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교수 수준이 류석춘 수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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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3-14 15:16 조회2,69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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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교수 수준이 류석춘 수준인가?
약장사의 감언이설에 놀아나는 틀딱 류석춘
류석춘틀딱tv가 있는 모양이다. 틀딱이 무슨 말인가 했더니 노인을 비하하는 말이었다. 틀니를 딱딱거린다는 말이라 한다. 3월 13일 방송인데, 오늘 아침 뒷부분 50분 순간에서 보니 아래와 같은 메시지가 있었다. .
1. 이동욱 기자는 현장 중심의 기자라 내가 존중한다.
2. 이동욱과 나는 절친이다.
3. 5.18에 대한 이동욱의 말을 들으니 구구절절 옳다. 지만원의 5.18주장은 허구다.
4. 5.18당시 장갑차는 바퀴가 궤도형이 아니라 타이어였기 때문에 2종 면허증만 가지면 누구나 운전할 수 있었다는 이동욱의 말에 신뢰가 간다. 승용차 운전자가 봉고차 모는 정도의 차이만 난다.
5. 1번 광수에 대해서도 이동욱의 말이 맞고 지만원 말이 틀리다.
6. 무기고는 비밀로 하기 위해 위장돼 있는 곳들이 아니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널려있었다는 이동욱의 말이 설득력 있다.
7. 지만원이 수학박사라는 것, 애국자라는 것에 회의가 간다.
8. 지금부터는 5.18을 연구하겠다. 이동욱의 말을 더 들어야 겠다.
능글맞은 품위
류석춘이 위안부에 대해 한결같은 자세를 취한 것에 나는 그를 고맙게 생각하면서도 강의실에서 여학생에게 “성적 모멸감”을 준 그의 말씨가 마음에 걸리긴 했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갔다는 것인가'라는 여학생 질문에 "궁금하면 한번 해 볼래요"].이런 야비하고 능글거리는 모습이 3월 13일 방송에서도 그에게 태클을 거는 시청자들에게 날아갔다.
류석춘이 위 8까지 표현을 한 사실을 놓고 객관적인 평가를 해보자. 필자가 잠시나마 여기에 마음을 쓴 것은 그가 나를 폄훼하고, 북한의 남침행위를 실드 쳐주는 것에 대한 반감 때문이 아니다. 한때 잠시 자한당 혁신위원장에까지 뽑힐 만큼 이름이 알려져 있던 사람, 연세대 사회학과 과장까지 지냈던 교수가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에 대해 경악했기 때문이다. 류석춘을 보면 이 나라 대학 교수들이 참으로 한심한 존재들도 보일 것이다. 류석춘에 대한 진가는 아래에 나타나 있다.
류석춘의 세 살짜리 학습자세
류석춘이 5.18에 대해 연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연구방법이 이동욱을 더 많이 만나 이야기를 듣겠다는 것이었다. 이동욱이 그와 가까운 사이고,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기사를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신뢰감이 있는 사람이라는 전제를 깔았다. 이동욱으로부터 1번광수, 장갑차, 무기고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까, 지만원의 주장은 엉터리이고, 이동욱의 설명이 진실임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이것이 그의 학습자세와 능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기까지를 보면 류석춘은 전직 교수 타이틀만 가졌을 뿐, 약장사의 감언이설에 속아 약을 사먹는 어수룩하기 짝이 없는 시골노인들과 다를 게 없는 사람이다. 1번 광수가 끼고 있는 장갑은 얼른 보아도 면장갑은 아니다. AR 장동기관총을 다루는 전투프로가 석면장갑을 끼지 않는다는 이동욱의 말이 허구인 것이다. 그런데 이동욱은 그것이 면장갑이라 하고, 류석춘도 면장갑이 맞다고 한다.
이동욱이 지각없는 류석춘을 바보로 알고 갖고 놀았다.
전투용 장갑차 바퀴는 통상 궤도형 체인시스템이다. 그런데 필자가 1970년 베트남에 있을 때의 장갑차는 일반 차량처럼 타이어 바퀴를 달고 나왔다. 전자는 속도가 느리고 아스팔트에 손상을 주는 반면, 후자는 속도가 매우 빨라 시가지 전투에 안성맞춤이다. 이태리가 개발한 차량이기 때문에 군에서는 “이태리형 장갑차”로 불렸다. 데모가 한창 기승을 부렸던 1980년 당시, 한국군 역시 데모진압용으로 이태리형 장갑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5.18 당시에는 광주에 소재한 아시아자동차공장에 첫 출고대기 상태에 있었다.
