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답변서(제6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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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0-12-16 18:40 조회18,35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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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서(제6차)
사건2010고합51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명예훼손) 등
피고인 지만원
위 사건에 대해 피고인은 다음과 같이 답변서를 제출하고자 합니다. 이 답변서는 아마도 피고인이 제출하는 마지막 답변서가 될 것이며, 이번 답변서에서는 오직 ‘5.18의 정체성’에 대해서만 짚고자 합니다.
다 음
해마다 북한에서는 5.18 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으며 그 주제는 반미-반파쇼 적화통일 투쟁을 선동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증37의 통일부 정세분석 자료 등을 통해 이미 입증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최근 5.18민주화운동 12주년을 맞아 평양시를 필두로 각지에서 군중집회를 개최하는 한편 신문 방송 및 한민전 중앙위 명의의 ‘5월투쟁선언’ 등을 통해 과감한 반미-판파쑈 구국투쟁의 포문을 열라는 등 연일 반미 반정부 투쟁을 극렬히 선동하고 있음”(증37-1)
본 답변서에서는 ‘남한 5.18행사’의 주제는 무엇이냐에 대해 살피고자 합니다. 결론적으로 ‘남한 5.18행사’의 주제는 ‘북한 5.18행사’의 주제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남한 5.18이 주한미군 철수 및 적화통일의 메카로 자리매김한 것입니다. 해마다 5.18이 되면 이미 대법원에 의해 이적단체로 판명 난 범민련남측본부, 한총련, 실천연대(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등 남한의 극렬 좌익단체들과 해외 좌익단체, 북한 단체들이 연합하여 성명을 내고 기자회견을 하고 행진을 하는 등 대대적인 반미투쟁 즉 주한미군 철수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5.18묘지에 있는 모든 묘비에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이명박 퇴진”이라고 쓴 띠를 묘비 상단에 둘러놓기도 했습니다. 5.18행사에는 “5.18정신을 계승하여 주한미군을 몰아내자”는 주제 이외에도 이명박 대통령을 “남북관계 파탄주범”으로 몰며 “MB정권을 끝장내자”는 주제도 등장합니다.
1. 5.18의 교주(God)로 추앙받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6.6.14. 광주에 모여든 북한의 대남조직 간부들, 해외 좌파들, 국내 좌파들이 총 동원된 ‘민족통일대축전’에서 다음과 같은 특별기념사를 했습니다. 5.18이 적화통일 선상에 있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오늘의 이 민족통일대축전의 광경을 보고 망월동 국립묘지에 계신 영령들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틀림없이 자신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면서 오늘의 모임을 축하하고 기뻐하실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증80 가)
2. 2005.5.18.에는 남.북.해외 사회단체 일동이“5.18광주항쟁 25돌을 맞아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주한미군 몰아내자”는 요지의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남측은 이적단체로 판명된 범민련남측본부, 한총련 등 16개 단체, 북한의 10개 단체, 그리고 10개의 해외 단체들이 참여했습니다. (증81 가)
5.18 광주민중항쟁 25돌을 맞아 남북해외의 사회단체들이 <광주 학살 주범 미국은 우리 민족앞에 사과하고, 한(조선)반도 전쟁위협을 즉각 중지하며, 미군은 철수하라>라는 제목의 공동성명을 18일 서울과 평양, 도쿄에서 동시 발표했다.
이 자리는 지난 9일 범민련 남측본부가 공동사무국을 통해 범민련 북측본부와 해외본부에게 5.18 즈음해 남과 북, 해외의 공동성명을 제안했고 17일 북측본부와 해외로부터 동의회신을 받아 이뤄졌다.
범민련 남측본부, 범청학련 남측본부, 한국청년단체협의회,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 반미여성회, 전국빈민연합 등 16개 단체는 이날 오전 11시 미대사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자리에서 "전쟁이냐 평화냐, 자주냐 예속이냐를 가르는 엄중한 순간에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해외 통일애국단체들은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숙원을 완수하자는 결심아래 오늘 민족의 이름으로 미국의 전쟁위협중지와 미군철수를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다"며 자리의 취지를 밝혔다.
