비군복을 차려 입고 이제 전쟁기념관으로 결판을 내러 나가는데 11시 반쯤에 김후식 회장한테 전화가 왔대요. 전화가 와가지고 “실례했습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우리 그냥 내려갈라요.” 하면서 그냥 내려오신 거예요. 그러면서 이제 지만원 씨는 그때부터 이 양반한테 신세를 졌으니까 그 다음에 뭐 밥도 사고 뭐도 하고 하면서 자기 사무실을 자주 나오게 하면서 처음에는 굉장히 가깝게 지냈대요. 그 가깝게 지내는 동안에 서정갑 씨는 거기에 드나드는 임천용을 보게 된 거예요. 그 다음에 잠시 이야기를 돌려서 이쪽으로 가보겠습니다. 이때 이제 “우리 내려갈라요.” 하고 오셔가지고 이분들이 소송한 겁니다. 그 소송결과가 10월 14일 날 구속되잖아요. 그렇죠? 그러고 나서 그 이듬해 1월 28일 날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거예요. 그때 법정은 뭐라고 했냐면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목적으로 사실을 왜곡한 것이 인정. 그래서 징역 10년에 집행유예 2년.” 그래 가지고 때린 겁니다. 그런데 이때 북한군 왔다는 얘기는 “증언도 없다. 증거도 없다.” 이게 여론이었어요. 그렇죠? (25:00)“말이 안 되는 거다. 정상적이지가 않다.” 이거예요. 그렇죠? 그러니까 이 감옥에 있다가 집행유예 2년을 받고 나온 지만원에게 풀어야 할 숙제는 증언과 증거를 만드는 거예요. 그 작업이 시작이 되는 겁니다. 이 작업에 누가 등장하느냐? 여기에서부터 탈북자가 등장하는 거예요. 이제 잠시 탈북자 얘기로 들어가볼게요. 자, 제3부 탈북자가 등장합니다. 이 친구가 바로 임천용이에요. 67년생, 96년도에 탈북해서 중국과 뭐 태국을 들러서 2000년 초에 한국에 입국해가지고 국정원에서 근무를 하죠. 2000년 당시에 정착금 지원받고 국정원에서 첩보수집 및 분석작업 참여하다가 하도 허위과장보고가 많아갖고 해촉이 돼 버렸어요. 그게 이제 입수된 기록에 있어요. 그러고 나서 2004년 8월경에 캐나다로 나갔다가 거기에서 미국으로 밀입국했다가 걸려요. 걸리니까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죠. 그 망명신청을 했는데 뭐라고 주장했냐? 자기는 북한에서 특수부대에 있었고 휴대용 핵폭탄을 은닉한 뒤에 상부의 명령에 따라 중요인물을 암살토록 맨날 그런 훈련 받았다고 미국인한테 이런 얘기를 하니 미국인들이 들어주겠어요? 그래서 미국이 고민하다가 뭐라고 거절을 하냐면 “당신의 국적은 지금 현재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에서 당신은 4년 이상 살아왔는데 어떻게 북한의 정치적 압력을 핑계로 대면서 정치적 망명신청을 하냐, 그거는 우리는 못 받는다.”고 거절을 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2005년 1월 27일 날 빠꾸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와. 그때까지 이 친구는 탈북자에 관한, 광주사태에 관한 뭐 개뿔의 지식도 없는 친구였어요. 자, 그런데 여기에서 불과 한 11개월 뒤에 짠 하고 자유북한군인연합회 회장이 돼 갖고 나타나요. 저는 여기에서부터 이 사이에 누군가가 이 친구를 교육시키고 성장시키지 않았나, “임천용 대표는 북한 특수부대 출신 탈북자 10여명과 함께 서울 중구 세실레스토랑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금도 북한 인민군에게 복무하고 있는 장교들과 비밀 리에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러니까 우리 최종 목표는 북한자유민주주의 실현이라고 말했다.” 이게 이때 이야기한 건데 사실은 이때 서정갑 대령이 이 모임에 회비를 100만원을 지원을 해줬대요. 해주면서 얘기해요. “탈북자들이 그때 5.18때 왔다는 증언을 한다기에 언론사들이 꽤 많이 모였는데, 그래서 내가 100만원 지원했다. 그런데 탈북자들이 한 명도 안 나왔다.” 그래 가지고 이날 탈북자들의 5.18 증언 기자회견은 사실상 무산이 되고 그냥 “자유북한군인으로서 우리는 북한에 우리하고 선 닿는 군인들 많다. 앞으로도 그 자유를 위해서 투쟁하겠다.” 뭐 이런 걸로 이제 그날 유야무야 된 거예요. 이게 첫 번째예요. 2005년 12월이죠. 그렇죠? 이 사이에 지만원 씨는 뭘 했냐? 그 시스템 클럽을 중심으로 해서 기독교단체, 대령연합회, 성우회, 재향군인회 등, 그러니까 대한민국을 지켰던 조직들, 헌신했던 조직들 그 조직들의 코어들을 다 엮어가지고 … 결속해가고 있습니다. 이거를 결속하려면 상대를 적으로 몰아야 되잖아요. 전부다 대한민국의 이른바 민주화, 이분들은 민주화 자체를 좌익으로 알고 공산주로 비슷하게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그 안에 5.18도 마찬가지로 이제 그렇게 생각을 해버리는 거죠. 그로부터 1년 뒤인 2006년 말에, 딱 1년 뒤죠. 그렇죠? 임천용이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분을 만난 거야, 한국논단. 그래 가지고 5.18때 북한군 1개 대대가 왔었다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아까 내용이 이거잖아요. 조선일보 동경특파원 이도형 해가지고, 그렇죠? 그때 지만원 씨가 등장하죠. 그 다음에 한국논단 인터뷰를 하고 나서 한 달도 안 돼 가지고 다시 세실레스토랑 1년 뒤에 북한 특수군 5.18때 투입됐다고 비로소 이제 탈북자들 17명 나와 갖고 증언해요. 성공했죠. 그렇죠? 그러면 시도는 2005년에 실패하고 2006년에 다시 성공해요. 그러면 이게 탈북자 개인의 의지로 여기까지 왔을까요? 이게 가능할까요? (30:00) 그 다음 지만원 씨 혼자서 탈북자를 컨트롤하고 교육시켜서 여기까지 왔을까요? 이게 가능할까요? 궁금해지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한 몇 달 뒤에, 두 달 뒤에 뉴스한국에 다시 인터뷰를 하죠. 