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5.18, 지만원 박사와 이동욱 기자가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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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바람 작성일22-02-21 19:47 조회2,815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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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5.18, 지만원과 이동욱이 가는 길
이승만TV의 이동욱 기자가 '현대사로서의 5.18' 3부 편에서 5.18 북한군을 부정하고 나섰다. 현재 이동욱 기자는 5.18진상조사위원회 위원 신분이다. 그가 5.18 위원으로 위촉되었다고 했을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언젠가 그는 5.18위원으로서 '5.18북한군이나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판단' 이라는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고, 그때 그는 어느 길을 선택하게 될까라는 걱정스런 고민이었다.
2019년에 통과된 5.18특별법 개정안은 다시 한번 전두환과 보수우익을 조준하는 악법이었다. 헬기 사격, 성폭력, 암매장 등에 재조사는 보수우파 정권을 한번 더 '나쁜 놈'으로 만들겠다는 명백한 의도였다. 보수우파들의 반발로 자유한국당은 여기에 간신히 '5.18북한군 조사'를 끼어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유한국당에 조사위원 2명의 추천권도 배정되었다. 5.18북한군에 대해서 보수우익을 대표할 조사위원 후보자는 당연히 지만원 박사였다. 보수우익에서는 여기에 어떠한 이의나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지만원 박사 추천설이 나오자 당연히 여당 측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좌익 언론에서는 '5.18 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자'라 주장하며 선동을 시작했고, 5.18단체에서는 매일 국회 앞에서 자유한국당을 규탄하는 농성을 벌였다. 민주당에서는 조사위원 추천권을 반납하라며 난리를 부리자 결국 병약한 한국당이 꼬리를 내렸다. 자유한국당은 지만원 박사를 대신할 인사를 다시 물색할 수밖에 없었다.
조사위원 선정이 난항에 빠지자 지인으로부터 나에게도 연락이 왔다. 지만원 박사를 대신하여 조사위원에 이력서를 제출하라는 강력한 권유였다. 하루만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고민에 많은 시간은 필요 없었다. 지만원 박사가 전투 중에 쓰러졌다면 당연히 나에게는 그 자리에 들어가 싸울 각오와 용기는 있었다. 그러나 과연 5.18 북한군에 대해서 지만원 박사를 대신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서 고민할 여지는 없었다. 그 조사위원 자리는 대한민국에서 지만원 박사말고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치며 이동욱 기자는 보수우익을 대표할 5.18조사위원에 위촉되었다. 한편으로 그것은 적진 한가운데에 혈혈단신 내팽겨쳐진다는 말과도 같았다. 좌익과 혼자 맞설 용기가 없다면 싸우지도 못하고 좌익에 포위된 벙어리가 될 것이고, 5.18북한군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싸우기는커녕 좌익의 들러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용기와 배짱과 소신, 그리고 5.18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와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면 그 자리는 사양하는 것이 맞았다.
그래서 좌익 세상인 5.18진상조사위원회 내부에서 보수우익을 대표하는 5.18조사위원의 선택이라면 갈 길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대항하여 싸우거나, 사퇴서를 들고 들러리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 옛날에 제주4.3위원회의 보수우익 위원들은 후자를 선택했다. 덕분에 그들은 빨갱이 세상이 되어버린 제주4.3에서 변절자나 들러리라는 욕을 먹지 않았고, 제주4.3 진실투쟁의 선구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이유들로 나는 이동욱 기자가 5.18위원이 되었을 때 어느 길을 선택할지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이동욱 기자가 선택한 길은 싸우는 것도 아니었고 들러리를 거부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동욱의 총구는 보수우익을 향해 있었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5.18 조사위원은 그런대로 '공적'인 자리다. '공적'이라는 것은 국민의힘과 민주당에서 요구하는 범위에서 일탈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즉 국민의힘 5.18조사원으로서 국민의힘의 비위도 맞춰야 하고, 민주당이 요구하는 범위에 맞춰 발언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안에서 폭동, 북한군 등을 주장하려면 일반인과 달라야 했다. 그게 이동욱의 한계였다.
