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와 청주유골은 동전의 앞뒤 (두 개가 아니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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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04-02 22:42 조회4,43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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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와 청주유골은 동전의 앞뒤 (두 개가 아니라 하나)
광주교도소도 다섯 차례나 공격했다. 북조선으로터 무전 지령이 하달됐다. 170명의 간첩수가 포함된 2,700여명의 수용자들을 해방시켜 폭도로 사용하라는 명령이었다. 이 무전을 감청한 계엄군 당국은 가장 훈련이 잘된 제3공수여단을 긴급히 교도소로 이동시켜 호를 파고 방어케 했다. 5월 22일 동이트기 전까지 5회의 공격이 있었다. 저자의 연구로는 여기에서 475명의 북조선 특수군이 몰살했다. 하지만 이 중 430구는 광주로부터 200km 떨어진 청주 지역 밀림에 1m 깊이로 가매장됐다. 2014년 5월 13일 불도저 작업을 하던 인부에 의해 발굴되었다. 하지만 이 뉴스는 그보다 1개월 전에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에 들뜬 민심으로 인해 이슈화되지 못했다.
북조선 당국이 학교 등교 시에 틀어주던 노래 “무등산의 진달래” 가사에는 “동강난 조국을 잇기 위해 무리죽음 당한 그대”들의 넋을 영원히 기린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북조선 ‘조선영화사’가 제작한 5.18다큐멘터리에도 475명이 역설돼 있고, 5.18사태가 진압된 지 1주일 만인 1980년 6월 5일, 일본에서 ‘천주교정의평화협의회’가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찢어진 깃폭-어느 한 목격자의 진술”에도 475명이 한 순간에 떼죽음 당했다는 내용이 게재돼 있다.
총상 사망자의 75%를 광주사람이 쏘았다는 사실도 확인됐고, 사망자의 80%가 계엄군이 없는 곳에서 발생한 사실도 확인됐다. 치안본부 상황일지에는 광주폭도들이 저지른 강간-살인-강도 행위들이 기록돼 있다. 북조선에서는 해마다 전역의 시-군-도시 단위에서 여러 날에 걸쳐 대대적인 5.18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반면 남한에서는 5월 18일 광주에서만 한 시간만 기념행사를 한다. 북조선에서 최고인 것에는 5.18을 영예의 상징으로 하사한다. “5.18청년호” “5.18단조공장” “5.18영화연구소” 등 알려진 것만 해도 10여개가 넘는다. 북조선이 발행한 대남공작 역사서들에는 광주시위 현장들이 숨 쉬는 소리까지 자세히 모사돼 있고, 심지어는 시위 중 가로수를 들이박고 멈춰 선 버스 차량번호가 ‘광전교통 전남5아 3704’라는 사실도 기록돼 있다. 이 책은 1982년에 북한이 발행한 것인데, 1985년에 발간된 안기부 보고서 내용과 정확이 일치했다. 남한 자료 그 어디에도 5.18 시위에 대한 전략과 전술 그리고 교훈이 기록돼 있지 않다. 그런데 북한 책에는 이 모두가 정확하게 표현돼 있다.
5.18유공자들의 증언록을 보면 그들은 5월 21일, 북한군이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을 몰아낼 때까지 각자도생하자며 숨어 다녔다. 북한군이 전남도청을 점령하고 있었던 5월 24일 정오까지 도청에 들어간 사람은 광주에 없다. 들어가려 했지만 낯설고 위엄 있는 사람들이 거부해서 들어갈 수 없었다고 증언들 했다. 5.18유공자들은 한결같이 무기고를 누가 털었는지 모른다 했고, 광주교도소를 누가 공격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5.18의 최고 영웅들이라는 사람들 모두가 5월 21일 도피해 있었다.
5.18 시위대를 조직한 사람도, 5.18폭동을 지휘한 사람도 광주에는 없다는 뜻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독자들은 5.18을 광주시민들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북한군이 침투해 일으킨 게릴라전을 놓고 남한의 빨갱이들은 “5.18은 광주시민들이 순수하게 주도한 숭고한 민주화 운동이고 1215년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와 동등한 인류역사의 기념비”라 미화시켰고, 이를 부인하는 국민을 물리적 폭력과 법의 망치로 탄압해 온 것이다.
청주의 무연고 유골 430구는 북한특수군 유골
1980년 5월 21일 현재 광주교도소에는 비전향장기수 문근영의 외조부 류낙진 등 사상범 170명을 포함한 2,700명의 수감자가 수용돼 있었다. 광주에 침투한 북한특수군 600명은 교도소 수감자들을 해방시켜 폭동의 동력을 확보하라는 김일성 지시를 받고 5월 21일 밤 5회에 걸쳐 결사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계엄군은 이런 통신을 감청하여 즉시 공수부대를 투입해 참호를 파고 예사롭지 않은 무장 시민군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문가의 직감으로서는 여기에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겠지만 누구도 그 많은 시체를 확보하지 못했다. 당시 광주시민들은 수천 명의 시체가 집단 매장되었다며 광주의 수많은 곳들을 파헤쳤지만 단 1구의 시체도 찾아내지 못했다. 집단 암매장 여부를 밝혀내자는 것이 이번에 시행되는 5.18진상규명법의 [규명 항목] 중 하나로 지정됐다. 북한이 광주에 파견한 인력은 맥가이버 능력을 갖춘 특수군 600명 말고도 또 다른 600여 명의 정치공작조가 따로 왔었다. 이들은 광주로부터 200km 떨어진 청주의 깊은 야산에 가매장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인다. 광주 지역에 묻으면 금방 발굴될 것이라는 판단에 간첩 요새지로 알려진 문경 부근에 가매장했을 것이다.