3. 남.북.해외 좌익 단체들(남측단체 11개, 북측단체 11개, 해외단체 12개, 증82, 5쪽 참가단체)은 또 2005.9.8.에는 미 군정의 서울 입성일인 9월 8일에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미군을 몰아내고 조국을 통일하자!”(증86, 3쪽 하단)는 말로 시작되는 성명서를 냈습니다.
주한미군이 남측에 주둔한 지 60년이 되는 9월 8일 오전 미국대사관 앞에서 맥아더 동상을 무너뜨리고 스텔스기와 각종 핵무기를 한반도 밖으로 퇴출하는 의식이 치러졌다.(증82, 1쪽 본문 1-2줄)
그 2쪽 ‘가’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습니다.
이들은 또 올해는 분단 60년을 맞아 자주통일원년, 미군철수원년을 선포한 해”이며 “우리 민족이 미국의 전쟁 광란극에 정면으로 달려들어 짓이겨버리자는 사생결단의 해”라고 강조하며 “‘미군강점 60년을 더 이상 넘기지 말자’는 우리 민족의 구호가 빈말이 아님을 실증해 낼 것”임을 선언했다.
이들은 “가해자로 군림해온 미국이 우리 민족사에 어린 피눈물과 북측의 선군노선, 전민족의 미군철수 투쟁의 실체를 알 턱이 없다”며 “미국을 당해내자! 총공세를 펴자!”고 민족의 수칙과 결심을 다지고 “우리민족끼리 이념으로 민족자주, 반전평화, 통일애국을 빛나게 실현하여 우리 대에 반드시 조국을 통일할 것”(피고인의 주: 적화통일)임을 결의하였다.
4. 좌익단체 전노련 주최 “5.18광주민중항쟁 25주년 정신 계승 국민대회”가 공지되었습니다. 2005.5.15. 전남도청 앞 행사의 공지문에는 아래와 같은 선동적 격문이 있습니다. (증83)
2005년 미국의 신군사전략을 저지, 파탄시키고 한반도 평화실현, 주한미군 철수 원년을 이루어야 할 민중운동진영에 있어 25주년을 맞는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를 넘어 반미의 성지로 자리매김 되어야 합니다. 광주의 영혼들이 피로 증언한 미국의 본질을 우리는 실천적으로 계승하고 강력한 주한미군 철수 투쟁으로 답해야 합니다. 5월 15일 전국의 모든 민중진영이 광주로 집결해 위력적인 투쟁을 전개하고 주한미군 철수투쟁을 중심으로 한 올 한해 반미자주화 투쟁을 대중적으로 선포하고 힘차게 열어젖혀야 할 것입니다. (증83, 가)
5. 2006.5.14.에는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가 "평화농사실현 범국민대회 결의문"을 발표하였습니다.
광주민중항쟁 26주년을 기념하는 주간이 시작되는 오늘!
미국에 전쟁기지를 상납하기 위해 몽둥이를 든 특공대를 평시에 동원하여 민간인을 포박하고, 주민이 피땀 흘려 가꾼 농지에 철조망을 둘러치고 군사시설도 없는 곳에 보호구역을 불법적으로 지정하고 있는 오늘! (증88, 1쪽 가)
6. 2007.5.18,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의“5.18광주민중항쟁 27돌 성명서”는 아래와 같은 반미-반한나라당 선동을 하였습니다.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는 금년(2010) 11월에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주한미군 철수 한나라당 해체 투쟁으로 5월 정신 계승하자”“80만 광주 민중들은 손에 총을 들고 미국의 배후 조종을 받는 전두환 일당을 몰아내고 10일 동안 광주를 해방하였으며 우리 민중의 위대함을 세계만방에 알렸다”(증85,1쪽 가)
“ 5.18민중항쟁의 열사들이 염원하던 미군 없고 민주화된 통일 조국이 얼마 남지 않았다. 5.18민중항쟁의 정신으로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 투쟁과 한나라당의 집권 저지에 총 매진하자”(증85 2쪽 나)
7. 2008.5.18, 이적단체로 판결된 범민련남측본부가 주최하는“6.15공동선언 고수, 10.4선언 실천, 미군철수 촉구 5.18거리행진” 행사가 있었습니다.(증86)
범민련 남측본부는 지난 18일 광주에서 '6.15공동선언 고수, 10.4선언 실천, 미군철수 촉구 5.18 거리행진'을 벌였다.
