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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메시지(88)] 지만원족적[4] 5. 소위가 치른 베트남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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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05-29 16:30 조회12,1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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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메시지(88)] 지만원족적[4] 5. 소위가 치른 베트남전(1)

 

당신과 나 사이에

 

19677, 부산항에서 2만 톤짜리 미군 수송선이 올랐다. 아파트의 몇 배에 해당하는 크기였다. 수송선에 오르는 장병들의 얼굴이 납덩이처럼 무겁고, 눈물만 반짝였다. 배 아래 부두에서는 맹호는 간다.’, 달려라 백마음악이 연주되고, 꽃다발을 든 시민들과 여학생들이 계속해서 손을 흔들었다. 그 아래에는 구둔의 그 여선생님도 와 있었다. 이윽고 뱃고동 소리가 둔탁하게 울려 퍼졌다. 부두의 인파가 점점 더 작아 보였다. 장병들의 얼굴에 이별의 감정과 공포감이 교차했다. 몇몇 병사의 라디오에서 구성진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가사와 멜로디가 장병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항구가 수평선 저 멀리 사라지면서 또 다른 현실이 밀려왔다. 뱃멀미와 배 청소. 멀미로 토하는 장병의 수가 늘어났다. 그런데 또 배의 구석구석을 청소해야 했다. 내가 소속된 공간을 담당하는 지휘자는 나보다 육사 4년 선배였는데, 그는 만만한 나만 불러 임무를 맡겼다. 멀미하면서도 이리저리 다니면서 누워있는 소위들에게 청소 구역을 할당했지만, 그들은 덩치가 큰 데도 엄살들을 부렸다. 2~3일이 지나자 그 지겨웠던 멀미가 사라졌다.

 

환상의 망망대해

 

망망대해, 가장 신나는 시간은 밤이었다. 갑판 위로 올라가면 저절로 감탄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날아다니는 물고기가 사방에서 날고, 하늘에서는 쉴 새 없이 수많은 별똥별이 바다 위로 떨어졌다. 주먹만 한 크기의 밝은 별들이 손만 길~게 뻗으면 잡힐 것 같았다. 망망대해는 신비, 그 자체였다.

 

식사 시간이 되면 필리핀 종업원들이 딸랑이 종을 흔들고 다녔다. 장교 식당은 따로 있었다. 메뉴판이 제공됐지만 식탁에 둘러앉은 장교들은 영어 메뉴판을 읽지 못하고 내가 시키면 모두 미투 미투했다. 가장 잘나가는 메뉴는 치킨이었고 가장 안 나가는 메뉴는 터키였다. 이때만 해도 시절이 좋아 필리핀 종업원들을 고용할 수 있었다. 환상의 아름다움을 선사해오던 바다도 일주일 만에 이별해야 했다.

 

소위가 가면 죽지 않으면 불구가 된다는 백마 28연대

 

나트랑이라는 항구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트럭에 탑승했다. 뜨거운 햇볕 때문에 도로 주변의 땅이 검게 보였고, 가시나무 관목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한 시간 정도 달려가서 닌호아에 있는 사단 사령부에 내렸다. 군용 텐트가 쳐져 있었지만, 낮의 고열에 달구어져서 열을 뿜어내고 있었다. 여기가 바로 보충대였다. 배 안에서는 어지럽다, 멀미한다, 하면서 자기들이 해야 할 청소를 남에게 떠밀었던 덩치들이 보충대에 도착하니 물 만난 고기처럼 팔팔 뛰어다녔다. 고국에서 이미 연결해 놓은 빽들을 찾아 만나고 다녔다. 빽이 없는 소위들 7명은 다음날 깻망아지처럼 생긴 육중한 헬기(CH-47)를 탔다. 소위가 가면 죽지 않으면 불구가 된다고 소문이 나 있는 28연대로 수송됐다. 40분 동안 날았지만, 밖은 볼 수 없었다. 7명의 소위들, 얼굴이 굳어졌고 눈만 반짝였다.

