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은 북 게릴라전, 입증증거 42개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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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2-11-06 21:19 조회2,82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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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을 북괴가 주도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42개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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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답변서] 책에는 5.18을 북괴가 주도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42개 증거를 50-224쪽에 걸쳐 사진들과 함께 정리했다. 그런데도 많은 독자가 42개 증거가 어디에 있느냐고 질문하신다. 그래서 그 42개 증거를 따로 뽑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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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013년 4월 22일, TV조선 “신율의 시사열차”에는 황장엽과 김덕홍의 인터뷰 기사가 소개됐다. 황장엽은 5.18을 북한이 주도한 후 그 책임을 남한정부에 뒤집어 씌운 것이라고 말했고, 김덕홍은 북의 대남공장부 간부들이 5.18로 공을 쌓은 간부들이 일제히 훈장을 받았다는 증언을 했다.
국정원보다 먼저 황장엽을 중국에서 접촉했던 전 월간조선 편집장 김용삼이 2013.4.22. TV조선 ‘신율의 시사열차’에 출연하여 5.18에 대해 황장엽과 김덕홍이 털어놓은 충격적인 내용을 공개했다.
황장엽: “광주학생문제도 그들을 뒤에서 사주한 북 공명주의자들이 책임을 (남한에) 전가한 일”
김덕홍:“조선노동당 대남부서에 소속된 사람들 상당수가 광주민주화운동 끝난 후에 일제히 훈장 받았다”
이와 연결된 합리적 제보가 위 두 사람의 증언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저자는 이와 간련하여 전직 국정원장 3인(권영해, 이병기, 이병호)를 대검에 고발해 놓고 있다. 이병기는 1997년 국정원 제2차장으로 재직 시, 황장엽의 망명사건을 조사한 장본인이고, 이후 국정원장을 거쳐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했던 사람이고, 이병호는 2015-2017까지 국정원장을 역임했고, 국정원장 재직 당시인 2015. 7. 인민군 현역 3성장군 박승원이 귀순했을 때, 박승원 상장을 곧 기자회견장에 내보낼 것이라고 발표했다가 돌연 중지시킨 사람이며, 권영해는 1994-1998간 안기부장이었고, 국정원장 재직 시 황장엽 망명사건에 대한 조사를 지휘했던 사람이다.
저자는 한 지식인 네티즌으로부터 국가안보 상 무시될 수 없는 귀중한 제보를 받았다. 제보자는 1951년생이라는 사실과 이름을 밝히면서 저자에게 2019.2.25.부터 2019.4.7. 사이에 5장의 메일을 보내왔다. 그 메일의 내용은 그가 전직 국정원 고위간부로부터 직접 들었다는 내용들이었고, 그 고위간부에 대한 신분도 밝혔다.
제보 내용의 요약
1. 1997년 황장엽이 망명했을 때, 황장엽은 묻지도 않았는데 1980년 광주에 자기도 왔고, 김덕홍, 리을설, 김중린도 함께 왔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한 기록은 김영삼 때 묻어 놓았다가 김대중 때 삭제됐다. 이때의 대통령은 김영삼, 안기부장은 권영해, 황장엽을 조사한 제2차장은 김병기였다.
2. 1995년 7월 인민군 상장(3성) 박승원이 귀순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장 이병호와 그 전임자 이병기 그리고 전 국정원 고위간부였다는 정보 전달자, 셋이서 ‘기자회견을 시켜 전라도 손아귀에서 독립해보자’는 결의를 도원결의 하듯 했지만 시간을 끌던 이병호가 좌익세력에 겁을 먹고 포기했다.
박승원 상장에 대한 언론보도
실제로 2015년 7월 3일과 4일, 동아일보와 채널A가 박승원 상장(3성)이 귀순했는데 곧 기자회견을 할 것이라고 대서특필했다. 이어서 북한전문지 '프리엔케이(Free NK)'는, “최근 탈북 망명한 '제37광수 박승원 상장'에 대하여"라는 제하에 아래와 같은 기사를 냈다.
“1980년 5.18 광주사태시 북한군 대남연락소 전투원 소속으로 남파되어 5.18 광주사태에 시민군으로 참여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 또한 1988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대남 영웅 대회'(인민문화궁전 지상에서는 '전국영웅대회'가 열렸고 지하에서는 '대남영웅대회'가 열렸음)에 토론자로 출연하여 5.18 광주사태 참전의 위훈 담을 증언한 적도 있다. . 그리고 5.18 광주사태 참전 '대남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김정일의 지시로 제작된 '무등산의 진달래' 노래 제작에도 기여한 바가 있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