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보고서 들먹이며 세작 역할 한 김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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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05-10 11:07 조회4,11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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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보고서 들먹이며 세작 역할 한 김관진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12.12, 5.17, 5.18.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노무현 시대인 2005.5.27.에 형성되어 2007.7.24에 “조사결과보고서”를 내는 순간에 해체됐다. 조사위원은 모두 12명, 법조, 언론, 학계 등 외부위원이 7명, 국방부 내부위원이 5명, 그리고 조사관으로는 이중 4명이 지명됐다. 위원장은 이해동 목사, 전남 목포 출신이며, 이른바 ‘재야민주화세력’의 원로로 2회에 걸쳐 감옥에 간 좌익이다. 한 번은 박정희 시대인 1976년 이른바 “3.1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투옥됐고 또 다른 한 번은 3차례에 걸쳐 북악파크 호텔에 모여 김대중 내란음모를 획책한 사건으로 1980년 5월 17일에 투옥됐다. “3.1민주구국선언사건”이란 1976년 3월 1일 명동성당에서의 기념미사를 빌미로 정부전복 선동을 하였다는 반-박정희 음모사건이다. 이해동은 2005년 당시 위원장에 내정되면서 위원회의 주안점이 1) 발포명령을 내린 사람이 누구인가와 2) 행불자의 진상을 밝히는 것이 조사활동의 핵심이라고 공언했다, 다시 말해 5.18에 북한 특수군이 왔느냐에 대한 것은 당시 위원회의 조사항목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김대중의 측근 이해동 목사의 지휘로 이루어진 이 진상규명 노력도 [규명 범위]를 위 3대 요소에 국한했기 때문에 조사결과를 담은 570쪽 분량의 보고서를 냈지만 그들의 원하는 결과는 도출하지 못했다.
사실이 이와 같음에도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은 거짓을 말했다. 2013년 5월 27일에는 대변인을 통해 그리고 5월 30일에는 강운태 광주시장을 만나 2007년 7월 24에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한 조사결과를 들먹이며 조사결과에는 1)북한특수군이 광주에 개입한 사실이 없고. 2)간첩 이창용도 5.18과 관계없이 별도로 남파된 간첩이었다는 결론이 있는데, 현재의 국방부는 그 2007년의 조사결과 보고서의 결론을 존중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위 보고서에는 북한군 개입 여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규명 범위]에 [북한군 개입 여부]가 들어가 있지 않았는데 그 누가 북한군 개입 여부에 대해 조사를 했다는 말인가. 2019.2.12.자 조선일보를 위시한 수많은 뉴스들에 의하면 국방부는 북한군 개입에 대해 조사한 바가 없고 단지 앞으로 구성될 5.18진상규명위원회가 2년 내지 3년에 걸쳐 조사해야 할 미래의 사안이라고 밝혔다. 김관진이 엄청난 거짓말을 한 것이다.
김관진의 이 엄청난 거짓말에 의해 정홍원 당시 총리는 2013년 6월 10일, 국회 답변에서 “5.18에 북한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의 판단과 다른 표현을 하는 것은 반사회적 범죄로 엄벌할 것이다” 이런 발언을 했고, 이 발언 직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TV조선과 채널A 두 방송국에서 [북한군 개입]에 대한 방송을 기획하고 진행한 간부 4명씩에 대해 감봉이라는 중징계처분을 내렸고 “이제까지 북한군과 관련하여 방송한 내용은 모두 사실과 다른 것들이었다”는 선언과 함께 사과 방송을 하도록 강요했다.
2020. 5. 10.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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