행진에 앞서 묘역 참배를 마치고 모인 한총련, 한청, 전민련 및 범민련 남측본부 지방연합 성원들이 조선대학교에서 사전집회를 진행했다. 범민련 경인연합 홍안나 사무국장의 사회로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통일, 평화번영의 새 시대를 열어가자!/ 미국에는 굴욕외교, 북에는 대결책동 이명박을 규탄한다!/ 오월정신계승하여 한미동맹 해체시키고 주한미군 철거시키자!'는 내용으로 짧지만 힘 있는 집회를 가졌다.(증86)
1980년 시민군이되어 우리민족끼리 미군을 내쫓고 조국통일을 이뤄내는 밑거름이되고, 기관사가되고, 선봉장이 되어야 할 역사적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광주 시민군의 정신으로 투쟁할 것을 호소했다.(증86. 2쪽 나)
그는 "5월 정신은 우리민중이 자주적으로 모두가 잘사는 것"이라며 지금의 정권은 5월 정신을 정면으로 역행하는 정권이라고 강력하게 규탄했다. 2MB가 캠프 데이비드에 가서 "미국경제를 살려주겠다고 우리민중의 생존권까지 미국에게 바쳤다"며 이것이 5월 정신을 앞장서서 역행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며 울분을 참지 못했다. 이어 "MB정권을 반대하는 것이 5월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며 "민족의 자주권, 민족의 식량주권을" 지켜내자고 호소했다. 광우병 쇠고기는 돈 없는 도시빈민이 먹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도시빈민이 앞장서서 쇠고기 수입을 막아내고 식량주권, 경제주권을 지켜내자고 하면서 "6.15자주통일시대,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하루 빨리 이뤄내는 것이야말로 광주정신을 올바르게 계승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증86,3쪽 다)
행진은 학생들의 풍물패가 앞장서고 '6.15공동선언 고수'/ '10.4선언 실천'/ '주한미군철수, 평화협정체결, 민중생존권실현'이 새겨진 깃발과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통일 평화번영의 새시대를 열어가자'/ '6.15공동선언이행, 10.4선언 이행'과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현수막 등 다양한 홍보물들이 대거 이어졌다.(증86, 6쪽 라)
8. 2009년 5.18에도 범민련남측본부가 “5.18 자주통일대행진”이라는 주제로 5.18행사를 성대하게 하였습니다.(증87)
“광주항쟁 정신 계승! 공안탄압 분쇄! 이명박 정권 퇴진! 5.18 자주통일대행진”(1쪽 가)
범민련 남측본부는 5월 17일 정오에 전남대학교에서 금남로 구도청 앞까지 '광주항쟁 정신계승! 공안탄압 분쇄! 이명박정권 퇴진! 5.18 자주통일대행진'을 개최했다. 행진에는 통일원로, 범민련 지방연합과 청년, 학생, 노동자, 네티즌, 연대단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1천여명이 훨씬 웃도는 대오가 긴 행렬로 광주 거리를 메웠다. 행진대오는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독재시대로 회귀하는 이명박정부를 규탄하는 구호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지켜내자는 구호, 민생문제해결, 노동탄압 규탄하는 구호, 대학등록금 문제 등 이명박 정권들어서고 넘쳐나는 전사회적 문제를 담아냈다. 짧지 않은 거리를 행진하는 동안 유인물을 요구하는 버스기사 아저씨들과 차창을 열어 유인물을 받는 광주시민들 그리고 운전을 하며 지나는 시민은 모금을 자청해 주시기도 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29년전 광주시민들의 모습이 재현되었다. (증87, 2쪽 나)
“남북관계 파탄 주범 MB정권 끝장내자”(3쪽 다)
“2MB OUT"(4쪽 라)
“이명박 정권 몰아내자”(5쪽 마)
“미군 없는 평화통일”(7쪽 바)
“이명박 독재 타도하자”(7쪽 바)
증87의 기사는 남한의 통일뉴스가 2009.5.18.에 낸 기사입니다. 이 기사의 1쪽 상단에, 한반도기 및‘3대헌장’이라는 글씨와 함께 영상화돼 있는 탑은 평양의 ‘통일 거리’ 입구에 2001.8.14.에 건립된 높이 30m, 너비 6.15m(피고인주: 6.15선언을 위미하는 듯함) 대형 구조물입니다.(증88) 평양 통일 거리에 세워진 이 ‘적화통일을 염원하는 상징물’이 곧 5.18의 상징인 것입니다. 5.18을 정신적-역사적 메카로 삼고 있는 범 적색세력들이 해마다 5월 18일을 반미-반파쇼 투쟁의식을 선동하는 시즌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9. 2010.1.4. 5.18묘지의 모든 묘비에 “이명박 퇴진” 머리띠를 돌려놓았습니다. (증89)