그런데 임천용의 인터뷰 내용이 한국논단 할 때, 그 다음에 기자회견 할 때, 뉴스한국, 2013년도 TV조선에 할 때 항상 침투인원이 들쑥날쑥하고 들어오는 경로도 들쑥날쑥하고, 사실상 엉터리죠. 그러면서 북하고 우리 사회에 태반은 이제 신뢰하고 믿게 되는 거예요. 뭐 이런 엉터리가 있는 거죠. 그렇죠? 이런 사이에 2명의 탈북자가 또 이제 끼어듭니다. 정명운은 2006년 10월 달에 하나원에서 퇴소하고 이 친구는 한 달 뒤에 퇴소해요. 고향이 둘 다 함경북도 회령이에요. 자기들 말로는 “여기 와서 만났다. 거기에서 만난 적이 없다.” 하는 겁니다. 두 사람의 역할이 달라요. 이주성은 북한에서 이야기하는 사회 성분 자체가 굉장히 낮아요. 아버지가 반당 반혁명적 발언을 했다고 해서 평양에서 살다가 이주성이가 4살 때 함경북도 회령으로 사실상 숙청돼 가서 거기에서 살았으니까 공부도 제대로 못했고 겨우, 자기 말로는 겨우 고등중학교 마치고, “군대 갔냐?” “군대도 못 갔다. 성분이 나빠서 군대도 못 갔다.” 그런 친구예요. 이 친구가 한국에 와서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됩니다. 바로 ‘보랏빛 호수’를 만들어내죠. 그 ‘보랏빛 호수’ 내에 김철산이라고 실제로 내려와서 뭐 광주에서 대장을 모시고 다녔다 하는 그 실제 주인공이 누구냐? 정명운이에요. 둘 다 역할이 달라요. 이 역할을 이제 드디어 하죠. 그래서 대체적으로 이 세 사람, 김해송이라고 하는 사람이 나왔다가 나중에 그 김해송은 지만원에 의해서 거꾸로 이제 숙청돼요. 그러니까 이제 여기에서 오늘 이야기 안 하겠습니다. 이 사이에 2005년, 2006년, 그래 갖고 2006년 말까지 오는 사이에 지만원 씨는 시스템 미래당을 창당해요. 정당을 만들었다고요. 이렇게 “좌익척결과 도덕 재건,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하겠다.” 여기 지금 현재 보수의 아이템으로 제일 좋은 건 다 끌어다가 놓고 정당을 창당하는데 후원을 누가 했을까요? 이 뒤를 제대로 취재한 언론도 없고 그냥 놔두는 거죠. 이상합니다. 그 다음에 이제 우리 정보원 볼게요, 기무사, 국정원. 2008년 10월 22일 날 지만원 씨는 처음으로 책을 씁니다. 어떤 책이냐?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 1, 2, 3, 4, 이거 4권짜리예요. 되게 커요. 그런데 저게 1년 뒤부터 우리 사회에서 찾아볼 수가 없어요. 그 다음에 1, 2로 압축본이 나와. 1년 만에 사라져요. 어쨌든 그런 과정이 있는 저 2008년도에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조금 전에 제가 설명드린 탈북자 3명입니다. 그렇죠? 이 사람들이 2008년에 뭘 하고 다녔나? 김종태 기무사령관 만났어요. 또 이 사람들 만나 갖고 5.18때 내려온 북한군 중 한 명이 있는데 니들은 조사 안 하고 뭐 하냐고 김종태 기무령관은 자기 밑에 부하간부들 다 불러다가 엄청 쪼는 거예요. 나는, 내가 만난 거 아니에요? 이 사람이. 그렇죠? 만나고 와가지고 자기 밑에 방책반장, … 반장 다 집합시켜놓고 “야 우리 사회에 지금 5.18때 내려왔던 놈이 귀순해갖고 있는데 니들은 알아? 몰라? 니들 도대체 뭐하는 거야?” 이렇게 돼 버린 거야. 그러니까 이제 반장들이 … 나와 가지고 “도대체 뭐냐, 이게?” 자기들은 생전 처음 듣는 얘기예요. 뭐 그런 이제 해프닝이 벌어지는 거예요. 저 사람들이 또 누구를 만나냐면 박세직 전 안기부장, 재향군인회 회장 이분을 또 만났어. 만나갖고 설득을 했어. 이분이 또 설득이 됐어요. 그래 가지고 전직 안기부장이니까 (35:00) 자기의 전 직장인 국정원에서 또 얘기를 하죠. 그렇죠? 조사해보라고. 이렇게 된 거예요. 그래 가지고 제일 처음에 기무사에서 12월 31일 날 경기도 분당 커피숍에 기무요원 두 사람, 그리고 대남공작원으로 … 체포됐던 사람 김동식이라는 … 있는데 이분이 이제 평범한 기무사 요원처럼 해서 세 사람 앉아가지고 정명운이라는 저 친구한테 이제 모든 심문을 다 한 거야. 기무요원들이 심문을 다 하고 나서 디테일한 걸 이 양반이 물어본 거지. “이 사람 누구냐?” 이 사람이야말로 진짜 고된 훈련을 받고 제대로 남한을 2번이나 내려왔던 사람, 올라갈 때 … 대동하고 올라간 사람, 프로 중에 프로예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저 친구한테 “아, 그때 5.18때 내려왔다고?” “특수부대에 있었어.” “무슨 훈련 받았냐?” 지도, 지형학이라고 그래. 우리 … “지형학 할 때 나침반 뭐 썼냐? 어느 나라제 썼냐? 어떻게 생겼냐?” 이렇게 디테일한 거 이제 물어 들어가는 거죠. 그러니까 이게 다 거짓말이 되는 거야. 그래 가지고 앞에서는 그 얘기 안 하고 돌아가면서 “저 새끼 저거 순 구라다.”라고 얘기한 거야. 그러면 기무사에서도 알잖아요, 이제. 그렇죠? 이거 다 거짓말이라는 거, 일단 완벽하게 검증했단 말이에요. 그 다음에 봅시다. 그 다음에 약 한 한 달 뒤에 코리아나호텔 커피숍, 조선일보 있는 데 있어요. 여기에서 누구를 만나냐, 이 사람들이? 이동복 전 안기부장 특보, 국회의원을 하셨죠. 그리고 조갑제 월간조선 대표 두 사람을 동시에 만나요. 만나서 설득하는 거야. “우리가 내려왔습니다. 여기 내려온 사람이 있습니다.” 했을 때 이 양반은 “그거는 말이 안 된다.” 하고 이제 단칼에 거절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은 말이 된다고 생각을 한 것 같애. 조사 지시를 내려요. 그러니까 유일하게 부정하셨고, 국정원에 제보를 또 지시하죠, 조사하라고. 그래서 국정원이 조사를 하게 됩니다. 국정원 문서예요. 제가 입수한 문서예요. 2009년 2월 9일자 보고서입니다. “제목 : 광주사태 직접침투 탈북자 입국주장 사실여부 확인, 공명.” 공명 뭔지 아시죠? “지시에 의해서 조사해가지고 지금 보고합니다.” 하는 뜻이에요. 