나는 탱크 조종석에도 앉아보고 장갑차 조종석에도 앉아보고, F16기 조종석에도 앉아봤다. 이 모든 장비는 운전의 개념이 아니라 조종의 개념으로 기동한다. 일반 차량의 운전대와는 그 개념 자체가 다르다. 새로운 전투기를 조종하려면 인수진이 개발업체에 가서 상당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새로운 탱크, 새로운 장갑차에 대한 조종기술도 개발업체로부터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태리형 장갑차는 당시 출고가 안 되었기 때문에 이를 운전하려면 누군가로부터 배워야 한다. 아니면 운전매뉴얼을 보고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이런 터득능력도 조종 경험자들만이 할 수 있다. 2종 면허권자가 운전할 수 있다는 말은 망언이다. 이런 방언을 이동욱이 한 것이고, 류석춘이 그대로 학습하여 진실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동욱이 자각 없는 류석춘을 가지고 논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무기고 위치는 대외비로 취급된다. 그런데 이동욱은 중사까지 7년간 군에 말뚝을 박았다면서 무기고, 탄약고가 완전 공개돼있다고 말한다. 그가 근무했다는 8사단은 포천지역에 위치한 후방 예비사단이다. 이런 것도 모르고 있는 것을 보니 군대생활도 적당히 구라치면서 한 모양이다. 류석춘 역시 군대생활을 했는지 의심스러운 정도로 군 상식에 깜깜이다.
연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틀딱’ 교수 류석춘
논리 훈련을 받은 사람은 남이 들려주는 조각조각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연구를 시작하지 않는다. 기존의 연구를 비판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 연구가 아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해도 그것은 잠재의식 속에 접어두고 연구자가 취해야 할 접근방법으로 들어가야 한다. 가장 먼저 취해야 할 단계는 기존의 연구결과와 의식들에 대한 문헌 탐색(Literature Survey )단계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1. 기존의 문헌에 대한 소개
가. 시대별 언론 보도의 요지
나. 시대별 계층별 세간의 인식들
다. 기존의 문헌 연구결과들의 요지
라. 반대론자들의 반론 요지
2. 1987년 대법원 판결과 5.18역사 연구와의 관계
3. [북한군 개입]에 대한 조사의 역사
4. 민주화와 북한군 개입과의 인과관계 . . .
5. 연구자(류석춘)의 의견. .
류석춘의 연구는 이동욱 요설 잔뜩 마시고 취하는 것
대략 이런 접근법이 5.18연구자가 취해야 할 접근방법이다. 그런데 류석춘에게는 이런 연구를 할 능력과 자세가 없어 보인다. 이런 연구는 어떤 재단에서 돈을 수억 원 단위로 주어야만 연구를 수용할까 말까 망설이게 되는 성격의 대형 연구다. 여러 해에 걸쳐 진을 빼야만 하는 연구이기 때문이다. 스케일이 크고 집념이 강한 사람이라야 달려들 수 있는 연구인 것이다. 이런 FM에 바춰 보면 류석춘에게는 나이도 교수직도 박사학위도 다 부끄러운 존재가 된다. 샤이(shy) 학위증인 것이다.
밀림의 왕자도 파리 한 마리를 잡으려면 온 힘을 순간적으로 집중해야한 한다. 하물며 5.18을 연구한다는 자가 손에 흙도 묻히지 많고 편하게 앉아서 이동욱의 말을 듣는 것으로 하고, 그것을 연구라고 하니, 일리노이에서 사회학 박사를 딴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간다. 이동욱의 궤변 몇 마디에 홀딱 넘어가, 지만원이 수학자라는 것도 의심스럽고, 애국자라는 것에도 의심이 간다 하니, 그가 땄다는 미국 박사학위는 교수에게 매일같이 햄버거 사주면서 딴 것인가?
내가 제시한 북한군 개입 빼박증거 42개
연구능력이 없기에 정상적인 연구 방법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사술로 접근하는 것이다. 나는 [북한군이 왔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42개의 정황증거를 내놓고 있다. 이는 시판용 책 [5.18답변서]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이 42개의 증거를 배척하지 못하면 '5.18은 북한이 일으킨 게릴라전'으로 결론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동욱과 류석춘은 이 42개 증거 중 단 한 개도 무력화시키지 못했다. 모두 논외의 요설과 궤변으로 심리전을 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장담한다. 이동욱과 류석춘은 42개 증거 중 단 1개에 대해서도 배척논리를 펼 수 없다.
