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大中 親日 행각(대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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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마왕 작성일11-01-13 10:42 조회16,88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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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다다이쥬를 밝힌다(3)
김대중(金大中) 1925. 12.3 生
창씨개명 도요다 다이쥬(豊田大中)
金大中 親日인가
집권 후 측근 간신모리배들과 쓰레기언론을 총동원해 원수보다 더 싫은 故박정희 前 대통령을
끊임없이 친일파로 음해한 金大中은 과연 친일사상과 전력에 흠이 없는 깨끗한 者인가.
'센세이 아노 도요다 다이쥬 데스요' 만고역적 김대중이 대통령 당선 후 목포상고 왜놈 스승
무쿠모토 이사부로에게 달려가 저처럼 정중하게 인사말을 올렸다. 왜놈 스승 이사부로는
조선총독부 교육청 훈도담임선생으로 일제강점기 말까지 우리 민족에게 황국신민조선을 교육시켜
민족얼 말살에 나섰던 전형적 침략주의자다.
김대중은 중.고 교육 모두를 일제교육청소속 학교에서 받아 日語가 자유로웠다. 졸업 후 왜놈이
경영하는 목포해운회사에 들어가 뛰어난 일본어를 앞세워 사주를 구워삶은 덕에 징용. 입대 모두
피할 수 있었고 종내는 젊은 나이에 회사를 물려받게 된다.
김대중 평민당 총재시절 민족원흉 히로히토가 저 세상으로 갔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전두환
前대통령은 일왕 조문을 꺼려했으나 매국노 金大中은 일본대사관 뒷문을 통해 몰래 들어가 90도로
깍듯이 조문을 했다. 그 누구의 조문강요도 없었고 일본정부의 공식조문 요청도 없었으나 김대중은 끝내
조문을 갔고 이것이 경향신문에 포착되어 1989. 1.9일 사진과 함께 특종보도 됐다. 민족수탈 수괴에다
전범 총책임자에 대한 조문행위는 국민정서에 반하는 명백한 親日행위다.
이런 천하의 반민족행위자 김대중이 1998년 정권을 잡은 후 공식적인 일본방문을 앞두고 아키히토 일왕의
정부공식호칭을 천황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 국내의 반대여론과 논란이 많았으나 김대중이 강력히 밀어붙여
1998.10월 방일을 앞두고 천황으로 공식 명명하게 됐다. 실로 믿기 어려운 도발적 親日이다.
김대중은 일본 공식방문 중 왜놈들과 입을 맞춰 독도해역 반을 즉시 일본에 넘겨준다.
신한일어업협정 이라는 망국적 간판 아래 독도를 포함 울릉도 33해리까지 한국.일본이 공동
관리하는 수역을 확정해 우리영해의 주권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스스로 포기했다. 일본에게
독도 침탈 빌미를 제공한 이 굴욕적 협정은 친일부역(親日附逆) 행위나 다름없다.
어민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어선 700여척이 헐값에 강제 폐선 처리됐으며 가수정광태의
독도는 우리땅 노랫말은 금지곡으로 독도주권과 대한민국자존심을 지켜주지 못하고 사라졌다.
민족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를 일본과 뒷거래한 돈으로 건설한다 하여 공사 현장에 달려가
자빠져 누워 시위에 가담했던 金大中. 여기서 대한해협을 일본에 팔아넘겼다는 음해까지 나왔다.
당시 박정희대통령은 대한해협은 물론 독도에 관한 자주권에도 완고해 일본외교부장이 2억불을
들고 찾아와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헛소리하는 것을 박대통령이 무례한 외교관이라 소리쳤다.
이어 대통령은 차라리 독도를 부숴버리겠다며 호통을 쳐서 쫓아냈고 결국 독도는 우리 영토로
온전히 보존되면서 오히려 태평양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수탈한 피해보상금 총 8억불을 받아냈다.
2002년6.29일 제2연평해전 발발 당시 북방한계선(NLL)에 무력도발 징후가 있어 함대사령관의
선제사격 요청이 있었으나 김대중은 북한이 공격할시 반격하라는 어이없는 교전수칙을 하달했다.
국군통수권자로서 본분을 망각한 김대중의 교전수칙에 손발 묶여 싸운 우리 장병들은 故 윤영하
소령을 비롯해 6명의 전사자가 발생했으며 교전 중 손발이 잘려나가는 처참한 공격을 당해야 했다.
바로 다음날 우리 軍을 버린 김대중은 장례식 참석을 외면한 채 검은 리본은커녕 빨간 넥타이를
매고 일본으로 건너가 왜왕 아키히토 내외와 함께 월드컵 결승전을 보며 킬킬거리며 웃고 있었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장병들 영결식에 정부관계자 단 한명도 참석치 않았고 5일장을 3일장으로
축소한 후 대통령장이 아닌 해군장으로 결정 장병들은 마지막 가는 길까지 불명예를 안고 말았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은 당시 서해교전을 제2연평해전으로 명명하고 매년 국가보훈처가 기념식을
주관하는 정부주관행사로 격상시켜 비통한 눈물로 살아온 유족들의 아픔을 뒤늦게나마 어루만졌다.
김대중 집권 중인 2002. 9.7일 상암동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남북통일축구경기. 주최측은 방임된
공권력 속에 입장하는 관중들로부터 태극기를 압수하고 대신 한반도기(좌익 깃발)를 손에 쥐어주면서
조국의 태극기가 쓰레기처럼 굴러다니고 구석으로 쌓이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래서 전쟁광 김일성이 뒈지기 전 의형제와 다름없는 김대중을 확실히 믿은 나머지
'남한은 한 세기가 지나기 전 총 한방 안 쏴도 공산화 할 수 있다'라며 자신감을 보인 것이다.
으리으리한 동교동 아방궁부터 김대중광장. 김대중도로. 김대중광주홀. 김대중역. 김대중백화점.
김대중박물관. 김대중도서관. 김대중미술관. 김대중기념관, 김대중컨벤션센터. 그리고 나라곳곳에
수없이 세워져 있는 어마어마한 김대중의 동상과 흉상들.
드러나고 확인된 진성 親日 金大中!
金大中에 비해 변변한 기념관 하나 없는 바보 대통령 두 사람.
공산당이라면 무조건 때려잡은 故이승만 건국대통령.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일괄하며 김일성에게 무조건적
사과를 받아낸 위대한 민족지도자 故박정희 대통령.
두 분의 투철한 반공정신 정기가 온전히 이어져 오며 살아 숨쉬는 이 나라.
대한민국이 아직 공산화 되지 않은 절대적 이유임을 우리는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2012 정권재창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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