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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TV]제233화, 윤석열 Vs. 문재인 전쟁 점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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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04-10 22:02 조회4,5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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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TV]233, 윤석열 Vs. 문재인 전쟁 점화됐다

https://www.youtube.com/watch?v=6zgxPcpkLiE

.

 

  233, 윤석열 Vs. 문재인 전쟁 점화됐다

청와대-이해찬-비례민주당(더불어시민당), 윤석열 자진 사퇴설,

선거공작 언론과 여당 측 무차별 허위사실 인신공격

목적

지지층 결집

코로나, 경제파괴 등 약점을 피하기 위해

검찰개혁 강조- 윤석열 때리기 전쟁모드로 전환 하여 관심 전환

윤석렬의 반격 수단

아이폰 조사내용: 아이폰 잠금 풀었다. 하명수사 의혹’ 3.30.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산하 특별감찰반원으로 일했던 백 수사관은 지난해 12월 검찰 출석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백 수사관은 윤석열 검찰총장님께 죄송하다. 가족들 배려를 부탁한다는 취지의 유서 남겼다.

백 수사관은 당시 백원우 민정비서관 등 청와대 관계자들이 김기현 울산시장 측근 비위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확인하기 위한 주요 참고인

박사방 조사내용 속히 밝혀야 국면전환- 여당 대거 관련 의혹

조주빈 재판 중 가입자 명단 후폭풍 거셀 것

임종석 관련 부분 기소

 

자유당 기호31 비례대표당

 

김대중은 북이 키웠고,

 5,18은 북의 공작이었고,

 김대중과 5.18은 하나였다.

 

 거물간첩 김용규의 폭로(증언)

거물간첩으로 전향한 김용규는 소리 없는 전쟁”(1999.11.1, 원민)에 김대중과 5.18에 대해 이렇게 썼다. 김대중 집권이 만 2년 되는 시기에 그는 매우 용감한 책을 쓴 것이다.

 

* [민주화]1960년대부터 북이 남한의 불만세력을 선동하기 위해 사용한 위장용어였다.

* 남한의 민주화운동은 북의 지령이었다(: 386주사파 거두 강길모 프리존사장의 증언과 일치)

* 남한에의 민주정부 수립은 김일성의 목표였다.

* 4.195.18도 북의 공작에 의해 야기된 필연적 결과였다.

* 김대중은 북이 키웠다.

* 호남은 적화통일의 전략적 거점이었다.

 

수많은 탈북자들이 입을 모은다. “5.18은 북한이 벌인 실패한 작전이다.” 평시에는 하루 종일 방송을 하지 않던 북한이 5.18 때에는 하루 종일 광주사태를 중계방송 했고, 방송 내용 중에는 공수부대원이 칼로 임신한 여인의 배를 찢어 태아를 꺼내내는 잔악한 영상이 들어 있었다고 했다. 이를 본 북한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이 짐승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북한은 5.18 실황을 하루 종일 방송했다

 

사건 당시 광주에서는 KBS, MBC 방송국들이 불에 타서 방송을 하지 못했고, 시민들이나 군은 북한방송을 들었다. 5.18 시위대에는 13명의 방위병이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인 이재춘씨는 북한의 개입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우리는 전반적인 광주의 상황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자주 이북방송을 청취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곳의 방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래서 나는 분명히 광주에 간첩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그곳에서 그렇게 빨리 알 수가 있었겠는가.” 전라도 지역 계엄 분소장 소준열 전교사 사령관 역시 같은 진술을 했다. 1996711, 5.18 재판 제121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소준열 전교사 사령관은 전남 도청 안에 적색분자가 섞여 있다. 그 근거로는 북괴의 개성 통혁당 방송에서 상무관하고 도청 사이에서 시위를 한 사실이 있은 지 불과 몇 시간 후에 위와 같은 사실을 방송한 것을 정보참모로부터 들었다고 진술했다.

 

1967년 대규모 간첩단이 목포에 내려가 목이 터져라 김대중 선거운동했다

 

대남공작 비화 소리 없는 전쟁72쪽에는 간첩들로 이루어진 통혁당이 1967년 목포로 내려가 김대중을 위해 선거운동을 했다는 내용이 있고, 김대중 연설집을 보니 당시 김대중은 목포에서 유세를 했다. 거물간첩 출신 김용규의 글은 이렇다. 싸움에서 통혁당 조직원들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역전, 터미널, 시장터 할 것 없이 찾아다니며이번 국회의원 선거는 목포가 죽느냐 사느냐 사활이 걸려있는 선거다. 목포시를 살리고 내가 살기위해서는 공화당을 낙선시켜야 한다고 목이 터져라고 외쳤다.”