먼저 찾은 곳은 구묘역(민족민주열사묘지), 그런데 이상한 것을 보았다. 열사들의 묘비에 빨강 바탕에 흰 글씨로 ‘이명박 퇴진’이란 구호가 적힌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자세히 알아보니 ‘거꾸로 가는 역사의 퇴행을 막고 통일시대를 준비하자’는 뜻에서 경인년 ‘호랑이 해’를 맞이해 광주전남 진보연대에서 지난 1월 4일 열사들의 묘비에 머리띠를 바꿔 달았다고 했다.(증89 1쪽 가)
이처럼 김대중이 배후 조종을 했고, 김대중을 교주로 모시는 5.18은 북한과 한통속이 되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남한 정부를 타도하여 주한미군 없는 ‘자주 민족 통일’투쟁을 벌이자는 남로당 후예들의 정신적 메카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10. 이제부터 5.18의 교주 김대중에 대해 간략히 살피고자 합니다. 2008.11.27.경 5.18의 교주 김대중은 북한을 다녀온 민노당 강기갑 대표의 예방을 받고 야당과 좌경세력이 민주연대를 구성하여 반정부투쟁을 해야 한다고 부추겼으며, 우리는 북한으로 가야 살 수 있고, 북한에 주는 퍼오기라는 발언을 하여 김영삼 전대통령과 이회창 총재로부터 공격을 받았습니다.(증89, 가)
김 전 대통령은 27일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를 의도적으로 파탄내려 한다”며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북-미 관계가 진전되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실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우리가 살길은 북측으로 가는 것이며,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 우리가 덕을 본다”면서 “북측에 ‘퍼주기’ 한다고 하지만 ‘퍼오기’가 될 것이다. 지하자원과 관광, 노동력 등에서 북한은 노다지와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민노당과 민주당이 굳건히 손잡고 시민단체 등과 광범위한 민주연합을 결성해 역주행을 저지하는 투쟁을 한다면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정세균 대표 등 당 지도부는 28일 민주노총을 방문해 정책연대를 약속했다.
11. 2008.6.4. 광화문일대가 쇠고기 파동과 관련 폭력시위로 뒤 덮여 있을 때 김대중은 그 폭력시위를 부추겼습니다.(증90, 1쪽 가)
김 전 대통령은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와 관련, “촛불시위를 보면서 국민이 대단하고 위대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스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인터넷, 휴대전화를 통해 직접 민주주의가 실현된 중대 변화”라고 평가했다
12. 2009. 6.11. 김대중은 63빌딩 6.15 9주년 기념사를 통해 “독재자에 고개 숙이고 아부해서는 안 된다. 행동하는 양심들이 들고 일어나야 한다”는 취지의 연설을 했습니다.(증91, 1쪽 가)
김 전 대통령은 "지금 국민들은 피 흘려 쟁취한 지난 10년간의 민주주의가 위태롭다며 매우 걱정하고 있다"며 "우리는 과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을 국민의 힘으로 굴복시켰다. 독재자가 나왔을 때 반드시 이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한 사실을 이명박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난 오랜 정치적 경험과 감각으로 만일 이 정부가 현재와 같은 길로 나간다면 국민도 불행하고 정부도 불행하다는 것을 확신을 갖고 말하고 있다"며 "이 대통령이 큰 결단을 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김 전 대통령은 국민을 향해, "우리는 행동하면 옳은 줄 알면서도 무섭고 손해보고 시끄러우니까 도피한다"면서 "그런 태도 때문에 의롭게 싸운 사람들이 죄 없이 세상을 뜨고 여러 수난을 받아야 한다.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이 되자"고 역설했다.