2014년 5월 13일, 청주에서 발굴된 430구의 유골
청주시가 확장되면서 인근의 산림지역이 개발되고 있었다. 2014년 흥덕구 휴암동 흥덕지구에서는 축구공원 건설공사가 한창이었다. 5월 13일 오후 3시쯤 현장소장 조 모씨(45) 등이 굴착기로 흙을 파내다가 1m 깊이에 구성된 넓은 공간에 군대식 대오를 갖춘 유골대열을 발견했다. 유골은 칠성판(나무판) 위에 놓여 두꺼운 흰색 비닐로 감겨 있었고, 비닐에는 일련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유골에는 일체의 유품이 없어 증거가 인멸된 상태에서 포장됐음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방법으로 대량의 시체를 포장한 곳은 오직 1980년의 광주뿐이다. 여름 더위에 대량으로 발생한 시체가 부식해 역한 냄새의 액체를 감당할 수 없었기에 고안된 시체포장 방법이었다. 아래 두 개의 사진이 이를 증명한다. 보도들이 이어지자 누군가가 그 유골들을 컨테이너에 적재했고, 컨테이너 사진도 보도되어 있다. 흥덕경찰서와 청주시 체육과에 전화해 보니 “오래 된 것이라 모른다, 화장한 것으로 안다”는 대답만 했다.
호주 교포이신 애국자 한분이 흥덕지구에 내려가 여러 날 수소문했다. 화장터에서 화장하는 시체나 유골들은 반드시 자기를 거쳐야 하는데 자기는 그런 유골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했다. 2015년 9월 9일자 Dailymedi 기사에 의하면 2014년 충북에서 처리한 무연고 유골 화장처리 건수는 불과 18개, 비용은 13,630,000원이다, 1구당 757,000원인 것이다. 그렇다면 430구의 시체는 어디론가 증발된 것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세계적으로 뉴스가 돼야 했을 이 엄청난 사건은 세월호 쓰나미에 묻혀 세인의 관심을 끌지 못한 채 유야무야 되었다. 지금 이 순간도 구글에서 ‘청주유골’을 검색하면 86,300개의 글이 뜬다. 수많은 국민들의 관심이 잉태돼 있는 것이다.
왜 북한이 가져갔다고 생각하는가?
북한은 청주유골 발견되자마자 갑자기 아시안게임 참가한다고 돌변했다. 2014년 9월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아시안 게임이 열렸다. 아시아게임 회원국은 모두 45개국, 다른 나라들은 모두 일찌감치 참가의사를 통보했는데 유독 북한만은 시큰둥했다. 청주유골이 발견되기 하루 전인 5월 12일까지도 그랬다. 그러다가 5월 22일, 갑자기 한국 해군 함정 부근에 포를 사격하는 돌출행동을 보였다. 그리고 5월 24일, 호들갑을 떨면서 아시안게임에 참가하겠다고 적극적인 매너로 대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5월 23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올림픽위원회는 아시아올림픽이사회 성원국으로서 오는 9월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남조선 인천에서 진행되는 제17차 아시아경기대회에 선수단을 보내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2014년 7월 17일, 남북한 실무접촉이 판문점에서 이루어졌고, 남한 대표는 권경상(아시안게임 조직위 사무총장), 정기영(조직위 국제본부장), 김영일(조직위 자문위원)이고, 북측 대표는 손광호, 장수명, 고정철이었다. 미국의 Fox스포츠는 “북한이 갑자기 참가하겠다는데 그 의도를 모르겠다”는 기사를 냈다.
7월 17일, 남북한 실무접촉이 판문점에서 이루어졌고, 남한 대표는 권경상(아시안게임 조직위 사무총장), 정기영(조직위 국제본부장), 김영일(조직위 자문위원)이고, 북측 대표는 손광호, 장수명, 고정철이었다. 2014년 8월 17일, 북한에서 전례 없이 김대중 사망 제5주년을 맞아 조화를 보낸다며 박지원, 임동원, 김홍일이 조화를 가지러 개성으로 가서 북한의 스파이 사령관 김양건을 만나고 왔다. 이들이 청주유골 처리에 대한 모의를 했을 것으로 의심된다. 2014년 8월 19일, 조추첨 북한대표단이 인천에 왔다. 노숙자담요 분석에 의하면 8명 모두가 다 광수(광주에 왔던 북한군)들이었다.
