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이유서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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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3-16 21:17 조회2,34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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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론
1. 이 사건은 5.18의 명예에 국한되는 사건이 아니라 국가안위와 사법부 명예가 동시에 관련된 중대한 사건입니다. 5.18은 이미 민주화운동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로운 역사관을 내놓으면 안 된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5.18을 금전적 신분적 이권증서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고, 5.18을 발판으로 정치세력을 장악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반대로 5.18의 진실을 바로 밝혀야 한다는 국민들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5.18을 북한이 선전포고 없이 몰래 침투해 일으킨 국가전복 사건일 수 있는 것인데 이를 덮어버리려는 것은 전범국을 비호하는 이적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며 분노하는 국민들이 있습니다. 5.18유공자들이 해마다 늘어가고, 그들이 받는 금전혜택과 취업혜택은 늘어만 가는데 유공자명단을 비밀로 하면 국민은 봉이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도 많이 있습니다. 5.18이 떳떳한 존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5.18은 광주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 몇 단계 높은 국가안위에 관한 문제인 것입니다.
2.원심 판결문에는 심판을 받아야 할 대상이, 피고인이 아니라, 원심 재판부여야 한다는 공분의 마그마가 잉태돼 있습니다. 재판부가 이념갈등의 한쪽 당사자임을 자임하고, 다른 편에 선 피고인을 기율 없이 문란한 방법으로 가해하는 판결들이 즐비해 있습니다. 재판부가 아무런 증거나 논리 없이 피고인의 증거와 논리를 무시하고 이변적 궤변을 창조하고, 거짓말까지 만들어 가면서, 이념이 다른 피고인을 공격하는 처사는 사법부 최종의 보루인 귀원에서 시정시켜야 할 대상일 것입니다.
가.[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제목의 사진집은 1987년,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평위(정의평화위원회) 명의로 발간이 됐고, 사진집에는 15점의 으깨진 얼굴이 수록돼 있으며, 이 얼굴들이 공수부대가 저지른 만행의 증거라고 비난돼 있습니다. 이 15점의 얼굴 중 5점은 사진집 발간 5년 전인 1982년에 북한이 발행한 삐라에 수록돼 있습니다. 광주시민의 총 사망자 수는 모두 154명입니다. 5.18기념재단 홈페이지에는 이 154명에 대한 ‘영정사진’과 ‘사연’이 전시돼 있습니다. 그런데 1982년의 북한 삐라에 수록된 5점은 물론, 정평위가 1987년 사진집에 수록한 15점의 사진 모두가 이 154점의 얼굴 중에 없고, 사연도 없습니다. 그래서 피고인은 광주 정평위 신부들이 북한 자료를 가져다 공수부대를 비방하는데 사용했다며 “신부를 가장한 빨갱이”라는 표현을 하였습니다. 이 표현이 4명의 신부 고소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판단과정에서 2개의 거짓이 드러났습니다.
하나는 원심이 거짓을 꾸며가지고 그것을 잣대로 하여 피고인에 불리한 판결은 한 것입니다. 15점 얼굴의 일부가 광수시민의 얼굴이로 밝혀졌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내용은 심리과정에서도 밝혀진 바 없습니다. 판결서에도 15점의 얼굴 중 어느 얼굴이 광주시민인 것으로 특정되었는지에 대해 일체 설명이 없습니다. 재판부가 거짓말을 지어낸 것입니다. 재판부가 거짓말을 지어내 피고인을 공격하였다는 것은 전대미문의 이변일 것입니다. 범국민적으로 간과할 수 없는 파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다른 하나의 거짓은 광주신부 이영선에 의해 저질러진 위계를 원심이 모순 없는 진실이라고 판결한 것입니다. 4명의 신부 중에는 이명선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는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방해한 주동자였고,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옹호했습니다. 이를 놓고 피고인은 신부를 가장한 빨갱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이영선은 1987년 사진집 발행 당시에 신부가 아니라 신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광주변호사들이 이영선을 정평위 소속의 신부라고 위계하여 사기 소송을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법정 발언과 답변서를 통해 구구절절 읍소되었는데도 원심은 고소내용 모두가 모순 없는 진실이라고 판결하였습니다.
