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화신 김경재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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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07-11 15:03 조회3,83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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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화신 김경재 분석
김경재를 분석하는 이유
지난 6월 20일과 27일은 일요일이었다. 전광훈 목사측의 초청으로 사랑제일교회에 갔다. 안양에서 교회까지는 왕복 각각 2시간씩 걸렸고, 예배시간이 3~4시간이었지만 국가적 대안이 고갈된 지금으로써는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국민혁명당이 혹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시간적인 무리를 했다.
6월 20일에는 예배 후 단상에 올라 15분 정도 말을 할 수 있었고, 6월 27일에는 9분 정도 말할 시간이 주어졌다. 첫날은 ‘사교육 없애기 정책’ 대안 중 하나인 교과서 혁명에 대해 말해 많은 박수를 받았고, 6월 27일에는 공무원들이 국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법학도로 채워진 감사원을 경영학 학도와 분석학 학도로 채워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 했다. 이와 함께 차기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그 첫째가 현대사를 정확히 알아야 하고 둘째, 연설 능력이 있어야 하고 셋째, 학습 의지와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전광훈 목사가 바로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진단해주었다.
그런데 이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했다. 충분조건은 통상의 공약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비전을 제시해주면 국민은 오지 말라 해도 온다고 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었다.
이어서 국가의 장래를 염려하는 많은 지식인들이 전광훈과 지만원이 합치면 참 좋겠다는 희망을 말했다. 바로 이런 분위기가 일기 시작하자 6월 27일, 예배가 끝나는 시각에 김경재가 나타나 전목사와 수많은 교회 간부들이 앉아있는 식당 공간에 와서 엉뚱한 거짓말을 지어내 특유의 커다란 목소리로 "지만원이 상종 못할 인간"이라고 외치고 나갔다. 지만원이 자기와 변희재를 묶어 “위장한 탈북자”라는 글을 썼다는 것이다. 증거를 대라 하니까 증거는 사방에 널려있다며 곧바로 퇴장하였다. 작전을 하러 일부러 온 것이다.
듣자 하니 이후 교회의 간부들 사이에는 양비론이 일었다고 한다. 김경재와 변희재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북한 주민인 적이 없었는데 지만원이 그들을 탈북자 그것도 위장한 탈북자라는 글을 썼다면 일반 사람들이 듣기에 지만원은 얼마나 엉뚱한 사람이라고 느껴지겠는가? 더구나 그들은 김경재는 같은 당원이라 잘 알고 있으며 전목사와는 매우 가까운 사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에 더해 그 교회에서는 지만원이 이전에 전광훈을 상대로 고발을 했었다는 낭설도 돌고 있다 한다. 이런 상태에서 김경재의 마타도어를 접한 교회 장로들과 부목사들은 당연히 지만원을 경계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김경재는 6월 27일 이후 6월 30일까지 4가지 거짓말을 했고, 황당한 거짓말을 지어내 마타도어적 만행을 저질렀고, 두 가지 이유로 전광훈을 파괴했다. 결국 김경재는 전광훈을 돕기 위해 국민혁명당에 접근한 것이 아니라 전광훈을 파괴하고 이용하기 위해 접근했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이유로 그를 분석하는 것이다.