13. 이 발언으로 그는 많은 보수 언론들과 보수 인사들로부터 비판을 받았습니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은 2009.6.12. 성명서를 내 비판했습니다. 증92의 데일리안 인터넷 신문은 “김정일 두둔 김대중은 공산주의자”라는 제하에 김영삼 전대통령의 성명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2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정부 비판 발언과 관련, “나라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틈만 나면 평생 해오던 요설로 국민을 선동하는 것을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된다”고 맹비난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국민 몰래 혈세를 5억달러나 독재자 김정일에게 상납하고 만난 것이 6.15 정상회담인데 그런 굴욕적인 일을 기념해 행사를 한다는 것도 국민을 모욕하는 일”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또한 그는 “김대중, 노무현의 잃어버린 10년 동안 북한에 퍼준 돈과 물자가 70억 달러에 달한다”며 “그것이 핵과 미사일로 되돌아와 우리와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위중한 현실로, 이런 안보위기를 초래한 장본인이 바로 김대중 씨”라고 비판했다.
그는 “다 죽어가던 북한 독재자 김정일에게 사망 직전의 중환자에게 마약투여하듯 엄청난 돈을 퍼줘 회생시킨 자가 바로 김대중 씨”라면서 “대한민국을 존망의 안보위기 상태로 몰아넣은 자신의 크나큰 죄악을 인정하고 백배사죄해도 부족할 시점에 독재자 김정일을 살리기 위해 망발하는 것을 국민이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증92)
인터넷 신문 아시아투데이는 2009.6.15.자 사설에서 김대중의 위 선동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증96 가)
6·15선언 불이행 책임공방은 실은 김대중 전대통령이 지난 11일 있었던 기념행사에서 “6·15선언이 지켜져야하며 대북포용정책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면서 시작됐다. 김 전대통령은 여기서 그치지않고 현 정권을 독재정권으로 규정하며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단정, 모두 들고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맺힌 심정’이라는 말까지 했다. 말하자면 6·15선언이 이행 안 되고 과거정권에서 이룬 가치가 무너졌으니 현 정권을 붕괴시키자고 선동한 것이다.
14. 2주년이 지난 2004.6.28. 네이버뉴스 업코리아 기사(증93)는 “김대중은 대한민국 편이 아니었다”는 제하에 아래와 같은 내용을 실었습니다.
서해교전 나자 일본출국, 시민들 “이럴 수가” 충격
“한국 주둔 美 사령관이 위로의 편지를 보내왔다. 최고의 대우와 예우를 한다던 정부와 기관은 전화(는커녕) 편지 한 통 없다. 국방부도. 내 젊은 아들은 어느 나라, 누구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말인가. 화가 치밀고 분통이 터졌다. (과연 우발이었을까) 누가 책임을 진단 말인가”
2003년 7월 10일자 한 주간지에 실린 故 박동혁 병장의 어머니는 육필 수기는 김대중 정권의 조국에 대한 배반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2002년 서해교전 당시로 거슬러 가보자.
2002년 7월 1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국군수도병원 체육관. 6월 29일 서해상에서 북한의 계획된 도발로 사망한 故 윤영하 소령을 비롯,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등 장병 4명의 합동영결식이 열리고 있었다. 이날 영결식에는 유족들과 전두환 前대통령, 손학규 경기지사, 장정길 해군 참모총장 등 각계인사 500여명이 참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국가 최고지도자이자 군 통수권자였던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뿐만 아니라 김동신 국방장관을 비롯, 국무위원 어느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 중이었다. 6월 29일 서해교전으로 온 국민이 분노에 떨고 슬픔에 잠겨 오열하고 있을 때 ‘한가하게’ 월드컵 폐막식에 참석한다는 이유로 30일 오전 서울공항을 통해 출국한 것이다. 이날 출국 때 공항에는 이한동 총리를 비롯, 김동신 국방, 이근식 행정자치부 장관,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 등 정부 관계자들이 나와 환송을 했다. 이 때 “김대중 대통령이 서해 교전에도 불구하고 내일 일본에 축구구경을 간다는 게 사실이냐.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시민들의 분노가 메아리쳤다.
