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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아무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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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1-04-11 23:08 조회3,1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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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 아무나 하나?

 

그 오랜동안 그 많은 박사들이 연구했는데 왜 1982년이 돼서야 국방연구원에 배치된 처녀박사가 연구의 홈런을 쳤는가?

 

군인이었다 해도 군 모두를 아는 것이 아니다. 군 전체가 하얀 백지라면 4성장군이 걷는 길은 그 위에 그려진 가는 선에 불과하다. 그 선 말고는 아는 게 없는 것이다. 나는 연구소에 오자 군 현실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많았다. 1년간 연구한 결과를 말해주었더니 장군들은 그조차 알지 못했다. 그만큼 장군들은 군 현실에 어두운 것이다. 가장 먼저 손을 댄 부분이 국방비의 72%를 차지하고 있던 운영 유지비 관리 실태였다. 각 부대별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각부대별 자원 배분은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배분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연구 결과는 곧바로 국방부 과장급 이상 군 수뇌부 모두가 모여 있는 국방부 전체회의에서 40분간 발표됐다. 연구원들은 슬라이드를 넘기고, 나는 작성해간 시나리오를 읽었다. 내가 쓴 시나리오라 해도 여러 번 읽어 발음을 숙달하지 않으면 소리에 윤기가 없기 때문에 연습을 많이 했다. 일생 처음으로 해 보는 처녀발표였다.

 

이 자리에 계신 장관님, 각군 총장님, 그리고 참모님들 여러분, 여러분 중에서 혹시 전방의 사단이나 비행단이 각기 1년에 얼마의 국방비를 소비하고 있는지 아시는 분, 계십니까? 아마 없으실 겁니다. 각 부대에는 얼마의 물자를 사용했는지, 어디에 무슨 목적으로 사용했는지를 기록하는 가계부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몇 개 부대에 나가서 흩어진 자료를 대략 쓸어 모아 보았습니다. 전방 1개 사단은 대략 연간 300억 원의 돈과 물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삼성이나 대우의 연간 운영 예산과 맞먹는 규모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관리 책임자가 없습니다. 사단장에 물어봐도 자기는 이 300억 원에 대한 관리 책임이 없다고 말합니다. 물자가 부족하면 청구한다. 주면 쓰고 안 주면 그럭저럭 보낸다. 이런 판에 내가 무슨 책임을 지느냐, 이렇게 말합니다."

 

"1사단이 사용하는 비용에 대해서 제1사단장이 책임 없다 하면, 누구에게 책임이 있습니까? 장관님이 책임을 지십니까, 아니면 총장님이 책임을 지십니까? 아니면 모두에게 공동 책임이 있는 것입니까? 두 사람 이상에게 공동으로 책임이 있다는 말은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다는 말이 됩니다. 국방비의 72%인 운영 유지비가 바로 이렇게 무책임 하게 쓰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책임은 한 사람에게만 부과돼야 합니다. 공동의 책임이란 없습니다. 사단의 예산은 사단장이 단일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사단장이 책임 관리를 하기 위해서는 사단별 관리 제도를 가져야 합니다. 사단별로 관리 참모를 가져야 하며, 관리 회계 시스템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부대는 경제 주체입니다. 부대와 부대간에는 거래 관계가 형성돼야 합니다. 군수 부대는 물자를 퍼주는 부자의 부대, 전투 부대는 아쉬운 소리 해가며 받아쓰는 동냥하는 부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까지 군수 부대는 물자를 사서 산타클로스 입장에서 미운 자 고운 자를 가리고, 힘 있는 자와 힘 없는 자를 가려가며 물자를 배급해 왔습니다. 군수 물자는 먼저 가져가는 사람이 임자였습니다."

