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관련 글에 대한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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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09-11-24 15:28 조회24,30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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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3일,“경천동지할 조갑제의 정체”라는 제하에 필자가 게시한 글에 일부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이 있어 내용을 바로 잡는다.“조갑제 기자가 386주사파를 위한 인권기자”였었다는 필자의 표현은 부정확한 표현이며 일종의 의역적인 표현이었다.“조갑제는 민주화운동에 동참하여 반정부-반독재 활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민중세력(무산계급)의 억울함을 대변했던 기자”였다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것이 될 것이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는 그게 그것이지만 그래도 표현은 정확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수정하는 것이다. 그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을 고문과 조작을 일삼는 경찰을 수족으로 사용했다는 의미에서 책 제목을 무섭게 붙여 위 3개 정권을 파괴해야 할 독재정권으로 몰아갔다. 이 때는 김동길 교수도 반독재-민주화를 외치는 철부지 투사였고 조갑제와 한 편이었다.
1980년대에 조갑제는 반정부 기자로 낙인찍혀 수난을 받은 바 있다. 그가 1987년 2월 25일 발행한 책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 고문에 의한 인간파멸과정의 실증적 연구-"(한길사)을 대략 살펴보았다. 줄거리는 한국 경찰이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이며, 이들은 과학적으로 증거를 수집하기보다는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생사람을 잡아다 고문하여 고문 후유증으로 요절케 하는 등 반인권적 행위를 자행하였으며 그 사례로 김기철씨 등 몇 가지 억울한 케이스를 심층 취재하였다.
경찰은 반공의 이름으로 수많은 고문을 가했으며 이러한 고문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때로는 어린이를 살해한 사람이 따로 있는데 억울한 사람들을 줄줄이 불러다 고문을 하고 반공의 이름으로 박종철 경우처럼 수많은 희생자를 냈으며, 이런 억울한 고문에 대한 하소연이 개별차원에서만 맴돌다 사회적 관심사로 확산된 것은 박종철 군에 대한 고문치사 사건이었다고 진단한다.
조기자는 이러한 고문과 조작기술을 일본경찰에서 전수받은 것으로 진단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경찰에서 복무하던 친일 경찰을 가지고 한국경찰을 만들었기 때문에 고문과 조작이 횡행했다고 진단한다. 일제 경찰출신들이 이승만을 동대문 갑구에서 이기게 하기 위해 경쟁자인 최능진을 악랄하게 탄압하여 이승만으로 하여금 무투표로 당선되게 했고, 급기야는 최능진이 조작의 결과로 사형까지 당했다며 경찰을 권력의 앞잡이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경찰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때에도 횡행했으며 이러한 나쁜 경찰을 권력의 시녀로 부린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은 독재정권이라는 논리를 폈다.
이런 논리는 운동권의 시각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빨갱이들이 우글거리고 국가 대세를 잡아 흔드는 다급한 상황에서 당시의 경찰들이 열심히 빨갱이를 잘 잡아내고 있다고 격려한 바 있다. 고문과 조작은 일제의 전유물만은 아닐 것이다. 옛날 우리 선조들도 고문과 조작을 아주 많이 했다. 아마도 일본보다 더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조선 왕실의 역사는 고문과 조작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문과 조작은 미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존재한다. 이는 시대적 현상이지 특정 정권의 현상이 아닐 것이다. 어느 정권, 어느 대통령이 경찰더러 어린아이의 살해사건에 대해 아무나 잡아다가 고문하고 조작하라 지시를 하겠는가? 그건 경찰의 문제요 검찰과 판사들의 문제인 것이다. 즉 시대의 산물인 것이다.
만일 조기자가 위의 책을 고문과 조작을 시정하고 경찰과 검찰의 수사문화와 수사시스템을 개선하자는 순수한 뜻에서 저술했다면 이는 순수한 인권차원에서 쓴 것이라 매우 칭찬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는 고문과 조작 사례를 반정부활동, 반독재 투쟁에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아래와 같은 취지의 말들을 한다.
“오늘의 민주화운동은 정상적인 민주화운동이며 이는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민주화 역사를 위해서는 박대통령은 잘 제거됐다”
“전두환 등에 대한 죄는 청문회와 수사과정을 통해 의문점 없이 깨끗하게 밝혀졌다. 전두환은 쿠데타로 불법 집권했고, 5.18민주화운동은 반공차원에서 이루어진 진정한 민주화운동이다.”
