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이 독도노래를 금지곡으로 만들었느냐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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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0-12-02 18:47 조회27,57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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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를 금지곡으로 지정한 사실이 없다”는 검찰측 주장에 대해
이 표현에 대해 검찰은 김대중 정부가 문서로 금지시킨 바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소통의 수단에는 문서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이른바 눈짓-몸짓(Body language)으로도 소통하고,‘압도하는 분위기’로도 소통할 수 있습니다.
‘신-한일어업협정’이 발효된 후 많은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독도 이야기 자체를 꺼내기 두려워했습니다. 김대중이 노래를 금지하라는 말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말 이상으로 강력한 지시가 바로 김대중이 자아낸 살벌한 독도 분위기였습니다.
살벌한 분위기는 증80에 매우 적나라하게 표현돼 있습니다. 2006.4.24.자 고뉴스에는, 김대중 정부의 독도조치에 대한 민노당 노회찬 의원의 비판이 소개돼 있습니다.
노희찬 “일본 동해 도발 협상, 한국 완패” “일본 칼집 뽑기도 전에 항복한 것”(증80, 1쪽 상단 제목)
<조용한 외교>가 극에 달한 것은 김대중정부 시절이었다. 1999년 신한일어업협정이 발효되면서 그간 간헐적으로 이뤄지던 민간인의 독도 상륙이 완전히 금지되었다. 2000년 1월 1일 새천년 해돋이 생중계를 위한 방송3사 중계팀은 독도 입도가 금지되어 울릉도에서 해돋이를 중계해야 했다. 부산 아시안대회에선 남북응원단이 한반도기라 부르는 남북단일기를 흔들었는데 북측과 달리 남측에서 제작한 한반도기엔 독도를 표시하지 못하게 하였다. 2002년6월에는 울릉도 어부들이 미역걷이 나가 독도에 배를 대다가 경비대의 발포와 함께 경고방송을 듣고 혼비백산 도주하였다. 그해 한국통신은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을 우려한 정부의 반대로 독도에 기지국을 설치하지 못했고 울릉도에 독도우체통을 설치하는 일도 <조용히> 하라고 정부는 지시하였다. (증80, 4쪽 줄친 부분)
민간인은 물론 방송3사까지도 독도에 입도할 수 없게 철저히 통제하고, 어부들이 접근하다가 사격을 받아 혼비백산 도망을 가고, 통신 기지국 설치도 못하게 하고, 심지어는 울릉도에 독도 우체통을 설치하는 것까지 쉬쉬하면서 통제하는 분위기에 대해 당시 많은 국민들이 분개했습니다.
이런 분위기의 부산물이 무엇이겠습니까? 노래는 방송국이 해주는 것입니다. 해돋이 방송을 독도에서 하려다 거부된 방송국이 감히 어디라고 독도 노래를 틀어주겠습니까? 당시 사회 분위기는 독도노래 금지였습니다. 이런 살벌한 분위기들이 결국 독도 노래를 사실상 금지시킨 무언극(팬터마임)이었던 것입니다. 분위기로 소통하여 독도노래를 금지시킨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가 벌인 ‘살벌한 행위’들은 독도노래를 금지시켰다는 것 이상으로 김대중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들입니다. 이런 살벌한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그 위압감에 독도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해놓고, ‘김대중이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를 금지곡으로 공식화 했느냐, 아니었느냐 하는 하찮은 문제를 놓고 따지는 것은 말꼬리 잡기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피고인은 물론 주위사람들은 독도노래를 금지곡 정도로 단단히 믿고 있었습니다. 독도노래가 금지되었다는 표현은 위의 살벌한 독도분위기를 가장 상징적으로 대변한 로고 말과 같은 표현일 것입니다.
2010.12.2.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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