 

"경제 기획원은 돈에다 색깔을 칠해서 나누어 줍니다. 국방 예산 담당관도 이런 식으로 경제 기획원에 예산을 신청합니다. 이는 마치 100만원 봉급자에게 한 가지 돈으로 100만원을 주지 않고 노랑색 3만원, 파랑색 5만원, 빨간색 12만원 식으로 색을 칠해서 100만원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색깔이 없는 100만원의 돈을 주면 가정주부는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현실에 맞게 창의적으로 예산을 사용합니다. 만일 100만원 중에서 3만원은 노랑색을 칠해서 쌀 사는 데만 쓰게 하고, 4만원은 파란색을 칠해서 문화비로만 쓰라고 해 보십시오. 이렇게 100만원을 30여 가지의 칼라로 나누어주고 각 칼라별로 목적을 지정해주면 얼마나 불편하고 비경제적이겠습니까? 쓰다보니 파란 돈은 남고 노란 돈이 모자랍니다. 바꾸어 달라고 하면 행정이 매우 불편하고 불이익을 받습니다. 그래서 가라 정리가 유행합니다. 저는 이를 Colored Money System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이제 군수 사령부는 물자를 임의대로 사서 하급 부대에 일방적으로 배급해주는 산타클로스가 아니라 사단으로 하여금 돈을 가지고 와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게 하는 백화점이 돼야 합니다. 지금은 군수 예산을 군수 부대에 주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사단에 주어야 합니다. 가정주부에게 돈을 주는 것입니다. 군수 물자 창고에는 많이 팔려서 모자라는 물자, 적게 팔려서 남아도는 물자가 생기게 됩니다. 남은 물자는 그만큼 다음 해에 적게 구입하고 모자라는 물자는 즉시 더 사다가 놓아야 합니다. 이제 소비자인 사단은 가정주부처럼 쿠폰을 가지고 백화점에 가서 물자를 구매해야 합니다. 사단은 소비자, 군수 부대는 백화점, 경리는 은행이 되어야 합니다. 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느냐는 소비 부대의 창의력과 능동적인 자원 관리 노력에 의해 좌우돼야 합니다. 군수 사령부는 물자를 사서 배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창고에 정돈해놓고 사단에서 구매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로 인해 당시 윤성민 국방장관은 예산 개혁이라는 프로그램을 추진하기 위해 지휘 서신 1호를 하달했고, 그 지휘 서신은 내가 작성한 후 글자 하나 고치지 않고 그대로 전파됐다. 당시까지 국방 물자는 공기나 물처럼 반자유재로 취급됐다. 주면 쓰고, 남으면 내다 팔거나 폐기 처분해 버렸다. 정교한 광학 장비도 함부로 던지는 식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고장이 잦았다. “고장 나면 수리 보내면 되지이게 정서였다.

 

       군 자원관리에 대한 정신혁명, 나와 윤성민 장관이 사상 처음으로 주도했다

 

그러나 예산 개혁이 시작되면서부터 모든 장비에는 관리 책임자가 지정됐다. 장비에 비용이 발생하면 관리 책임자의 비용 카드에 비용이 기록되어 상도 받고 벌도 받게 했다. 모든 장병에게 비용 의식이 강요된 것이다. 이는 그야말로 엄청난 의식 혁명이었다. 모든 사단에 처음으로 컴퓨터가 들어갔고, 자원관리 참모가 신설됐으며, 부대마다 비용 절약 운동이 확산됐다.

 

그러나, 일을 벌이면 중간에 한건 잡아 출세하려는 사람들이 늘 있게 마련이다. 사단 단위 자원관리 시스템 역시 내가 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들이 출세를 위해 빼앗아 갔다. 시스템 설계는 전문가의 영역이다. 그런데 실무 대령과 장군들이 나서서 내가 거져 해주겠다는데도 불구하고 구태여 업체에게 개발비를 주었다. 그 이후의 시스템은 그야말로 엉터리였다. 수많은 자료를 생산해 냄에도 불구하고 막상 경영 개선에 필요한 자료는 생산하지 못했다. 업체와 어울려 돈잔치만 한 것이다.

 

1982년부터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국방비는 물론 정부 전체의 예산을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 개혁에 엄청난 열정을 보였다. 전 정부 부서에 영기점 예산 제도(Zero Based Management System)를 강요했다. 그의 지시에 따라 당시 윤성민 국방 장관은 5년에 걸쳐 예산 개혁을 주도했다. 예산 개혁이 그를 장수하게 했다. 이는 예산 관리 근대사에 가장 칭찬받아야 할 의식 혁명이었다.