위에 거 다 떼고 평가 및 조치, 정 동그라미는 정명운입니다. “정명운이 5.18 당시에 자신이 직접 광주에 침투했다고 주장한 것은 남한사회의 관심을 끌어보기 위한 허위제보였다고 실토하였는 바,” 임, 임천용이죠. “임천용 등 여타 탈북자들의 주장내용과 같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평가함.” 이거 당연한 거예요. 그렇죠? 이렇게 됐어요. 그러면서 “탈북자 정명운에 대해서는 엄중경고조치하는 한편 이동복 전 의원에게 관련주장 내용 및 제보경위 등을 설명토록 하겠음.” 끝. 일단 국정원은 제대로 한번 조사한 거겠죠. 그렇죠? 그런데 1월 28일 날, 12월 31일 날, 2008년 12월 31일 날 기무사 조사하고 그 다음에 2009년 12월 달에 국정원 조사, 그리고 2009년 1월 달에 또, 1월 28일 날 국정원에 아까 제가 보여드린 이 보고서 있잖아요. 이거, 그렇죠? 2009년 2월 9일자죠. 이때는 국정원에 의해서 조사 다 받고 하던 때야. 그렇죠? 이미 기무사한테서도 경고를 받았던 때예요. 그렇죠? 그런데 2009년 1월 21일이 되면 이주성이하고 정명운이 힘을 합쳐서 저런 책을 내요. 저거는 제대로 된 출판사에 만든 책이 아니고 마치 대학가 앞에 있는 프린터 인쇄하는 제본하는 거기에서 만들어진, 그거를 가지고 교회나 모임을 주선하면 거기 가서 자기가 증언하고 책을 주면 사람들이 이제 동정심 반 격려금 반 해서 엄청나게 이제 주는 거야. 그런 식으로 또 시작이 돼요. 되는데 국정원보고서는 아까 그거는 2월 9일자란 말이에요. (40:00) 그런데 지만원 책은 곧 절판되면서 2009년 10월 23일자로 상하권으로 해서 나와요, 4권짜리가. 수사기록으로 봤대요. 상하권이, 그런데 2009년 12월 16일 날 임천용에 의해서 이제 이 책이 나와. 이 책 안에 있는 내용들은 뭐냐면 그 1년 전에 세실레스토랑에서 모여서 탈북자들이 얘기한 거 있잖아요. 그런 걸 다 끌어모아서 넣은 거예요. “우리 삼촌이 내려갔다 왔는데 그런 얘기하더라.” “우리 직장에 다니는 부위원장 동지가 옛날에 특수부대에 있었는데 5.18때 내려갔다더라. 그 얘기 나는 들었다.” 뭐 이런 식으로 쭉 나온 책이에요. 12월 16일 날, 그러니 뭐 국정원에서 “임천용, 이주성, 정명운 등 탈북자에게 엄중경고조치 하겠음.”의 결과가 지금 이런 거예요. 희한하죠. 그렇죠? 그런데 재미있는 건, 더 재미있는 건 지만원 씨 책이 10월 23일자에 나왔어요. 그 책 안에 이 안에 들어있는 내용이 여기에 들어와있어. 저는 이거 발견하다 정말 웃겼어요. 그래 갖고 제가 이거를 이 페이지를 복사해서 제 사무실 벽에 붙여놨어, 지금도. 붙여놓고 늘 생각해보는 거야. ‘저게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2009년 12월 16일 날 나온 책의 내용이 10월 23일자 책에 나오는 거야. 그것도 저자가 다르잖아요. 임천용이고 저쪽는 지만원이에요. 그리고 자기는 분명히 수사기록 다큐멘터리래. 수사기록에서 봤대. 12.12, 5.18의 수사기록에 어떻게 해서 탈북자들의 5.18때 들어왔던 뭐 그런 이야기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북한에서는 5.18 기념한다. 그러면서 사례를 보면 죄다 노동신문 같은 데예요. 예컨대 1984년 5월 18일 날 김정일 동지가 방문해서 지어진 무슨 제철소, 그래서 5.18 제철소예요. 그러면 이거 84년이니까 우리 광주 5.18하고 상관없는 거예요. 그런데 이거를 북한에서는 광주 5.18을 기념하는 거라고 설명을 해. 또 1960년 5월 18일 날 김일성 동지에서 친히 오셔가지고 영화시험소를 만들어주시고, 그래서 5.18 영화시험소야. 1960년 거야. 그런데 60년 것도 싹 빼고 “5.18 영화시험소” 이렇게 한다. 이거를 검증도 안 하고 또 한국에 있는 언론들은 또 퍼날아줘요. 그 내용이 이 안에 다 있어, 지금. 이게 어떻게 다큐멘터리고 이게 어떻게 수사기록을 본 책이죠? 그런데 아무도 검증 안 한 것 같애, 지금까지. 기가 막힌 현실이에요. 그런 게 있다, 지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하는 거죠. 그렇죠? 10월 23일자 책에 그 두 달 뒤에 나올 책 내용이 들어가 있더라. 정말 이해가 안 간다. 바로 이 책의 문제, 그래서 제가 이 책을 열어보다가 판권을 이렇게 열어봤더니 주소가 나와요. 그래서 시간 날 때 주소지를 한번 찾아가보자, 그게 바로 저 집이에요. 이 집에 이 2층을 쓰는 거예요. 이 3층 건물이거든요. 한 층마다 룸이, 사무실이 2개야. 사무실 상당히 넓은 거예요. 넓은 거 2개가 있는 거예요. 저 중에 하나예요. 어떤 사무실이냐? 이거랑 이거 중에 이 문을 쓰는 거야. 썼다 그래요. 이제 여기 맞은편에 있는 부동산에서 저 집을 관리하고 있는데 2009년 겨울에 회사원 비슷한 사람들이 와서 저 사무실을 계약을 하고 가서 이사도 밤에 오고 낮에는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고 밤에만 가끔씩 불켜져있고 왔다 갔다하고, 그러다가 어느 날 이 골목으로 사다리차가 오더니 엄청나게 많은 짐들을 저 창문으로 집어넣더라, 궁금해서 가서 물어봤다. 그랬더니 대북풍선하고 전단지라는 거죠. 그거를 엄청나게 많이 넣었더라, 그리고 이 책 나가고 나서 한 6개월인가 (45:00) 7개월 있다가 임천용 씨가 이제 저 사무실을 내주고 이제 나갔어요. 그래서 집주인이 이제 저 방을 다시 내려고 가보니까 그 책이 사무실에 산더미같이 쌓여 있더래요. 대충 관리가 어떻게 되는지 아시겠죠? 그런데 여기에서 이제 중요한 게 저 같은 사람은 이제 의문을 갖게 되는 게 국제관계, 남북간 관계에서도 국제관계에 준해서 어떤 사건이 있을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대북풍선 문제예요. 그래서 그거를 특별히 관리하는 곳이 국정원이에요. 국정원은 어떻게 관리하냐? 그래도 미국에서도 인정해주고 하는 한국의 인권운동가 박상학이라고 하는 탈북자 그 사람이 하는 것까지는 우리도 못 본 척하고 놔주자, 정부의 방침이겠죠. 