 

나중에 나트랑 항구를 한 번 들렀더니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해변의 모래사장이 매우 길고, 초승달처럼 우아한 커브를 그리고 있었다. 밤이 되니 해변은 불야성으로 변했다. 조개구이와 칵테일 그리고 맥주, 각양각색의 선남선녀들이 평화를 구가하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이렇게 평화를 즐기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목숨을 내놓고 사선을 넘나들며 생지옥 같은 전쟁을 해야 했다. 이것이 당시 월남이었다.

 

월남전은 정규전이 아니라 게릴라전

 

내용을 살피면 월남전은 월남과 월맹과의 전쟁이라기보다는 미국과 월맹 간의 전쟁이었다. 대규모 인력 살상을 염려하고 중국과의 확전을 염려한 미국은 월맹으로 진격하지 않고 월맹 땅에 폭격만 했다. 그리고 주로 월남땅에서 게릴라전을 수행했다. 월남 전쟁은 정규전이 아니라 게릴라전이었다.

 

월남의 군수, 도지사 등 지방행정기관장은 모두 군인이었다. 군수는 대위, 도지사(성장)는 중령, 이들의 집은 근무지로부터 멀리 있었다. 주거지에서 근무지로 출퇴근하려면 베트콩 출현지대를 통과해야 했다. 베트콩에 공물을 바쳐야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 월남군은 그야말로 민병대였다. 월남의 종교인들, 특히 불교 지도자들은 거의 모두 월맹 편이었다. 대선 경쟁에서 차점으로 낙선한 사람이 간첩, 대통령 비서실장이 간첩, 티우 대통령 궁은 거의 간첩으로 차 있었다. 나는 지금의 한국도 이와 같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야당과 노동단체, 종교계, 특히 대형 교회 목사들이 월남을 잡아먹은 월남의 불교승과도 같은 존재라고 확신한다.

 

간첩전에 멸망한 월남

 

사회가 이 지경이기 때문에 월남전은 빈 독에 물붓기식 소모전이었다. 드디어 미국에서는 염전 분위기가 확산하였고, 미국은 1973년 파리에서 키신저와 월맹 레둑토 사이에 평화 협정을 체결하고 손을 떼었다. 당시 월남에 있던 전투기 등 모든 군사 전략자산을 모두 월남군에 다 주고 손을 털고 나왔다. 그래서 당시 월남의 전투력은 세계 4위로 올라섰다. 반면 월맹군 병사는 타이어 조각을 끈으로 발에 얽어매고, 팬티만 입고, 소금으로 밥을 먹는 거지들이었다. 하지만 부패한 월남군은 모두 간첩들의 수하가 되었다. 1995430, 드디어 월남은 완전하게 월맹에 점령됐다. 바다는 보트피플로 가득 찼고 대지에는 킬링필드 도살장이 즐비했다. 통일 후 월맹은 월남을 배신하고 월맹에 동조한 빨갱이들을 가장 먼저 처형했다. 이들은 앞으로 월맹도 배신할 것이라는 이른바 배신자 이론 때문이었다. 지금 남한의 민주당이 똘똘 뭉쳐 평화 협정을 줄기차게 주장하는 데에는 미국-월맹 간에 맺어졌던 이 파리 협정을 모델로 삼고 있다.

 

이 순간을 무를 수만 있다면

 

원래 전입자가 새로 부임하면 포병 대대장에게 전입신고를 해야 했지만 나는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다음 날 새벽에 작전 나가는 보병 제3중대로 곧장 실려 갔다. 땅도, 공기도, 사람도 모두가 낯설어 내 정신이 아니었다. 그냥 밀려다니는 부초 같았다.

 

3중대 관측장교, 전입자는 육사 1년 선배였는데 그는 귀국을 하루 앞두고 있었다. 그날 내가 전입되지 않았다면, 그는 1개월 동안 지속되는 홍길동작전에 투입되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나를 보자마자 그렇게 반가워했던 것이다. 그는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현지 지식은 전혀 말해주지 않고 반갑다 수선만 떨고 사라졌다.

