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이병호-이병기가 저지른 대역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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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2-12 21:45 조회3,41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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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이병호-이병기가 저지른 대역죄
위 인물들은 박근혜 당시 국정원장을 했던 인물들이다.
남재준은 육사 25기로 내가 4학년이었을 때 1학년이었다. 육군참모총장 경력으로 박근혜에 의해 제10대 국정원장으로 발탁됐고, 특활비를 박근혜에 상납했다는 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받고 나와있다. 국정원장 임기는 2013.3.~ 2014.5.
이병기는 1947년생, 경복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 외무고시에 합격한 이후 1981년 제네바에서 함께 근무했던 노신영의 추천으로 정무장관에 이어 노태우 비서로 발탁됐다. 이후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자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의전비서관, 의전수석비서관 등을 지내며 노태우의 이미지 메이킹 전략을 담당했다. 김영삼 시대인 1996년 안기부 제2차장에 임명된다. 이때 황장엽 망명 사건 등을 맡아 처리했다. 김대중이 출마했던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안기부장 권영해와 더불어 '북풍'공작 실무역할 해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정원장 임기는 2014.7. ~ 2015.3. 국정원장 다음의 직책이 김기춘의 뒤를 이은 김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지금은 징역3년이 확정되어 복역 중이다.
이병호는 1940년생으로 육사 19기, 국정원에서 주로 외교분야에 근무했던 샌님으로 통한다. 말레이시아 대사가 최종 경력인 사람을 무슨 이유에서인지 박근혜가 발탁했다. 임기는 2015~2017, 그리고 징역 3년 6개월형이 확정되어 복역중이다.
박근혜-이병호-이병기는 북의 대남게릴라 범죄 가려준 대역죄인들
1997년 김영삼 시대에 황장엽이 탈북했다. 이때 황장엽을 취조한 부서가 국정원 제2차장실이다. 김병기가 이문동 제2차장이었다. 1980년 당시 내가 근무했던 사무실이다. 내가 받은 극비 정보에 의하면 당시 황장엽은 2차장실 조사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5.18때 나와 김덕홍이 함께 광주에 왔고, 대남사업부장 김중린, 인민군 전설 리을설도 다 광주에 왔었다”
2015년 6월 17일, 노숙자담요가 제37광수를 발표했다. 37광수는 2015년 7월에 탈북해 한국에 왔다. 동아일보와 채널A가 박승원이 곧 기자회견을 열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때 박근혜는 직접 대통령 역사상 처음으로 국정원으로 달려갔다. 아마 박승원을 면담했거나 아니면 그에 대한 보고를 받았을 것이다. 박근혜는 상기된 모습으로 북에서 고위급 인물들이 탈북해 남한에 와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는 그 다음 날부터 쉬쉬~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믿는다. 박상원도 김덕홍과 같이 송장처럼 밀폐된 공간에 감급돼 있을 것이다. 아래는 제37광수 박상원에 대한 노숙자담요의 발표다.
황장엽, 김덕홍, 리을설, 김중린 등이 5.18때 광주에 왔던 사실을 깔아뭉긴 자들 사형당해야
이병기와 이병호는 황장엽-김덕홍-김중린-이을설 등이 광주에 왔던 사실을 은폐했다. 박근혜-이병기-이병호는 박상원이 귀순했다는 사실을 은폐했다. 이것을 은폐하지 않았더라면 이들 모두가 감옥에 가지 않았다. 지놈들은 감옥에서 후회를 하겠지만 국가와 국민은 이 개 같은 자식들로 인해 오늘의 이 지옥과 같은 세상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육사를 나온 이 개자식 이병호는 내가 23명의 탈북자들을 간첩혐의로 국정원에 신고 했는데 1개월 이내에 답을 해주기로 돼 있는 규정을 어기고 지금 이 순간까지 답이 없다. 그리고 나를 대변하시던 육사 대선배님들의 추궁에 :"지만원은 또라이다“: 이렇게 모략했다고 한다. 아래는 내가 믿을만한 분으로부터 4차례에 걸쳐 이-메일로 받는 편지 내용이다. 이 내용은 현 5.18재판에 증거자료로 제출돼 있다.
편지내용: 광수 존재 박근혜-이병호-이병기 정확히 알고 있다!