7월 3일 대전 국립 현충원. 서해교전에서 산화한 4명의 전사자에 대한 삼우제(三虞祭 장사를 치른 뒤 세 번째 지내는 제사) 현장. 행사에는 유족 20여명과 해군본부 소속 장병 10여명만이 참석하고 있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삼우제로서는 쓸쓸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이곳에도 대통령은 고사하고 국방장관이나 책임 있는 정부 고위관리들의 모습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故 서후원 중사의 아버지 서영석씨(당시 49세)는 “서쪽에서 아들이 죽었는데, 동쪽에서는 금강산 구경 간다고 하고…월드컵 잔치한다고 대통령이 나와 선수들한테 훈장을 주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절규하기도 했다.
다시 서해교전이 있었던 6월 29일. 북한의 군사도발에도 불구하고 한국이웃사랑회 관계자 39명, 한양대 관계자 4명,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 정련 승려 등 5명, 사업가 1명 등 총 50명이 이날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고려항공 편으로 방북했다고 통일부가 발표했다. 통일부는 또 서해도발 몇 시간 후 “꽃게잡이 철을 감안할 때 의도된 사건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북한 경비정이 선제 기습공격을 가하는 등 무력 도발행위를 자행한 것은 명백한 정전 협정 위반’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통일부 당국자는 또다시 “국방부측 설명은 북한군의 발포가 의도적이라고 하는 데, 전체적 측면으로는 의도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이르다”고 주장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은 김대중 정권이 누구 편이었던가를 묻게 한다. 과연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는 최소한의 애국심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놓고 이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다. 그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쪽체제와 역대 집권자에 대해서는 끝 모를 적의와 부정적 인식은 보여줬다. 반면에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예컨대 김대중 대통령은 역사상 유래 없는 폭압적 통치자인 김정일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면서도 한강의 기적을 통해 보릿고개를 넘게 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
지난 6월 18일 파이낸셜 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은 김정일에 대해 “영리하고 솔직한 사람이며 한국과 세계 문제에 정통해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또 “김정일은 끈질긴 개혁가로 북한을 냉전시대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끈기 있게 노력하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반면에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의 권위주의 정부가 경제성장을 가져오기는 했으나, 그것은 혹독한 대가를 요구한 불균형한 성장이었다”고 혹평했다.
일반 개인의 평범한 죽음과 전장에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산화한 목숨은 똑같을 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북한이 의도적으로 우리의 영토를 침범했고, 영해를 지키던 국군이 자그마치 4명(최종 6명)이나 전사했는데, 영결식장에 일국의 대통령이 얼굴조차 비치지 않은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는 것이 일반 국민들의 정서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조국을 배반한 행태는 당시 정부 인사들에게 똑같이 전이(轉移)됐는지 국가를 책임지고 있는 각료들 중 누구도 공개적으로 슬픔을 표시하지도 못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을 주적(主敵)이라고 부르는 것도 교묘하게 반대하고 방해했다. 80년대 친북노선을 추종했던 운동권출신들이 대거 김대중 정권에 참여한 것은 새삼스런 얘기도 아니다. 이들이 북한의 지침에 따라 꼭두각시처럼 움직였다는 것은 당시 대학을 다녔던 학생들에게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따라서 북한과 북한의 입장을 대변했던 재야단체들에 대해 무제한의 관용을 보여준 것은 어쩌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보수적 시민단체들은 결국 김대중 정권 5년동안 대한민국의 헌법정신, 가치관, 정통성은 근본적으로 훼손되고 말았다고 주장해 왔다.(증93)
위 기사 내용들은 모두 사실이며, 사실을 드라이하게 나열했는데도 공분의 피를 거꾸로 솟게 합니다. 이런 사람을 어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 할 것입니까?
15. 김대중은 재임 시에 핵개발 사실을 인지하고도 북한의 핵개발을 적극 은폐시켜주었습니다.