 

지금 추진되고 있는 국방 획득청역시 내가 연구하여 윤성민 장관의 호응을 얻었지만, 중간에 차관 이하 수많은 국방부 국장들과 군수 장군들의 반대로 변질됐다.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처럼 전차 사업단” “155미리포 사업단하는 식으로 한 단계만 발전하는 선에서 마무리 돼 버렸다. 육사 지역에 시스템 대학원을 만드는 방안을 만들어 국방 장관에게 보고했다. 장관은 너무 좋아했지만 이 역시 당시 김복동 육사 교장과 알력 관계를 가지고 있던 기획관리실장의 비토로 국방 대학원에 체계분석대학원을 세우는 것으로 변질됐다. 이 대학원은 지금까지도 운영돼 오고 있다. 육사에 있는 교수들은 대부분 미국에 가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기 때문에 육사 생도만을 위해 존재하기에는 매우 아까운 존재들이었다. 당시 60명 정도의 박사들을 대학원 교육에 활용하기 위해 나는 육사 지역을 선택했지만, 이 역시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린 것으로 종결됐다. 지금도 육사 교수부에 있는 이 아까운 존재들은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1914,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원수 슐리펜이 전선의 우측을 강화하여 해머(망치)로 사용해야 한다는 소위 슐리펜 계획을 만들었지만, 그 뒤를 이은 몰트케 장군이 그 작전 계획을 변경해가지고 작전을 했다가 실패했다. 여기에서 전쟁사 연구자들은 슐리펜 계획은 슐리펜이 수행해야 성공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마찬가지로 나는 군에서 많은 개혁적 대안을 내놓았지만 기성 수구 세력에 밀려 헛수고만 했다. 보좌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었다. 지휘관 자신이 유능해야 하는 것이다.

 

      머리는 빌리는 것이 아니라 토의에 의해 지혜 창출 수단으로 활용할 대상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머리는 남으로부터 빌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고 싶다. "머리가 비어있으면 그 머리는 먼저 점령한 사람이 임자가 됩니다. 머리가 나쁘면 선동적인 말은 잘 들어도, 과학적인 내용은 골치 아프다며 멀리합니다. 그래서 당신의 머리는 좌익이 먼저 점령해 버렸고, 당신 시대로부터 대한민국이 좌익화의 길과 쇠퇴의 길을 달려왔습니다".

 

조달관리 제도도 연구했다. 계약 제도에는 크게 2가지가 있다. 하나는 "확정가 계약"(FFP; Firm Fixed Price Contract)이고, 다른 하나는 "원가정산제 계약"(Cost Reimbursement Contract)이다. 전자는 마치 남대문 시장에서 기성품을 사는 것처럼, 계약 시에 한번 정한 가격을 끝까지 바꾸지 않고 구매하는 계약 제도이고, 후자는 계약 시에는 가격을 정하지 않고 있다가 업체가 제조 과정에서 합법적으로만 지출한 비용이면 모두를 사후에 정산해주는 계약 제도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이익도 업체 몫이요 손해도 업체의 몫이다. 일단 가격이 확정되면 그 가격에서 얼마를 남기든 그것은 업체의 것이 되기 때문에 업체는 경영 개혁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러나 군은 정산을 통해 업체가 남긴 것을 도로 빼앗아 갔다. 이러다 보니 업체는 구태여 경영 개선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는 장기적으로 군과 업체 모두에게 엄청난 손해를 끼쳤다. 결국 업체의 방만한 경영이 유발시킨 낭비는 결국 군이 떠맡아야 했고, 업체는 국제 경쟁력을 잃게 됐다.

 

             내가 연구한 국산 장비 원가 계산 방법

 

사후 정산제는 매우 비효율적인 제도이다. 업체가 우발시킨 방만한 경영 결과를 모두 정부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후 원가정산제는 연구 개발 사업과 같이 기술적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고, 사전에 원가를 확정할 수 없을 경우에만 어쩔 수 없이 적용하는 제도이다. 그런데 한국군은 사실상 100% 모두를 후정산제로 하고 있으니 그 낭비가 얼마이겠는가? 선진국에서라면 지금 한국군이 추진하고 있는 거의 모든 방위 산업 물자는 확정가 계약의 대상이다. 형식적으로 보면 조달본부의 계약 건수 중의 85%정도는 확정가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사후 관리라는 단서 조항이 붙어 있어, 사실상 모두가 원가 정산제로 계약되고 있었다.

