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메시지(16)] 국정원 내부에 암약하는 간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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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2-18 00:17 조회5,65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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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메시지(16)] 국정원 내부에 암약하는 간첩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 심었을 세작 인프라
검찰이 정의용, 서훈, 김현철을 기소한다고 한다. 각기 안보실장, 국정원장, 통일부 장관들이었다. 이들은 탈북 어민들이 귀순의사를 분명히 밝혔는데도 강제로 북송한 반 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렀다고 한다. 이 세 사람의 정점에는 대통령 문재인이 있었다. 이 세 명이 김정은에 아부하기 위해 보고도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야합하여 이런 끔찍한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면 이는 국가 조직일 수 없다. 설사 그랬다 해도 문재인은 리더로서의 책임을 져야 상식에 부합한다.
안보실장, 국정원장, 통일부 장관은 부하들과 참모진으로부터 보좌를 받는다. 이들 참모조직에 대한 성향조사가 있어야 한다. 이들이 계속 존속한다면 이들은 새로 부임하는 수장들을 농락한다. 수장들만 처벌하는 것은 사법적 수단이지만, 그들을 떠받들어 주었던 실무 인프라들을 제거하는 수단은 지휘 수단이다. 김대중은 1998년 2월 취임하자마자 국정원 대공 전문가 581명을 단칼에 잘라내고 전라도 사람들로 채웠다고 한다. 이후 지금까지 그 전라도 사람들이 영입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이런 현상은 이후 노무현, 문재인 시대에 없었을까?
탈북자 관리라인, 주사파 소굴일 것
국정원이 지금까지 취해온 공식 입장은 북한과 5.18이 무관하다는 것이었다. 국정원은 지금까지 일부 유명세를 타고 있는 탈북자들의 이력과 탈북 스토리가 허위인 줄 알면서 그것을 묵인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국내와 해외에 위대한 인물로 띄워주는 일을 해왔다.
“나도 광주에 왔었다.” 황장엽 증인 은닉했을 권영해-이병기
내가 믿을 만한 제보에 의하면 1997년 황장엽은 귀순하자마자 국정원 해외담당 차장 이병기에게 “광주에 나도 왔고 김덕홍, 김중린, 리을설이 왔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는 내가 찾아낸 증거들과 일치한다.
광주 사람 중에 자기가 현장 사진 속 제 71광수라고 주장한 사람이 있었다. 제 71광수는 노숙자 담요가 황장엽으로 지정하였다. 그런데 박남선은 "황장엽 얼굴과 비슷한 얼굴을 제작해 내 몸에 합성해 놓았다"고 말했다. 내가 이 사진의 저장 공간이 조선일보 사진 DB에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지만 주사파 판사들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광주에는 북한군이 절대로 오지 않았기 때문에 광주-전남 사람들이 광수를 자기 얼굴이라고 주장하면 그 주장은 진실한 주장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로 71광수는 황장엽이 아니라 박남선이 맞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런 궤변을 인정할 사람, 어디 있겠는가?
2013년 월간 조선 5월호와 2013년 4월 22일 신율의 ‘시사열차’라는 TV프로에는 황장엽을 국정원보다 먼저 접촉했다는 전 월간조선 편집장 김용삼이 귀순 직후의 황장엽과 김덕홍을 동시에 인터뷰했던 내용을 공개했다. “5.18은 북이 주도해 남한에 뒤집어 씌운 것이며, 사태가 종결된 후 통일전선부 간부들이 무더기로 훈장을 받았다.”
1997년 귀순 당시에 황장엽이 했다는 말은 위의 사실들에 부합한다. 이 당시의 국정원장은 권영해였고, 해외 담당 차장이 이병기였다. 제보 내용에 의하면 황장엽의 증언은 김영삼 시절의 이병기 차장과 권영해 부장이 은닉했고, 김대중 시대에 파기되었다고 한다. 이는 국가 차원의 이적행위가 아닐 수 없다. 국가 기강이 바닥인 것이다.
