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살리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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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08-23 00:51 조회3,42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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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살리라 [시]
관상이 얼굴이고
관상이 운명이다
얼굴만 보면 안다
곱게 사는 사람인지
험하게 사는 사람인지
초년 얼굴은 부모가 준 것이고
말년의 얼굴은 자기가 가꾼 것이다
가꿈의 결과는 노력의 산물
나는 통상인에 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먹고 살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아름답게 남자답게 살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 남자의 상징은
황야의 무법자 주인공이었다
최고의 총잡이는
남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다
인생에는 나태해지려는 속성이 있다
나태는 하늘이 준 재능을 녹슬게 한다
나태는 개인과 조직을 파괴하는 암이다
나태를 몰아내려면
늘 자기 자극을 생산해야 한다
나의 자극제는 늘 독서였다
젊음의 꽃은 각고의 노력과 극기다
그 꽃이 내 얼굴을 만들어 왔다
얼굴을 조각하는 끌은
재물이 아니라
꿈이다
나르시시즘이라는 신화가 있다
나는 건강한 의미의 나르시스트다
나는 내 얼굴을 기록해 놓고
그 얼굴에 취한다
더 아름다운 얼굴을 만들어야지
얼굴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나는 내 얼굴을 가꾸어왔다
화장품이나 수술로 가꾸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힘으로 가꾼다
그리고 그 가꾼 얼굴에 충실한다
나쁜 마음 가지면
얼굴부터 상한다
욕심을 가지면
우툴두툴 혹 생기고
개기름 흐르고
볼이 늘어지고
눈동자엔 투박한 안개 서린다
특별히 먹고 싶은 것 없고
갖고 싶은 것 없고
더 이루고 싶은 것 없다
그냥 내 얼굴을
아름답게 가꾸고만 싶다
주삿바늘도
칼도 대지 않고
근사한 화장품 바르지 않는다
그저 얼굴에 욕심이 배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늘 내 얼굴을 관찰한다
사슴처럼 맑은 눈
개기름 없는 마른 얼굴
선해 보이는 인상
그런 얼굴 조각하다가
옹달샘에 마련해둔 그림 가지고
결산하러 가련다
남에게 샅바 잡힐 일 저지르지 않고
더 이상 가지려 하지도 않고
먹는 거 밝히지도 않고
아름다운 음악 듣고
주위와 사랑 나누며
오손도손 살다가
수평선에 배 사라지듯
조용히 눈 감고 싶다
1995
2020.8.23.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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