 

"확정가 계약"을 체결하면 단 한명의 구매관이 수백개의 계약을 처리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구태여 "원가정산 제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200여 명의 원가요원들이 윤곽이 뻔한 내용을 가지고 1년 내내 원가 정산을 하고 있다. 원가 정산 노력에는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지만 원가 내용은 오직 업체가 발생시킨 "직접비"로 제한돼 있다. 직접비만 계산하면 간접비와 이윤은 이미 국방부 원가과 요원들이 원시적으로 만들어낸 "제비율"이라는 율을 곱해 산출한다. 통상 200% 내외로 책정돼 있다. 직접 원가만 나오면 거기에 2배를 곱해 얹어주는 것이다.

 

따라서 업체는 조달 본부에 가서는 직접비를 높이려 온갖 노력을 경주하고, 국방부 원가과 요원에 접근해서는 비율을 가급적 높게 받으려고 노력한다. 시스템이 이렇듯 원시적이기 때문에 조립 업체 입장에서 보면 같은 부품이라도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이 국산 부품을 구입하는 것보다 엄청난 이익이다. 같은 제품을 외국으로부터 1억원에 구매하면 2억원의 간접비와 이윤을 할당받고, 2억원에 구매하면 4억원을 할당받는다. 비용을 부풀릴수록 이익인 것이다.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렇듯 공무원들의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웃지 못할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고 낭비는 장부 기록에도 나타나 있지 않고, 감사원 감사에서도 드러나지 않았다. 감사관들의 눈도 공무원의 눈만큼 깜깜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고급 시스템 분석가들이 필요한 것이었다. 한명의 유능한 시스템 분석가는 수십 조의 낭비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공무원이 다 분석 능력을 가질 수는 없다. 능력이 없는 공무원들은 간단한 일만 처리하게하고, 시스템 자체가 국고를 절약하게 만들어야 한다.

 

모든 예산 집행은 구매 행위를 통해 이뤄진다. 그런데 그 모든 구매 행위가 이렇듯 무모한 행정에 의해 집행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실체를 장관에게 보고했고, 장관은 이를 실천하려 했지만 역시 중간 간부들의 억척스런 저항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계약 제도가 맑아지면 뒷거래가 없기 때문에 방해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최근에 조달본부 구매관들이 항공기 부품, 잠수함 부품, 전차 부품, 특수 문자 등 광범위한 품목에 걸쳐 500-600배의 가격으로 구매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당시에 나는 1,500배로 구매한 사례도 발견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구매하기 위해 FMS차관을 사용했다. 연간 2-3억 달러의 차관을 얻어 그 돈을 가져오지 않고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 있는 연방 은행(Federal reserve Bank)에 자동으로 예치해놓고, 한국군이 구매한 액수만큼 정산을 하는 제도였다. 그런데 결산은 순전히 미국 정부에 의존했고, 한국 조달본부는 관심조차 없었다. 관심을 갖으면 국고는 감시하겠지만, 뒤로 생기는 게 없었다. 미국이 1달러짜리 부품을 1,500달러로 계산하여 정산을 해도 시정해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 품목도 정비비도 이렇게 바가지를 썼다.

 

                    나는 중령-대령 달고 전군을 누볐다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레이더 기지 방공포 기지를 돌아다니면서 전력의 공백 상태도 파악했다. 묻혀있는 지뢰의 성능도 평가했고, DMZ의 취약성도 평가했고, 문산 통로를 지키는 부대들의 작전 계획과 군수 계획이 일치하지 않는 점도 폭로했다. 특검단장 정호근 중장은 나를 한동안 방위 산업 업체 감사를 위한 자문관으로 활용했다. 특검단 감사관들에게 전문 지식이 없기 때문에 때로는 잘 한 일을 잘못한 일로 오해하여 억울하게 처벌을 주거나, 개악을 하는 경유가 허다했다. 그래서 정호근 특검단장은 자기와 함께 동행하면서 감사관들이 관찰한 내용들과 그에 대한 감사관들의 판단이 적절한 것인지를 판단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진해 해군 장교 클럽에서 파티를 했을 때였다. 해군 1성 장군이 지박사는 너무 예리하기만 하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게 없어라는 말을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정호근 특검단장이 그 해군 장군을 불렀다. “자네 지금 무슨 말 했어. 어느 놈이든 지박사를 험담하면 내가 가만 두지 않는다. 지박사는 국보다. 그리고 내 동생이다. 자네 벌주로 이 소주 한병 다 마시게그 장군은 글라스로 소주 한 병을 즉석에서 마시는 벌을 받았다.

