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한자교육에 대한 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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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0-02-01 18:28 조회25,24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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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한자교육에 대한 소견
어느 보수 일간지가 “학부모 89%, 교사 77%가 원하는 초등학교 한자교육”이라는 제하의 사설을 썼다. 사설은 초등생에게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는 이유를 1)우리말의 70~75%가 한자어로 이뤄져 있고, 2) 초등학교 국어책의 55%, 의학·철학 같은 전문용어의 95%가 한자어이기 때문이고, 3) 한글은 같아도 한자에 따라 뜻이 전혀 다른 단어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이 세 가지의 이유는 전혀 타당성이 없다고 본다.
사설은 ‘사기’라는 말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한자어만 27개가 실려 있다는 것을 예로 들었다. 기세를 뜻하는 士氣, 남을 속이는 詐欺, 사기그릇 沙器, 역사책 史記, 회사 깃발 社旗…. 이렇기 때문에 한자를 모르고서는 어휘력과 국어실력을 갈고 닦기 어렵게 돼 있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런가?
우리가 사용하는 낱말들에는 영어, 불어, 일어, 한자어 등 수많은 단어들이 혼합돼 있다. 요사이 많이 쓰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또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noblesse oblige]라는 단어가 있다. 필자는 이 단어가 로마에서 유래되었다는 것까지는 알아도 noblesse oblige가 영어 단어인지 프랑스어 단어인지 알지 못한다. 그냥 소통이 되는 것이기에 사용하는 것이다. 현 일본수상의 이름이 ‘하토야마’라는 것은 알아도 일본글자로 어떻게 쓰는지 모른다. 토요다가 일본 자동차 회사인줄은 알아도 토요다를 일본글자로 어떻게 쓰는지 모른다.
말은 의사소통의 도구이며 글은 말을 문자화한 것이다. 위의 사설은 ‘사기’라는 단어 하나만을 써놓고 그것이 어느 ‘사기’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한자를 익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단어 하나만을 가지고 의사를 소통하는 사람은 없다. 많은 단어들을 논리적으로 나열하여 말을 하고 문장을 만들어 소통하는 것이다. 군의 사기가 떨어졌다고 하면 누구든지 한자를 쓰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안다. 그릇이 나무 그릇이 아니고 사기그릇이라고 하면 한자를 몰라도 무슨 말인지 다 안다. 삼국사기 하면 사기가 무슨 뜻인지 안다. 역사책을 구태여 史記라고 표현할 필요가 없다. 그냥 역사책이라고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저 사람이 지금 사기를 치고 있다고 하면 구태여 詐欺라고 쓰지 않더라도 무슨 뜻인지 다 안다.
위의 ‘사기’의 사례라면 영어의 단어에도 용도에 따라 수십 가지의 의미로 쓰이는 단어들이 매우 많다. 말이나 문장의 용도에 따라 뜻이 수십 가지로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사람들도 한자를 배워야 한다는 것인가? 문장을 보거나 단어의 용도를 보면 그 단어가 무슨 뜻인지 다 안다. 위의 ‘사기’도 용도에 따라 문장에 따라 사람들은 그 의미를 다 안다.
사람들은 글자 이전에 말로 소통을 한다. 말을 하면서 중간 중간에 한자를 써가면서 소통을 하는 사람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의 내용(콘텐츠)이고, 그 다음에는 문장의 논리성과 간결성이다. 글에는 문장체가 있고 구어체가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딱딱한 문장체가 대접을 받지 못하고 구어체가 대접을 받고 있다. 한자가 있어야 자기의 듯을 표현하는 사람이 있고, 한자가 없이도 얼마든지 오해 없이 소통을 가능케 하는 사람이 있다.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한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표현능력은 단선처럼 제한돼 있고, 한자 없이도 오해 없이 소통을 가능케 하는 사람은 표현방법이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기다란 문장을 쓰는 것은 아주 쉽다. 그러나 짧은 문장을 여러 개 사용하여 소통을 가능케 하는 것은 아주 힘이 든다.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필자는 한자를 배우는 시간에 국제공용어인 영어, 학문적 이론이 가장 많이 들어 있는 영어를 배우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자는 선택과목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2010.2.1.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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