거기에만 쓸 수 있게 국정원이 대북풍선 관계자료를 만들어 공급하고 비용도 공급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바닥에 상식으로는 원가가 한 150만원 드는데 하나 날리는데, 그런데 하나 날릴 때마다 얘네에게 한 돈 1,000만원 정도씩 간대요. 그러면 이 수익률이 상당하죠. 그렇죠? 그거를 임천용이한테 떼어준 거야. 무슨 대가일까요? 이 책 쓴 대가죠. 그런데 임천용이는 이 책 쓸 능력이 있었을까요? 탈북자가 한국에 와서 길어봐야 뭐 5~6년인데 살다가 책 제목을 ‘화려한 사기극’ 이거는 대단한 문재죠. 그렇죠? 문학적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 아니면, 그런데 저 책이 나오기도 전에 지만원 씨 책 안에 저 책의 내용이 또 들어와있어. 정말 알 수 없는 거예요. 원래 수사기록으로 본 5.18을 하면 이런 거 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렇죠? 여기에 보면 국법회의에서의 진술서 같은 것 이런 걸 보고 책을 썼어야 되는데, 예컨대 이런 거죠. 그렇죠? 검찰관이 뭐라고 물어보고 “어떻게 해갖고 무기고 털고 50정을 빼갔냐?” 했을 때 그때 피고가 이제 줄줄줄 얘기하는 이런 내용을 가지고 그 당시에 5.18이 어떤 상태로 진행이 됐는지를 독자에게 보여줘야 되는, 그래야 그게 수사기록으로 본 5.18, 그렇죠? 그렇게 돼야 되는데 이런 거는 아예 나오지 않고 이거 대신에 북한군이 나오는 거예요. 북한군의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아까 이야기한 이 거짓선동의 책자들이죠. 그렇죠? 그러면 여기에서 이제 질문을 한번 해볼 겁니다. 이상한 출판인데 왜 지만원 씨는 진짜 수사 공판기록을 은닉하고 자기 멋대로 저런 식의 북한군 이야기를 쳐발랐나? 왜 기무사와 국정원은 조사만 하고 마는 걸까? 왜 탈북자 증언들이 출판되기도 전에 지만원 씨 수사기록 압축본에 먼저 등장하는 걸까? 미스터리입니다. 제가 못 찾아낸 겁니다. 그런 과정에서 시간대가 2008년 10월이잖아요. 그렇죠? 저 책 나온 게. 이게 2009년, 날짜를 잠깐 볼까요, 우리가? 2009년 12월, 2009년 10월 이때입니다. 10월 달에 책 내고 나서 그 다음에 지만원 씨가 무슨 일을 하는지 한번 볼게요. 청와대에다 민원을 내요. 그리고 국정원장이 답을 합니다. 이 대단한 스케일이에요. 한번 볼게요. 그 책이 나왔죠. 10월 23일 날, 11월 19일 날 지만원 씨는 탈북자 합신과정에서 5.18 당시 북한군 침투 진술내용을 은폐했다면서 그 탈북자를 조사했던 조사관을 처벌해달라고 청와대에다 민원을 내버렸어요. 아시겠어요? 이 문장을 그러면 어디에서 받았나? 이게 바로 임천용의 ‘화려한 사기극’ 그 안에 탈북자들의 이야기 있잖아요. 그 이야기에 나오는 말이에요. 우리가 남한에 와가지고 하나원에 있으면서 합신 받을 때 “내 아는 사람이 5.18때 내려왔다던데요.”라고 하니까 “그런 말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 뭐 이렇게 협박 받았다 하는 얘기는 임천용의 책에서 나와. 그 책을 자기 책에다가 먼저 옮겨 써놓고 그거를 또 청와대에다 민원을 내버렸어. 아시겠습니까? 사건이 이렇게 됐어요. 그 다음 볼게요. (50:00) 그래서 제가 이거 추적을 해봤더니 국정원이 다시 정명운, 이주성, 임천용을 또 불러서 또 조사한 거야. 청와대에서 민원이 왔으니 조사 안 할 수 없는 상황이지. 그래 갖고 청와대 민원에 대한 국정원의 조사결론이 있습니다. “인민군 출신 정명운이 자기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 거짓말한 것으로 확인합니다. 2010년 1월 15일.” 국정원은 똑같은 탈북자한테 똑같은 대답을 또 듣고 있는 거예요. 이 문서입니다. 5.18 당시 남파주장 탈북자 진술은폐 민원확인 결과 2010년 1월 15일자, 위에 건 중략하고 “지만원은 정 아무개가 조작하여 이야기한 내용을 자신의 저서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 책자에 수록하고 책자의 내용을 인용하여 민원을 제기했다.” 이게 국정원 보고서에 나오는 거예요. 그 다음 볼까요? 그 아래에 보면 평가 및 조치, “지만원이 이주성의 언급내용을 검증 없이 자신의 저서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에 수록한 후 책자 홍보차원에서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평가한다.” 이거는 국정원에서 평가한다 이거예요. 그래서 “민원서 확인결과 허위사실임을 누구에게 통보하고 청와대 및 지만원에게 통보하는 등 적의 적당하게, 올바르게 처리토록 하겠음. 붙임, 민원 회신 문건 민원인 지만원 및 탈북자 정 아무개 이하 아무개 신원사항” 이렇게 나온 겁니다. 이게 국정원 문서예요. 조사결과입니다. 여러분 저거 보세요. 지만원의 자신의 저거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에 수록하고, 이게 지만원의 책인가요? 그런데 왜 국정원은 이렇게 표현했을까요? 진짜 이상한 거예요. 진짜 이상한 거예요. 지만원이 책자 홍보차원에 자신의 저서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이거 팔기 위해서 민원을 제기한 거라고 평가한대요. 그런데 도대체, 제가 알고 있기로는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는 저자가 임천용이고 탈북자인데 어떻게 자꾸 국정원이 더군다나 지만원의 책이라고 얘기하냐 이거예요. 이거를 가지고 우리 위원회에 조사관에게 국정원에 줄이 닿는 사람에게 “이거 조사해라.” 한 달 뒤에 제가 가서 물어봤어요. “조사했냐?” 그랬더니 뭐라고 답이 오냐? 이 담당, 이 문서를 보고한 담당관이 실수로 잘못 썼대요. 실수로, 실수로 잘못 써서 자기 국정원장한테 보고한 거야. 그러면 제가 이제 어떻게 합니까? 할 게 없잖아요. 그렇죠? 참말로, 미치고 환장하겠어요. 이 엉터리 가지고, 저는 등에 식은 땀이 나는 겁니다.