존경하는 지박사님. . . 아래에 나오는 황장엽을 직접 심문했다고 하는, 前 국정원 사람에 대해 간략히 소개할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그 사람과의 대화는 한 字도 틀림없이 그대로 적었습니다. 이름은 X 某. 경북 XX 출신으로 . . 貧寒한 農家에서 . .서울대법대 X학년 때 고시 패스. 검사 생활 X년에 적성에 맞질 않아. .공수훈련 X달과 UDT훈련 X개월 받고 파월되어 XXX 사령관과 함께 근무. . .아마도 지박사님과 비슷한 시기에 월남에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 그날로 XX 獨對하고 중앙정보부에 들어감. X년후 미국 XX 대학원에 유학. . 총영사. 대사 . . 총영사.
5.18은 좌빨들의 급소이지만 그 중에서도 황장엽이 과연 그때 광주에 내려왔었는가의 與否야 말로 雷管 중의 雷管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보여줘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안 믿습니다. 저와 형제 같은 9살 年上의 가장 친한 친구도 (공군 ROTC출신. 사귄지 44년)
“북한군 개입은 믿는데 황장엽이 왔다는 건 믿기 어렵다. 김일성대 총장하던(그 당시는 총장이 아닌데) 사람을 어떻게 내려 보낸단 말인가”
이 일로 거의 싸울 뻔도 했었지요. 저 역시 박근혜 탄핵 광풍이 극성을 부리던 2017.1.21에 처음으로 ‘5.18 영상화보집’ 속의 황장엽 사진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도 한편으론 반신반의했었습니다. 황장엽같은 고위층이 그런 위험한 작전에 투입이 되다니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았고,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는데 여기에 쐐기를 박아준 인물이 바로 위에 소개한 X 某 氏입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지만원 박사 책에는 황장엽이 내려온 걸로 되어 있던데요?”하니 그 사람 눈을 동그랗게 뜨며 曰 “아니 아직 모르고 있었어요?” “저같은 일반인이 어떻게 압니까?”“지가 내려왔었다고 제 입으로 얘기했어요. 김덕홍이도 이을설 김중린이도 같이 왔었고”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지박사님에 대한 저의 전폭적인 신뢰는 지박사님의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 사람의 이 말 한마디로부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북한군 개입을 의심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단박에 바꿔놓을 수 있는 5.18의 雷管은 바로 황장엽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후 6개월인가 지나서 다시 물었습니다.
“황장엽을 심문했다면 그 녹취록이 있을 텐데 아직 잘 보존되고 있습니까? ”그 사람 曰 “선생이 참 아픈 델 찌르는데.....(좀 뜸을 들이더니) 김대중이 없애라고 해서 다 없앴어요” 참으로 기가 막혔습니다. 국정원 요원이라면 군인보다 더 애국심이 투철한 반공전사여야 할 것인데 그 중요한 증거자료를 없애라고 한다고 다 없애버렸다니. . . 一抹의 애국심이라도 있는 인간이라면 그 녹취록을 복사하여 따로 보관할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 녹취록만 있어도 지금의 판세를 한 방에 뒤집을 수도 있는데. 지금도 속이 부글거립니다.
몇 개월 후 황장엽과 다름없는 증인인 김덕홍의 근황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그 사람 曰 “산 송장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저는 지금도 정확히 모릅니다.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건지 지금의 處地가 그렇다는 건지. 아무튼 증인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했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몇 달 전 최근에 그 사람에게 다시 질문했습니다. “지박사는 600명의 북한군이 내려왔었다고 하는데 황장엽이는 몇 명이라고 하던가요?”하니 그 사람 曰 “정확히 475명. 지박사는 너무 나갔어.” 내심으론 “그렇게 잘 알면 정확한 정보를 지박사께 알려 줄 생각을 해야지 지박사님은 홀로 오로지 분석력만으로 그 사실을 밝혀내지 않았나” 이 말을 뱉어주고 싶었지만 꾹 참고 다시 묻길 “공작원은 몇 명 왔었다고 하던가요?” 하니 “공작원은.... 그건 잘 생각나지 않는데...”하고 얼버무리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IQ 147에 사법고시까지 패스한 출중한 기억력의 소유자가 그 중요한 사안이 기억나지 않는다니.