김경재의 붉은 족적
김경재의 학력은 위키백과에 아래와 같이 기록돼 있다. 여수에서 태어나 순천에서 초중고를 나왔다. 1961년 순천고를 나와 1년 동안 재수를 하고 1962년에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하여, 동백림 간첩단의 공작 조직이자 반국가 단체인 ‘민비연’(민족주의비교연구회)에 가입해 반국가 활동을 하면서 대학 시절을 보냈다. 이 간첩 조직이 중앙정보부에 의해 폭로된 시기는 김경재가 서울대를 졸업한 다음 해인 1967년 7월 11일이었다. 1967년 7월 민비연의 정체가 드러나기 전, 아마도 김경제는 수사를 받았을 것이다. 인터넷에는 그가 이로 인해 강제로 군대로 끌려갔다고 하는데 어디에서 어떤 군대 생활을 했는지는 잘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런데 아래 위키백과 자료에는 그가 1968년에 국방대학교 정치학 학사 13기로 적혀있다. 한국에는 국방대학원은 있어도 국방대학교는 없다. 국방대학원은 증령급 이상이 가는 고급 군사과정이라 김경재가 갈 수 있는 군번이 아니다. 그리고 서울대학 정치학 학사가 또 다시 2년 후에 존재 자체가 없는 국방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를 받은 이유도 없었다. 이 허무맹랑한 기록은 아마도 김경재의 거짓말로 인해 생겼을 것이다.
그는 1971년 대통령 선거 당시 김대중 신민당 대선 후보 홍보기획위원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고 한다. 이듬해인 1972년, 김대중이 유신에 반대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자 그 역시 미국으로 갔다. 거기서 김경재는 5부작이나 되는 김형욱 회고록을 썼고, 신문도 창간하면서 15년 동안 정치 유랑을 한 모양이다. 그 후 30년 동안 김대중 따까리로 역할해 왔고, 1999년에는 김대중의 밀사로 북한에 가서 7박 8일을 머물렀다. 요약하면 서울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간첩단에 연루된 조직에서 박정희를 찍어내리는 반국가 운동을 했고, 김대중을 30년 이상 추종-추수하였고, 박정희의 목에 칼을 들이대었다는 김형욱 회고록 5부작을 썼고, 평양에 가서 7박 8일을 보냈다. 이 정도면 그를 빨갱이라 부르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는 "박정희는 나를 탄압했지만 나는 그의 딸을 보호했다"는 말을 선전 구처럼 반복한다. 박정희가 겨우 20세 전후였던 대학생을 어떻게 알고 탄압했다는 것인가? 그는 과연 박근혜를 보호했는가? 그는 한광옥, 이정현과 함께 박근혜에 접근했고, 박근혜 탄핵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보았다. 만일 박근혜가 탄핵을 면했다면 그의 말을 정말인 것으로 믿어줄 수 있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가 취한 조치들은 탄핵을 자초하는 길이었다. 어떤 보좌진들이 그녀를 이렇게 덫으로 몰아넣었을까?
이번 6월 30일, 그는 북한을 주적이라 하기에는 좀 애매한 부분이 있다 했고, 지만원을 가장 지독한 매카시스트라고 악평했다. 참고로 “아무나 보고 빨갱이라 하는 사람"으로 조롱받던 미 상원의원 매카시는 2000~2003년 연속적으로 6명에 이르는 교수 등의 저작에 의해 미국 역사상 가장 훌륭했던 애국자로 재평가됐다. 이런 사실은 우리나라 빨갱이들에게도 알려져 그들도 이제는 더 이상 매카시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치학을 공부했다는 김경재는 아직도 이렇게 변한 세상을 알지 못한 채, 시대착오적인 수십 년 전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을 주적으로 부르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는 표현은 빨갱이들에 공통된 언어다. 군사적으로는 대치해있지만 정치적으로는 함께 도모해야 할 공동체라는 말이다. 우리는 북한을 똑바로 정의해야 한다. 북한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다. 탄압받는 주민이 있고, 탄압하는 정권이 있다. 주민은 헌법상 우리 편이지만 정권은 우리의 주적인 것이다. 이치와 현실이 이와 같음에도 빨갱이들은 주적이라는 표현을 없애기 위해 김경재처럼 말한다.
