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은 북 게릴라전, 입증증거 42개 [9]
페이지 정보
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10-29 15:10 조회2,328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
5.18을 북괴가 주도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42개 증거
--------------------------------------------
[5.18답변서] 책에는 5.18을 북괴가 주도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42개 증거를 50-224쪽에 걸쳐 사진들과 함께 정리했다. 그런데도 많은 독자가 42개 증거가 어디에 있느냐고 질문하신다. 그래서 그 42개 증거를 따로 뽑아 정리한다.
------------------------------
9. 살인기계로 훈련된 비싼 특수군, 광주에서 475명 잃었다는 북한의 통곡
2개의 북한 문헌(광주의 분노,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에는 광주에서 사망한 북괴군이 475명인데 이들은 떼죽음(무리죽음)을 당했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기록영화촬영소가 1980년에 제작한 5.18기록영화 [군사파쇼도당을 반대하는 광주인민항쟁]에도 “475명의 사랑하는 부모형제”를 떠나 무등산의 꽃이 되어 있다는 내레이터의 기염이 실려 있고, 1980년 6월 6일, 일본기독교정의평화협의회가 배포한 ‘어느 목격자의 증언 [찢어진 깃폭]’이라는 제목의 유인물에는 475명이 도청에서 떼죽음을 당했다고 기재돼 있다. 북한에는 [무등산의 진달래]래는 구술픈 노래가 있다.
광주라 무등산에 겨울을 이겨내고/ 연분홍 진달래가 곱게 피어나네/
동강난 조국땅을 하나로 다시 잇자/ 억세게 싸우다가 무리죽음 당한 그들
사랑하는 부모형제 죽어서도 못 잊어/ 죽은 넋이 꽃이 되어 무등산에 피어나네
사랑하는 부모형제를 북한에 두고 무등산에 영혼이 피어있다는 구슬픈 노래인데 북한은 이 노래를 등교 시에 확성기로 틀어주었다. 북한에 사랑하는 부모형제를 둔 475명의 애국전사들이 무등산에 진달래꽃으로 심어져 있다는 뜻이다. 광주에서 무려 다섯 차례씩이나 야간 공격을 감행했다면 600명 중 475명은 넉넉히 죽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소위로부터 대위에 이르기까지 베트남전을 4년 동안이나 치른 저자의 판단으로 넉넉히 할 수 있다. 600명의 살인기계 중 100명 정도는 도청에 차려진 북괴 사령부를 호위했을 것이고, 500명 정도는 교도소 공격에 투입됐을 것이다. 그 중 475명이 죽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저자 측에 의해 발굴된 광수는 총 661명이고, 그 중 군인광수는 불과 90명뿐이었다. 북괴는 이 475명의 떼죽음(무리죽음)에 대해 참으로 원통해 하고 있다.
광주에 온 북한 집단에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이 개입했다는 증거를 남기지 않는 것이었다. [북한 개입]에 대한 증거를 잡히면 북한은 즉시 유엔에서 전범재판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광주에서 죽은 북한군 시체는 [북한 개입]이라는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먼동이 트기 전에 어디론가 감쪽같이 치웠어야 했다. 뒤에서 다루겠지만 2014년 5월 13일 청주 야산에 1m 깊이로 매장돼 있던 군대식 대열을 갖추고, 하얀 비닐포장에 싸여 동일한 규격의 칠성판에 묶여진 채 군번과 같은 일련번호를 단 430구가 북괴가 원통해 울부짖는 그 475구 중 일부일 것이라는 합리적 논리가 전개돼 있다. 도청에서 떼죽음 당해 도청에 집결해 있었다는 475구에 대해 원통해 하는 내용들은 아래 4개의 북한 문헌 및 1980년에 북괴가 제작한 광주기록영화에 명시돼 있다.
첫째,1982년 조국통일사가 펴낸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 제591쪽 14-16줄에 기재돼 있다. “광주시의 도청 지하실 한 곳에만도 얼굴을 알 수 없도록 화염방사기에 그슬리고 찢긴 475구의시체가 쌓여져 있는 사실만 놓고 보아도 놈들의 살육만행이 얼마나 참혹하였는가를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는 것이다.”