남자 1 : 국정원과 기무사를 조사해야 합니다.
이동욱 : 말조심하세요. 잘못하면 또 끌려가요. 조금 더 진행해보겠습니다. 이렇게 돼 가지고 그 다음에 지만원에게 국정원장이 편지를 써요. 물론 이제 문건이지만, 이렇게 나갑니다. “지만원 귀하, 귀하에서 제기한 민원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당시 정부합동조사반에서 조사를 받았던 정 아무개” 정명운이죠. “및 담당조사관을 면담한 결과 조사시 탈북자 정명운이가 5.18 당시 광주에 침투하였다는 내용을 진술한 사실이 전혀 없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탈북자 정명운은 08년 말경 탈북자 이 아무개에게 자신의 재북경력을 과시하기 위해 북한에서 득문한 내용을 과장하여 거짓말하였다고 말하고 있고” 이 탈북자 이 아무개가 바로 이주성이라는 ‘보랏빛 호수’의 저자예요. 정명운보다 먼저 입국해서 조사를 받았던 그의 처 누구 해가지고 나가요. “5.18 당시 북한군 남파 내용을 진술한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09년 2월 이동복 전 의원이 위 탈북자 이주성으로부터 5.18 당시 남파된 탈북자가 국내 거주 중이다라는 내용을 득문하고 우리 원에 제보하여 당시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우리 원 담당관이 위 탈북자 이주성과 정명운을 만났으나 당시에도 정명운이는 거짓말을 했다고 스스로 해명한 바 있으며, 따라서 그들을 협박한 사실이 전혀 없음을 통보하오니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국가정보원장.” 일반사람들한테도 이렇게 친절하게 주시는지 모르겠어요. 그렇죠? 진짜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는 거예요. 거기에다가 이 정명운, 이주성 같은 경우는 당시에도 거짓말을 했다고, (55:00) 얘네들은 10년 뒤 작년에 우리 위원회에 와서도 똑같이 얘기했어요. “자랑삼아 얘기했다. 미안하다. 사과한다. 후회한다.” 그러니까 역할이 이거죠, 이 친구들은. 그렇게 해놓고 돌아가서 또 틈이 보이면 또 하고 또 하고, 그러는 사이에 대한민국은 정말 인권공화국이고 좋아서 이 탈북자들 옆에 전부다 변호사들이 따라붙어 있어요. 그거를 조사관 입장에서 보면 기분 되게 안 좋아요. 그런데 보수진영의 변호사들이 거기에 다 시스템 클럽에 다 모여져 있어. 그래 갖고 법적으로 날 선 문장들을 만들어서, 저한테도 날아오고 별의 별 개 지금 많죠. 이때 우리는 뭘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면 지만원 씨는 1월 19일 날 정보원장이 보낸 편지를 최소한 22일 정도는 받아봤을 거예요. 그렇죠? 국가정보원장이 “야 그거 탈북자 넘어온 거 사실이 아닙니다, 조사해봤더니.” 받아봤을 거예요. 받아봤는데 8월 달 되면 저런 책을 또 씁니다. 1월 달에 국가정보원장으로부터 “사실이 아닙니다.” 받아봤을 텐데, 그렇죠? 저런 책을 또 써요. 저 책은 도를 넘어서서 이제 더 비틀고 왜곡하고 조작하고 날조하면서 만들어간, 교보문구에 이 책 어떻게 나오는지 내용을 보세요. “솔로몬 앞에 선 5.18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의 획을 긋는 5.18의 새로운 시각을 내놓은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5.18이 우리나라의 역사가 아니고 김일성이 만들고 북한이 소유한 적화통일의 역사라고 얘기한다.” 이게 공식적으로 지금 나가 있는 말입니다. “광주폭동은 북한이 기획 연출하였고, 광주에 북한 특수군이 왔으며 광주시민이 당한 가장 큰 희생은 북한 특수군에 의해서 저질러진 것이고, 5.18 사람들과 북한 당국은 내통된 하나의 적화세력이라고 주장한다.” 이게 지금도 교보 인터넷 열면 이렇게 걸려있어요. 저 책을 국가정보원장으로부터 친절하게 “아닙니다.”라고 받아놓고도 저렇게 써요. 그러면 이거 어떻게 해야 되죠? 우리나라 국가기관이 이야기하는 걸 부정하고 북한 노동신문에 나오는 걸 끌어다가 쓴다. 이거는 북한의 … 찬양 아닌가? 제가 법적지식이 짧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이게 도대체 인지부조화 현상이 일어나는 거예요, 제 머릿속에서. 조작이 이제, 예컨대 이제 159, 이 책의 159에서 160페이지에 가보면 계엄사가 나오는 거예요. 저는 여기에서 아, 이 계엄사를 추적하다 보니까 이 생각들이 여기에 시작이 됐구나 하는 걸 찾아낸 겁니다. 계엄사에 보면 아까 제가 앞부분에 소개시켜드린 것 “9개조의 비정규전 부대를 투입함과 동시에 이렇게 한다.” 그거 계엄사에 있잖아요. 그렇죠? 그 다음 문장이 뭐였어요? 아까 제가 소개시켜드렸잖아요. 그런데 실기해서 안 넘어왔다 이거예요. 그렇죠? 그런데 그 문장만 딱 빼는 거예요. 그 문장은 빼고 이 뒤에 계엄사에 또 다른 비슷한 구절을 붙여놓은 다음에 탈북자의 증언이라고 하면서 다 붙여놔. 그러면 이 전체가 사실로 돼요. 참 그런 작업을 정말 부지런하게 이분은 하고 계세요. 그 면에서는 제가 존경스러워요. 우리 조사관들보다 더 열심히 살았잖아. 그렇죠? 못 이기겠어. 그렇죠? 이겨야 돼요, 그런데. 이거 못 이기면 안 되는 것 같애. 이 왜곡조작이 벌어지는 겁니다. “5.18 사람들과 북한당국의 내통관계” 이게 뭐냐면 저 솔로몬과 5.18 있잖아요. 저 책에 대한 제가 원고에도 좀 써놨는데 체크포인트예요. 여러분들이 시간 나실 때 한번 체크해보시라고, 저 혼자 하다가 너무 아까워서, 버리기 아까워서, 첫째는 수사기록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수사기록에 12.12와 5.18에 북한군 침투사실은 없어요. 그렇죠? 그러니까 수사기록으로 본 어쩌고저쩌고 그거 하는 그 책 속에 북한군 얘기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어불성설이에요. 