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은 김일성 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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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04-13 08:05 조회3,72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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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은 김일성 지령
1983년 10월 9일, 아웅산 만행이 자행되어 대한민국 각료 전체가 버마에서 일거에 희생되었다. 17명의 각료들이 그 자리에서 순직했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미얀마 정부는 주범 2명(강민철, 신기철 대위)을 체포하여 사형을 선고하고 북한과 국교를 단절한 후 다음해인 1984년 10월 국제연합에 아웅산 사건은 북한의 소행이라고 보고한 바 있다. 미얀마 정부가 이 2명을 잡지 못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도 누구로부터 당했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을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해 경제적 군사적 압박을 가했다.
일본 산케이 신문은 [김일성 비밀교시]를 연재했다. 10.26직후부터 김일성이 간첩과 그 관련자들을 3호청사에 모아놓고 거의 연일 지령을 내렸다. 김일성 교시에 의하면 김일성은 앙웅산 테러가 발생하기 1개월 전인 1983년 9월에 아웅산 폭파 지시를 한 것으로 기사화돼 있다. 빈틈없이 감쪽같이 해치워야 한다고 지령한 것이다.
“남조선의 대통령이 각료들을 이끌고 동남아를 순방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작전부에서 결사대를 파견해 보겠다고 했다는데 절대로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틀림없이 해야 합니다. 버-마가 허술한 나라라고 해서 너무 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방문 일정에 따라 사전 답사도 해 보고 빈틈없이 잘 준비를 해서 감쪽같이 해 치워야 합니다. 만약 이번 작전에서 성공하게만 된다면 결정적 시기가 성큼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김일성은 1979년 11월부터 1980년 4월에 걸쳐 남한에 전민적인 봉기를 일으키라 지시했고, 한 달 후인 5월 3일부터 남한에는 무서운 속도로 폭력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져나가 5월 15일에는 서울역에서 10만 이상의 학생 시위대가 버스로 경찰을 깔아 죽이는 등 폭력시위가 자행됐고, 급기야 내무장관은 치안을 계엄군에 맡아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광주 5.18 폭력 시위에 대해 김대중은 김일성의 지령을 받았을까? 그에 대한 손에 잡히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그랬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혹들은 많이 있다.
거물간첩 김용규가 폭로한 그대로 1967년 대규모의 간첩들이 목포로 몰려가 김대중을 당선시키기 위해 열띤 선거전을 치렀는데도 아무도 몰랐듯이 광주에서 간첩이나 점화 기폭조들이 대규모로 내려와 활동을 했다 해도 우리 정부나 국민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김용규의 폭로 그대로 1967년 폭포의 국회의원 선거전에서 대규모 간첩들이 활동을 했다면, 현대사 소요사건 중 가장 큰 광주사태에는 얼마나 많은 간첩이나 북의 심리전 전문가들이 활동했을까? 이런 의문은 조금도 이상한 의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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