원심은 15점의 사진을 광주시민이 촬영했다고 판결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증거는 고소인의 주장일 뿐 증거로 확인 된 것이 없습니다. 또한 광주시민이 촬영했다는 15점의 얼굴 중 5점은 1982년 북한이 삐라의 소재로 활용하였습니다. 이는 광주가 북한에 계엄군을 모략하기 위한 소재로 제공했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그런데도 원심은 고소인들의 주장이 무조건 다 모순 없는 사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판단유탈, 심리미진, 이유불비, 채증법칙의 위반 차원을 훨씬 넘어 “무조건” “안면 몰수” “막무가내“를 의미하는 인민재판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나.이 병합사건 중 가장 큰 사건은 “내가 광수다” 하면서 나선 고소인 15명에 관련한 사건입니다. 노숙자담요는 3년 동안 총 661명의 광수를 찾아냈습니다. 이에 5.18기념재단이 661명중 15명을 선정하여 일일이 찾아가 소송하라 권고하였습니다. 이들 중에는 중국집 배달원, 구두닦이, 섀시공, 실업자, 다방종업원, 80대 노파 등이 있습니다. 89세의 김진순은 자기 아들 이용충이 사망한 사실을 1980.6.30.일에 처음 안 것으로 확인돼 있는데도 그보다 38일 전인 5월 23일 관을 잡고 있는 62광수가 자기라고 주장하였습니다. 80대 노파 심복례는 자기 남편 김인태가 사망한 사실을 해남에서 통보받은 날짜가 1980.5.29.일이고 광주 망원동에 부패한 상태로 가매장돼 있는 남편의 관을 처음 대했던 날이 5.30일이었던 사실이 확인되었는데도, 5월 23일 남편의 관을 잡고 우는 여인이 자기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원심은 이 두 노파의 주장이 모슨 없는 진실이라며 우격다짐 식의 판결을 내렸습니다.
당시 골재채취화물차 운전을 했던 박남선은 제71광수의 얼굴이 자기 얼굴이어야 하는데 피고인이 황장엽 얼굴과 비슷한 얼굴을 창작하여 자기의 몸체에 합성시켜놓았다는 허황된 주장을 하였습니다. 이에 피고인은 71광수 사진이 합성된 것이 아니라 진본 사진임을 증명하기 위해. 조선일보 사진-데이터베이스에 수록돼있는 71광수의 원본사진을 제시했습니다. 하고, 이에 추가하여 인터넷에서 그 사진이 전시돼 있는 곳으로 안내하는 검색경로를 제시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마이동풍의 원심은 박남선의 주장이 모슨 없는 진실이라고 판결하였습니다. 박철은 흐리고 흔들려서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정도의 사진 3장을 내놓고 “누구든 이 사진을 보면 육안만으로도 내가 제388광수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1심에서 3번째로 재판장을 맡으셨던 이경진 판사님이 “이 사진은 알아보기 어려우니 제대로 된 사진을 제출하라” 명하셨는데도 박철은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원심은 박철의 주장 모두가 모순 없는 진실이라고 판결했습니다. 점령군이 군사재판을 한다 해도 체면 상, 차마 이 정도까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피고인은 답변서를 통해 이러한 모순이 15명 모두에 다 해당한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도록 제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원심은 얼굴을 반대편으로만 돌린 채, 고소인들의 주장은 다 옳고 모순이 없다는 판결을 하였습니다.