그렇죠? 그 다음에 통일원의 북한정세 분석자료는 뭐 써도 되는데 세 번째 보세요. 노동당 발간자료, 거의 모든 내용이 사실은 노동당에서 선전자료니까 허위잖아요. 그거를 또 국내사용이 금지된 것들이 있어요. (60:00) 그거 그냥 무작정 가가지고 여기에서 지금 책에다 다 갖다 바르고 새로운 사실처럼 이야기하는 거죠. ‘님을 위한 교향시’ 허구인데 사용불가인데도 여기에서 사용하고 있고, 또 탈북자 36명의 진술은 전부다 들었다예요. … 그러니까 실제로는 팩트로는 아무 상관이 없는 허위죠. 그렇죠? 뭐 이런 자연법이니 뭐니 하는 자기의 논리도 있고 그 다음 페이지에 가보면 12가지 정도로 제가 이제 문제되는 부분, 이 화려한 사기극, 아니 ‘솔로몬 앞에 선 5.18’의 책 페이지니까 여러분들이 이거를 나중에 한번 보시고 체크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 국정원과 지만원 관계를 한번 볼게요. 왜 국정원 직원은 탈북자가 쓴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을 지만원의 책으로 국정원장에게 설명하고 있을까? 이해 안 가고, 왜 국정원은 2009년 2010년 2번에 거쳐 같은 탈북자들을 조사하고도 아무런 조치가 없을까? 이 다음에 탈북자들은 똑같은 짓을 또 하고 살아왔거든요. 그러면 도대체 우리나라 국정원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왜 지만원 씨는 국정원장의 서한을 받고도 이 사실을 감춘 채 ‘솔로몬 앞에 선 5.18’을 보란 듯이 출판할 수 있었을까? 국정원장을 완전히 무시한, 개무시한 거죠. 국정원도 개무시한 거죠. 그렇죠? 오히려 노동신문을 숭배하고 있는 거지. 정부의 또 다른 세력이 지만원 씨를 지원해온 거는 아닐까? 저는 이게 이제 의심이 가기 시작한 거예요. 행안부가 지원한 사업이 있습니다. 먼저 봅시다. 현대사재조명 강연회라는 게 있었어요.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을 중심으로 한 건데 2010년 6월 10일 날 이렇게 열려요. 그러면 이때 여러분 보세요. 2010년이면 이미 국정원 조사 다 받아갖고 “니네들 그러지 마.” 하고 경고 받았을 거예요. 그렇죠? 그거 받고 나서 6개월 뒤에 이렇게 열립니다. 대한민국 지키기 불교도 총연합하고 자유북한군인연합 합동으로, 자유북한군인연합 이게 임천용이가 만든 단체예요. 국정원에서 분명히 경고를 받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이게 이 장소가 어디냐면요 대한민국이 북한의 남침에 맞서 용감하게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 다 기념해서 전쟁기념관 안에 있는 무궁화홀에서 이런 행사가 벌어졌어요. 인민군 출신 거짓말쟁이가 와가지고 대한민국 5.18때 북한군이 왔다고 거짓말하는 걸 현대사재조명이라고 하면서 한단 말이에요. 이거를 가만히 놔둬요, 다. 그리고 이 단체, 이 단체가 사실은 평소에는 대한민국에 보수우파진영에 상당히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예비역 장성들이 대거 몰려있는 단체입니다. 이 단체가 앞장서서 후원을 해요. 또 이 단체는 전국조직이어서 서울에서 끝나고 나면 뭐 전주지구에서, 부산지구에서 뭐 전국으로 다 돌아요. 그러면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 저 자체가 사실은 악성 기억으로서의 바이러스예요. 저게 서울에서 전파시키고 전주에서도 흘리고 부산에도 흘리고 전국적으로 계속 유언비어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가는 거예요. 매개체는 누구였냐? 이 사람들이죠. 이 사람들, 이 사람들, 얼굴 보시면 여러분 좀 아시겠어요? 이분이 유기남 회장이라고 우파운동단체에 상당히 오래 되신 원로분이십니다. 우리 이쪽 같으면 정동영 선생님하고 맞대면 할 수 있을 정도로 과거에 이제 좌익들에 의해서 대한민국이 상당히 위험에 처했을 때 앞장섰던 그런 분들이에요. 그 다음에 또 여기 뭐, 이런 분들은 여러분들이 좀 아실 것 같은데 박희도 회장이 있고, 그렇죠? 이주천 교수가 있고, 그렇죠? 이런 분들이에요. 그런데 이 모임에 주인공이 바로 이 임천용이에요. 그러니까 여기에서 나오는 거짓말이 이 사람들을 통해서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거죠. 그렇죠? 미치는 거죠. 2012년 11월 16일자를 제가 찾아낸 겁니다. 그 사이에 또 있을 텐데 모르는 거예요. 현대사재조명 강연회 대한민국 지키기 불교도 총연합과 특전사 전우회, 이제 특전사도 여기에 말려들어갔어요. 참 큰일입니다. 여기 보면 이 친구가 이제 임천용이에요. 여기에 면면들이 나와 있는 사람들을 보면 자료에 보니까 정호용, 박희도, 법일스님, 정진태 연합사 부사령관, 김홍래 전 공군 참모총장, 뭐 유상종 예비역 장군, 뭐 줄줄줄줄, 장재동 전 안기부장, 고우성 박사, 어떻게 해야 됩니까, 여러분?
이재의 : …
이동욱 : 그거는 확인 안 되죠. 계좌추적하기 전에는 모르죠.
이재의 : …
이동욱 : 많죠. 틀림없이 그랬을 겁니다. 아마 우리 기념재단 차 팀장이 체험했잖아요. 벌금 1억씩 나왔는데 제까닥 그냥 그날 한방에 1억 쏘더라는 거 아니에요. 자기 돈 아니거든. 그러니까 가능한 겁니다. 그렇죠? 그러면 조금 더 갈게요. 그래서 제가 이거를 열어보다가 이 자료를 찾아냈어요. 11월 16일 날 전쟁기념관 웨딩홀 무궁화홀 여기에서 또 저 짓을 한 거야. 했는데 여러분 여기 보세요. 행안부 공익지원사업이래. 저는 완전히 뇌가 마비되는 느낌이야. 내놓으라 하는 수많은 예비역 장성들이 모여 있는 것도 모자라서 행안부까지 와가지고, 아까는 국정원과 기무사가 뒤에서 도와주는 것 같더니, 그러면 CIA한테 신고를 해야 됩니까, FBI한테 신고를 해야 됩니까? 대한민국에 이 사건을 접수할 곳이 없는 것 같은 거야. 이 황당한 절망감,
남자 1 : …
이동욱 : … 그렇죠.