 

반면 196764일 오후 2, 김대중은 44세 되던 해에 목포역전 광장에서 이런 연설을 했다. "여러분 내 눈을 똑바로 보세요. 내 얼굴을 똑똑히 보십시오. 나는 내 장래에 대해서 큰 포부가 있습니다. 나는 돈 몇 푼 받아 가지고 내 장래를 망칠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내 꿈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더러운 돈 같은 것은 아무리 고통스럽고 괴로워도 안중에 없다는 것을 명백히 해둡니다"

 

간첩들이 대거 목포로 내려가 김대중을 당선시키는 선거운동을 요란하게 했는데도 당국이나 국민은 이 사실을 전혀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다가 거물간첩 김용규가 전향하여 폭로해서 겨우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김대중은 북이 키웠고, 김대중을 지지하는 호남은 적화통일의 전략거점이라는 김용규의 말이 설득력을 갖는 것이다.

 

19805월 김대중은 [전민봉기]로 국가를 전복하여 정권을 잡으려 했다

 

김대중은 1980326, YWCA 강연회에 나가 이렇게 강연했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국민의 피를 먹고 자란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말은 결코 슬로건이 아니라 진실이다 민주화를 위해서는 피를 흘려야만 한다는 무서운 선동이었던 것이다.

 

당시의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판결문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1980410일 오후 8시경, 북악파크호텔 501호실에서 문익환, 예춘호 ,이문영, 고은태, 김종환, 한완상, 심재권 등 10여명과 회합하고 국민연합이 계엄령 해제, 정부주도 개헌포기, 유신잔당 퇴진, 정치일정 단축, 구속자 석방 복권, 학원자유, 자유언론 실천 등을 실현시키기 위한 투쟁전열을 정비, 강화하기 위하여 국민연합을 대폭 개편하고 과거 투쟁 경력이 풍부하고 각 학생지도부와 연계하여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복학생 이현배를 총무국장, 장기표를 조직국장, 심재권을 홍보국장에 각 임명하기로 결정하는 동시, 이들 3인에게 학원 선동임무를 각 부여하고, 위 참석자들에게 작금의 국내정치 정세를 분석하여 볼 때 나로서는 신민당내 당권파의 강력한 반발로 지지기반 확장이 어렵고 군부의 지지기반이 없고, 3.11. 신 총리와 3.15. 최 대통령의 발언 등을 종합해 볼 때 선거로서는 차기 대통령에 당선을 기대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되고 이번 기회를 놓치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영원히 바라볼 수 없으므로 정당 활동보다는 국민연합을 위시한 민주헌정동지회, 한국정치문화연구소 등의 조직을 확대 강화하면서 민주화운동을 내세워 학생시위 분위기가 고조되면 교외로 유도하여 시민의 호응을 촉구하고 아울러 우리 조직을 가세시켜 대대적인 본격적 시위를 전개하면 현 정부는 궁지에 몰려 우리의 민주화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으니 우선 조직을 통하여 전국적 여론을 환기시켜야 한다고 하여 반정부 투쟁의식을 고취하였다.”

 

이어서 국민연합은 다음 날인 411일의 서울대학생회 주최의 학생추도식에서, 416일의 한국신학대학 학생회주최의 학술강연회에서, 417일의 서울대학생회 주최의 4.19기념강연회에서, 418일의 동국대학생회 및 인하대학생 주최의 4.19기념강연회에서, 과도정부를 유신체제 옹호세력으로 몰아붙이고, 학생들의 투쟁을 선동하는 연설을 했다. 1980416, 한국신학대학교 학생회 주최 학술강연회에서는 이런 연설을 했다. 특권층은 수십억 원의 호화주택에서 기천만 원의 잉어를 기르고 고래수염으로 이쑤시개를 한다. 독재 하에서 감옥에 가고 공민권을 박탈당하고 학원과 직장에서 추방되었던 사람들이 새로운 정부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1980417, 서울대 학생회 초청 연설에서는 이런 연설을 했다, 김상진, 김주열 못지않게 김재규도 충신이었다.” 1960411, MBC는 마산 앞바다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진 김주열군(마산상고)의 시체가 떠올랐다는 방송을 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4.19가 촉발되면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하게 되었다. 김상진은 서울농대 학생으로 1975년 유신체제와 긴급조치를 반대한다며 분신자살을 했고, 이로 인해 수그러들던 1970년대의 학생 시위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김대중은 바로 이런 희생자들이 또 다시 등장하여 혁명의 불을 지펴야 한다고 선동한 것이다.

