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진상규명위원회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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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04-11 20:45 조회3,12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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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진상규명위원회의 정체성
주요인물 구성상의 문제
5.18진상규명위원회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위원장과 부위원장 그리고 국힘당이 추천한 3명의 위원이다. 이종협은 상임위원 그리고 이동욱과 차기환은 위원이다. 위원장 송선태는 광주일고를 나와 전남대에서 국문학과를 이수한 후 국무총리실 비서관, 대한지적공사 감사,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를 거쳤다. 5.18은 이념 충돌의 사건이고, 그에 대한 역사적 성격을 규정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지만원과 5.18기념재단이 충돌해왔다. 따라서 지만원은 배척하고 5.18기념재단을 대변하는 송선태를 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은 처음부터 진상을 규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이름으로 학문 연구를 봉쇄하고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공작을 하겠다는 것이다.
부위원장 안종철(1955)은 전남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라는 것 말고는 별 이력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2016년 초, [5.18에 북한군이 왔다고?]라는 책을 펴냈는데 이는 순전히 지만원의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북한군이 왔다고 책을 쓴 지만원은 위원회에서 배제하고, 북한군이 오지 않았다는 책을 낸 안종철을 부위원장으로 선임한 것이다. 위원장 송선태는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라는 경력 때문에 배척 사유가 되는 것이고, 부위원장 안종철은 5.18에 북한군이 오지 않았다며 지만원의 책 내용을 반박한 사람이기 때문에 지만원이 제외되면 그 역시 제외돼야 모양새 및 형평성에 맞는 것이다.
국힘당이 추천한 이종협 상임위원은 필자보다 사관학교 20년 후배인데 헌병 출신이다. 이동욱은 중사로 제대하여 '김영사'에서 편집요원으로 취직해 있다가 조갑제 시절에 월간조선에 갔다가 2007년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 진영에 몸 담았던 사람이며, 그는 자기가 지만원보다 더 오랜동안 5.18을 연구했다고 말하고 다닌다한다. 차기환 변호사는 박주신의 병역 비리 사건에 양승오 박사 변호를 맡았지만 중간에 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장진성과 어울려 ‘광수는 허구’라는 요지의 말을 퍼트리고 다녔던 인물이다.
북한에서는 매년 5.18기념행사를 하고 있다는 뉴스가 최근까지도 보도된 바 있고, 통일부의 주간북한정세 보고서에는 2005년까지도 25년 동안 북한이 북한 전지역에서 5.18행사를 여러 날에 걸쳐 거행하고 있다고 되어 있는데 상임위원 중 한 사람은 “처음 몇 년만 행사를 하다가 그 후 중단됐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2005년까지의 통일부 자료를 복사하여 보유하고 있다. 그러면 25년 동안은 기념행사를 했다는 것이 아닌가. 이는 아래 뉴스에도 나타나 있다.
2020.05.18.자 LIVERTY KOREA POST에는 “북한의 대외 선전매체, 광주인민봉기에 대해 언급”이라는 제하의 이래 기사가 있다.
https://www.lkp.news/news/articleView.html?idxno=9221
- 남한은 5.18민주화운동, 북한은 광주인민봉기라고 불러
- 해마다 5월 18일 기념행사가 평양에 이어 전국의 도, 시들에서 대규모로 열려
광주인민봉기는 북한에서 불리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표현이다. 해마다 5월 18일 기념행사가 평양에 이어 전국의 도, 시들에서 대규모로 열린다. 북한 당국은 행사에 참가한 북한 주민들에게 ‘광주민중항쟁의 염원을 기어이 달성하자’, ‘전 국민적 봉기를 일으켜 미군을 몰아내자’, ‘국가 보안법을 철폐하라’, ‘친미 정권을 타도하고 조국 통일을 이룩하자’는 구호를 외치도록 강요한다. 그리고 노동신문 사설, 조선중앙텔레비죤, 3방송 등 언론 매체들을 통해 5.18광주인민봉기의 정신을 강조하면서 미군 철수, 친미 정권 타도, 자주적인 조국 통일을 위해 남조선 인민들이 들고 일어나 싸우라고 선동한다.
중앙보고대회 보고에서 북한 당국은 ‘5.18광주인민봉기는 자주적이고 민주화된 새 세상에서 살려는 남조선 인민들의 강력한 지향과 염원을 반영한 정의의 반미-반파쇼 항쟁이었으며, 파쇼적인 정규 무력에 맞서 결사 항전을 벌인 대중적 무장봉기’였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노동신문 사설에서는 ‘최후 승리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조선에서 미제의 식민지 통치를 끝장내기 위한 전 인민적인 반미 자주화투쟁을 과감히 벌여야 하며 광범한 각계각층 인민들이 단합하여 전 남조선적인 공동 투쟁을 힘있게 벌여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5월 18일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 을 통해서도 북한 당국은 5.18을 거론했다. ‘5. 18광주인민봉기’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에서 북한 당국은 ‘광주인민봉기는 전두환군사파쑈도당이 《유신》파쑈 독재를 지탱하기 위하여 1980년 5월 17일 남조선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것을 계기로 하여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간에 걸쳐 광주에서 진행된 반《정부》적인 대중적 무장봉기’라고 설명했다. 또한 ‘인민봉기는 5월 18일 전남대학교 학생들의 시위 투쟁으로부터 시작되어 삽시에 온 광주 시내를 휩쓸었고 여기에 시내의 모든 인민들과 시 주변의 노동자, 농민들까지 합세하여 그 수는 5월 21일에 무려 30여 만명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봉기 군중들은 도청, 시청을 비롯한 통치 기관들을 들이쳐 그를 장악하였고 무기고를 습격하여 수천 정의 무기를 탈취했으며 《계엄군》의 많은 탱크와 차량들까지 빼앗아 타고 용감히 싸워 5월 21일에는 《계엄군》을 몰아내고 광주시를 완전히 자기들의 통제 밑에 넣었다는 것이 기사의 설명이다.
