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정에서 발표한 요약문(도망간 광주운동권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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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11-21 20:43 조회2,60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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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정에서 발표한 요약문(도망간 광주운동권 인물)
[5.18답변서] 제17쪽에는 광주운동권의 상징인물 3인의 사진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저는 아래와 같이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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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년은 학업에서도 재미를 보지 못했고, 6.3사태에 얼쩡거리다가 전남대에서 제적당해 어엿한 직장 없이 떠돌다가 피고인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땄던 1980년에 38세로 복학을 했다가 김대중으로부터 500만원을 받아 폭동을 조종하려 했다는 이유로 5월 17일 자정에 체포됐습니다.
윤한봉은 1948년 생으로 자기말 그대로 고교에서 땡땡이치고, 절간에도 가고 군대 갔다가 전남대 축산학과에 입학하여 운동을 시작한 혐의로 경찰의 추적을 받아 5월초부터 숨어 다니다가 1981년에 화물선 몰래 타고 도미하였고, 1993년 귀국해 2007년 59세로 사망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별 볼 일 없는 이 사람이 어떻게 광주 운동권의 전설로 알려져 있는지 좀 기이합니다.
박관현은 전남대 학생회장이었는데 5월 17일 도망갔다가 1982년 광주교도소로 끌려갔습니다. 광주사람들과 좌익들은 그를 비겁자라고 손가락질 했습니다. 그것이 괴로워 그는 단식을 통해 자살을 했습니다. 그런데 매우 기이하게도 그는 북한에서 영웅이 되어 있습니다. 1980년 광주에서의 촬영권은 북한이 배타적으로 확보했습니다. 그래서 1980년 ‘조선기록영화촬영소’가 ‘광주항쟁기록영화’를 제작했고, 그 중에서 42분 분량을 발췌해 광주비디오를 만들어 전라도 일대에 확산시켰습니다. 그것을 관람한 전라도 사람들이 오늘날처럼 세뇌된 것입니다. 1989년 김일성이 황석영과 윤이상을 불러 3년에 걸쳐 5.18영화를 만들게 했습니다. 황석영은 시나리오를, 윤이상은 영화음악을 제작했습니다. 이 영화가 1991년 개봉된 [님을 위한 교향시]였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5.18을 지휘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남한에서는 비겁자로 손가락질 받던 박관현이었습니다. 교도소에 간 박관현이 전두환의 꼬붕으로 교도소장이 된 호백 소령과 민주화에 대한 이념논쟁을 하다가 독극물로 독살되었다는 줄거리에 이용된 것입니다.
2021.11.21.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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