 

무전병 1, 당번병 1명이 내 모든 부하였다. 두 병사가 완전군장을 꾸려서 왔다. 내가 짊어져야 할 묵직한 짐이었다. 군장에는 물이 담긴 수통 4개가 달려 있었다. “소대장님, 여기에서는 물을 달라고 해서도 안 되고 주어서도 안 됩니다. 물이 생명입니다. 땀이 많이 나서 어지러우면 이 소금 알을 두 알씩 드십시오. 많이 드시면 물이 막힙니다.”

 

새벽 4, 야지로 이동해가니 병력 수송용 헬기(WH-1H)들이 벌떼처럼 날아와 한 대당 5명씩 실어 갔다. 나는 동안 대지에서는 강물, 냇물 등 물빛만 이따금 반짝였다. 헬기는 가끔 완전히 옆으로 누워서 날았다. 문이 닫혀 있지 않아, 안전벨트를 맸는데도 있는 힘을 다해 의자 봉을 움켜쥐었다. 후에 알고 보니 원심력 때문에 사람이 쏟아질 염려가 없었다. 끝도 없이 전개된 밀림의 바다, 한 고지 정상에 헬기가 정지했다. 고지 정상은 뾰족한 봉우리가 아니라 고산지대의 평야였다. 헬기가 풀 때문에 내려앉지 못하고 2미터 높이에 떠 있었고 떠 있는 동안 장병들이 한 사람씩 뛰어내렸다.

 

한동안 행군하니까 밀림지대가 나타났다. 밀림 속에는 바위들이 드넓게 깔려 있었다. 초가집 크기의 바위들이 이리저리 뒤엉켰고, 바위와 바위 사이에는 공간들이 형성되어 있어서 천연적인 땅굴들이 미로를 이루고 있었다. 틈 속에서 베트콩이 돌출하여 사격한 다음 미로 속으로 숨는다 해도 별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서웠다. 이 바위에서 저 바위로 건너뛰었다. 건너뛸 때는 힘이 집중됐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그래도 날씨가 뜨거우니 금세 말랐다. 마르면서 또 젖고, 이러는 사이에 땀은 하얀 소금이 되어 전투복을 하얗게 채색했다. 현기증이 나면 소금 두 알을 먹고, 물 마시고.

 

갑자기 선발대에서 드드드드득. 총성이 울렸다. M16 소총 소리는 둔탁했다. 모든 병사가 바위에 납작 엎드렸다. 눈에서는 공포감이 흘렀다. 엎드리면서 순간적으로 떠오른 것은 보고 싶은 얼굴들이었다. “이 순간을 무를 수만 있다면~”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내가 지구의 끝자락에 매달려 추락할 운명에 처했다고 생각했다. 1분의 시간이 매우 길었다. 곧 바위산을 중대가 타고 앉아 수색했다. 병사들이 플래시와 총을 들고 동굴을 뒤졌다. 동굴 속에서 총성이 울렸다. 이윽고 낭보가 흘러나왔다. 베트콩 무기고를 발견한 것이다.

 

전과에만 흥분한 지휘관들

 

무기를 수도 없이 꺼냈다. 소총과 박격포, 적탄통 등. 적탄통은 수류탄 두 개 크기의 뾰족한 쇠뭉치인데 막대기 같은 발사대에 꽂고 사격하면 장갑차가 뚫어지는 위력 있는 무기였다. 우리 장갑차가 이 적탄통에 많이 당했다. 중대장은 나보다 육사 6년 선배였는데 몸이 깡마르고 말수가 적었다. 그는 연대 상황실에 전과 보고를 했다. 대대장과 연대장은 무전기를 공유하면서 기뻐했다. 100여 점이나 되는 무기를 헬기로 가져가겠다고 했다. 헬기들이 날아왔지만 내려앉을 수가 없었다. 바위산 옆에는 거대한 나무들이 들어차 있는데, 서로 태양 빛을 받으려 하다 보니 높게 높게 자라 올라갔다. 그들 사이로 마치 동그란 우물처럼 공간이 터져 있었다. 헬기는 밧줄로 망을 내리고, 병사들은 망 속에 무기를 담아 올렸다. 이렇게 하기를 여러 번, 중대장은 연대장과 대대장과의 교신을 여러 번 했지만, 연대장과 대대장은 물을 보급해 줄 생각을 하지 못했고, 무기 수에만 흥분해 있었다. 그 무기에 훈장들이 줄줄이 달려 있고, 고과점수가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말로만 수고 많다라고 했지 수고한 병사들이 목말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중대장 역시 상관들로부터 칭찬 받는 소리에 취해 다음번 오는 헬기에 물통 좀 보내주십시오.’ 이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갈증과의 전쟁