 

1980418, 동국대학생회 초청연설에서는 이런 말을 했다. “10.26사태는 독재에 항거한 전 국민의 혁명이다. 탄압을 받더라도 끈질기게 저항하면 10.26과 같은 또 다른 사태가 올 수 있다.한마디로 국가를 무정부 상태로 몰고 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선동의 영향으로 불법학생집회가 급증했고, 그동안 평화적이었던 학생집회들이 갑자기 폭력시위 양상으로 변모해 갔다. 성균관대, 목원대, 세원대, 전남대 등에서는 복학생들이 노선을 달리하는 교수들을 폭행하고, 심지어는 70세 노령의 대학원장을 구타까지 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서울대, 조선대, 전북대, 총신대 등에서는 학교시설을 점거-파괴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19804월 중 학생소요를 통계로 보면, 시위-농성 106개교, 수업거부 25개교, 휴강조치 44개교였으며, 경희대, 세종대, 한양대 등에서는 철야농성이 일주일 이상이나 유지됐다. 학생시위의 확산에 고무된 국민연합429, “민주화촉진국민운동을 선언하면서 반정부 장외투쟁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1980917일의 판결문에는 김대중이 혁명내각을 구성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1980.5.1. 18:00경 문익환, 이문열, 예춘호, 고은해, 한완상, 김종환, 장기표, 심재권, 김승훈, 이우정, 이현배, 김병걸, 박세경 등과 회합하여 학내소요를 계엄령해제, 정부주도 개헌작업 포기, 정치일정 단축, 유신잔당 퇴진 등 정치적 이슈로 전환하게 하고 교내 시위를 교외시위로 유도, 시민이 이에 가세하도록 선동하여 폭력시위를 전국적으로 확산 시키면 현정부는 붕괴될 것이니 학원에 영향력이 있는 조성우, 심재권, 장기표, 이헌배등 청년조직원들이 학생 선동에 더욱 주력할 것과 그 결행 시기를 5월 중순경으로 정하고 집권을 위한 제반 지휘본부이며 정부 전복 후 과도내각 역할을 할 한국민주제도연구소가 빠른 시일내에 활동을 개시할 수 있도록 이사장에 예춘호, 소장에 이문열을 각 선임하고 전문위원으로 민족재생담당에 김관석, 역사문화담당에 백낙천, 종교교육담당에 정을병, 노동담당에 탁희준, 농업담당에 유인호, 경제담당에 임재경, 안보외교담당에 양호민, 통일담당에 문익환, 도의정치담당에 안병무, 행정담당에 이문영을 각 선임하였다.”

 

대규모의 폭력시위가 전국적으로 확대하자 이에 크게 고무된 국민연합은 516, "2차민주화촉진국민선언문"을 발표했다. "57일자 제1차민주화촉진국민선언문에서 요구한 비상계엄의 즉각 해제, 신현확총리의 즉각 퇴진, 정치범의 전원석방 및 복권, 언론의 자유 보장, 유정회, 통일주최국민회의와 정부 개헌심의위원회의 즉각 해체 등에 대하여 51910시까지 정부가 명확한 답변을 할 것을 요구"하고, 이 요구가 관철되지 아니하면 522일 정오를 기해 대정부투쟁에 돌입할 것을 선언했다. 여기에서 김대중은 또 반정부 투쟁 방침을 명확하게 선언했다.

 

"민주 애국시민은 유신체제를 종결 짓는 민주투쟁에 동참하는 의사표시로 검은 리본을 가슴에 단다. 비상계엄은 무효이므로 국군은 비상계엄령에 의거한 일체의 지시에 복종하지 말 것이며, 언론은 검열과 통제를 거부하고, 전 국민은 민주화투쟁을 용감히 전개한다. 정당, 사회단체, 종교단체, 노동자, 농민, 학생, 공무원, 중소상인, 민주애국시민은 522일 정오에, 서울은 장충단 공원, 지방은 시청 앞 광장에서 민주화촉진국민대회를 개최한다."  

