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소설]전두환(9)역사바로세우기 재판(2)(수정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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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2-22 20:56 조회14,64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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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바로세우기 재판
1996년 3월 11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장장 9시간 동안 제 1심 1회 공판이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공개리에 열렸다. 입정한 피고인은 16명 (전두환, 노태우, 유학성, 황영시, 이학봉, 이희성, 주영복, 차규현, 정호용, 허삼수, 허화평, 박준병, 최세창, 장세동, 박종규, 신윤희)이었다. 판사는 김영인, 김용섭, 황상현이었고, 재판장은 김영일이었다. 후에 헌법재판관도 했다. 검사는 채동욱, 김상희, 김진태(강원도지사 김진태가 아님) 등 8명이고, 변호인은 이양우, 전상석, 석진장, 전창열 등 23명이었다.
전상석 변호인이 장문의 변론 요지를 읽어갔다. 유죄의 성격이 이미 굳어져 있는 검사들과 판사들이 너무 지루해했다. 검사들과 재판장이 자꾸만 끼어들어 ‘내용을 축약하여 빨리 끝내라고 독촉을 했지만 그는 끝까지 변론서를 낭독했다.’ 변호인은 역사바로세우기 재판 자체가 법률적으로 부당하다는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했다. 5공화국이 내란정권이면 그 뒤를 이은 모든 정권의 정통성이 상실된다. 국가의 정통성은 연속성에 있다. 6공화국이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켰듯이 5공화국을 멸망시키고 새로운 국가를 열었는가? 공소시효를 연장한 5.18 특별법은 위헌법이다. 특별법은 특정인을 겨냥한 불법적인 위인설법이다. 5.17 전국비상계엄 확대 조치는 고도의 정치적 군사적 성격을 지닌 정치 행위다. 검찰이나 법관들이 나서서 판단할 영역이 아니다. 5.17 이후에 전개된 행정조치들은 국가통치권 차원의 절차이기 때문에 검찰이 용훼할 일이 아니다. 신군부와 5.18은 아무런 관계가 없는 독립적인 존재다. 검찰은 국가경영이라는 막중한 대사를 한낱 정권장악 수단으로 해석한다. 계엄 자체를 내란이고 폭동으로 여기는 것은 비약을 넘어 비의(非義)다. 전두환에 적용된 법조에는 내란목적 살인죄라는 형법 제 88조가 적시돼있다. 누구에 대한 살인이 내란 목적 살인이라는 것인가? 어떤 행위가 살인 행위라는 것인가?
검찰은 1980년 5월 21일 밤에 계엄사에서 내려진 ‘자위권 발동지시’를 사실상의 발포 명령이라 하고, 계엄사령관 배후에 전두환이 있었기 때문에 전두환을 ‘명목상의 발포 명령 책임자’ 라고 주장한다. 명목상 또는 사실상이라고 한다면 고의도 없고, 범죄구성요건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대통령의 통수 행위까지 내란으로 모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공소장 기재와 같이 제5공화국 헌법은 1980년 9월 29일 개정안으로 공고되고, 그해 12월 22일에 국민투표롤 확정돼서 10월 27일 공표되었다. 그런데 검찰은 헌법개정 자체를 내란의 일환으로 몰고 있다. 헌법개정 자체를 정권찬탈(국헌문란)목적의 폭동이라고 몰고 있다. 주권자인 국민이 투표로 결정한 헌법개정이 내란이라면, 국민 전체가 내란행위자라는 뜻인가? 검찰이 헌법개정 권력인 국민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다는 것인가? 검찰은 1979년 10월 27일 비상계엄 선포행위, 1980년 5월 17일에 비상계엄 선포지역을 변경하는 안건을 의결한 국무회의, 국무회의장을 경비한 행위, 학생 및 노동자 폭동 진압 행위, 국보위를 통한 비리 공직자 숙청, 불량한 언론인 해직, 교육 정상화 조치 등 모든 개선 조치들을 다 내란이고 폭동이라 몰고 있다. 