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 메시지(83)] 북괴군 600명, 신군부가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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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5-17 10:33 조회9,84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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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메시지(83)] 북괴군 600명, 신군부가 숨겼다.
육사 총 구국 동지회 5.18 진상규명 TF가 밝힌 특수군 600명
2003년, 나는 군 상황일지를 보자마자 북괴군 600명이 왔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600명은 북한의 대남 공작 문헌 2개에도 명확하게 기재돼 있었다. 그런데 2003.4.17.자에 ‘육사 총 구국 동지회 5.18 진상규명 TF는 녹취록 서문에 당시 전라도 지역 계엄사령부에서 “북한군 600명 침투”라는 상황을 전파한 사실을 밝혔다. 5월 21일 이동하는 20사단 차량 부대를 매복·기습하기 위해 고지능의 장애물을 설치하고 각목과 철봉을 만들고 감히 현역 부대 장병들을 토끼몰이식으로 위협하여 차량을 탈취한 행위 하나만 보아도 5.18은 북괴가 저지른 전쟁 범죄라는 것을 능히 판단할 수 있었는데, 당시 계엄사가 이를 묵살한 것은 진실과 애국보다는 대규모 침투를 막지 못한 데 대한 국민적 질책이 겁이 나서 숨겼을 것이라는 진단도 냈다. 이에 대해서는 나도 동감한다.
노무현 시절 노크 귀순이 자주 있었을 때 군은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부정하거나 숨기려 노력했다. 1996년 강릉에서 북괴의 상어급 잠수함이 좌초된 것을 새벽 시간에 택시 기사가 발견한 것에 대해서도 당시의 군은 매우 못마땅하게 여겨 한동안 택시 기사가 잠수를 한 적이 있었다. 숨길 것을 숨겨야지 어떻게 북괴군 600명 침투 사실을 숨기고, 북괴의 전쟁 범죄 사실을 숨기는가? 그리고 육사 TF는 북괴가 5월 24일 유유히 사라지도록 전남 해안을 열어준 사실도 확인했다.
신군부, 북괴가 저지른 군사행동, 구두닦이 양아치들에 씌워
5월 24일, 북괴 무리가 도주한 후 신군부는 북괴가 저지른 폭동과 군사행동 모두를 멋모르고 도청에 들어가 있던 구두닦이, 화물차 운전수, 19세 구두공, 회사원, 2명의 대학생에 뒤집어씌웠다. 사형과 무기징역을 씌운 것이다. 이 꼬맹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사형이고 무기징역인가? 5월 24일까지 도청은 북괴가 작전 사령부로 사용했다. 24일, 북괴가 간첩의 공작으로 활짝 열린 전남 해안을 통해 도주하자, 텅 비워진 도청에 하나씩 둘씩 들어와 도청 밖은 나가 본 적이 없는 이 피라미들이 무슨 행동을 했다고 사형이고 무기징역이라는 말인가?
그리고 시대가 변하자 이들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피라미들에 1급 유공자 급수가 부여됐을 것이다. 어쩌면 김대중 등 정치꾼들이 1급 유공자 자리에 대거 끼어 있을지 모른다. 일시금 3억 1,700만 원과 연금 월 420만 원을 받은 최고의 1급 유공자는 아마 김대중일지도 모른다.
탈북 광수 50여 명은 당시 모두 아이들과 부녀자 신분
광주에 온 북한 사람들은 군인 600명만이 아니었다. 게릴라전의 편제에는 반드시 아이들과 부녀자들이 포함된다. 이는 공식이다. 2015년 노담(노숙자 담요)는 수백 장에 이르는 광주 현장 사진들을 꺼내 놓았다. 그 사진들에는 두 가지 형태의 사진들이 있다. 하나는 특수군만이 보일 수 있는 무장한 어깨들의 지휘체계이고 다른 하나는 어린이들, 부녀자들, 사회 엘리트들이 일사불란한 지휘에 따라 시체 장사를 하는 모습이다. 이들 민간인은 전남이 자기네 땅인 것처럼 광주 중심가를 활보했다. 업힌 아이도 있고, 안겨있는 아이도 있다. 사진을 보면 이 민간인 숫자는 어림잡아 1,000여 명이다.
특수군 600명은 10·26 이후 소단위로 왔겠지만, 이 민간 그룹 1,000여 명은 전남의 대문을 활짝 열어주었기 때문에 대형 여객선을 타고 왔을 것이다. 5월 24일 도주할 때도 이 대형 여객선을 타고 유유히 갔을 것이다. 신군부의 영관급 장교, 장군들은 당시 지탄 받던 정치군인들이었다. 정치군인들은 간첩이 접근하기 가장 좋은 숙주가 되었다. 간첩이 돈 싸서 접근하면 이들은 자기들이 영웅이어서 사람들이 꼬여 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시 합참의장 유병현은 그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직전 전남 해안 경비부대 모두를 전북 변산반도 이북으로 이동시켰다.”라고 밝혔다. 그가 광주 폭동이 5월 18일에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다는 말인가? 그 역시 간첩에 넘어갔을 것이다.