박승원 상장 귀순 은닉한 이병호와 박근혜
2015년 7월 1일경, 박근혜 대통령이 북에서 고위급 인사가 귀순했다며 상기되어 있었다. 그래서 인내심을 잃고 역대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국정원을 직접 방문했다. 앉아서 보고를 받으면 그만일 터인데 직접 찾아간 것은 박상원 상장의 얼굴을 직접 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나는 박근혜가 박상원을 직접 대면해 만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 무슨 다른 목적이 있어서 체면 몰수하고 한숨에 달려갔겠는가?
이어서 7월 3일에는 동아일보가, 7월 4일에는 채널 A가 박승원 상장(3성)이 곧 기자회견을 할 것이라고 대서특필했다. 매우 공교롭게도 이 며칠 전 나는 박상원 상장이 제 37광수라는 점을 발표했다. 그래서인지 동아일보와 채널A가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리고 박승원이라는 이름은 증발되어 버렸다. 그러면 대통령 박근혜는 무엇 때문에 북에서 거물이 왔다며 국정원으로 달려가는 소동을 벌였고, 동아일보와 채널A는 무엇을 보고 대서특필을 했는가? 이는 상식에 매우 어긋난다. 분명 박승원은 온 것이다.
그러면 박승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분명히 김덕홍처럼 어딘가에 감금되어 있을 것이다. 내게 제보한 한 지식인의 이야기로는 이병호와 이병기가 박승원의 기자회견을 통해 전라도 손아귀에서 벗어나자는 도원결의 같은 것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못했는가? 내가 보기에는 박근혜가 중단시켰을 것 같다. 첫째 박승원을 공개하면 5.18의 진실이 밝혀질 것이고, 그랬다면 그녀가 가장 증오하는 전두환이 영웅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박근혜 스스로가 5.18을 숭배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2013년 1월초부터 5월까지 TV조선과 채널A가 경쟁적으로 “5.18은 북한 소행”이라는 주제로 방송에 열을 올렸을 때 박근혜가 느닷없이 방송을 중단시키고 방송을 진행한 간부 8명에 중징계를 내리게 했다. 만일 박근혜가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감옥은커녕 지금쯤은 상왕이 되어 있을 것이다.
유명 탈북자들, 누가 영웅으로 조형했나?
노숙자 담요가 발굴한 광수는 모두 661명, 이중 군인 광수는 90명, 민간인 광수는 571명이다. 이 571명중 50여 명이 탈북 광수였다. 이 50명중 12명이 하태경의 적극적인 권유로 나를 고소했다. 광수 소송에는 전라도 사람이 고소한 소송이 있고, 탈북자들이 고소한 소송이 있다. 전라인들은 광수가 북한 얼굴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라도 소송자 15명은 주사파 판-검사를 잘 만나 승소를 했고 탈북자들은 지금 한창 소송이 진행 중에 있다. 탈북자들에는 남한에 증인-공증된 정보가 없다. 본인이 하는 이야기들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본인들이 “나는 광주에 오지 않았다.”, “그때 내 나이는 6살이었다.” 이렇게 주장하면 피고인인 나는 달리 할 말이 없게 되어 패소하고 만다. 피고인인 내가 나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각 탈북자들의 말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여부를 증명하는 길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남한에 와서 했던 방송, 언론 인터뷰, 교회 간증, 유튜브 등을 모두 수집하고 녹취록을 떠서 거짓을 찾아내야 했다. 12명에 대한 분석을 하는 데에 거의 2년이 걸렸다.
장진성의 성역 헐었다.
2016년 장진성은 이들 12명과는 별도로 나를 고소했다. 나는 그가 쓴 책들, 탈북 수기, 수많은 인터뷰, 유튜브 방송 내용들을 수집했다. 그 수집된 것들을 분석해서 150개의 질문서(신문사항)을 작성하는 데만 무려 130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 내용으로 법정에서 무려 4시간 30분동안이나 질문을 했다. 그 결과 학력과 경력과 탈북 스토리 전체가 허위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는 그의 신분을 포장하기 위해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했고 대남사업부인 통일전선부 산하에서 근무했다고 했다. 이 모두가 거짓임이 4시간 30분 동안의 토끼몰이식 질문에 의해 드러났다. 그리고 그의 탈북 스토리는 황당한 구라로 엮어졌다는 사실도 입증됐다.