또한 기사에서는 ‘항쟁의 불길은 도내 대부분의 지역과 전라북도에까지 파급되었으며 목포, 라주, 화순, 령광, 담양을 비롯한 17개 시, 군이 봉기 군중의 수중에 장악되었다’면서 ‘이에 당황한 전두환 군사파쑈도당은 《계엄군》을 더욱 증강하여 2중3중으로 광주시를 완전히 포위하고 군사적 위협과 경제적 봉쇄책동을 감행하였으며 봉기자들을 회유해보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봉기군이 완강히 항거해 나서자 전두환군사파쑈도당은 5월 27일 새벽 수많은 탱크와 장갑차, 헬기를 비롯한 방대한 병력을 투입하여 봉기군을 야수적으로 탄압하였다. 봉기 군중은 자기들의 투지를 굽히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굴함없이 싸웠다’고 언급했다.
이상에서 우리는 북한이 지금까지도 5.18을 북한 주요 도시 단위에서 성대히 거행되어 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상임위원이라는 사람들이 허위 보고를 받고 있는 것이다. 위원회는 또 상임위원에게 2020.5.11.자에 미국이 한국 정부에 이관한 43건 140쪽의 보고서가 미국이 한국 외교부에 건네준 문서의 전부라고 속였다 한다. 필자가 확인하여 최근글에 올린 것은 122건 520쪽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조사관은 상임위원에게 나머지 것들은 이전에 다 이관되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다. 그러면 상임위원은 월급을 받으면서 허위 보고만 받고 들러리를 서고 있다는 것인가?
시스템클럽 최근글
5.18관련 미국무부 자료 중 불리한 것 모두 숨겼다-널리 전파바랍니다-
5.18이 발생했던 현장에 관한 기록은 모두 배제하고 5.18기념재단이 주장하는 자료만 수용한다는 위원회 방침에 대하여
전두환 전대통령에 대한 형사재판을 광주법원이 형사소송법 제4조가 규정하는 토지관할 규정을 위반하고 재판권을 행사했다. 그리고 전일빌딩 10층에 나 있는 180여 발의 여러 가지 종류의 탄환이 헬기에서 발사한 탄흔이라는 해괴망칙한 판결을 내렸다. 계엄사 상황일지를 보면 전일빌딩 10층에 나 있는 탄흔은 1980년 5월 27일 새벽, 전일빌딩이라는 점표적을 향해 진입하는 공수 부대 특공조 35명을 향해 폭도 45명이 기관총 등으로 저항했고, 건물 내부에서의 전투가 이뤄지면서 폭도가 10층까지 쫓기다가 더 이상 쫓길 데가 없어 10층에서 최후 발악을 하다가 진압당했다. 이 과정에서 폭도 3명이 사살됐고, 공수 대원 2명이 부상을 입었다. 전두환 측이 이 상황일지를 제출하자 광주법원은 상황일지는 군이 작성한 것이기 때문에 증명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수용하지 않았다.
이런 해괴망칙한 기준이 이번 국방부에 설치된 5.18진상규명위원회에서 다시 한 번 채택되고 있다 한다. 군이 작성한 상황일지 일체가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다면 5월 21일에 발생한 모든 상황들이 배제된다. 기동하는 20사단 지휘부 습격, 아시아 자동차 공장을 점령한 600명의 존재, 전 44개 무기고 탈취 등 중요한 사실들이 배제된다. 이는 인민재판이지 진상 규명이 아니다. 이는 공작이지 과학이 아니다. 예를 들어 총상 사망자에 관한 통계가 1980년 당시의 통계가 1995년에 어떻게 둔갑했는가를 살펴보자. 5.18광주단체들은 카빈총 사망자가 총기 사망자 116명의 75%인 85명이라는 지만원의 게시 내용을 허위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만원의 이 통계는 당시 육군본부(계엄사령부)가 발표한 통계다. 이 통계는 또 1985. 5. 국가안전기획부가 작성한 보고서의 자료를 정리하면 도출된다.
그런데 1995년 검찰이 발표한 통계는 이와는 정반대다. 카빈 총상이 26명, M16 총상이 96명, 계 132명이 총상 사망자라는 것이다. 이 자료는 조갑제가 주도했던 월간조선 2005년 1월호 별책부록에 기록돼 있다. 총상 사망자가 16명이나 늘어났고, 카빈 총상 사망자가 85명에서 26명으로 줄어든 반면, M16 총상 사망자가 31명에서 96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1995년 당시 사망자들의 뼈는 15년 동안이나 땅속에 묻혀있었다. 설사 땅을 파서 뼈를 꺼낸다고 해도 뼈를 가지고는 사망 원인을 밝힐 수 없다. 1995. 검찰이 통계를 광주에 유리하도록 함부로 조작한 것이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5.18기념재단 홈페이지의 기록들이 몰래 조작되고 있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카빈 총상’을 그냥 ‘총상’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조작 케이스로는 5.18 선전로고로 등장해온 조사천의 경우다. 이런 조작 사례들은 시스템클럽과 뉴스타운에 자세히 증거로 보관돼 있다.
결 론
1. 국민은 때가 무르익기 전에 저항해야 한다. 이 음흉한 시발을 국민에 널리 알려야 한다.
2. 우리는 문재인이 주도하는 이 게임은 과학적 연구가 아니라 정치적 인민재판이다. 정권이 주는 돈을 받고 진상 규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장난질을 막기 위해 우리 국민은 국민의 이름으로 [5.18국민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어 국민 앞에 연구 결과를 먼저 만들어 내놓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2021.4.11.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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