저는 두 가지로 생각합니다. 하나는 황장엽의 保險입니다. 특수군에 대해선 실토하되 로얄 페밀리 공작원 건에 대해선 함구함으로써 김정일에게 완전 배신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둔갑시킨 김영삼 정권에 대한 不信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북한군 개입을 말해 줬는데 공론화 되지도 않고 신문 방송에서 단 한마디도 언급 않는 것을 보고 더 말해 봐야 아무 소용없겠다고 포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선 지박사님도 아시겠지만 월간조선 김용삼 기자가 황장엽을 인터뷰한 내용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습니다. 옆에 배석한 국정원 직원 세 명 때문에 북한군 개입을 直說하지는 못하고 示唆하는 듯한 뉘앙스로 말하더라는 내용이지요. 황장엽이 북한군 개입을 숨기고 있었다면 처음부터 위장탈북이 되는 것인데 진상을 알고보니 김영삼과 국정원 쓰레기들의 합작품이었습니다.
그 사람에게 청주 유골의 북송에 대해서도 물은 바가 있는데 야릇한 표정으로 묵묵부답이더군요. 지금에사 제가 내린 결론은 ‘국정원 작품’이었을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2015년도에 있었어야 할 박승원 상장 기자회견 취소 건은 일 년 동안 저를 괴롭힌 話頭와도 같았습니다. 도대체 박근혜가 왜 그랬을까?’그러다가 어느 날 그야말로 화두가 깨지듯 떠오른 생각은 전두환이었습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5.18을 바로세우면 동시에 전두환이 바로선다.’ 이게 싫었던 게 아닐까요? 제 생각이 맞다면 私怨이 골수에 사무친 참으로 소갈머리 없는 匹女에 불과하다 해야겠지요.
그 양반에게 제가 진지하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만약 지만원 박사가 만나자고 하면 만나실 의향이 있습니까?”했더니 웃으면서 “지박사가 날 만나면 틀림없이 도와달라고 할 텐데...”하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최근인 며칠 전에는 거나하게 취해 와서 하는 말이 “5.18 때문에 이렇게 시끄러운데도 알고 있는 놈들은 다 입 다물고 있으니 참...” 탄식을 하는데 속으로 욕이 나왔습니다. 자기도 입 다물고 있으면서 남 탓만 하다니. 제가 물었습니다. “황장엽 귀순 당시에 권영해가 국정원장이었는데 북한군 개입은 없었고 고정간첩 오륙십 명 정도가 설쳤을 것이라던데요” 하니 “글쎄 노망이 들었는지...왜 그러는지 모르겠네. 그렇지만 우파가 정권을 잡고 시간이 지나면 다 밝혀질 것입니다. . .증언해 줄 者들조차 緘口한 채 他界하고 나면 어떻게 진실이 밝혀진다는 것인지. .
탈북광수 건에 대해 지박사님이 국정원에 신고한 것이 이병호에 의해 묵살된 것도 그 사람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박승원 상장 기자회견 건에 대해 말씀 드리지요.. 박근혜 탄핵이 무르익던 2016년 연말 무렵 이 양반 曰 “이병호 이병기와 머리를 맞대고 흡사 桃園結義를 하듯 박승원 상장 기자회견을 내년 초에 실행하기로 결의했다.”고 하여 저도 정말 기대가 컸었습니다. 저를 만날 때 마다 “내년 봄이면 세상 뒤집어집니다. 아마 기자회견이 성사되면 전라도 사람들 얼굴도 들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수십 번을 말했는데 정작 2월이 거의 다 갈 무렵 하는 말이 이병호가 “좌파들이 이렇게 극성인 판국에 어떻게 기자회견을 하느냐”며 꽁지를 내려버리더랍니다. 기가 막혔지요. . 제가 황장엽 내려온 건에 대해 물었을 때 “아직 모르고 있었어요?”라고 말한 걸 보면 이 사실이 국정원 내에선 공공연한 비밀로 되어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만일 극비 사항이라면 사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저에게 그런 얘길 서슴없이 했을 리가 없지요.
지박사님 손이라도 한 번 잡고 싶어서 가까이 다가갔다가 초췌하신 모습에 저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솟아 민망스러워 얼른 자리를 피해버리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아쉬워했었습니다. 부디 부디 건강하시기만 빌겠습니다.
2022. 2. 12.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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