이순실의 법정고백 “내 방송은 모두 거짓이었다.”
이순실은 채널A에서 컸다. 이만갑 프로의 여왕이었다. 그녀는 TV뿐만 아니라 수많은 간증과 유튜브 방송을 통해 두 살 난 딸 이야기를 해서 눈물바다를 만들고, 성금도 모았다. 그녀는 지금 갑부인 것으로 방송되어 있다. 탈북을 여덟 번 했다가 붙잡혀 모진 고문을 받고, 아홉 번째 성공한 집념의 불사조로 이미지 메이킹을 했다.
그녀는 2022년 봄 증인석에 나와 나로부터 2시간 30분에 걸쳐 질문을 받았다. 토끼몰이 식으로 몰아가는 질문에 그녀는 멘붕 상태에 빠지는 듯했다. 북한에서 술주정뱅이와 결혼을 했다는 것도, 6개월 동안 꽃제비 생활을 했다는 것도, 황해남도 평산에서 여행증 없이 6개월 동안 두만강변 혜산으로 걸어갔다는 것도, 딸을 낳아 키웠다는 것도, 강을 9번 건넜다는 것도 모두 다 거짓이었다. 그러자 그녀는 마지막으로 판사에게 말했다. “제가 남한에 와서 방송한 것은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그때그때 지어서 했기 때문에 말할 때마다 내용이 다른 겁니다.” 5.18때 13살(1967년)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광주 현장 속 이순실의 얼굴에 대해 노숙자 담요는 19-20세로 보인다고 감정했고 옛날 나무 위키에는 1960년 생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1967년생이었다는 그녀의 주장은 고소 시점에서 지어낸 말이었다.
강철환의 요덕 수용소도 가짜
강철환은 1968년생이고 1992년에 한국에 왔다. 그가 2003년에 제작했다는 [수용소의 노래]는 곧 [The Aquariums of Pyongyang], [평양의 어항]이라는 영문 제목으로 출간 되었고, 이로 인해 그는 조지부시 대통령과 면담까지 해서 기득권 성역이 되어 있다. 그런데 연구해 보니 그가 요덕 수용소에 10년 동안 있었다는 것도 믿을 수 없고, 탈북 스토리는 전혀 믿을 수 없는 허풍의 연속이었다. 특히 [평양의 어항]은 그의 모두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항도 거짓말, 금붕어도 거짓말이었다. 어항을 요덕 수용소에 가지고 갔다는 말도 거짓말, 요덕 수용소에 끌려갔다는 것도, 거기에서 고생을 했다는 말도 거짓으로 분석되었다.
어항 이야기가 가짜이고, 요덕 스토리가 가짜이면 모두가 가짜인 셈이다. 이 두 가지가 강철환의 신분을 대표하는 전부이기 때문이다.
강철환 조부가 반역죄를 저질러서 할머니, 아버지, 막냇삼촌, 여동생과 함께 요덕에 실려 갔는데 그때 강철환의 아이가 9세였고 19세였던 1987년에 출소했다고 한다. 할아버지 자손 7남매 중 아버지와 막냇삼촌만 연좌제를 끌려갔고 나머지 5명의 삼촌과 고모들은 연좌제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서부터가 이상한 것이다.
먼저 금붕어와 어항에 대해 살펴보자. 2002년 KFA와의 인터뷰에서 강철환은 ‘반동분자’들을 잡으러 온 서슬 퍼런 보위부 요원에게 떼를 써서, 한 개의 어항에 20마리의 금붕어를 요덕으로 가져갔다고 했다. 평양에서 함경남도 요덕까지는 비포장 도로였고, 강철환의 말로는 때로는 10시간, 때로는 5시간여가 걸렸다고 하는데, 보위부 요원이 너그럽게 이를 허락했다는 것도 이상하다. 울퉁불퉁한 도로위에서 몸이 트럭 바닥에서 떴다 내렸다 하면 어항도, 금붕어도, 물도 성할 수가 없는데 그걸 허락했다는 것이 수긍되지 않는 것이다.