남자 1 : …
이동욱 : 여기에 이 탈북자 임천용, 기무사, 국정원 수많은 … 받았을 거예요. 그렇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용감하게 남조선에 와서 이 혁명사업을 하는 거 보면 저거 임천용 동지는 나중에 애국열사능에 묻힐 거예요. 메달을 영웅메달 받고, 그렇죠? 그러면 우리는 뭐냐 이거지. 남조선 국민들은 뭐냐 이거지. 자괴감에 빠지는 겁니다. 그래서 유령에게 광수라는 이름을 드디어 지어주게 됩니다, 이 사람들이. 처음에 2012년도에 이 사진이 SNS를 통해서 돌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이게 광수들의 묘비명이라고 이제 시작이 된 거예요. 북한 특수군의 묘비, 그랬는데 마침 또 2014년 5월 달에 청주에서 체육관을 짓는다고 땅 파다가 보니까 문화재가 나왔어. 그래 갖고 이제 공사 스톱, 문화재 발굴한다고 더 깊이 파다 보니까 20년 전에 청주시를 중심으로 그 지역 전반적인 공동묘지에 나왔던 무연고 유골들을 다 모아가지고 더 이상 이 유가족들이 안 나오니 10년 동안 매립했다가 더 이상 안 나오면 자연으로 돌려보내자 해놓고 깊이 묻어놓은 거예요. 그게 이제 20년이 지나서 문화재 파다가 보니까 이제 나온 거야. 그 나온 걸 가지고 지만원 씨는 이게 바로 5.18때 교도소 앞에서 3공수여단하고 공방전을 하다가 죽은 북한군의 유골이다. 기가 막히죠. 이거를 또 믿어요. 그러면서 이 책이 나오는 거예요. ‘5.18 최종분석보고서’ 참 부지런하십니다. 이 사이에 2014년 5월 달에 임천용 씨는 TV조선에 나가서 자기가 직접 넘어왔다고 얘기를 해요. 5월 13일 TV조선에서 나가니까 채널A가 이제 거기에 질세라 우리도 하겠다고 하면서, 이게 정명운입니다. 자기가 직접 넘어왔다고 하면서 나가 이야기하는 걸 검증조차 안 하고, 검증할 능력이 없겠죠. (70:00) 그냥 내보낸 거예요. 그러니까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이상은 이 북한군 침투설에 거의 다 이렇게 노출된 거예요, 사실은. 코로나 바이러스하고 비슷해요. 노출 다 된 거예요. 그래 갖고 이 두 채널이 나중에 뭐 사과를 하네마네 해갖고 사과했잖아요, 결국. 그런데 그 사과가 되게 기분이 나빴던 것 같애. 왜? 그 다음부터 이 두 채널 조선일보하고 동아일보 아니에요? 쟤네들이 5.18 제대로 다루는 거 봤어요? 5.18 40주기 할 때도 제대로 조명 안 해. 위원회에서 새로운 조사를 해가지고 중간에 발표를 해도 메이저 언론들은 아예 안 와요. 그런데 저는 기자출신으로 걱정이 돼요. 왜 걱정이 되는지 아십니까? 저 사람들은 앞으로 취재 못해요. 모르니까, 이거 계속 스터디를 해도 알까말까한 부분들이 많은데 한동안 덮어놨다가 어느 부분에 가서 누가 발표를 하면 가서 그 자리에서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요. 그러면 어떻게 돼야 되냐? 그때는 이 언론들은 그냥 퍼 나르기만 하는 수밖에 없는 거지. 그렇죠? 이것은 우리 대한민국의 언론환경의 발전을 생각하면 굉장히 불안한, 위험한 상황으로 지금 치닫고 있는 중입니다. 어쨌든 그렇습니다. 열심히들 지금, 무슨 목적인지 모르지만 열심히들은 하여간 살고 계세요. 이 ‘5.18 분석최종보고서’ 한번 볼게요. 14페이지에 이렇게 나옵니다. “북한 특수군 600명은 마지막으로 광주교도소 공격에 나섰습니다. 좌익수 170명을 포함한 2,700명의 수용자들을 폭동에 동원하려고 여섯 차례에 거쳐서 교도소를 공격한 겁니다. 이때 참호를 파고 대기하던 공수부대와 고지쟁탈전을 벌여 아마도 많은 북한군이 사살되었을 것입니다.” 하고 이제 뒤에 나중에 다른 얘기는 뭐냐? 그 사살된 유해들을 청주에 가서 매립을 했는데 그게 이제 나온 거예요. 대단한 상상력입니다. 그 다음에 이제 이게 나오는 거죠. 그러면서 드디어 광수 1호가 된 겁니다. “석면장갑, 기관총, 무전기 다루는 전투프로, 뭐 대형 군 지휘부 무전기와 기관총이 있고 그 기관총 총열을 바꾸는 석면장갑은 전투프로만이 그 가치를 알 수 있다.” 어쩌고저쩌고 해갖고 나간 거예요. 이거는 이제 우리 위원회에 조사를 해봤어요. 어떻게 해봤냐? 쉽습니다. 돋보기 하나만 가지고 들여다본 거예요. 그랬더니 이거 면장갑이야. 그 다음에 이 탄띠는 이 총하고 아무 상관없는 거예요. 이 총은 뭐냐? 이 총은 이 밑에 탄창을 이렇게 끼는 삽탄식이에요. AR소총이라고 하는 자동소총입니다. 저게 AR소총이에요. 그러니까 이제 무기고를 털다 보니까 이 탄띠도 나오고 하니까 양각대 걸려있으니까 그냥 걸치면 멋있겠다 하고 폼으로 걸쳐놓은 걸 지만원은 이거를 기관총이라고 하고 이 총열, 소총은 총열교환이 안 되죠. 자동소총 총열교환이 되는 게 아니죠. 자동소총이에요. 그런데 그 총열을 교환하는 무슨 석면장갑입네 뭐네하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광수가 되고 이름이 지어진 거예요. 수많은 거짓말이에요. 기관총도 아니고 석면장갑도 아니잖아요. 그렇죠? 새빨간 거짓말이에요, 이게. 그러면서 한 명이 아니고 그때부터, 2015년 5월 5일이 광수의 생일이라고 저는 이야기를 합니다. 저 날 탄생했거든요. 그래 갖고 수많은 광수들이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지금 이 사회에. 유령이 창궐하게 된 겁니다. 이게 다 지만원 한 명에 의해서일까요? 아니죠. 그렇죠? 뭔가 구조적이고 뭔가 조직적이고 뭔가 행정적인 지원까지 있는 거예요. 이게 그러면 하루이틀 만에 된 거냐? 그것도 아닌 것 같애. 그런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되는지 그것부터 저는 이야기할 곳이 없어요. 대한민국에서 이거를 취재해서 밝혀놓고 나서 누구한테 얘기해야 될지 모르겠어. 국정원? 기무사? 이 사람들이 사실은 전문분야인데 자기들도 조사해놓고 이상하게 계속 놔두잖아. 그러면 제가 뭔가 지금 잘못 알고 있는 걸까? 어떤 함정으로 저도 모르게 빠져 들어가는 건가? 그런 걱정도 돼요. 그러면 여러분이 제 입장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75:00) 그런 것도 이제 좀 걱정이 돼요. 작은 부분에서 보면 이런 한 개인의 안전과 관계돼서 여러 가지 우려가 되죠. 그런데 그거는 이제 개인적인 문제니까 버리고 좀 더 거시적으로 큰 틀에서 한번 돌아봅시다.