 

        25천만 달러(당시 국빙비의 8%) 도둑맞고도 쉬쉬- 지만원 추방하라

 

율곡 사업은 1974년부터 태동됐다. 1985년과 1986년에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율곡 사업의 문제점들에 대해 신경질적일 만큼 관심을 보였다.1986,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1974년부터 1986년까지 13년간의 모든 율곡 사업 성과를 낱낱이 재평가하라는 명령을 이기백 장관에게 내렸고, 결국 그 어마어마한 과제는 모두가 피했다. 그러한 명령은 지금까지 오직 전두환 대통령만이 내렸고, 율곡 사업을 총체적으로 평가해 본 사람은 아직까지 나와 나의 연구원들밖에 없다.

 

전두환이 초미의 관심을 가졌던 사업은 공군의 방공 자동화 사업이었다. 1979년부터 198571일까지 공군은 그 당시 가장 큰 규모의 방공 자동화 사업을 추진했다. 그 사업만 완료되면 대한민국 상공을 나는 새 한 마리 놓치지 않고 모두 다 잡을 수 있다고 호언했다.

 

방공 자동화 장비는 198571일부터 가동됐다. 가동되자마자 중국으로부터 항공기가 세 번씩이나 날아왔다. 민항기가 춘천에 불시착했고, IL-28기가 이리 지역 상공을 40분이나 헤매다가 연료 부족으로 추락했다. MIG-21기도 날아왔다. 참새까지도 잡겠다던 방공 자동화 시스템은 어찌된 일인지 이 세 대의 항공기 중에서 단 한 대도 잡지 못했다. 그러자 전두환대통령은 매우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그 사업은 당시 국방비의 8퍼센트에 해당하는 최대 규모의 사업이었다.

 

나는 8개월간의 연구를 통해 그 장비의 소프트웨어 로직을 분석했다. 그 컴퓨터 로직을 가지고 공중 표적을 포착한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25백억 원짜리 사업이 불과 25원짜리도 될 수 없었다. 그 자동화 장비는 없는 편이 백번 낫기 때문이다. 유지비와 정비비가 엄청나고 인력은 이중으로 늘어났지만 그것을 믿다간 공중전은 백발백중 실패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동화 장비를 믿다가는 서쪽으로 발진돼야 할 전투기가 동쪽으로 발진하게 되고, 공중에 떠 있는 전투기는 눈 먼 참새가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전쟁이 나면 수동 장비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또한 전쟁이 나면 미군 시스템이 가동되기 때문에 미군의 신세를 질 수 있었다. 그러나 25천만 달러는 공중으로 분해 된 돈이었다. 이러한 나의 보고서는 기무사를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 됐다. 이기백 장관과 김인기 공군 총장이 전두환 대통령에 불려가 혼쭐이 났다. 군에도 일대 난리가 났다. 합동 참모 본부에 20명 정도의 진상 조사단이 구성됐다.

 

나는 본 자동화 사업을 담당했던 오파상을 접촉하여 휴즈사 책임자 3명을 연구원으로 불렀다. 책임자는 대머리가 벗어지고 뚱뚱했다. 그는 내 연구실에 들어서자 마자 위엄부터 잡았다. 나는 그에게 "당신이 제공한 시스템에 하자가 있으며, 이는 대통령에까지 보고가 돼서 대책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말을 꺼냈다. 이에 대해 그는 거만한 자세로 이렇게 말했다. "휴즈사는 세계 최고의 회사입니다. 휴즈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휴즈사가 할 수 없는 일은 어느 회사도 할 수 없습니다". 이는 공군으로부터 수없이 듣던 말이었다. 결국 공군은 책임을 면하기 위해 휴즈사에 코치를 한 것으로 보였다.

