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TV] 제196화, 박근혜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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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0-02-17 22:11 조회4,87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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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TV] 제196화, 박근혜 신드롬
https://www.youtube.com/watch?v=5x0WhI840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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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무효 - 청와대 복귀
탄핵소추-탄핵재판
인간적 배려 – 출옥
감상적 –무조건적인 사랑 -애국과는 무관
(박근혜사랑과 애국은 별개)
지만원에 대한 증오 감정- 박근혜 왜 비판했나?
비판 없는 애국은 허구 –
논리적 냉엄한 역사 평가 (5.18과 4.3 2개만 살펴보자)
5.18진실 방송기간: 2013.1~5. 박근혜 정부가 갑자기 탄압(공산주의식)
차은택(47) 감독이 미르재단의 '몸통’
슬픈약속(2013.1.제작) 5.18 뮤직 비디오 (지창욱, 박보영 등 열연)
최순실에 의해 차관급으로 등극한 광고 감독이라는 차은택(47)은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행사해온 마이더스의 손, 문화 황태자로 통했다. 그런데 그 차은택은 빨갱이었다. 그는 2013년 1월에 5.18 뮤직비디오 "슬픈 약속"을 제작했다. 28분짜리 이긴 하지만 이는 영화 ‘화려한 휴가’ 뺨치는 선동물이다. 지창욱, 박보영 등 명 배우 명 탤런트들이 열연한다. 유튜브에 떠 있는 동영상 두 개를 합치면 클릭 수가 200만 개에 육박한다.
2013년 1-5월 동안, 요원의 불길처럼 확산되고 있던 5.18진실규명의 방송을 갑자기 중단시킨 인물이 차은택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합리적 의혹에 속할 것이다. 내가 ‘내우외환 차원에서 5.18의 북한주도 사실’을 신고했을 때 박근혜도 침묵했고, 황교안도 침묵했고, 국정원 이병호는 그의 사관학교 선배들에게만 귓속말로 지만원의 광수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Tolcbm1L4eU
고영태(최순실 불륜설) - 5.18유공자
2016년 10월 31일짜 뉴스1과 광주매일신문은 최순실의 최측근이었던 고영태가 5.18유공자 아들이라고 보도했다. 고영태의 아버지 고규석은 당시34세의 농부였는데 5월 21일 광주교도소 부근 고속도로를 지나다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한다.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총에 맞은 것이 아니라 고속도로을 통해 광주로 들어가다가 폭도로 오인되어 총에 맞았던 모양이다
슬픈약속 제 1부 (차은택 제작)
https://www.youtube.com/watch?v=Tolcbm1L4eU
슬픈약속 제2부 (차은택 제작)
4.3사건: 4월3일은 한라산 인민군이 제주 경찰서 12곳을 기습 공격하여 경찰과 그 가족들을 학살한 날이지 양민을 학살한 날이 아니다.
1998년 11월 23일, 김대중은 CNN과의 인터뷰를 했다.
“제주4.3은 공산당의 폭동으로 일어났지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으니 진실을 밝혀 누명을 밝혀줘야 한다.”
봉개동 평화공원과 평화기념관(위패보관소, 3개층 모략영상 전시공간): 미군정과 이승만을 야만적 학살자로 교육시키는 곳, 1,000억 이상 예산 투입
군-경이 묻힌 충혼묘역(박진경의 묘)
함병선 장군 공적비
노무현의 4.3: 5.18진상규명국가보고서 제주도에 날아가 국가의 범죄행위 사과, 노무현이 4.3 날조의 총 책임을 지고, 박원순이 보고서 내용을, 고건 당시 총리가 행정절차를 주도하여 2003년 10월 15일에 작성된 정부보고서(제주4.3진상규명보고서)는 좌파들이 4.3중앙위원회를 독점하여 우격다짐으로 만든 빨갱이 보고서다, 빨갱이들이 국가권력을 휘어잡고 대한민국 도장을 찍어 발행한 도둑보고서다. 이 내용을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
박근혜의 4.3: 2014년 3월 18일, 박근혜는 애국우익들의 간절한 호소를 짓밟고 기어이 4월 3일을 4.3희생자 추모일로 지정할 것을 국무회의에서 선포했다. 4월 3일, 이 날은 무슨 날인가? 한라산 무장반란군 인민유격대(인민해방군) 300여명이 이날 새벽 2시 89개 봉우리에서 일제히 봉화를 올리고 총을 쏘며 내려와 마을단위로 존재하는 민애청과 자위대 등 이른바 동네 빨갱이들과 함께 제주도 12개 경찰지서를 일제히 공격하여 경찰과 경찰가족을 무참히 학살하기 시작한 날이다. 박근혜는 바로 이 날을 양민학살의 날로 국가가 상주가 되어 추념할 것을 선포했다.
이로부터 토벌전쟁은 1957년 4월 2일, 마지막 공비 오원권을 생포할 때까지 무려 9년 동안이나 지속되면서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었다. 이 모든 살상의 원인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반대하0고 북한과의 통일을 꿈꾸는 제주 공산주의자들의 잔인한 게릴라 전투행위에 있었다. 다른 지역들처럼 공산주의자들의 게릴라 공비 활동이 없었다면 토벌이 있을 수 없었다.
누구의 죽음이 억울한 것인지 확실하게 따져보자
2003년 박원순은 4.3보고서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이 14,023명이라 기록했고, 이는 지금 이 순간까지 공식통계로 인용되고 있다. 이 14,023면 속에는 경찰도 있고, 군인도 있고, 마을 유지와 그 가족 등 억울하게 살해당한 애국자들이 있었고, 토벌대(군인 및 경찰)에 의해 살해된 사람들도 있다. 이 두 부류의 죽음 중 어느 죽음이 진정한 의미의 억울한 죽음일까?
빨갱이들은 마을유지와 그 가족들을 살해할 때 단지 자기 들 편에 서지 않는다는 이유로 살해했다. 살해하는 방법도 각을 뜨고 돌로 으깨고 강간-윤간 후 생매장을 하는 등 짐승도 혀를 내두를 만큼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다. 바로 이런 것이 억울한 희생인 것이다.
하지만 토벌대에 의해 사살당한 사람들은 총에 맞아 죽었다. 전쟁터에서는 의심지역에 있다는 것 자체로 희생당할 수 있고,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면 바로 총을 맞는다, 당시 제주도 주민의 80% 이상은 빨갱이 물이 든 사람들이었다. 소수를 제외한 제주도민 전체가 빨갱이들이었던 것이다. 이들이 죽은 것은 빨갱이 사상을 가지고 빨갱이 편에 서 있었다는 의심을 받았기에 총에 맞아 죽은 것이다. 물론 얼마간의 억울한 경우들도 있었겠지만 논리상으로 보면 이들의 죽음을 억울한 죽음이라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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