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학당 움켜쥔 이영훈의 붉은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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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2-06 21:29 조회3,17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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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학당 움켜쥔 이영훈의 붉은 정체
감수성이 예민했던 대학1년생일때부터 박현채, 안병직, 김중태, 김정남, 김근태, 심재권, 김수행, 신영복 등 골수 빨갱이들과 어울려 성장한 빨갱이 이영훈이 '빨갱이 사냥꾼 이승만' 이름을 악용하여 5.18광주의 앞잡이로 날뛰는 장기복무 중사출신 협작꾼 이동욱과 손잡고 북괴의 남침행위 실드 쳐.
박현채(朴玄埰, 1934년 11월 3일 - 1995년 8월 17일)는 대한민국 경제학자. 1950년에서 1952년사이 빨치산 소년돌격부대 문화부 중대장으로 지리산·백아산 일대에서 활동.
이동욱, [보라빛 호수]의 작가 이주성을 밤 9시, 성남 인투모텔로 불러내 1시간 동안 공갈, 욕설, 협박으로 포섭하려다 실패하고, 그 주인공 정명운을 4시간 동안 회유해 자기의 광주참전 스토리가 허위라는 자백을 받아낸 지극히 쌍스러운 협작꾼, 이영훈이 이런 자를 이승만학당의 대표주자로 내세워 그 스스로는 물론 이승만학당까지 동원하여 광주의 앞잡이가 되었고, 북괴의 전쟁범행을 실드쳐주고 있다.
위키백과 자료
박사논문: '조선후기 토지소유와 농업경영’)1985)
저서로 선전한 20여권 중 대부분이 공저
2019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
펜앤드마이크 객원 칼럼니스트
일본으로부터 연구비 수령: 이영훈이 이사장으로 있는 낙성대경제연구소는 2005~2008년 도요타재단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아 '전시기/해방기(1937~1950년) 한국 농촌사회의 변동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서울대 명예교수 사칭 논란: 이영훈은 언론에서 여러 차례 명예교수로 소개됐다. 서울대에서 나온 직후인 2017년 3월 <월간조선>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명예교수로 소개됐고,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명예교수로 언급됐다. 하지만 그는 재직기간 미달로 추대 자격 자체가 없었다. 이승만 학당 홈페이지에도 이영훈을 서울대 명예교수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가족:여동생인 이유미(李由美)의 남편은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이다.
(주간조선. 2005.08.29.) 보도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utk0415&logNo=221619548016
이영훈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 1학년 때인 1970년 11월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하자 정부의 노동착취에 항의시위를 벌인 뒤 1971년 구로공단에 위장취업했고, 학교에서 5년간 제적됐던 운동권 학생이었다.
이영훈은 서울대 70학번, 그는 빨갱이 안병직(57학번)과 골수 빨치산 박현채(55학번)를 스승으로 삼았고, 김근태의 연락역 했고, 김대중 내란음모자 심재권을 따랐다. 안병직은 모택동주의자였다. 안병직은 이영훈과 나눈 대담집에서 1961년 대학원생이 돼 박현채 선생을 만났던 장면을 “박현채 선생을 만나면서 쉽게 마르크스주의자로 변했다. 박현채 선생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고 회고했다.
안병직은 김중태(61학번), 김정남(61학번), 김근태(65학번) 등의 후배를 통해 학생운동에 관여했다. 안병직은 그 시절을 “나는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까지 학생운동 강사였다”고 회고했다. 안병직은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김수행, 신영복과 호형호제했다. 안병직은 통혁당 사건 이후 지식인 운동에서 ‘노동운동’으로 활동무대를 넓혔다. 이영훈과 동기 김문수는 대학 2학년 때인 1971년 안병직을 찾아갔다. 그 자리에서 안병직은 “내가 자네들 나이였으면 교수가 아니라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했다. 이영훈은 “김근태 선배가 저와 김문수, 김재근, 이채언을 불러 구로공단에 위장취업하라고 했다. 저와 이채언은 페인트 공장, 김문수와 김재근은 미싱공장에 갔다.
정년퇴임한 경제사학자 이영훈 서울대 교수
“자본주의 맹아론은 대한민국 부정으로 이어지는 주장”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1704100022
“당시 윗선이 김근태(작고·전 열린우리당 의장) 선배와 심재권 (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선배였어요. 김근태 선배는 이론가형, 심재권 선배는 활동가형이었습니다. 저는 김근태 선배의 연락병 비슷한 역할을 했어요. 고려대, 이화여대 등으로 유인물을 전달하는 일을 했죠.”