둘째, 1985년 북한의 노동당출판사가 발행한 [광주의 분노] 제86쪽에도 475명 기재돼 있다. “<민주투쟁위원회>는 신임괴뢰국무총리가 광주에 온다는 소식을 봉기군에게 알려주었다. <민주투쟁위원회>는 <공정대>놈들이 <도청> 지하실에 감추어 놓았던 475구의 봉기군 시체를 꺼내다 <도청> 분수대 앞에 안치하여 놓았다. 시체들의 대부분은 <공정대>의 화염방사기에 맞아 까맣게 타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셋째, [김일성훈장을 수여받은 조선기록영화촬영소 편집]으로 자막 돼 있는 북한이 제작한 선전 선동 기록물 [군사파쑈도당을 반대하는 광주인민항쟁]이 있다. 42분 분량의 분노에 찬 선동 영화로, 5.18 직후부터 전라도 사람들이 몰래 모여서 보았다는 [광주 비디오]인 것이다. 아래는 그 일부를 녹취한 것이다.
“동족상쟁을 일삼는 남조선 군사파쑈놈들, , 국민학생은 물론 세 살난 어린이 노인들까지 가리지 않고 살육 . . 임신부 태아를 꺼내 남판치는 치떨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 . 순진한 여학생들의 젖가슴을 도려내고. .잔인성만이 군대의 길이라고 명령했다 피로 물든 광주는 참혹한 인간도살장이 됐고 피의 목욕탕으로 변했다. 하루에 475명이나 도청지하실에 끌어다 죽였다. . 여학생들과 부녀자들을 생매장했다. . 학살된 사람이 2천명을 넘고 부상당한 자가 1만5천을 넘는다. .전두환 도당의 살인만행은 절대로 용서될 수 없다. . 통일이어 어서 오라 민주화와 주국통일을 위해 싸운 공주시민들의 영웅적인 투장은 영원히 승리할 것이다. . .”
넷째,5.18사태가 진압된 지 1주일 만인 1980년 6월 5일, 일본에서 ‘천주교정의평화협의회’가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한 [찢어진 깃폭-어느 한 목격자의 진술]에도 475명이 한 순간에 떼죽음 당했다는 내용이 게재돼 있다.
“그들은 시신을 도청 지하실에서 꺼내 밖으로 내오기 시작했다. . 지하실에 내려가475구의 시체를 보니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불에 탄 것도 있어 시민들은 다시 한 번 분노에 치를 떨었다. . . 총알에 누더기가 되고 동포의 피로 얼룩진 민중의 응어리진 원한이 서린 저 깃폭을 보라. 뉘라서 이 응어리진 분노를 풀어 줄 것인가. 눈을 감으면 아직도 떠오른다, 저 찢기고 누더기가 된 깃폭이.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혁명의 붉은 깃폭 아래” 북한이 선전해 온 [찢어진 깃폭]에도 같은 취지의 분노와 증오심이 표출돼 있다.
5.18에서 사망한 광주인은 154명에 불과하다. 그중 30%는 10세 전후이고, 50% 정도가 20세 전후다. 그렇다면 북한이 겨우 광주의 개념 없는 100여 명의 어린 주검을 놓고 저토록 슬퍼하고 분노하고 해마다 추모행사를 거행할 것이며, 그 어린 주검들이 동강난 조국을 하나로 잇기 위해 억세게 싸우다 무리죽음 당한 조국통일의 전사라며 매일 같이 노래한다는 말인가? 그 어린 주검들의 명예를 기리기 위해 북한에서 최고인 것들에 [5.18]을 영예의 상징으로 하사한다는 것인가? 어림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북괴의 시체는 모두 당시 북한의 대남공작 광주 사령부인 전남도청에 다 모아놓고 부패한 시체로부터 흐르는 액체를 봉쇄하기 위해 하연 비닐로 둥둥 말아 칠성판 위에 묶여져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아도 5.18은 북한이 주도한 것으로 인식될 것이다.
2022.10.29. 지만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