 

갑자기 칠흑으로 변한 바위산, 중대는 바위 위에서, 베트콩은 바위 동굴 속에서 밤을 지새웠다. 목이 탔다. 병사들은 소리가 들릴까 봐 통조림을 감싸고 절개하여 커피를 꺼냈다. 그리고 그 커피에 오줌을 받아 마시기도 했다. 목이 타는 갈증,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 중 하나였다. 중대장 당번병이 마지막 오렌지 한 개를 중대장에 전했다. 그게 마지막 수분이었다. 중대장이 껍질을 벗기더니 나를 보고 웃었다. 칠흑에도 하얀 이빨은 빛을 냈다. 반을 나누어 내게 내밀었다. 그것도 그 순간뿐이었다. 하룻밤 전체를 갈증과의 싸움으로 지샜다.

 

밤새 고통을 겪은 중대장은 용기를 내서 연대 상황실에 무전을 했다. 연대장이 곧장 받았다.

연대장님, 목이 몹시 마릅니다. 긴급히 물을 공수해 주십시오.”

오 그래, 알았다.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평지로 이동하라.”

또 다른 정글, 바위틈에서 팔뚝 굵기의 대형 지네가 빠르게 다가왔다. 검고, 붉고, 노랗고. 기가 질려 나는 끙끙 소리만 내고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 본 경력병, 이 병장이 다가오더니 곧바로 철모 띠에서 작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모기약을 꺼내 눌렀다. 모기약이 한 줄로 분출되어 지네를 덮었다. 순간 지네는 괴롭다는 듯 꿈틀거렸다. 뒤따라온 상병에게 병장은 고갯짓했다. “, 그어대,” 상병이 재빠르게 성냥불을 그어댔다. 지네는 삽시간에 화염에 싸여 오그라들더니 한 줌의 재로 변했다. 그것이 고참병들의 순발력이었다. 산거북이도 보았다. 어떤 병사는 초록색 뱀도 보았다고 했다. 어떤 병사의 목덜미에는 나무에서 떨어진 거머리도 박혀 있었다고 했다.

 

살아남는 것, 그 이상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얼굴들은 털북숭이로 변했다. 기지에 왔다. 기지라 해야 24인용 군대 천막이 쳐지고, 벽과 천정이 베니아 판으로 내장되어있는 숙소였다. 군대용 야전 침대에 베니아 판을 깔고 자는 곳이었다. 부중대장, 일명 중대 부관은 중위였다. 중대 부관은 작전에는 나가지 않고, 작전지역에 보급품을 헬기에 실어 보내는 일을 했다. 부관이 얼음통에 맥주를 얼 정도로 차게 담가놓고 기다렸다. 당시는 크라운과 OB 캔맥주가 술의 전부였다. 소주는 없었다. 중대장은 소대장들을 모두 불러 마음껏 마시라며, 턴테이블로 유행가를 틀게 했다. 현미, 문주란, 정훈희 등 당시의 유행가 곡들이 흘렀다. 고국에서는 외면했던 곡들이 그날은 가슴을 파고들었다. 살의 여기저기를 꼬집어 보았다.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몇 번이고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이대로 살아서 고국에 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남는 것, 그 이상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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