요덕으로 20마리를 4월에 가져가서 엄동설한 때까지 키웠는데 마지막 세 마리는 어항이 얼어서 죽었다고 한다. 먹고 살기도 어렵고 쉴 틈 없이 노동을 강요당하는 요덕에서 8개월 이상 1급수 물을 어떻게 구했으며 금붕어 먹이는 어디서 구했는가? 물 줄 시간, 금붕어 먹이 구하는 시간이 요덕에 허락되어 있다는 말, 들어보지 못했다. 금붕어를 8개월씩이나 키울 수 있는 곳이라면 여기는 요덕 수용소가 아니다.
2003년에 강철환이 쓴 [수용소의 노래] 제26~28부에는 또다른 이야기가 전개되어 있다. 염라대왕 같은 보위부 요원들이 들이닥쳐 세간을 모두 내던졌는데 금붕어 어항이 방바닥에 깨져 금붕어들이 팔딱팔딱 뛰는 것을 한 살 아래인 여동생과 함께 주워 가지고 침대 위에서 뛰어 놀았다고 했다. 금붕어들이 다 죽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어떻게 어항에 넣어 요덕 수용소에 가져 갔다는 말인가?
2017년 탈탈탈 22회에는 또 다른 스토리가 전개되어 있다. 어항이 5개나 있었는데 보위부 요원들이 들이닥치는 순간 동네 친구들에 4개 어항을 나누어 주고 한 개의 어항에 자기가 아끼는 금붕어를 가지고 갔다고 했다. 끌려가는 상황이 아니라 이사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평양을 떠날 때는 보위부 요원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철부지 강철환은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10시간 이동하여 요덕 수용소에 도착한 순간 갑자기 천재가 되었다. 수용소 근처에서는 “함경남도 요덕군 구읍리”라는 입간판이 보였고, 수용소 정문에는 “조선인민경비대 제 2915부대”라고 쓰여 있었으며 “수용소 1반에서 10반까지 가는데 40분이 걸렸다”는 말을 한 것이다.
나는 증인석에 있는 강철환에 물었다. “평양에서 증인의 가족들을 태운 트럭에는 포장이 쳐져 있었느냐?” 이에 강철환은 “두꺼운 포장이 쳐져 있어서 밖을 전혀 볼 수 없는 암흑이었다.”고 답했다. 포장이 쳐져서 밖을 전혀 볼 수 없었는데 입간판과 부대 표식은 어떻게 다 읽었으며, 1반인지 10반인지 어떻게 알 수 있었으며 1반부터 10반까지 가는데 40분이 걸렸는지 9살짜리 아이가 시계도 없이 어떻게 측정을 했다는 말인가?
요덕에서 출소한 이유는 재일 교포 중에 부자 친척들이 많기 때문이라 했다. 출소하니까 당 간부들과 보위부 요원들이 오히려 아부를 했다고 한다. 개를 한달에 한 마리씩 잡아먹어서 출소 직후에 165cm 정도였던 키가 1년만에 10cm 이상 자랐다고 했다. 남아의 성장판은 17세에 닫힌다는 의학 보도가 있다. 요덕에서 10년을 꼬박 고생을 한 청년이 만 18세 나이에 키가 165cm였다는 것도 상식에 어긋난다. 그의 탈북 과정은 그야말로 구라의 일색이었다. 중국에서 사귄 누나의 덕으로 한국행 선박의 선원증 2개를 빌려 친구 동행자 ‘안혁’과 함께 승선했다는 것이 구라판 탈북 스토리의 끝장면이다.
어떻게 국정원이 이를 용납하고 키워 주었나?
여기 까지를 보면 탈북자 관련 업무를 장악하고 있는 팀은 간첩들일 것이라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북괴가 5.18에서 남한을 농락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위험하고 시급한 것은 이런 북괴의 농락 행위를 민주화 운동으로 둔갑시켜 대한민국을 다시 농락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면서 국민을 약탈하는 행위를 바로잡는 것이다. 탈북자들을 이런 식으로 악용하는 것은 반역행위다. 나는 국민들이 어째서 여기에 관심을 갖지 않는지 그것이 서운하고 안타깝다.
2023.2.7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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