 

나는 이렇게 기 싸움을 했다. "당신은 통계학에서 Type-I 에러와 Type-II 에러를 아느냐? 에러를 걸러내는 Threshhold(문지방:기준)를 몇 %롷 잡았는지 알려달라". 통계학에서는 잡상(Noise)을 실체로, 실체를 잡상으로 오인하는 에러가 있다. 기준(문지방)을 높이면 실상을 잡상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문지방을 낮추면 잡상을 실상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전자를 Type-I 에러라 부르고, 후자를 Type-II 에러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친구는 이런 기본도 모르고 얼굴이 빨개졌다.

 

이에 약점을 잡은 나는 이렇게 말했다.

 

"휴즈사는 세계 최고의 회사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은 세계 최고가 아니다. 방공 자동화는 휴즈사가 설치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한 게 아니냐. "

 

책임자는 이렇게 응수했다.

 

"A/S 의무기간 1년이 이미 지났다."

 

이에 대해 나는 이렇게 응수했다.

 

"나는 미 해군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를 했다. 나의 동창생들이 매우 많다. 그들은 아시아 각국에서 정책을 결정하고 있다. 나는 지금 즉시 그들에게 편지를 써서 당신이 Type-I 에러와 Type-II 에러도 모르면서 엉터리 시스템을 한국에 설치했다는 사실을 알리겠다."

 

그제서야 휴즈사 일행이 확실하게 무릎을 꿇었다.

 

"다시 시정하겠습니다! 시정할 때 당신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나는 '물론이다. 기꺼이 동참하겠다"라고 답했다. 이렇게 굳게 약속한 후 그들과 헤어졌다.

 

그런데! 며칠 후 그들은 미국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편지 한 장이 날아왔다. "우리는 당신을 만난 후 곧바로 공군을 만났다. 그런데 당신의 말과는 달리 공군은 방공 자동화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공군은 시스템의 주인이고,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당사자다. 앞으로 혼돈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문의와 요구는 공군을 통해 해주기 바란다".

 

나는 이 편지를 받고 공군을 극도로 멸시했다. 장비는 분명히 잘못돼 있고, 휴즈사는 이를 고쳐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공군은 그들의 체면 하나를 위해 애국을 던지고 해국을 선택한 것이다.

 

연구소 건물의 내 방은 일요일도 없이 밤 1시가 되도록 불이 켜져 있었다. 경비원들은 내가 가족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한다. 내가 맡은 과제만을 수행했다면 나도 얼마든지 여유있게 생활을 즐겼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문제들을 찾아 정리하고 이를 장군들에게 알려주는 일에 몰두했다. 수구 저항 세력에 대해서는 의례 그러려니 했지만, 공군의 이런 자세는 나에게 엄청난 '문화적 충격'(cultural shock)이었다.

 

                  돈과 출세 앞에서는 육사인이 더 저질

 

대통령의 엄명이 떨어졌을 때, 하나회 국방 차관과 하나회 합참 작전 차장이 바로잡겠다고 호언하며 나섰다. 호언을 할 때는 그들의 온 몸이 사명감이라는 금물로 화려하게 도금돼 있었다. 합참 작전본부에 설치된 조사팀은 이틀 간의 토의를 주재했다. 우측에는 나 혼자 앉았고, 좌측에는 공군 대령들과 장군들이 여러 명 앉아서 그야말로 불꽃이 튀는 공방을 벌였다. 토의가 진전될수록 공군은 눈에 뜨이게 내 이론에 밀렸다. 그러자 갑자기 그 금물이 먹물로 변하기 시작했다. 공군 참모총장을 선두로 수많은 공군 장교들이 로비와 압력 행사에 나섰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사팀에 있던 장군들이 갑자기 눈초리가 달라지면서 공군 편을 들기 시작했다. 토의는 그만하고 현장으로 나가자며 서둘렀다. 처음엔 그렇게 사명감을 내세우더니! 첫날은 오산 공군작전 사령부로 갔고, 다음 날에는 대구 팔공산 레이더 기지로 갔다. 공군은 한반도의 하늘을 남부와 북부로 나누었다. 남부는 팔공산이 통제하고, 북부는 태안반도에 있는 망일산이 통제했다.