검찰은 통치행위까지 처벌하는 초법적 집단인가? 정승화는 이미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검찰은 그 판결이 무효라고 주장한다. 기판력(일사부재리)까지 뒤엎는 권능을 가진 존재가 검찰인가! 검찰은 무법적 존재란 말인가? 대통령 명에 따라 노재현 국방장관을 수색하여 그를 대통령에 데리고 간 행위가 어째서 반란행위란 말인가? 12․12 당시 누가 반란군이고 누가 진압군이었는지, 검찰이 재단할 사항인가? 이 전상석 변호인의 변론이 검찰의 급소를 찔렀지만 김영일 재판부의 귀에는 마이동풍이었다. 1996년 7월 8일 제 20차 공판에서 피고인 측 변호인단이 변호인 사임계를 재판부에 제출하고 1심 변론은 포기할 것을 선언했다. 증인으로 출석한 윤성민 때문이었다. 변호인들을 12․12사태에 대해 윤성민 참모차장의 지휘가 과연 적법했었는가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추궁에 몰린 윤성민이 논리에 어긋나는 대답만 반복하면서 궁지에 몰렸다. 이때 공정해야 할 김영일 재판장이 코너에 몰린 윤성민을 편들면서 피고인들에 불리한 대답을 하도록 노골적으로 유도했다. 이에 이양우, 전상석, 석진장 등 전두환 측 변호인들과 한영석 등 노태우 측 변호인단이 사임계를 제출했다. 이 사건의 지상 가치는 실체적 진실규명에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유죄를 단정한 상태에서 형식적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어서 충분한 변론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 만큼 더 이상 들러리식 변론을 할 수 없다“
제17차 공판에서 변호인은 증인 윤성민에게 물었다.
변호인 : 증인은 12.12 밤, 9시 30분경 전두환 피고인으로부터 정승화 당시 총장이 연행된 것은 정승화의 내란방조 혐의에 따른 것이라는 사정을 전화로 통보받은 적이 있지요?
윤성민: 그런 통보 받은 적 없습니다.
이에 변호인단이 그때 통화된 녹음내용을 틀어주자 비로소 윤성민은 얼굴을 붉히며 통보받은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이 부분이 판사들의 예단에 방해가 되자 김영일 재판장이 끼어들어 변호인들을 제지시킨 것이다. 이때부터 사건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하는 국선 변호인들이 참여하여 형식적인 질문만 조금씩 하고 말았다. 판사들은 예단돼 있는 판결에 딴지를 거는 변호사들을 따돌려서 매우 편했다. 그야말로 재판의 형식만 갖추기로 한 것이다. 변호인들은 검찰에게 내란목적 살인죄의 피해자들이 누구냐 구체적으로 밝혀달라 했다. 이때 김영일 재판장이 매우 부적절한 감정적인 말을 해서 문제가 되자, 재판장이 이 말을 속기록에서 삭제했다. 김영일 재판장의 적절치 못한 표현들 중에는 총질한 사람들이나 알지 피고인들이 어떻게 아느냐?자위권이 곧 총질하는 것이 아니냐? 재판장의 언사가 거칠고 저질이었다. 이 내용은 속기록(공판조서)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당시 조선일보 기사에는 지적이 돼 있다. 그리고 재판부는 공판을 주 2회씩 강행했다. 변호인들은 주 1회로 열자고, 변론 준비가 어렵다고 연속 요청했지만 재판장은 주 2회로 강행했다. 당시 변호인단이 왜 법관 기피 신청을 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변호사 없는 일방적인 1심 재판, 1996년 8월 26일의 선고로 마감했다. 전두환에게는 사형을, 노태우에는 징역 22년 6개월, 다른 피고인들과 재벌 총수들에게는 몇 년씩의 징역형을 무더기 선고했다.
판결내용, ”12.12는 군사 반란이다.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권력을 잡기 위해, 무력 시위로 대통령을 협박하여 대통령의 기능을 불가능하게 하면서 30경비단에 반란군 지휘부를 설치해놓고, 윤성민, 장태완이 이끄는 정식 지휘계통을 와해시키고, 병력을 선제 동원하여 군사 반란(쿠데타)을 일으켰다.
