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정에서 발표한 요약문(김사복 고소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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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11-21 20:50 조회2,50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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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정에서 발표한 요약문(김사복 고소사건)
[5.18답변서] 제 289~299쪽에는 김사복에 대한 답변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아래와 같이 요약하여 발표했습니다.
공소장 범죄사실
피고인은 “김사복은 빨갱이로 알려져 있다. 더러는 간첩이라고도 한다. 나타나면 영웅이 될 텐데 찾고 또 찾아도 영원히 잠적해 있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김사복은 민주화에 동참한 시민으로 1984년 사망할 때까지 숨은 적이 없었다.
피고인의 반론
1) 김사복을 추적하는 보도내용들을 시간 순으로 나열해놓았습니다. 영화 [택시운전사]가 2017.8.2.에 개봉됐지만 그후 9개월 동안 김사복의 얼굴과 생사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김사복의 얼굴이 밝혀지고 그가 1984년에 사망한 사실이 알려진 날은 2018.5.10.이었습니다. 피고인이 문제의 글을 쓴 시점은 개봉 12일 후인 8월 14일입니다. 얼굴도 생사도 모두 베일 속 인물이었던 시각이었습니다. 사망한 사실을 알지 못했던 시각에 나타나지 않는 김사복에 대해 사람들은 충분히 숨어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를 놓고 허위사실 적시행위로 몰아가는 것은 과잉입니다.
2) 김사복이 빨갱이로 알려져 있고, 더러는 간첩이라고도 한다는 피고인의 표현은 허위사실 적시가 아닙니다. 1975년 8월 17일 동아일보 보도가 이를 증명합니다. 월간조선의 보도와도 같이 보도 2일 전인 8월 15일, 문세광이라는 저격범을 장충동 국립극장에 태워준 사람이 김사복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문세광은 대법원이 반국가단체로 판결한 한민통이 보낸 자객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한민틍은 김대중이 결성한 단체로, 김대중은 이로 인해 사형선고를 받은바 있습니다. 김사복이 반국가단체가 보낸 자객을 국립극장에 태워다준 사실을 놓고 사람들은 무엇이라 평가했겠습니까? 빨갱이라는 사람도 있었고, 간첩이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김사복과 힌츠페터가 1975.10.3. 포천 약사봉에서 촬영된 사진이 나왔습니다. 여기에는 한국판 한민통 수뇌 함석헌과 계훈제가 함께 있었습니다. 이 사진이 추가된 지금 사람들은 더 진한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3) 피고인이 2015.10.10. 노동당 창건 70주년 행사에 힌츠페터 얼굴이 보였다고 표현한 것을 놓고 원심은 김사복에 대한 명예훼손이라 판결했습니다. 김사복과 힌츠페터는 엄연히 국적이 다른 독립된 객체들인데, 1980년 5월 20일 힌츠페터를 광주에 태워다 준 사실 하나만으로 힌츠페터에 대한 표현이 곧 김사복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판결한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생각합니다.
4) 힌츠페터는 광주에 사진을 촬영하러 간 것이 아니라 사진을 가지러 간 것이라는 점이 답변서에 석명돼 있습니다. 북한이 가장 중시한 것 중 하나가 국제사회에 한국이라는 나라를 살인하는 나라로 격하시키는 것입니다. 이 대업을 힌츠페터가 이 대업을 수행했습니다. 북한의 주요행사에 충분히 초청받을 수 있는 VIP라고 생각합니다.
5) 원심은 평양에 나타난 얼굴은 76세의 노인얼굴로 보이지 않고, 노숙자담요의 얼굴분석은 이미 신뢰할 수 없다 판결하였습니다. 지극히 자의적인 판결이라고 생각합니다.
2021.11.21.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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