 

합참 작전처장은 나만 쏙 빼놓고 조사팀을 현장으로 인솔했다. 내가 오산으로 달려갔지만 공군 헌병 중령이 정문을 통과시키지 말라는 지시를 내려 발길을 돌렸다. 그야말로 막가는 세상이었다. 그 장군은 노태우 시절에 수도경비사령관까지 했지만 그는 육사 출신이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람 중의 하나였다. 나는 욱사 16기와 20기인 이 두 사람의 이름을 사석에서만 말해왔다.

 

후에 연구소 동료의 말을 들었더니 결과는 이러했다. 4대의 헬리콥터를 서쪽으로 띄워 놓고 자동화 장비가 이것을 어떻게 잡아내는지를 관찰했다 한다. 자동화 장비의 화면에 무엇이 나타났을까. 실제로 서쪽에 떠 있는 4대의 헬리콥터는 잡히지 않고, 떠 있지도 않은 비행체 84대가 동쪽에 나타난 것으로 보여 주었다. 4대의 진짜 비행기는 발견하지 못하고, 있지도 않은 84대의 허상만 보여주는 기막힌 장비였다. 그러나 공군은 이 사실을 철저히 숨겼다. 주한 미군이 있는 한 전쟁은 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전투력 약화보다는 책임 추궁과 체면을 더 무서워 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불필요한 사업비들이 많이 지출됐다. 예를 들면 호크라는 방공포는 이동 장비다. 전쟁이 나면 진지를 이동할 수 있도록 작전 개념이 정립돼 있고, 모든 장비가 이동 체제로 갖추어져 있다. 그런데 300억원에 해당하는 마이크로웨이브 통신 장비가 붙박이식으로 설치됐다. 이동식 유도탄에 붙박이식 통신 장비를 건설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우스운 것이었다.

 

미국의 4C라는 회사가 50억원에 해당하는 장비를 납품했지만 이는 모두가 겉만 흉내 낸 불량품이었다. 공군은 이 회사를 국제 사법 재판소에 제소해야 했다. 그러나 공군은 이를 숨기는 데 급급했다.

 

방공자동화 사업을 분석해달라는 부탁을 한 사람은 보안사 처장이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부탁햇다. "방공자동화 장비가 가동됐지만 중국과 북한으로부터 날아온 여객기와 전투기를 세 차례나 잡지 못했다. 특검단이 네 차례, 보안사가 세 차례에 걸쳐 조사했지만 컴퓨터 속을 누가 알겠느냐, 당신의 예리한 눈이 필요한다. 신변은 우리가 책임지고 보호하겠다." 그런데! 나의 신변을 보호하겠다던 기무사 간부들이 갑자기 나를 보안 위규자라고 위협하며 시말서까지 쓰게 했다. 우군의 약점을 공개했다는 것이다.

 

이기백 장관과 황인수 차관 그리고 황관영 기획관리실장 등은 나를 트러블 메이커라고 불렀다. 그들은 나를 국방대학원 교수로 발령내려 했다. 나는 중령 때부터 하루라도 빨리 군을 떠나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일이 재미있었다. 일을 열심히 할수록 욕도 많이 먹고 싸움도 많이 했다. 그러나 현실 분석을 통해 배우는 게 많았다.

 

                         지쳐서 대령 계급 떼었다

 

나는 국가가 내게 베풀어 준 것만큼 보상을 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예편 원서를 냈다. 장관, 차관, 기획관리실장이 그렇게 좋아했다고 한다. 내가 미국으로 떠나자 공군과 합동 참모 본부는 대통령에게 방공 자동화사업 이상 없음이라는 결론으로 허위 사실을 보고했다.

 

1987년 2.28자로 나는 예편을 했다. 미 국방성에서 그동안 사귀었던 장군급 민간 간부를 만났다. 그는 당신 같은 사람, 한국이 안 쓰면 미국이 쓴다며 곧바로 20만 달러의 과제비를 만들어 내가 다니던 모교인 미 해군대학원으로 내려 보냈고, 해군대학원은 내게 교수직을 부여했다. 과제는 한국과 미국의 방위 산업을 어떻게 연계시킬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과제 수행 과정 중 나는 펜타곤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펜타곤에 있는 동안, 미국 고위 관리들의 사고 방식에 접할 수 있었고, 수많은 자료를 접할 수 있게 됐다. 미국 행정부 관리들의 사고 방식에 익숙해진 것이다. 전화위복! 나는 연구소와 미국 펜타곤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2021.4.11.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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