정치 역사에서 전쟁 역사로 장르 이동
이제까지의 5.18은 정치 역사였다. 정치판의 이해 당사자들이 개입된 흥정의 역사였고, 선전-선동의 역사였다. 여기에는 분석과 과학이 개입할 공간이 말 그대로 제로였다. 하지만 이제부터 5.18은 군사 분야로 넘어왔다. 정치 역사의 시대는 이제 종말을 고했다. 이제부터 5.18은 전쟁역사가 됐다. 북괴가 도주한 전쟁 범죄의 역사이다. 이제부터 군 상황일지와 작전일지를 군 출신들이 정밀 분석해야 한다. 이는 분석과 과학의 장르다. 군사 분야에는 정치적 억지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내가 쓴 5.18 역사는 전쟁사였다. 저들이 쓴 역사는 정치 역사였다. 내가 쓴 역사에는 과학과 증거가 있다. 반면 저들이 쓴 역사에는 과학도 없고 증거도 없다. 모두가 억지고 궤변이었고 밀어붙이기였다. 법관도 검사들도 모두 빨갱이들이었다. 빨갱이 판검사들이 쓰는 법 문서에 논리는 눈을 씻고 보아도 단 한 줄도 없다. 이번 내게 2년 형을 확정 지은 대법원 판결문은 겨우 7줄이다. 그 방대한 내용을 재판하면서도 ’판시사항‘이 단 한 개도 없다. 빨갱이들은 “지만원이 감옥 갔다.” 이 하나의 사실을 만들어 놓고 선전과 선동전을 수행한다. 여기에 무슨 논리가 있고, 증거가 있는가? 나는 21년 동안 무려 42개의 결정적 증거(Smoking Guns)를 찾아냈다. 그 42개 증거를 모두 뒤집지 못하는 한 5.18은 북괴가 저지른 전쟁 범죄 행위가 된다.
육사 총 구국 동지회가 지난 4월 17일 “5.18은 북한이 저지른 전쟁 범죄”로 못 박았다. 이외는 별도로 전광훈 목사를 중심으로 한 인사들이 같은 주장을 소리 높여 펴고 있다. 거물 간첩 출신 김용규가 일본 산케이 신문에 연재한 “김일성의 비밀 교시”, 그리고 그가 책으로 낸 [소리 없는 전쟁]에서 그는 역설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크고 작은 소요에는 반드시 북한이 개입돼 있다. 이는 필연이다.” 전광훈 목사는 남한의 모든 소요는 북괴가 한 것인데 5.18만 그게 아니라고 하면 역사의 방정식이 맞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이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군 간부 출신들은 이 문제를 전쟁 역사로 규정하고, 이제야 풀리는 수수께끼 전쟁 역사를 구체적으로 쓸 것이다.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그동안 내게 가장 궁금했던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5월 21일 하루에 발생한 상황들 한 가지만 보아도 북괴의 게릴라전이 보이고 600명이 보이는데 그 많은 장교와 정보 분석관들이 이 사실을 어떻게 직감하지 못했을까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신군부 고위급 출신들 모두가 지금까지도 북괴군 침투를 한사코 부인하면서, “북괴의 개입은 간첩을 통한 개입”뿐이라고 강조해 왔을까 하는 점이다. 국정원장 출신 장세동은 나의 연구와 군인 명예 회복 운동에 줄곧 태클을 걸기까지 했다.
많은 국민이 차마 북괴가 살인 기계로 훈련된 특수군 600명과 게릴라 모략 심리전 부대인 어린이-부녀자-노인들을 1,000여 명 단위로 투입 시켰을까 상상하지 못했듯이, 나 역시 신군부가 600명의 특수군이 투입됐다는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그것을 숨겼을 것이라는 가정을 그동안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2023년 4월에 육사 총 구국 동지회의 5.18 진상규명 TF(Task Force)가 당시 광주 작전을 지휘했던 전교사(전투교육사령부)가 북괴군 600명의 존재를 알았고, 다급한 시점에서 “북한군 600여 명 침투”라는 말로 상황을 전파했던 사실까지 확인 함으로써 당시 신군부 계엄사령부가 “적의 전쟁 범죄 은닉죄”를 범했다는 데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결론
북괴의 전쟁 범죄 은닉 행위를 저지른 존재는 모두 아래와 같다.
신군부, 김영삼, 김대중, 권영해, 이병기, 이병호, 박근혜.
단, 신군부에서는 어느 선에서 숨기기로 했느냐가 탐구의 대상이 될 것이다.
2023.5.11.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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