 

  5.18은 김일성 지령

 

1983109, 아웅산 만행이 자행되어 대한민국 각료 전체가 버마에서 일거에 희생되었다. 17명의 각료들이 그 자리에서 순직했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미얀마 정부는 주범 2(강민철, 신기철 대위)을 체포하여 사형을 선고하고 북한과 국교를 단절한 후 다음해인 198410월 국제연합에 아웅산 사건은 북한의 소행이라고 보고한 바 있다. 미얀마 정부가 이 2명을 잡지 못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누구로부터 당했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해 경제적 군사적 압박을 가했다.

 

일본 산케이 신문은 [김일성 비밀교시]를 연재했다. 10.26직후부터 김일성이 간첩과 그 관련자들을 3호청사에 모아놓고 거의 연일 지령을 내렸다. 김일성 교시에 의하면 김일성은 앙웅산 테러가 발생하기 1개월 전인 19839월에 아웅산 폭파 지시를 한 것으로 기사화돼 있다. 빈틈없이 감쪽같이 해치워야 한다고 지령한 것이다. 남조선의 대통령이 각료들을 이끌고 동남아를 순방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작전부에서 결사대를 파견해 보겠다고 했다는데 절대로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틀림없이 해야 합니다. -마가 허술한 나라라고 해서 너무 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방문 일정에 따라 사전 답사도 해 보고 빈틈없이 잘 준비를 해서 감쪽같이 해 치워야 합니다. 만약 이번 작전에서 성공하게만 된다면 결정적 시기가 성큼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김일성의 비밀교시를 보면 김일성은 10.26 직후인 197911월에 남조선의 모든 혁명역량을 총동원하여 전국에 걸쳐 이른바 [전민 봉기]를 일으키라고 간첩들에 지시를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791220일에는 12.12신군부가 일으킨 쿠데타라고 정의하면서 신호만 떨어지면 즉각 행동할 수 있도록 24시간 무휴상태로 들어가라고 지시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1980421, 사북사태가 발생했다. 이때 김일성은 사북사태를 전민항쟁으로 확대하라는 비밀교시를 내린 것으로 기록돼 있다. 지금 남조선에서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청년학생, 도시 빈민 할 거 없이 전 민중들이 이글거리고 있습니다. 남조선 혁명가들과 지하혁명 조직들은 이번 사북 사태가 전국으로 확산되도록 적극 불을 붙이고 청년학생들과 도시 빈민 등 각계각층 광범한 민중들의 연대투쟁을 조직 전개하여 더 격렬한 전민 항쟁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김일성은 197911월부터 19804월에 걸쳐 남한에 전민적인 봉기를 일으키라 지시했고, 한 달 후인 53일부터 남한에는 무서운 속도로 폭력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져나가 515일에는 서울역에서 10만 이상의 학생 시위대가 버스로 경찰을 깔아 죽이는 등 폭력시위가 자행됐고, 급기야 내무장관은 치안을 계엄군에 맡아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광주 5.18 폭력 시위에 대해 김대중은 김일성의 지령을 받았을까? 그에 대한 손에 잡히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그랬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혹들은 많이 있다.

 

거물간첩 김용규가 폭로한 그대로 1967년 대규모의 간첩들이 목포로 몰려가 김대중을 당선시키기 위해 열띤 선거전을 치렀는데도 아무도 몰랐듯이 광주에서 간첩이나 점화 기폭조들이 대규모로 내려와 활동을 했다 해도 우리 정부나 국민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김용규의 폭로 그대로 1967목포의 국회의원 선거전에서 대규모 간첩들이 활동을 했다면, 현대사 소요사건 중 가장 큰 광주 사태에는 얼마나 많은 간첩이나 북의 심리전 전문가들이 활동했을까? 이런 의문은 조금도 이상한 의문이 아닐 것이다.

