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정리되는 위안부 문제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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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04-27 16:45 조회3,58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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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리되는 위안부 문제의 진실
니사오카 쓰도무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1956년)는 내가 신뢰하는 일본인 교수이자 언론인이다. 그는 2021년 2월 [한국 정부와 언론이 말하지 않는 위안부 문제의 진실]이라는 368쪽 책을 엮어냈다. 일본판으로 엮어진 이 책을 번역한 이는 이우연 교수, 출판사는 미디어워치다. 그의 책은 제1~3부로 구성돼 있다, 제1부는 “위안부 문제란 무엇인가?”, 제2부는 “누가 위안부 문제를 만들어 냈는가?” 제3부는 “한국에서 다시 타오른 위안부 반일의 진상”이다. 이 책의 대강을 보면 내가 2019에 발행한 [조선과 일본]과 그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매우 소상하고 구체적인 증거들로 뒷받침돼 있다
당시는 조선 처녀들을 일본 경찰과 헌병이 잡아갈 수 있는 시스템과 문화가 아니었다
나는 이 책의 맥락과 내용을 적극 공유하고자 한다. 조선 처녀를 일본 경찰이나 헌병이 강제로 연행하여 일본군의 성노예로 사용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 여성은 일본 경찰이나 헌병이 잡아간 것이 아니라 조선인 포주업자들이 모집해 간 것이라는 이론이 당시의 일제 문화에 어울린다.
조선인을 노예화한 것은 이씨 성을 가진 27명의 왕들이었다
조선인들이 착취당하고 억압당하고 가난하고 병든 것은 왕들과 양반들 때문이었지, 일본 때문이 아니었다. 27명의 이씨 성을 가진 조선의 왕들이 518년 동안 가꾼 서울은 겨우 전염병이 창궐하고, 똥오줌이 거리를 가득 메운 야만의 동네였다. 학교는 기껏해야 서당, 그런데 일본이 한국을 통치하고부터 지역마다 유치원이 생기고 소-중-고등학고와 대학교가 생겼다. 1910년대에 일본의 후쿠자와 유키치는 한자로 표시된 영어 사전을 만들어 조선에 주어, 그것으로 서양문물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당시 일본 총독은 1920년대에 조선어를 장려하여 조선어에 합격한 공무원에 장려금까지 지급했다. 총독은 또 1928년 10월 9일에 한글날을 제정 공표했다.
당시 일본 사회는 공자의 도덕률 숭배
1840년생인 시부사와 에이치는 일본 기업에 도덕적 경영을 심어주었다. 주판은 공자의 도덕률 범위 내에서 놓으라는 가르침이었다. 그로부터 일본 기업은 도덕을 숭상했다. 세계의 상식인이라면 누구나 다 존경하는 마쓰시타 고노스케(1894)는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수제자다. 그는 그가 설립한 송하전기(파나소닉)을 이렇게 정의했다. “송하전기는 사람을 제조하는 회사다. 아울러 상품도 생산한다.”
일본 기업은 조선 청년의 로망, 일본은 조선인의 로망
당시 일본은 남녀 청춘의 로망이었다. 1937년부터 조선 청년 72만4천명이 일본 기업들에 갑자기 취직했다. 엄청난 골드러시였다. 태평양전쟁 준비로 일본의 젊은이들이 대거 군으로 동원됨에 따라 조선 청년들의 일자리가 대박으로 굴러온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 조선 청년들을 일본 청년과 동등하게 대접했다. 이런 것을 놓고 빨갱이들이 사실을 날조하여 모략하는 것이다.
일본인 스승: 청결하고 거짓말 하지 말고 이웃에 폐 끼치지 말라
일본 교사들은 조선 어린이에게 청결을 학습시켰다. 속이지 말고 이웃에 폐를 끼치지 말라 반복적으로 학습시켰다. 지금 위안부를 내세워 일본을 모략하는 조선의 후예들은 모두 그런 조선인들이다. 지금 위안부 팔이로 먹고사는 이들은 1900년대의 일본인들이 가장 징그러워했던 거짓말쟁이의 표상들이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1910년대에 지적했던 바로 그런 [요마악귀]들인 것이다.
결 론
나는 니시오카 쓰도무의 책을 많은 양심가들이 읽기를 바란다. 이 나라에 더럽게 형성된 위안부 문화를 쓰나미 같은 힘으로 쓸어버려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2021.4.27.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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