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서 5.18은 어떤 위치에 와있고, 42년째인데 우리는 어떻게 앞으로 해가야 되는지, 북한군이라는 유령이 지금 우리 사회에 휩쓴 지가 지금 20년이 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 해가야 되는지, 그거를 오늘 여러분들에게 … 제가 프리랜서 기자로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비상임위원으로 이제 왔었죠. 심도 깊게 해왔는데 다행히 여러분 앞에서 오늘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한 개인으로서 취재는 여기까지가 한계인 듯싶습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 주제는 지만원 씨의 한 개인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체를 파고드니까 거대한 암벽 같은 게 드러나는 겁니다. 정치적으로는 우파 전체주의적 색체가 굉장히 강한데 우리 사회에서 지하화 된지 아주 오래입니다, 이것들이. 이 점은 오랫동안 우리 내부를 앞으로도 아프게 할 것 같아요. 지금도 이들의 하부조직인 구국동지회 이 사람들이 만들어낸 유공자 특혜설 전단지 저 그거 세밀하게 분석해보면 죄다 거짓말이라는 걸 보고 충격 받았는데 전라도 비하는 또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심합니다. 여러분 그거 각성하고, 알고 계세요? 제가 볼 때, 제가 느낄 때 단군 이래 전라도 비하가 지금처럼 심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그렇죠? 그러면 누군가가 이거 나서서 뭔가 바로 잡아야 되는데 이런 세력을 놔두고 국민통합 운운하면 그거 웃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북한 특수군이라는 유령이 2002년 지만원의 복수심으로 태어난 후에 2015년 5월 5일자로 광수라는 이름으로 이제 거듭났습니다. 그리고 현재 600여명이 넘죠. 661명이라고도 합니다. 지금 우리 시대 곳곳을 활개치고 다니는 이 북한 특수군의 유령들입니다. 이들을 키운 자들은 지만원 한 개인이 아니었습니다. 5.18 당시 진압군, 진압작전을 지휘했던 사람, 그들의 상층부, 또 자신들은 그야말로 어부지리로 5공화국 지배층이 된 사람들, 또 책임감도 죄의식도 억누르려다 보니까 북한 특수군이 아니고서는 자기 자신을 합리화시키지 못했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저 유령들이 활개 치는 거 아닌가, 그런 범주에는 정부기관원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 치더라도 이거는 프리랜서 이동욱 한 개인의 역량을 넘어서는 주제라고 봅니다. 제가 여러분 앞에 커다란 숙제 하나를 끌고 온 겁니다. 보수진영에 이 숙제를 펼쳤지만 고민을 함께 하며 손발을 걷어 부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솔직히 없었습니다. 이게 반대진영이라고 하면 반대진영에서는 다행이구나라고 생각하시면 안 되는 게 저도 나이가 들고 나니까 그 말뜻을 알겠습니다. “죄는 좌우의 날개로 날아간다.” 우리나라에 보수진영이 썩고 망가지면요 이쪽도 썩게 돼요. 틀림없이 그렇게 돼요. 그런데 지금 보수가 지금 썩어가고 있어요, 제가 볼 때. 맨 정신으로 저기에서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틀이 안 보여요. 그거는 보수만의 위기가 아니고 이쪽 진보진영에도 위기다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은 겁니다. 여러분도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분들일 거고 5.18 당시에 눈물 흘리는 애국가가 불려지는 가운데에서 그 관 위에 덮여진 태극기처럼 여러분의 가슴속에 맺힌 그 5.18 정신도 여전하다면 여러분 제발 이 숙제 함께 고민하셔야 됩니다. 저는 어떻게 보면 그 구국동지회, 태극기부대가 만들어낸 전단지를 다 분석하고 나서 보니까 저는 화가 났어요. 그리고 관 위에 덮인 태극기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 겁니다. 지금 현재 이 태극기를, 이 순간 태극기 정신을 저분들이 지금 훼손시키는 거 아닌가요? 오지도 않은 북한군을 불러들이고 유공자 혜택 있지도 않은 걸 거짓으로 부풀려서 대중을 선동하면서 그거를 태극기 이름으로 하고 있어요. (80:00) 그러면 우리가 그 태극기 내려놓고 하라고 이야기하셔야 되는 거 아닌가? 왜? 아니 전라도 광주사람들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전라도 광주사람은 대한민국 사랑 안 했습니까? 그 애국심을 바로 좀 찾아주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 이제 마침 새 정부가 시작되는데 저나 여러분은 사실 이제 정부가 어떤 사람들로 모여 있는지 잘 모르죠. 일단 질러나 봐야 될 때입니다, 지금. 그렇죠? 그러니 여러분들이 수기하셔가지고 다음 달 5.18을 기점으로 해서 저 정부가 올 때 확실한 걸 요구하셔야 된다고 봐요. 지금 올해가 마지막일 것 같애. 그리고 이게 여러분들이 해야 될 일이고 하셔야 될 일이고, 그렇죠? 가짜 우파전체주의자들이 군부독재 하수인들이 태극기를 둘러매고 광수 유령을 전 국민에게 전염시키고 있는데 우리는 군부독재를 거부하고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그 자유의 심정으로 태극기 아래에서 이 전쟁을 해나가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5월의 그 숭고한 희생을 감싸주고 덮어줬던 그 태극기를 유령을 키워낸 저들에 의해서 훼손되는 것은 우리가 막아야 되고 마무리해야 된다고 보는 겁니다. 그것이 진정한 5월 정신의 부활이고, 그렇죠? 긴 시간 동안 여러분 듣느라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 장내 박수 》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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