재판부는 5.18에 대한 죄보다는 12.12에 대한 죄를 더 무겁게 물었다. 12.12는 역사를 바꾼 사건이기 때문이다. 광주진압은 내란목적 살인행위다. 자위권 지시는 발포 명령이다. 국회 봉쇄, 정치인 구속, 언론인 강제 해직, 국보위 설치 등 전두환 등이 취한 일련의 행위들은 힘없는 대통령의 이름을 합법적으로 이용한 국헌 문란(내란)행위다.
서울고등법원 재판장 권성 부장판사는 1996년 12월 16일, 전두환에게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하고, 노태우에는 징역 17년에 추징금 2,628억 9,600만원을 선고했다.
판결문, “이 판결은 헌법도 아니고, 법률도 아닌 자연법을 잣대로 하였다. 자연법이라 함은 ‘사회인식법(여론법)'을 뜻한다. 여느 재판과는 개념을 달리한다. 피고인 전두환은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하여 군의 기강을 파괴했다. 광주시위대는 피고인의 헌법파괴 행위를 저지하기 위해 결집된 준헌법기관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전국적으로 속히 확산됐었어야 했는데 이를 무력으로 제압한 행위는 내란이다. 불법 자금을 만들어 돈으로 사람을 움직여 정치를 타락시켰다. 반면 6․29 선언을 수용하여 민주회복과 평화적 정권교체를 실행한 것은 국민의 뜻에 순종한 것이다. 권력의 상실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정치문화에서, 권력을 내놓아도 죽는 일을 없다는 원칙을 확립한 일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일이었다. 피고인 노태우는 피고인 전두환을 추수하여 영화를 누리면서 전두환의 업을 이었다. 여론에 부합하는 인민재판을 한 것이다. 광주시위대를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결집된 '준헌법기관' 이라는 사회적 합의도 없는 잣대, 증명되지 않은 잣대를 가지고 전두환 등을 내란자로 몰은 것이다. 무기고를 털어 정부군에 총을 쏘고 교도소를 공격한 집단이 헌법기관이다? 전두환이 내란을 해서 정권을 잡았다면 대한민국은 다른 국가로 바뀌어 있어야 한다. 마치 이성계가 쿠데타로 고려를 조선으로 바꾸듯이! 그런데 전두환은 만 7년동안 헌법을 그대로 유지시켰고 헌법에 따라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그가 7년 동안 쌓은 경제적 업적과 국위선양 업적은 지금까지 이어온 대통령들 중에서 가장 으뜸이며 지금의 먹거리 대부분이 그의 노력과 발상으로 창조됐다. 전두환이 없었으면 경제대국도 없었다. 이렇게만 해준다면 백 번이고 만 번이고 쿠데타를 하고 내란을 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의 여론법, 국민 인식법에 의하면 쿠데타는 엄청 유익한 것이고, 내란은 엄청 아름다운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도 아름다웠고, 전두환도 그랬다. 이렇게만 봉사해 준다면 쿠데타도 내란도 자주 나는 것이 복 받은 나라가 되는 것이다.
도대체! 전두환은 어떤 인물이고 권성이나 김영일 같은 사람은 어떤 인물인가? 권성이나 김영일은 박정희와 전두환의 업적으로 국민 위에 갑질하며 호강을 하면서도 그 은혜를 알지 못하고 주인을 잡아먹는 맹견 같은 인생들이 아니겠는가? 누가 우리 국민에게 필요한 존재였는가? 전두환인가, 권성인가, 김영일인가?
1997.4.17. 대법원 판결은 코미디 백화점
대법원장: 윤관, 주심: 정귀호, 대법관:박만호, 최종병, 천경송, 박준석, 이돈희, 김형선, 지창권, 신성택, 이용훈, 이임수, 송진훈
국민들은 대법관들을 굉장한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정의를 수호하고 가장 높은 두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아래 대표적인 판결들을 보면 잠재했던 온갖 모멸적인 욕들이 대법관들을 향해 분출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은 이런 저질들에게 높은 봉급을 주면서,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다는 점을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이다.
