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18일 오후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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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10-17 15:48 조회2,61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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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8일 오후 상황
오후 3시, 7공수 2개 대대를 지휘하라고 명령 받은 제31향토사단장 정웅 소장은 헬기를 타고 전남대로 갔다. “오다가 보니까 광주시내가 난리더라, 오후 4시부터 작전을 개시해 시위자들을 체포해 31사단 헌병대로 인계하라.” 제33대대와 제35대대는 시위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시위대의 퇴로를 차단하고 양쪽으로 토끼몰이를 했다. 시위자들에 비해 공수대원들의 숫자는 턱 없이 적었다. 시위대를 해산시키라 명령했으면 과잉진압도 없었을 것이다.
중과부적인 상태에서 시위대를 체포하야 하는 공수대원들은 자연 곤봉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곤봉을 사용하여 일방적인 과잉진압을 한 것은 5월 18일 오후가 유일했다. 5월 19일부터는 공수부대가 수세에 몰려 매타작을 당했다. 5월 18일 촬영된 사진들은 거의가 다 건물 위에서 내려다보고 찍은 것들이다. 곤봉 상황을 예측하고 미리 건물 옥상 등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다가 순간들을 포착한 사진들일 것이다.
힌츠페터가 광주에 간 날은 5월 20일 오후, 그가 관광호텔을 빠져나간 시각은 5월 21일 정오경으로 파악돼 있다. 21일 그는 곧장 일본에 소재한 그의 특파원 사무실로 날아가 그가 확보한 현장사진들을 독일 NDR사로 송고했다. 그리고 NDR사가 세계에 방영한 것은 5월 19일의 곤봉사진들이었다. 힌츠페터는 또 1975년 10월 3일, 포천 약사봉, 장준하 사망 49제 행사에 김사복과 함께 참석했다. 여기에는 함석헌, 계훈제 등 김대중이 이끄는 한민통 수뇌들이 함께 했다.
김대중-김사복-힌츠페터는 연결돼 있는 인물들이었다. 힌츠페터는 사진을 촬영하려고 광주에 간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전문적으로 찍어 놓은 사진들을 가지러 간 것이다.
2021.10.17.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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