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특별법] 제정과 [전두환의 집권시나리오] 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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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05-09 11:03 조회3,91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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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특별법] 제정과 [전두환의 집권시나리오] 공작
1990년 1월 3당 합당 당시 김영삼은 [5공 청산]이라는 말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995년 7월 김영삼은 5공은 성공한 쿠데타였고,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사실 5.18 사태는 13대 국회에서 1년 6개월 여에 걸친 청문회를 통해 그 진상이 규명되었고, 김영삼도 참여한 당시의 4당 영수들이 정치적 종결을 선언한 바 있다. 검찰 역시 1년 2개월이라는 장기간의 수사 끝에 1995년 7월,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5공 청산]은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 것이 대세가 돼 있었던 것이다. 일단락됐던 이 사안이 왜 다시 도마 위에 올랐는가? 1995년 10월 19일, 박계동 의원이 노태우 비자금 4,000억 원을 폭로했다. 국민 대부분이 격앙했다. 불똥은 노태우에만 그치지 않고, 전두환에게도 도매금으로 튀었다. 그러나 김대중의 적은 이미 끝난 정권이 아니라 현 정권인 김영삼이었다. 10월 28일, 머리 회전이 빠른 김대중이 중국에서 “나 같은 정적도 노태우로부터 20억 원을 받았다. 노태우 밥상머리에서 대통령이 된 김영삼은 수천억 원을 받았을 텐데 밝혀라”는 말로 김영삼을 압박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김영삼은 종전의 약속을 깨고, 자기에게 집중되는 화살을 전두환과 노태우 등 군사정권으로 돌렸다. 당시 국민들은 군사정권에 너무 식상한 나머지 김영삼을 단죄하는 것보다 군사정권을 단죄하는 데 관심이 더 쏠렸다. ‘감’의 천재라는 김영삼은 전두환과 노태우를 조폭에나 어울릴 마구잡이 명령으로 감옥에 가뒀다. 노태우는 1995년 11월 1일 서울구치소로, 전두환은 12월 3일, 안양교도소로 구속 수감됐다. 혐의는 [군형법상반란수괴 등]이었다. [쿠데타 혐의]였던 것이다. [5.18특별법]이 제정된 날은 그해 12월 21일이었다. 법도 없이 두 전직 대통령을 먼저 구속 수감시킨 것은 조폭 두목이나 할 짓이었다.[선 구속- 후 법제정], 세기의 코미디 현상이 한국에서 대통령이라는 자에 의해 버젓이 저질러진 것이다.
일단 구속 수감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문제는 무슨 방법으로 전두환 등에게 죄를 만들어 씌우느냐가 관건이었다. 감옥에 넣어둔 전두환 등에게 죄를 씌우지 못하면 역으로 김영삼이 법의 심판을 받을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법의 프레임 상 두 개의 공작이 필요했다. 하나는 1981년 1월 23일 당시의 대법원이 판결한 5.18사건을 어떻게 하면 다시 재판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대법원이 판결한 사건에 대해 다시 재판하려면 [재심] 절차를 밟아야 하고, [재심]을 하려면 새로운 증거가 나와야 했지만, 새로운 증거는 나올 수 없었다. 그래서 [재심]은 대안이 아니었다. 5.18사건을 [재심] 절차 없이 다시 재판하는 방법은 법을 가지고 장난질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5.18특별법]이었다. 그런데 과연 김영삼 주변에 있는 인물들 중에 그 누가 이런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창조해낼 수 있었겠는가? 논리상 당시 김영삼을 위해 공작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안기부장 권영해 밖에 없었다. 권영해는 공작을 지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일 뿐, 공작 도구는 다른 사람이 돼 주어야했다. 당시 권영해 옆에는 모래시계 검사라는 유명세를 탄 모사꾼 홍준표가 있었고, 만만하고 매수 가능한 육사 동기생 권정달이 있었다. 이들이 권영해의 공작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첫째로는 전두환을 법정에 세우는 법적 수단을 고안해야 했다. 그것이 [5.18특별법] 제정이었다. 그런데 전두환을 재판에 세운다고 전두환에게 죄가 씌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둘째로는 누군가가 법의 요술을 부려 법원에 판단의 잣대를 마련해 주어야 했다. 이른바 [전두환의 집권 시나리오]였다. 전두환이 전국의 두뇌들을 동원하여 최규하 대통령을 도와 시국을 슬기롭게 수습했고, 그 대가로 얻은 신망에 의해 대통령이 된 것은 전두환이 애국자여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대통령이 되기 위한 수작이었다는 점을 판결의 잣대로 삼으라고 지어낸 모략 물이었다. 이 모략 물은 김영삼도 검찰도 법원도 다 반기는 상품이었다. 그러려면 [집권 시나리오]를 증언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 증언자가 바로 전두환 밑에서 온갖 단물을 마셔댔던 권정달이었다.
권정달은 그 인성이 쉽게 매수될 수 있었던 손쉬운 상대였다. 동기생인 권영해가 그의 성품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권영해의 인성도 권정달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는 국방장관 직에 있을 때 여러 가지 비리의혹에 휩싸여 10개월 만에 목이 잘려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되었다. 국방장관 전직자에게는 어울릴 수 없는 생소한 직책이었다. 뛰어난 아부와 재주 탓인지 그는 다시 안기부장이라는 권력 서열 제3위의 자리로 벼락출세했다. 당시 권영해는 김영삼의 개, 김현철의 꼬붕 정도로 회자돼 있었다. 그런 그가 ‘전두환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절체절명의 막다른 골목에 갇혀 있는 김영삼을 멀리에서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런 김영삼을 구해내야 할 존재는 오로지 권영해 뿐이었다. 권영해에게 김영삼을 구할 수 있는 법률적 묘책을 귀띔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모사꾼 홍준표 밖에 달리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전두환을 죽이는 데 성공한 김영삼은 홍준표에게 극진한 대접을 해주었다. 일반 국민들은 잘 모른다. 전두환이 내란죄를 뒤집어 쓴 것은 [집권 시나리오] 때문이었고, 이를 위해 김영삼에 매수된 존재가 권정달이었다는 사실을 새까맣게 모른다. 권정달은 인간 됨됨이가 단물을 빨기 위해 이리저리 영혼을 팔아넘겼던 인물이고, 배신을 때릴 수 있는 인간, 배신을 때린 인간이었다. 그로 인해 5.18역사가 뒤집혔고, 그로 인해 어지러운 세상을 정상 궤도에 올리기 위해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육사 선배인 전두환과 수많은 육사 후배들을 억울하게 감옥에 넣었다. 그 대가로 그와 그 부인 도영심은 각기 국가적 사회적 요직을 옮겨 다니면서 최근까지 빨갱이들과 공생해 오고 있다.
2020. 5. 9.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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