“전두환은 월남전에서도 양민을 학살한 부대의 연대장이었다” 광주에서만 학살을 한 것이 아니라 월남에서도 양민을 학살했다는 뜻으로 비치는 내용인 것이다.
조갑제가 이 책을 발행했던 때는 필자가 육군대령으로 홍릉 국방연구원에서 국방비의 낭비를 지적하면서 장군들과 싸우며 지내다가 예편을 결심하던 때였다. 필자는 1987년 2월 28일 대령 2년 5개월 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예편했다, 바로 이 때 조갑제는 전두환 독재를 타도하기 위한 민주화 대열에 서 있었다. 필자는 체제 속에서 개선을 추구했고, 조갑제는 체제를 부정하고 경찰을 부정하는 운동을 한 셈이다.
조갑제는 책의 앞머리에서 “박종철의 죽음은 2.12 총선과 함께 한국인의 민권수위를 한 단계 올려놓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80년간 쌓인 한의 응어리가 얼마나 깊고 큰지는 박종철 사건에 대한 ‘민중’의 폭발적 반응이 잘 말해 주고 있다” 이렇게 밝혔다. 조갑제의 입에서 ‘민중’(민중=인민)이라는 용어가 나온 것이다. 당시 '민중'이란 용어는 운동권 용어였다. 당시의 민중이란 기층세력 즉 무재산계급을 의미했다. 그가 다룬 고문 조작 사례 역시 김기철 고숙종 등 무재산 기층에 치우쳐 있다. 돈 없고 백 없는 무소유인들의 억울함을 대변한 것이다.
이런 사실 하나만을 놓고 보면 조기자는 의인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 좌파운동이 기층세력을 앞에 세우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저들은 5.18폭력시위에 앞장 선 사람들의 80% 이상이 불쌍한 기층세력이라는 것을 내세운다. 좌익들은 민중민주주의를 앞세운다. 민중이라는 것은 북에서 말하는 인민이며 인민은 곧 기층세력이라는 뜻이다. 조기자의 책 역시 기층세력이 당하는 억울함을 눈물과 분노의 표현들로 극화하고 있다. 이런 극적인 책이 다른 시대에 나왔다면 그는 의인일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는 좌익들이 기층세력을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혈안이 돼 있던 그런 시대다. 조기자의 위 책은 기층세력의 억울함과 서러움을 대변해 주는 작품들이 수도 없이 많이 나왔던 그런 시대에 나온 책이다. '에덴의 동쪽'도 바로 그런 작품이 아니었던가?
박종철은 1987년 1월 14일에 국법법과 관련하여 고문을 당하다가 숨졌다. 박종철 사건은 당시 정부를 전복하기에 충분했던 386주사파들의 쓰나미에 맞서 국가공권력이 힘겹게 대항하던 과정에서 발생했다. 빨갱이들이 일으키는 파도는 국가를 삼킬 듯 무섭게 밀어닥치고 경찰력은 부족하고, 갈 길은 바쁜 그런 다급한 상황에서는 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박종철 사건은 김기철 사건이나 고숙종(여인) 사건 등 여타의 일반 범죄사건과는 다르다.
참고로 조기자가 쓴 위 책은 한길사에 발간됐으며 한길사는 맑스 등 이념서적의 발행사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송건호·강만길·이영희 등 50인 좌익)도 한길사의 생산품이다. 조갑제가 지은 ‘유고’ 등 당시의 책들도 한길사에서 발행한 모양이다.
위키백과 사전에는 조갑제가 "4.19, 6·3 사태, 부마항쟁,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의 6월 항쟁을 근본적으로 반공민주화운동이라고 규정하며, 이 운동 속에 소수의 좌익이 끼어 있었을 수도 있지만 대세를 이루지 못했고 주도권도 잡지 못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1987년 이른바 '6월항쟁'은 386주사파들이 일으킨 폭동이었다. 이를 모르는 사람들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갑제는 주사파들에 의한 푹동은 물론 좌익들이 일으킨 폭동들을 변호하는 기자요 '민주화기자'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2009.11.2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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