원심 판결에는 경천동지할 억지와 궤변이 2개 있습니다. 하나는 외국에 거주하는 노숙자담요 및 피고인이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생면부지의 광주 사람들, 구두닦이 등 무명인으로 살아가는 고소인들에 대해 앙심을 품고 그들의 명예를 훼손할 동기와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판결하였습니다. 원심의 이 억지가 세상을 외포케 할 것입니다. 이 판결이 사법부에서 허용되는 판결인 것인지 상고심 판결을 통해 국민에 공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억지판결의 또 다른 하나는 노숙자담요가 현장사진 속 얼굴을 북한의 양정성 장관을 지낸 문응조(5.18당시 32세)라고 지정한 사실은 곧 5.18당시 광주 다방에서 종업원을 하던 박철(5.18당시18세)을 특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판결입니다. 노숙자담요가 현장사진 속 얼굴 661명을 북한의 누구누구라고 지정한 것에 내해 광주사람의 누구든 “이 얼굴이 내 얼굴이다”하고 주장하면 그 주장이 무조건 모순 없는 사실이라는 판결인 것입니다. 피고인은 이런 주장들로 인해 광주법원에서 1인당 1,500만월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고, 그 결과 이자를 포함하여 2억 4천만 원의 배상금을 ‘5.18기념재단’에 송금하였습니다. 이대로라면 피고인은 661명에 대해 1,500만원씩을 물어야 하고, 총 100억원 규모의 배상금을 5.18기년재단에 물어야 합니다. 이는 살인행위이지 재판 행위가 아닐 것입니다. 여기는 파기사유 6가지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아마도 이 [광수]부분에 대한 형량이 2년 형량 중 90% 정도는 차지할 것입니다.
다.피고인은 북한군이 5.18을 주도하였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정황 증거 42개를 제시하였습니다. 이 42개 모두가 ‘증거로 뒷받침된 반대논리’에 의해 무력화되지 않는 한, [북한군 개입] 표현은 허위시실의 적시가 될 수 없습니다. 원심의 가장 큰 허점은 바로 이 중요한 42개 정황증거에 대한 탄핵과정을 회피하였다는 점입니다. 42개 정황 증거에 대해서는 고소인들도,1심도, 2심도 모두 다 탄핵하지 못했습니다. “5.18은 이제까지 민주화운동인 것으로 정리돼 있지 않느냐” 오로지 이 논리 하나만 기지고 “북한군 개입은 없었다”고 우격다짐식의 판결을 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원심은 42개 정황증거가 난공불락의 성곽이라는 사실을 입증시켜 주고야 말았습니다. 이 부분에도 6가지 파기 사유가 다 들어 있습니다.
라. 노숙자담요가 힌츠페터를 601광수로 지정한 날은 2015.10.11.이고, 영화 [택시운전사]가 개봉된 날은 그 20개월 이후인 2017.8.2.입니다. 김사복의 신원이 밝혀진 날은 영화개봉일 이후 9개월이 지난 2018.5.10.입니다. 이러한 기록이 있는데도 원심은, 노숙자담요가 2017.8.2. 개봉된 영화에 김사복이 주인공으로 나올 줄 미리 알고 그보다 20개월 전인 12015.10.11.에 힌츠페터를 평양행사에 참석한 빨갱이로 몰아감으로써 힌츠페터와 김사복을 싸잡아 빨갱이로 몰았다고 판결하였습니다. 김사복과 힌츠페터가 동일체라 판결한 것입니다. 노숙자담요가 20개월 후에 영화가 개봉될 것을 미리 알고, 2015년에 힌츠페터를 601광수로 지정해놓았다는 원심판결은 시공 개념조차 무력화시킨 이변에 속할 것입니다. 이 부분에도 역사 파기 사유 6개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마. 탈북자 장진성은 본명도 가짜, 평양에서 국경연선지대로 가는 여행증도 가짜, 평양에서 기치를 탔다는 것도 가짜, 두만강을 건넜다는 것도 가짜, 김일성종합대학을 다녔다는 것도 가짜, 대남사업부에서 근무했다는 것도 가짜임이 드러났습니다. 그런데도 원심은 장진성의 모든 주장이 모순 없는 진실이라고 판결했습니다. 