광주시위대는 전두환의 헌법파괴행위를 저지함으로써 대한민국 헌법을 보호하기 위해 결집한 애국적준헌법기관이다. 헌법기관과 준헌법기관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내란이다. 광주 민주화운동은 빠른 속도로 전국에 확산됐어야만 했는데 전두환 등 신군부가 준헌법기관을 무력으로 진압한 것은 내란이다. 광주 재진입 작전은 내란이고, 진입 과정에서 시민을 살해한 것은 내란목적 살인죄에 해당한다.
2. 최규하 대통령은 전두환의 바지였다. 대통령이 서명한 것은 모두 전두환의 책임이다. 계엄령 선포도, 정승화 체포도 대통령이 재가했고, 광주시 재진입 작전인 '상무충정작전'도 대통령이 재가했지만, 1979년 12월 12일의 재가 시점에서부터 1980년 8월 16일, 최규하가 대통령을 사임할 때까지의 9개월 동안에 최규하 대통령이 재가한 모든 사항은 다 전두환이 책임이다. 전두환이 무소불위의 절대권자였다는 것이다. 미치광이 네로 황제도 당시의 대한민국 판사들만큼은 미치지 않았을 것이다.
3. 전두환은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시키는 일만 해야 했는데 전국의 두뇌들을 동원하여 시국수습 방안을 추진한 것은 국민적 여망을 얻어 대통령을 하려는 음모였다. 전두환에게 집권할 목적과 시나리오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4. 계엄을 선포하느냐 마느냐는 고도의 군사 정치적 판단을 요하는 것이기에 사법부의 판단 대상이 될 수 없지만 전두환의 마음에는 집권시나리오가 있었기 때문에 전두환이 바지대통령을 이용해 계엄령을 선포한 것은 내란이다.
5. 계엄령 발동 그 자체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해악의 고지 행위로 곧 내란이다. 계엄령 발동으로 인해 대통령, 총리, 장관 등 모든 헌법기관들이 겁을 먹고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계엄선포는 곧 내란인 것이다.
6.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은 법률도 아니고 헌법도 아닌 자연법이다. 자연법은 곧 국민 인식법, 여론법이다. 인민재판이라는 뜻이다.
7. 5월 17일, 비상계엄 확대 조치를 가결하기 위해 중앙청에 모인 총리와 장관들은 집총한 경비병들에게 주눅들고 공포에 떨어 의사와 관계없이 무조건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8. 정호용은 광주 진압작전의 현지 총사령관으로 내란목적살인 행위의 주범이다. 비단 12․12에는 가담하지 않았지만 그후 전두환을 추수하여 출세했기 떄문에 12․12에 부화뇌동한 부화뇌동죄가 인정된다.
9. 2․12에 대해, 최규하 대통령이 재가를 해 준 것은 삼엄한 공관 경비병들로부터 공포감을 느꼈고, 밤 9시 30분경에 무단 침입한 6명의 장군들로부터 공포를 느껴 자유의사를 상실한 채, 꼭두각시가 되어 전두환이 하라는 대로 결재를 했다.
10. 정승화가 10․26 밤 김재규를 안가에 정중히 모시라 한 것은 김재규가 권총을 가지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이었다.
11. 2․12는 하나회의 쿠데타였다.
12. 이학봉과 전두환은 사전에 쿠데타를 모의했다.
13. 정승화가 전두환을 동해안 경비사령관으로 전보 발령하려 하자 전두환이 선수를 치느라고 12․12를 일으켰다.