1998.8.30.자 조선일보는 뉴욕타임스 ‘1면 주요기사’를 인용하여 북한이 핵무기 제조공장을 건설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비밀내용을 김대중 정부에 제공하면서 경고했지만 김대중 정부가 이를 경시 또는 묵살했다(Play down)고 보도했습니다.
타임스는 첩보위성의 탐지가 백악관에 경종을 울렸고, 국방부는 94년 핵합의의 파기를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또 미 정부가 수주 전 비밀브리핑을 통해 "북한이 원자로와 재처리공장 건설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믿는다"는 내용을 미 의회와 한국 정부에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타임스는 미 관리를 인용, "한국 관리들은 미국의 경고를 경시(play down)했다"며 "이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손상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증97, 1쪽 하4줄-2쪽 3줄)
그런데도 김대중은 재임 시에 북한의 핵개발 사실을 철저하게 숨겨주었습니다.
김 전대통령은 평양에 다녀온 이후인 2001년 이같이 말했다. “북은 핵을 개발한 적도 없고 개발할 능력도 없다. 그래서 대북지원금이 핵개발에 악용된다는 말은 터무니 없는 유언비어다. 내가 책임지겠다”(증96, 나)
16. 김대중은 23세에 공산당에 입당하여 극렬좌익 단체에서 일했습니다. 1980.9.11. 경향신문은 김대중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김대중은 해방직후 남로당의 전신인 신민당에 입당하여 민청(민주애국청년연맹, 전국 노동 평의회 등 극렬 좌익 정당과 단체에서 활동했고, 남로당 목포시당 청년부장으로 공산계 파괴활동의 중추적 분자였다, 이 당시 김은 공산독재체제를 위한 적색혁명투쟁에 광분했다. (증94, 2쪽 가)
17. 일본의 월간지 ‘정계’(Siekai) 1996년 2월호 114-118쪽에는 “김대중은 공산주의 활동가였다”는 제하에 기사가 있고, 이 기사는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이자 원광대 역사학 교수인 이주천이 2008.2.16.에 인터넷 신문 브레이크뉴스에 게재하였습니다. 내용은 김대중이 왜 공산주의 활동가였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18. 아래는 증26,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에 증언돼 있는 김대중에 대한 탈북자들의 증언들입니다.
1) 광주인민봉기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김대중과 짜고 만든 통일 작품이다. 우리는 확실하게 그렇다고 믿는다. 북한에서 김대중은 혁명가다.(증26, 39쪽 하2-8줄)
2) “전라남도 광주인민봉기는 조선의 특수부대가 애국투사인 김대중 선생님을 도와주기위해서 내려가서 싸운 것으로 알고 있어요.” (165쪽 하 2-4줄)
3) 김일성은 광주폭동이 성공해서 전국적인 인민항쟁으로 퍼져나갔다면 남조선괴뢰정권은 무너지고 김대중을 수반으로 하는 새로운 혁명정권이 남조선에 수립될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친 것이 큰 실수라고 말한 적이 있다..(224쪽 6-12줄)
4) 북한사회에서 김대중의 몸값은 ‘선생님’이라는 칭호와 함께 통일혁명당의 수괴였던 김종태, 차영도 등과 함께 조국통일과 남조선혁명을 위해서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는‘영웅’으로 취급되고 있는 현실이었다. 이 사실만 놓고 보아도 북한이 광주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5.18의 조작을 위하여 고민하고 공을 들였는가를 알 수 있다. 북한사회에서는 광주사태를 마지막까지 남조선통일과 연결시키지 못한 것을 두고 지금까지도 도처에서 후회하는 목소리가 많다. (243쪽 8-16줄)
5) 김대중이의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북한에서는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모두가 남조선의 ‘김대중 선생’이라고 하면 통일을 위해서 적후에서 용맹하게 싸우는 투사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을 정도다. 저는 남조선에 와서 지금까지 김대중이라는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이나 발언들을 보면서 북한에서 이 사람을 큰 인물로 인정하고 내세워주고 있는 이유가 따로 있었고 과연 의심할 바 없는 확실한 북한 쪽의 사람이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5.18사건이 김대중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김일성이 생전에 정권을 잡고 있을 때나 지금의 김정일 정권에서나 공개적으로 시인하고 있는 것이고 북한사람들 치고 어느 누구에게 물어봐도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해서는 모두가 다 한목소리로 인정하는 부분이다. (257쪽 하1줄-258쪽 11줄)