382광수와 장진성의 최근 얼굴을 비교분석하는데 있어서 국과수는 “얼굴형과 턱은 비슷해 보이고, 눈썹, 코끝, 아랫입술은 서로 달라 보인다”는 정도로 평가했습니다. 반면 노숙자담요는 [5.18답변서]의 323~327쪽, 5개 쪽에 걸쳐 누가 봐도 과학적 매너로 인식될 만큼, 분석시범을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원심은 국과수도 분석하기 어렵다 하는데 노숙자담요가 무슨 분석을 하느냐며, 노숙자담요의 분석 자체를 쓰레기처럼 취급했습니다. 이 부분에도 역사 파기 사유 6개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바.폭행 부분입니다. 나이 76세였던 피고인이 5.18측 50명으로부터 기습을 당해 몰매를 맞고 있는 장면에서 서초경찰이 7명의 가해자 신원을 특정해 냈는데도 불구하고, 검사와 원심은 그들이 5.18유공자 또는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무죄판단을 하였습니다. 반면 피고인은 가족을 떠나 먼 이국땅 베트남에 가서 44개월 동안 공산주의와 싸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공도 세웠고, 상해도 입었습니다. 무공훈장과 상이 6급에 해당하는 유공자증을 재판부에 제시했습니다. 그런데도 원심은 공산주의와 싸운 공로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무시했습니다. 5.18유공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전투를 한 사람들입니다. 피고인은 당시 대한민국의 제2전선이라는 베트남전쟁터에 가서 국가의 명령과 상관의 지시에 따라 가족과 떨어져 44개월 동안이나 붉은 게릴라와 전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원심 재판부에는 5.18유공자 가족을 드높은 상위에 올려놓고, 2개의 유공자증을 제출한 피고인을 땅 밑에 내려놓았습니다. 판결서에 나타나 있는 이 명백한 사실은 원심 판사들의 이념적 정체를 가장 확실하게 정의해 준 생생한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원심판결이 이념판결이라는 것을 이보다 더 이상 생생하게 증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피고인의 얼굴을 후비겠다며 달려드는 억척스런 여인을 향해 정상 속도로 오른 손을 내밀어 흔든 것을 놓고 집단충돌 과정이 아닌 개별충돌 과정에서 피고인이 선제공격을 한 것이라고 뒤집어 씌웠습니다. 구두닦이를 했다는 백종환이, 법원 경내를 빠져나가려는 피고인의 양쪽 팔목을 우악스런 힘으로 잡고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팔을 빼내는 장면을 놓고서는 피고인이 개별충돌 상태에서 백종환을 선제공격하였다고 뒤집어씌웠습니다. 50명이 달려들었는데 어디까지가 집단충돌이고, 어디까지가 개별충돌이라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피고인이 잡힌 팔목을 빼내려는 모션을 놓고 백종환의 가슴을 때렸다고 뒤집어씌웠습니다. 그런데 백종환이 사건 1개월 만에 떼어온 진단서에는 오른쪽 5번 늑골에 약간의 금이 가 있다고 기재돼 있습니다. 좌측가슴을 쳤는데 오른쪽 겨드랑이 밑에 금이 나 있다는 것입니다.
판결서에서 보편타당성이라는 개념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부분에도 역사 파기 사유 6개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사. 원판결서는 ① 판단유탈 ② 이유불비 ➂ 심리미진 ➃ 채증법칙 위배 ⑤ 사실오인 ⑥ 법리오해, 총 6개의 파기사유로 가득 차있습니다. 6개 파기 사유 차원을 훨씬 넘어 마구잡이식 공포감을 유발하는 점령군 식 인민재판이었습니다. 따라서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22.3.24.
상고인(피고인) 지만원
대 법 원 제 2 부 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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