광주도 반박하지 못한 북한군 개입 증거 22개
2020년 6월, 나는 [무등산의 진달래]를 썼다. 이에 대해 광주가 또 민사재판을 걸었다. 그런데 그 주장이 가관이다. 이 책에는 [북한군 개입]을 입증하는 22개의 정황증거가 담겨있다. 그런데 광주의 ‘5.18재단’, ‘광주변호인단‘이 소장에서 주장한 내용이 이동욱-류석춘만큼이나 가관이다.
“피고는 22개 자료를 모아놓고 하필이면 북한군 개입을 입증하려는 나쁜 목적으로 해석을 했다” 이것이 광주변호사들이 내놓은 명예훼손의 혐의다. [무등산의 진달래]에 나열돼 있는 22개 자료가 허위라는 것이 아니라 그 자료를 광주기분을 상하게 하는 방향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이는 무슨 뜻인가? 광주가 이 22개 증거를 배척할 수 없다고 실토한 것이다. 22개 자료를 광주기분을 상하게 하는 방향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죄를 주라는 것이다. 광주가 제왕이라는 뜻이다. 이 22개 증거자료는 광주의 본거지인 ‘5.18기념재단’과 광주 18명의 변호인단도 배척하지 못한 난공불락의 성곽인 것으로 확인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이래에 그 22개 정황증거를 소개한다.
광주도 사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22개 증거
별지#2
(1) p.27, 북한 특수군 숫자 600명, 남북한 문서 모두에 기록
(2) p.25, 안기부 보고서와 검찰 보고서에 600명 숫자와 그들의 행동이 기재돼 있다.
(3) p.25, 북한 책들을 읽으면 광주의 수많은 현장에 전쟁역사를 기록하는 북한인들이 있었다는 것, 시위가 북한 전략-전술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4) p.27, ‘무등산의 진달래’는 북한 노래이며 475명을 잃었다는 기재들이 있다.
(5) p.86, 김일성은 10.26직후 폭풍작전을 동원했고, 유병헌 회고록에 의하면 합참은 전남해안을 비워주었다.
(6) p.96, 북한군 도발시점은 5월 18일, 09시다. 북한이 1982년에 발간한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에는 전남대학교 학생 500여 명이 시위를 시작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북한책 572쪽 사진).
(7) p.89, 북한과 김대중과 10.26과 5.18은 한덩어리였다. 한민통-문세광-국민회의- 김사복-힌츠페터-함석헌 등의 관계에 대한 연결성을 기록한 부분
(8) p.27, [무등산의 진달래]는 광주에서 교도소를 공격하다가 떼죽음 당한 북한군
(9) p.27, 광수는 총 661명이었고, 이중 군인 광수는 90명에 불과했다. 살아남은 병력 100명 정도는 도청을 장악한 지휘부를 호위하는 병력이었을 것이다.
(10). p.31, 475송이는 교도소를 공격하다 떼죽음 당한 북한군일 것, 5월 21일, 북한에서는 교도소를 공격하라는 무전지시가 날아왔다. 그래서 31사단이 배치돼 있던 교도소에 3공수를 긴급히 대체시켰다.
(11) p.118, 3공수 13대대 이상휴 대위의 체험, 경상도 차량이 불타고 탑승자 2명이 죽어 있었다.
(12) p.119, 폭도들이 아시아자동차에서 끌고나온 군용트럭으로 16대대장 지프차를 일부러 들이받아 운전수가 즉사했다(이상휴 대위 체험담).
(13) 제10장(p.254~260), 남북한 당국 기록들이 공히 증명한 북한 특수군
(14) 제11장(p.262~278), 현장사진이 증명한 북한특수군
(15) 제12장(p.280~287), 광주가 증명한 북한특수군
(16) 제13장(p.290~299), 북한이 증명한 북한특수군 부분이 모두 허위라는 것이다.
별지#3
(1) p.31, 하루에 5회씩이나 광주교도소를 공격했다.
(2) p.31~32, 시체를 광주근방에 묻으면 금방 발굴이 될 것이기 때문에 청주에 가져다 매장했을 것이다. 2014.5.14. 청주유골에 대한 뉴스가 떴지만 세월호 쓰나미에 묻혀 주목받지 못했다. 유골은 규격이 일정한 칠성판 위에 얹혀있었고, 하얀 비닐로 싸인 채 일련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3) p.32, 이런 포장방법은 오로지 5.18 광주에서뿐이었다.
(4) p.33, 유골은 김정은 전용기에 실려갔을 것이다.
(5) p.34, 475구 유골 중 나머지 45구는 이삭들이었을 것이다
(6) p.312~329, 제15장 청주유골이 증명한 북한 특수군
2022. 3. 1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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