6) 광주사태는 보태지도 덜지도 않고 김대중의 친북 조직과 북한정권이 남조선에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정권을 세우기 위해서 조작한 협공작전이라는 것이 그가 확실하게 장담하는 내용이었다.(421쪽 하3줄-422쪽 1줄)
결 론
1. ‘5.18 민주화운동의 교주’인 김대중 전대통령은 23세에 남로당 전신인 신민당에 가입한 이래 평생 “빨갱이”라는 딱지를 달고 대통령이 되어 북한에 핵자금을 대주고 북한의 핵개발 사실을 알고서도 이를 감추어주었고, 국민 몰래 적장에 5억달러를 퍼주었으며, 노무현 정부와 합쳐 통계에 잡힌 것만 해도 70억 달러에 해당하는 현금과 물자를 북한에 준 친북 좌익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사망하기 직전까지도 우리의 살길은 북한으로 가는 것이고, 북에 퍼주어야 하고, 폭력촛불시위를 부추기고, 이명박 정부를 독재정권으로 규정한 후 모든 좌파들이 단결하여 이명박 정부와 싸우라고 선동하였습니다. 그는 이 나라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2. 대부분의 국민은 민주화를 좋은 의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만 지난 제5차 답변서에서 밝힌 것처럼 민주화라는 것은 “주체사상을 연구하고 전파할 수 있는 자유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이를 탄압하는 정부와 싸워야 한다는 투쟁명령인 것입니다. 5.18민주화운동이 바로 그 반미-반국가 투쟁의 메카인 것입니다. 대부분의 국민이 이를 모르고 있다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3. 북한이 5.18을 반미-반파쑈 투쟁을 선동하는 시즌으로 이용하듯이 남한의 제 좌파단체들 역시 5.18을 반미-반정부 투쟁을 선동하는 시즌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남한의 5.18세력은 반국가단체들을 포함한 좌파세력들이라는 사실, 또 이들은 북과 내통하여 지금도 반미-적화통일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위 자료들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5.18이 반미-반정부 투쟁의 정신적 역사적 메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며 이는 다시 5.18이 대한민국 편에 선 것이 아니라 북한 편에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이러한 반국가적 존재인 5.18에, 다른 존재도 아니고 ‘5.18로부터 공격받고 있는 국가’가 나서서 ‘5.18의 명예’를 지켜주는 반면, 국가를 지키기 위해 5.18의 정체를 밝히려 하는 피고인의 노력을 법정에 세워야 하는 것인지, 이 근본 명제에 대해서도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입증자료
80. 광주에서 열린 2006년 6.15대축전에서의 김대중 연설
81. 남-북-해외 단체 5.18 공동성명 동시 발표
82. “주한미군철수로 조국통일 실현하자”(사람일보)
83. 2005.5.15. 5.18광주항쟁 국민대회 공고
84. 5.18정신으로 평택미군기지 확정 저지하자(통일뉴스)
85. 5.18 27돌 실천연대 성명서
86. 2008.5.18. 범민련 등 좌파단체 미군철수촉구 거리행진
87. 범민련남측본부 등 좌파단체 ‘5.18자주통일 대행진’
88. 평양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백과사전
89. 김대중의 반정부투쟁 선동의 말
90. 김대중의 촛불폭력시위 선동 발언
91.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 이명박 정부와 싸루라는 선동의 말
92. YS “김대중 두둔 김대중은 공산주의자”(데일리안)
93.김대중은 대한민국편이 아니었다.(업코리아)
94. 김대중은 벗긴다(경향신문)
95. 김대중은 공산주의 활동가였다.(브레이크뉴스)
96. 북이 핵 개발하면 내가 책임지겠다.(아시아투데이)
97. 김대중이 핵개발 정보 묵살했다(조선)
2010.12.8.
지만원
수 원 지 방 법 원 안 양 지 원 제 1 형 사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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