 

  북한특수군이 광주에 파견됐다는 임천용 증언에 5.18단체 측 대응 중단

 

자유북한군인연합 임천용 대표는 20061220일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장 2시간 이상에 걸쳐 수백 단위의 북한 특수군의 남파 배경을 설명했고, 이에 5.18단체측은 이틀 후에 좌시하지 않겠다, 사과하라는 취지의 반박성명을 냈다. 자유북한군인연합은 그 후 1개월 후에 5.18단체 측을 향해 조목조목 공격하는 신랄한 반격을 가하는 성명서를 냈지만 그 후 5.18단체측은 임천용 회장 등을 상대로 고소를 하지 않았다.

 

남한에는 무수한 고첩들이 있다. 1997년에 황장엽씨는 5만 명이라 했다. 이들이 5.18 광주 사태에서 손 놓고 얌전하게 구경만 하고 있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아마 드물 것이다. 이들을 조직화하고 전문적 능력을 점화 기폭 능력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수백 단위의 전문가들이 10.26 이후 김일성 비밀교시에 따라 대거 남파되었을 것이라는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많은 간첩들 중 장님문고리 잡듯이 잡힌 간첩이 하나 있었다, 52306:15, 서울역에서 간첩 이창룡(평양시, 중구역, 계림동 36번지)을 주민의 신고로 남대문 경찰서 경장 한규용이 검거했다. 이창용은 광주에서 서울로 왔다가, 다시 광주로 가는 도중 잡혔다. 현금 1,935,000, 난수표 3, 무전기 1, 독침 1, 위장 주민등록증 2, 환각제 등 22339점을 압수했다.

 

197912개월간 검거된 사건은 불과 5건이었는데 반해 19805월초까지 4개월간 발생한 무장간첩 침투사건은 무려 10건이나 되었다. 10건 중 7건이 1980년의 3월부터 5.18 발생 직전까지 2개월 반 동안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1979-80의 언론보도집에는 아래와 같은 기록들이 있다.

 

1) 1980317,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남쪽에 침투한 무장공비와 미군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2) 1980323, 서부전선 9사단 지역 한강하구로 침투하던 공비가 아군에 발각되어 교전하다가 도주했다. 3명의 무장공비를 사살했고, 소음기가 달린 기관권총, 물갈퀴 등과 암호문을 노획했다, 암호문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혁명 전사답게 돌격대답게 싸워라라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

 

3) 1980325. 무장간첩선 1척이 포항만으로 침투하다가 해군에 의해 침몰하여 무장간첩 8명이 사살됐다.

 

4) 1980327, 강원도 15사단 정면에서 남하하던 공비와 교전상황이 발생했다. 모두가 도주했고, 무장공비 1명만 사살됐다.

 

5) 1980512, DMZ 공동경비구역 남쪽에 침투한 공비와 미군 사이에 또 교전이 발생했다.

 

6) 1980515,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미국초소 전방 20m가지 침투한 무장공비들이 미군과 교전하다가 돌아갔다.

 

7) 1980516, 전남 보성군, 득양면으로 침투한 간첩 이창룡을 523일에 체포했다.

 

 “5.18은 북한의 작전인데 실패한 작전이었다”, 북한에선 상식

 

북한에서 망명한 거물 강명도씨는 평양은 망명을 꿈꾼다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의 240쪽에는광주폭동을 남조선 전역으로 확산시킬 경우 대남사업의 결정적 기회가 마련될 것이라며 기대했다가 북이 예상한 것보다 남한 정부가 소요를 조기에 진압했기 때문에 김일성과 전두환 간의 싸움에서 김일성이 패배했다는 취지의 글이 들어 있다. 구태여 강명도씨의 글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는 당시 대부분의 국민이 능히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이 책 241쪽에는 나의 친구 이화섭은 5.18이 터지자 몇 주간 밤잠도 못 자고 광주민주화운동을 부추기는 대남선전삐라를 만들어 살포했다고 말해주었다는 구절도 있다.

 

이상의 여러 가지 자료들을 보면 남한에서의 거의 모든 소요는 전문적인 공작수법을 훈련받은 고첩들과 전문 폭동기술을 가진 남파 세력들 그리고 자생 불순세력들이 연합하여 불을 지른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악성유언비어 살포-거짓선동-파괴 방화 살인을 내용으로 하는 폭력행위, 뒤집어씌우는 모략행위, 집단적 억지주장. 역사왜곡에 이르는 일연의 과정들에는 반드시 작전 세력이 있다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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