2014년 10월 4일, 북한 초상의 3인방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이 김정은 전용기를 타고 갑자기 인천에 왔다. 국제 스포츠 행사에 참석하는 외국 귀빈들은 개막식에 오지 폐막식에 오지 않는다. 그런데 북한정권 3인방은 폐막식에 와서 시간만 보내다 돌아갔다. 이 때 황병서를 밀착 수행한 남한측 공무원들이 있었다. 그들은 직책상 황병서를 수행할 군번이 아니었다. 김정은 전용기는 남한에서 최상의 치외법권을 누리는 공작 무기였을 것이다. 430구가 적재된 컨테이너 박스는 아시안게임 조직위 청산실을 통해 북으로 갔을 것이다.
문경 지역 간첩단, 청주유골 430구 위험하다 북에 SOS 쳤을 것
청주유골 430구는 세월호 사고발생 27일 만인 5월 13일 발견됐다. 많은 언론들이 보도했지만 요란한 세월호 굿판놀이에 정신 나간 국민들은 나를 포함해 그 누구도 여기에 관심을 갖지 못했다. 저자 역시 2015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가매장 장소는문경 새재를 본거지로 하는 간첩들에 의해 감시되고 있었을 것이다. 옛날에는 청주 시내와는 거리가 먼 밀림지대였지만 5.18이후 34년 동안 청주시가 개발되고 유골이 매장된 흥덕지구가 파 헤쳐질 날이 그리 멀지 않아 보였을 것이다. 청주지역 간첩단은 북한에 SOS를 쳤을 것이다. “5.18공화국영웅들의 유골이 곧 드러날 것 같다” 평온한 시기에 430구의 엄청난 유골이 발견된다면 그에 대한 여론이 가히 핵폭탄급일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발각되기 전에 빨리 세상을 뒤집을 수 있는 공작을 해야 했을 것이다.
북한입장, 청주유골 쓰나미 막으려면 더 큰 쓰나미 미리 일으켜야
2014년 3월 31일, 북한은 인천에까지 이르는 긴 해로를 따라 사격구역을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3월 31일 단 하루만 사격을 한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바로 그 날 “오늘 북괴가 공작하려고 잠수함을 인천으로 보냈을 것이니 대비하라”는 요지의 글을 홈페이지 시스템클럽에 게시했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고 선원들의 이상한 행위들이 보도되면서 저자는 세월호 침몰을 북괴 공작원이 인천에 와서 공작을 한 결과라고 확신하였다.
세월호가 침몰되는 과정을 보면 이는 사고가 날 수 밖에 없는 모든 요소들이 정말로 정교하게 싱크로 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고 이후 인명구조 과정에서 선장, 선원들 그리고 일부 해경이 보인 수상한 행동들이 공작의 결과로 보였다. 단원고 학생들이 수백명단위로 승선한 사실, 정체불명의 40대 여성이 “전원 구조되었다”고 허위사실을 퍼트린 행위, 선원들이 학생들을 침몰하는 배 안에 가두어 놓고 탈출을 못하도록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한 사실, 선장과 주요 선원들이 탑승자들을 구출하려는 행동을 전혀 보이지 않은 사실, 가장 위험한 물길로 들어갔다는 사실, 조타수가 2등급의 어린 여성이었다는 사실, 선적 물을 밧줄로 묶지 않았다는 사실, 급변침한 사실, 가장 위험한 맹골수 험로로 가서 방향을 급선회하였다는 사실 등 매우 비정상적인 행위들이 상식의 범위 내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세월호 침몰 사고는 북한이 청주유골에 대한 여론을 급히 차단시키기 위해 급조한 공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430구 청주유골 북송작전, 김정은 전용기에 실려갔을 것
2014년 8월 17일, 북한에서 전례 없이 김대중 사망 제5주년을 맞아 조화를 보낸다며 박지원, 임동원, 김홍일이 조화를 가지러 개성으로 가서 김양건을 만나고 왔다. 나는 이들이 청주유골 처리에 대한 모의를 했을 것으로 의심한다. 2014년 8월 19일, 조추첨 북한대표단이 인천에 왔다. 8명 모두가 다 광수들이다.
그리고 폐막식인 10월 4일,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이 그야말로 아무런 명분 없이 김정은 잔용기를 몰고 인천에 왔다가 시간이 되자 북으로 돌아갔다. 여러 달 동안 나는 김정은 전용기의 수수께끼를 풀 수 없었다. 아무리 명분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바로 그 예사로울 수 없는 김정은 전용기에 430구가 실린 1개의 컨테이너박스가 실려 갔을 것이라는 직감이 떠올랐다. 청주시 체육과와 흥덕경찰은 430구의 무연고 유골이 화장됐다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2015년 9월 9일 데일리메디는 2014년 충북 전체의 무연고 화장건수는 겨우 18구였다고 밝혔다. 조달본부 홈페이지에는 무연고 청주유골에 대한 입찰공고가 전혀 없었다.
20204.2.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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