김경재의 4대 거짓말
거짓말1.지만원이 김경재와 변희재를 싸잡아 ‘위장 탈북자’라고 비난했다. 증거들이 사방에 널려있다. (6.27. 사랑제일교회 및 이날 오후 10시경 전화 통화에서)
거짓말2. 사방에 널려 있던 증거가 사라지고 없다. 지만원이 지운 모양이다. (6.30.김경재방송에서)
거짓말3.증거가 사라진 다음 변희재에 전화로 확인해 보니 변희재도 내 말이 맞다고 하더라(6.30)
거짓말4. 지만원이 사관학교 1학년 때 나는 서울대학 3학년이었고, 육사에 가서 토론대회에 참가해 대통령상을 받았다. 이 이야기를 전화통화할 때 지만원에게 해주었다(6.30. 김경재방송).
사실은 무엇인가?
김경재는 1961년 순천고를 졸업하고 1년을 꿇은 후 1962~1966년 서울대를 다녔다. 지만원 역시 1961년에 고교를 졸업하고 1년 꿇은 후 1962년~66년에 육사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김경재는 1962년에 자기가 서울대 3학년이었고, 육사에서 열리는 토론대회에 참가해 대통령상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이 이야기를 6.27일 통화에서 내개 말해주면서 김경재에 기어오르지 말라는 투로 말해주었다고 뻥을 쳤다. 육사는 이학사를 양성하는 곳이라 정치학 분야 토론회를 주관할 수도 없었고, 주도한 적도 없다. 1962년 내가 육사 1학년일 때 그 역시 서울대 1학년이어야 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3학년이었다는 말인가? 육사는 정치학 분야 토론회를 열지도 않았는데 육사에서 어떻게 대통령상을 받았다는 말인가? (그것도 연속 2년에 걸쳐 받았다 했다.)
6월 27일 나는 변희재에 전화를 걸어 김경재가 한 말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변희재는 "절대로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6월 30일 김경재는 “6월 27일까지 존재했던 지만원의 글이 갑자기 사라졌고, 그래서 변희재에 전화를 걸어 확인했더니 변희재도 김경재 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는 방송을 했다. 한때 자기의 충성스런 특보였다는 변희재를 아껴주기는커녕 매우 곤혹스런 위치로 내몬 것이다. 이는 인간성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6월 27일 밤 내가 김경재에 전화를 거는 순간에서부터 김경재가 전화를 끊는 순간까지의 녹음을 나는 7월 10일, 시스템TV에 공개했다. 내가 육사 1학년이었을 때 자기가 3학년으로 육사가 주최하는 토론회에 와서 대통령상을 타는 그 순간에 지만원은 저 아래 자리에서 지켜보았을 것이라는 말을 6월 27일 통화시에 나에게 해주었다는 말이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거짓말을 해도 쓰잘 데 없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라도 근성이고 김대중의 근성인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동네 어른들로부터 전라도 사람들의 철학을 들었다. 남의 집에 가면 반드시 젓가락 한쪽이라고 들고 나간다는 것이다. 가져가도 쓸데없는 것이지만 그래야 행복해 한다는 것이다. 김경재가 그 어디에도 쓸데가 없는 1학년 3학년에 대한 거짓말을 하는 것은 결국 전라도 근성과 생리 때문일 것이다. 비유하자면 결국 김경재는 나에게 달려들어 젓가락 한 개를 훔쳐간 것이다.
김경재가 전광훈을 파괴하고 있는 증거
파괴 행위1: 나는 6월 27일, 전광훈이 갖춘 세 가지 장점을 말해주면서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비전 제시를 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내가 느끼기에도 전목사를 위하는 대부분의 교인들이 고마워했다. 그런데 김경재는 내 발언을 “용비어천가” “매우 듣기 거북한 아첨”이라고 비난했다. 전광훈을 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이다.
파괴 행위2: 김경재는 전광훈이 나를 끌어들인 이유를 6.28. 그에게 전화를 걸어 알려주었는데 전광훈이 지만원을 10만 표로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널리 퍼지면 이는 전광훈의 인격에 대한 문제여서 전광훈에게 상당히 불리해질 것이다. 그를 사랑한다면 설사 그가 김경재에게 이런 말을 했다 해도 발설할 수 없는 말이다.
2021.7.11.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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