이동욱 기자의 선택은 편안한 것이다. 대세에 순응하며 권력에 순종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만원 박사는 달랐다. 지만원 박사는 권력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건 이동욱이 선택했던 길과는 다른 가시밭길이었다. 지만원 박사가 이룩해놓은 5.18연구의 업적은 태산과도 같다. 5.18북한군에 대해서도 탄탄한 논리와 의심할 수 없는 많은 팩트들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대해 이동욱 기자가 반박하는 자료는 아직은 초등학생 수준이다.
이동욱 기자가 5.18 북한군을 부정하는 근거로 내세운 것은 기관총, 석면 장갑, 무전기 등을 비교한 아주 미미한 소량의 자료들이다. 그리고 이동욱 기자는 5.18에 대한 전문가도 아니다. 두어 개의 자료를 들이대며 지만원 박사가 평생에 걸쳐 연구한 성과에 트집을 잡는 것은 얼마나 구상유취가 가득하던가. 나도 오랜 기간에 걸쳐 제주4.3을 공부했고 책도 썼다. 그러나 4.3에 대해 제주 사람과 논쟁이 벌어질 때 가끔 이런 반박에 직면한다. "우리 아버지가 그러더라"
그의 아버지가 본 4.3과 내가 공부한 4.3은 같은 것이지만 다른 것이다. 코끼리 꼬리를 한 번 잡아본 사람과 멀리서 코끼리 전체를 바라본 그 차이인 것이다. 꼬리를 잡은 이동욱과 멀리서 쳐다보는 지만원의 차이점이 그것이다. 5.18북한군 논쟁에서 광수 몇 사람이 틀린 것, 무전기나 장갑이 다른 것 등은 코끼리 꼬리이다. 나무 몇 그루가 다르다고 산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5.18폭동이라는 대전제에서 5.18북한군 또한 조그만 꼬리이다. 장갑이 다르다고 해서 5.18북한군이 달라지지 않듯이, 5.18북한군이 달라진다고 5.18폭동이라는 진실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5.18폭동이라는 그 거대한 산, 그게 바로 지만원의 전공이다. 지만원이 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광주5.18이라는 태산인 것이다.
나는 이동욱 기자가 빨갱이에 물들었거나 변절했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제주4.3 바로잡기에도 많은 열정을 쏟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다만 그는 같은 편에 총질하는 보수우파의 고질적 병폐를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광주5.18에 대항하여 보수우파의 기치를 들 전투는 포기한 것으로 느껴진다. 5.18폭동이나 5.18북한군이라는 깃발을 들었다가 피 터지게 얻어맞는 것보다, 광주5.18에 가서 큰절을 올리는 국힘이나 민주당의 범위에 안주하며 양쪽에 '밥값'이나 대충 해주자는 그런 안락한 삶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동욱 기자에게 묻고 싶다. 광주5.18은 민주화운동인가, 폭동인가. 여기에 대한 정리부터 하고 조사위원이 되는 것이 우선이었다. 광주5.18에 북한군이 없었고, 민주화운동이었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조차 에너비 낭비다. 그럴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승만TV도 김대중TV로 이름을 바꿔야 할 것이다. 5.18폭동 발언했다고 감옥에 보내는 나라는 이승만이 만들려고 했던 나라가 아니다.
광주5.18은 수구좌익의 본부이고 종북반미의 본산이다. 그리고 폭동을 민주화운동으로 둔갑시켜 놓은 거짓과 왜곡의 바벨탑이자 보수우파를 겁박하는 공포와 경멸의 대상이었다. 지금 이동욱이 가는 길은 광주5.18에 부역하는 것이지만 지만원이 가는 길은 광주5.18에 대항하여 자유 대한민국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있는 것이다. 권력에 아부하는 기자와 진실을 숭상하는 학자의 길이 다른 것이다. 거짓의 안락한 오솔길을 걷는 자는 진실의 아픈 가시밭길을 걷는 자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없다.
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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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라위문님의 댓글
동라위문 작성일비바람님 글이 너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