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성의 갈대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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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01-13 16:51 조회2,88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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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성의 갈대 춤
1980년 계엄사령관이었던 이희성은 광주 전교사사령관 윤흥정과 동기생(육사8기)이며 정승화가 총장이었을 때 참모차장을 했고, 10.26 직후에는 정승화에 의해 중정부장서리직에 임명됐고, 12월 13일, 육군총장 겸 계엄사령관이 됐다. 그래서 그는 정승화 총장이 키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1779년에 계엄사령관겸 육군총장에 임명됐고, 1980년에는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위원, 1981년에 예편하여 대한방직협회 회장, 1982년에는 교통부 장관, 1984년에는 국토통일원 고문, 1984년에는 대한주택공사 이사장을 지내면서 5공의 단물을 한껏 마신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정승화에서 전두환으로, 다시 전두환에서 민주검찰로 마음을 바꾸었다는 불명예스러운 평을 듣는다.
1995년 12월 12일 그는 서울지검에서 매우 놀라운 진술을 했다.
“전두환의 말을 듣지 않고 내 의사대로 한다는 것은 원초적으로 불가능했다”
“ 육군참모총장 정승화는 워낙 곧은 사람이라 합수부측 뜻대로 움직일 수 없다고 판단, 그를 제거하기 위해 정승화를 김재규 사건에 관련시켜 연행한 것으로 보인다”
“군 인사는 측근인 노태우나 정호용을 통해 직접 예하부대에 지시했고, 계엄사령관이 발령하는 계엄포고령도 보안사 요원들이 알아서 발령했다”
“전두환이 관사를 도청하지 않는가 하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국보위는 계엄사령관의 관장업무를 빼앗아 가는 것이었다”
등의 진술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바지’ 계엄사령관으로 격하시켰다. 그를 발탁 중용해준 은인 정승화에 대해서는 “정승화 총장은 성품이 온화하고, 정의감이 강하고, 일하는 데에는 치밀하고 조직적이며 투철한 군인정신을 가진 매우 훌륭한 분이었다”고 추켜세운 반면, 전두환에 대해서는 위와 같이 세상에 아부했다.
하지만 그는 아래와 같이 솔직한 진술도 했다.
1) 광주에 병력을 증파하는 것은 내가 직접 결정한 것이다. 증파과정에 정호용과 전두환이 간여한 적 없다
(주: 이 말은 “전두환의 말을 듣지 않고 내 의사대로 한다는 것은 원초적으로 불가능했다”는 1)항에 정면 배치된다)
2) 자위권 보유 천명은 전두환과 정호용이 결정한 것이 아니었다.
3) 광주시위 진압작전을 전두환과 정호용이 배후에서 지휘했다는 말은 참말이 아니다. 그들은 간섭한 사실이 없고, 그래서 광주사태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는 사람들이다. 광주사태 진압작전은 모두가 내 책임 하에 내가 결정했다.
4) 5월14일부터 전국 주요 계엄목표 즉 국가주요시설과 대학들에 비상계엄군을 배치한 것은 규정에 따른 것이므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5) 12월 13일 새벽, 국무총리 전용차에는 나, 노장관, 총리가 뒤에 앉았고, 김용휴 국방차관이 앞자리에 앉았다. 차가 보안사 앞을 통과할 때 노장관과 김용휴 차관이 함께 내렸다가 1시간 후에 결재서류를 준비해가지고 대통령에게 왔다. 나는 대통령과 같은 방에 있었지만 멀리에서 결재과정을 지켜보았다. 전두환은 그 자리에 없었고, 결재를 강요하는 행위는 없었다. 결재는 20분 정도에 걸쳐 끝났고, 그 자리에서 노장관이 내게 오라고 손짓을 하기에 갔더니 대통령이 계시는 자리에서 “자네가 참모총장에 임명될 것이니 부대를 장악하고 수습을 하게” 이렇게 말했다
2022.1.13.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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