14. 정승화가 합수부에서 한 진술은 모두 고문의 결과이기 때문에 무효다.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의 의미와 파급효과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의 본질은 궁지에 몰린 ’김영삼 구하기‘ 공작이었다. 이 공작에 양심을 상실한 판검사들, 김일성 장학금으로 고시에 합격한 판검사들이 대거 몰려들어 초법적 난장판을 벌였다.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정은 난장판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국가의 정통성(Legitimacy)은 연속성(Continuity)에 있다. 어제의 역적과 충신이 오늘 뒤바뀌는 것은 연속성의 단절이며 정통성의 상실이다. 국가의 체제가 바뀌거나 외국에 점령됐을 경우에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어제의 충신이 오늘 역적이 되고, 어제 받은 훈장을 오늘 박탈당한다면 국가가 위기를 당할 때 누가 목숨 걸고 나서려 하겠는가? 따라서 역적을 충신으로, 충신을 역적으로 뒤바꾸는 행위는 그 자체가 이적이고 여적 행위가 되는 것이다.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은 역적이었던 김대중을 충신으로 바꾸어 놓고, 누가 역적인가는 행적과 작품이 증명한다. 전두환은 하수구에 불과했던 한강을 세계 최고의 아름다운 강으로 바꾸어 놓고, 일본 돈 40억 달러를 가져다 88올림픽을 치르기 위한 체육시설과 체육의 마을을 만들었고, 오늘날의 반도체, IT, 통신, 원자로 산업을 창출․ 부흥시켜 우리의 먹거리 산업을 마련해주었다. 반면 김대중은 무얼 하였는가? 오로지 북에 충성했고, 전두환이 올려 쌓은 부와 기술을 훔쳐다 북에 주고, 연평해전을 통해 국군의 생명을 김정일에 바치고, 북에 해킹능력을 훈련시켜주고 핵 자금을 대주고, 기아로부터 구출해주기 위해 달러와 쌀과 비료를 주고, 의약품을 싹쓸이해 북에 바쳤다. 이런 김대중을 충신으로 만들어준 재판이 바로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이었고, 대한민국을 경제 10위 권으로 등극시키고, 국가 브랜드 가치를 엘리베이터식으로 수직 상승시킨 전두환을 만고의 역적이라고 판결한 재판이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이었다. 여기에 동원된 판검사 모두가 반국가 역적들인 것이다.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은 ’반국가, 이적, 여적 폭동‘을 ’민주화운동‘으로 바꾸어 놓았다. 1989년 부산 동의대 사건에서 경찰관 7명에 신나를 뿌리고 불을 던져 7명 모두를 불태워 죽인 주범에게 2002년 화폐로 6억원의 보상금을 주고, 경찰은 많이 죽일수록 민주화 공로가 위대해진다는 명 메시지를 역사에 남긴 것과 조금도 다름없다. 5 ․18을 북이 주도했느냐 광주가 주도했느냐를 구태여 따지지 않더라도 5․18은 김일성에 최고의 가치이고, 주사파들에게는 최고의 성역이다. 그렇다면 5 ․18은 주적의 역사가 확실한 것이다. 역사바로세우기 재판 이후 대한민국은 껍데기만 자유민주주의 국가일 뿐, 속은 북조선이 요리하는 북조선 분국이고, 광주의 식민지가 돼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증거는 5 ․18에 대한 다양한 표현이, 공산국가에서와 똑같은 방법으로 철저히 봉쇄돼 있다는 사실이다. 무공훈장은 쓰레기값이고, 간첩급 민주유공자, 살인마급 민주유공자는 금값이 되어버린 그런 공산국가가 돼 버린 것이다. 이것이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이 창조한 국가의 모습인 것이다.
육사가 배출한 사생아 권영해와 권정달, 이 두 인물은 비 하나회다. 이들은 하나회에 대한 열등의식과 시기와 분노를 쌓아 왔던 사람들일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죽기 전에 반드시 국가를 위해 군을 위해 양심고백을 해야 할 사람들이다. 하나회 멤버들은 대체로 이 두 사람처럼 야비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두 사람들하고는 많이 다른 사람들이다. 천하에 야비하고 간교한 이 두 사람으로 인해 대한민국 역사가 뒤집혔고, 군복이 진흙탕에 쳐박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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