김근태 선배는 김대중씨와도 커넥션이 있었어요. 김대중씨를 만나고 온 얘기를 하기도 했죠. 1971년 4월 대선이 끝난 직후에는 ‘민중혁명의 분위기가 서울시내에 가득하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김근태 선배는 김대중씨의 《대중경제론》 집필을 도왔던 박현채 교수와도 연결되어 있었지요.”
김문수 전 지사와는 친했습니까.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어요. 친했죠.”
“공활에서 돌아와서도 시위 때 연설도 하고 한동안 열심히 했지요. 그때 상대 학생회장이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이었어요. 그러다가 1971년 10월 위수령이 내려지면서 제적당했죠.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 대학에서 110명을 제적시키고 절대로 복학시키지 않겠다고 선언했어요. 28사단에서 군 복무를 하고 돌아왔더니. 그 사이에 정부 방침이 누그러져서 1976년에 복학했어요.
5.18 광주를 위해 총대 멘 장기복무 중사출신 협작꾼 이동욱과 손잡고 5.18성역화 추진
-이승만 이름 매국행위에 악용-
조사 하루 전, 이주성과 이동욱이 나눈 대화
녹음 일시 2021. 4. 14. 16:34
<1쪽>
이주성 : 왜 큰소리치면서 그래요, . 조사위원이면 3자 입장에서 똑바로 좀 공정성, 공정하게 뭐 조사할 생각은 안 하고 왜 그렇게 토끼몰이 하려고 그래?
이동욱 : 니네가 토끼냐?
이주성 : 아니 그런 식으로 지금 하잖아, 지금.
이동욱 : 토끼몰이가 아니지.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라고 이야기하면서 내가 자꾸 기회 주잖아.
이주성 : 형님 말은 다, 형님 말은 다 사실이고 진실이고 내 말은 다 거짓이고 부정인 거예요, 이게? 그렇잖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조사위원이라는 사람이 국민 혈세를 그렇게 하면서,
이동욱 : 아이고, 대한민국에 오셔 가지고 완전히 그냥 떵떵거리고 사네, 이제. 갑이 됐네.
<요약>
이주성의 공세: ‘조사위원이면 제3자 입장에서 공정하게 해야지 국민 세금 축내면서 왜 광주 편에 서서 나를 토끼몰이하면서 큰소리치느냐?’ 네 말만 사실이고 내 말은 다 거짓이냐,
이동욱의 수세: 북에서 와가지고 완전히 갑질하네
<2쪽>
이주성 : 그 협박에 내가 머리 숙이고 “잘못했습니다.” 빌 놈이 아니에요.
이동욱 : 어. 나는 너한테 협박한 적 없어. 너 자꾸 공갈치지 마. . .내가 너 언제 협박했어?
이주성 : 아니 그때 뭐 “광주 사람들이 가만 안 있을 거다.” 이러면 뭐죠?
이동욱 : 광주 사람들 지금도 흥분하고 있어.
이주성 : 아니 그 다음에 “법이 가만히 안 있을 거다.” 뭐라고 그랬어요, 그때?
이동욱 : 법은 가만 안 있지, 당연히. 법이 왜 만들어졌겠냐?
이주성 : 아니 형님이 법이에요?
이동욱 : 뭐라고?
이주성 : 형님이 왜 광주를 대표, 형님이 법이고 저 뭐야, 광주 사람, 형님이 광주 대표하냐고요?
이동욱 : 나는 대한민국에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이야. 법을 대표하고 나발이고 … 없고,
이주성 : 아니 그런데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이 . .왜 협박을 하고 공갈하고 온 거짓을 만들어서,
이동욱 : 오케이. 너 지금 또 협박이라고 그랬어. 그렇지? 너는 걸렸어.
<요약>
이주성의 공세: 광주 사람 가만 안 있을 거다? 법이 가만 안 있을 거다? 왜 공갈치고 협박하느냐, 당신이 법이냐? 당신이 광주 사람 대표자냐?
이동욱의 수세: 내가 널 언제 협박했냐? 너 딱 걸렸어
<3쪽>
이주성 : “법으로 가만히 안 있을 거다.” 뭐 “광주사람들” 그게 협박이 아니에요?
이동욱 : 그거는 협박이 아니지. . 법이 왜 만들어졌는데? 자꾸 역사 왜곡하니까 하도 답답하니까 법이 만들어진 거 아니야?
이주성 : 나는 진실을 밝히려고 해서 한 거지.
이동욱 : 진실은 개뿔이나 젠장,
이주성 : 개뿔?
이동욱 : 니 필요한 대로 써가지고 지금 만들어놓고 거짓말한 거 아니야?
이주성 : 웃기고 있네. 그 거짓말 누가, 아니 뭐 돈을 받아먹었는지 모르겠는데,
이동욱 : 아니지 뭐야? 그게 뭐 논픽션이야, 임마?
이주성 : 뭐 “임마?” 씨발 콱,
이동욱 : “씨발 콱” 너만 욕할 줄 아는 게 아니야.
이주성 : 야 말 곱게 해라. 꽉 씨발,
이동욱 : 살려면 똑바로 살아, 이놈아.
이주성 : 예우해줬더니 완전히 이게 웃기고 있네.
이동욱 : 아이고 완전, 뭐? 이게 세상, 나잇살도 처먹은 게 그냥 아래위가 없지, 그냥?
이주성 : 야, 야!
이동욱 : 간이 배 밖에 나왔어, 그냥. 어?
이주성 : 나이 대접 받으려면 야 똑바로 살아라.
이동욱 : 아이고 대한민국이 참 만만하게 보이지, 지금?
<요약>
이주성의 공세: 법 쳐들고 광주 사람 쳐들고, 그것이 협박 아니고 뭐냐? 나는 진실을 밝히고 있는 거다. 왜 이러냐? 돈 받아먹은 거 아냐? (욕설 생략)
이동욱의 수세: 법은 역사 왜곡하니까 만들어진거야. 너는 진실과 멀어. 네 책은 거짓말이야.
<4쪽>
이동욱 : 니들 원하는 대로 한번 실컷 한번 놀아봐, 여기에서.
이주성 : 또, 또 협박한다, 또.
이동욱 : 알았어. 알았어.
이주성 : 또 공갈 쳐라.
이동욱 : 공갈? 나 공갈 친 적 없어.
이주성 : 뭐, 법이 어떻고, 아이고 웃기고 있네.
이동욱 : 참 니네들 진짜 해도 너무 한다. 어제, 그날, 그날 와가지고 “아이고 뭐 형님이라고 할게요.” 어쩌고저쩌고 해놓고는,
이주성 : 아니 나보고 뭐라고 그랬어?
이동욱 : 그 후에 며칠 지나서 이 지랄이냐? 야 참,
이주성 : 아니 왜 처음부터 반말질 하면서 그러는데? 어? 싸가지 없이.
이동욱 : 아이고, 아니 형님이라며? . 내가 동생한테 반말하면 안 돼, 임마? 새끼 세상 짬밥도 … 아래위가 없어, 이것들은.
<요약>
이주성의 공세: 또 공갈치고 있잖아,
이동욱의 수세: 짠밥도 아래 위가 있는데 내가 네게 ‘임마’ 소리 못하냐?
<5쪽>
이주성 : 야 사람질 하려면 똑바로 해라.
이동욱 : 똑바로 살아. 야 이주성이!
이주성 :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단다. 알았냐?
이동욱 : 이주성이! 너 너 혼자 사는 게 아니야. 너 가족도 있다며? 자식도 있다며?
이주성 : 그래.
이동욱 : 쟤들, 나중에 니 아버지 이름 어떻게 들고 살래?
이주성 : 아이고, 안녕하세요, 형님?
이동욱 : 그게 책임감이다, 이놈아. . 니 보니까 좀 알코올중독기가 있는 것 같애. 좀 걱정돼, 니 건강이.
이주성 : 당신 몸 건사나 똑바로 하세요.
<6쪽>
이동욱 : 네. 알겠습니다. 하여간 책 좋은 거 많이 쓰시고, . .이름 걸고 잘 한번 살아보시오.
이주성 : 예. 협박하지 마세요.
<요약>
이주성: 욕설
이동욱: 욕설과 인신공격
전체적 요약
이 통화는 이주성의 조사위원회 출석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이루어졌고, 이 녹음을 청취한 김기수 변호사가 이주성의 변호인 자격으로 동반 출석했다. 김기수 변호인은 조사위원이 협박과 회유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이날 조사를 받을 수 없다며, 조사를 보이콧했다. 이주성은 4월 10일, 이동욱으로부터 받은 협박에 대해 협박하지 말라 공격했고, 자기의 뜻을 굽힐 의사가 없다고 말했고, 이동욱은 빈정거리고 욕설을 하고 인신공격까지 가했다. 감정이 격화된 두 사람은 서로 욕설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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