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문화 창조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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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5-04-20 22:43 조회6,32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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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문화 창조운동을 전개합니다
가치문화 창조운동의 절실함
해방 이후,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초기의 민주주의는 자유가 키워드였습니다. “남이야 전봇대를 뽑아 이를 쑤시든 말든”이라는 유행어가 곧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상징했습니다. 하지만 전봇대는 공공의 자산입니다. 이처럼 오도된 민주주의가 도입된 이래 한국민주주의는 지금까지 이렇다 할 개선의 이정표 없이 타성적(惰性的)으로 흘러왔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지금의 시국 위험성에 대해 염려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가 자유민주주의를 압도하고 있는 사회현상에서 오는 공포감입니다. 이 위험한 시국을 하루라도 빨리 극복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싶은 것이 애국 국민들의 간절한 소망일 것입니다. 하지만 공산주의를 물리적으로 정복하는 첩경은 그 어디에도 없어 보입니다. 극복하기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은 기본(basic)으로부터 출발하는 길일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의 정의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의 지혜를 동원하여 공공선(public good)을 추구하는 정치시스템’(political system)입니다. 보다 나은 미래사회를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지식과 지혜를 동원하는 것이 습관화된 사회가 자유민주주의 사회인 것입니다. 이런 사회를 만드는 구동력이 바로 공론의 장이고, 공론수렴의 방법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가 찾아 본 가장 효과적인 공론수렴의 방법은 토의(discussion)였습니다.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발의내용의 질을 높이고, 참여자들 서로가 타인의 창의력을 고무시켜주고, 이를 실행방책으로 수렴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매우 유감스럽게도 우리사회에서는 세 사람만 모여도 의견이 충돌하고 얼굴을 붉히는 일이 다반사로 발생합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엔진을 구축하지 하지 않은 채, 초창기에 흘러들었던 전봇대 식 자유방임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value)는 ‘보다 나은 사회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토의를 통해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려면, 사회의 구성원 개개인이 나날이 발전을 해야 할 것입니다. 지식을 습득하는 학습자세가 필요하고, 지혜를 연마하는 탐구의 자세가 필요하고, 토의에 참여하는 타인들로 하여금 지혜를 촉발하도록 격려하는 협력의 자세가 필요하고, 타인들의 자존심을 유리그릇 대하듯 조심스럽게 존중하는 선진매너가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는 개선(improvement), 토의(discussion), 매너(manner)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매너가 훌륭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가 있다면 그 사회는 참으로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사회일 것입니다. 문화부가 있습니다. 문화부는 문화재를 관리하고 각종 문화행사를 하는 것 정도의 업무만 지속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업무는 사회를 구성하는 수많은 공간에서의 분위기를 밝고 신선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매너문화를 가꾸는 일일 것입니다.
가치(value)란 무엇입니까?
일본 가라테를 정복한 최배달의 어록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를 위해 목숨 바치는 자가 가장 아름답다.” 가치를 위해 목숨 바치는 자가 가장 아름답다는 뜻일 것입니다. 가치란 무엇일까요? 한국사회에 범람하는 가치는 돈, 출세, 권력입니다. 이 세 가지를 위해 사람들은 남을 속이고 정의를 무시하고 범죄를 저지릅니다. 돈과 출세와 권력은 공공적 가치가 될 수 없습니다. 한국기업들이 당연한 정의로 받아들이는 가치가 ‘이윤극대화’입니다. 이 기업 가치는 한국 사회 전체에 비판 없이 수용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상의 모든 가치는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악입니다. 이윤극대화는 잘못된 기업가치입니다.
굴지의 미국기업 GE가 위기를 맞았습니다. 화공학 박사인 잭 웰치가 1980년부터 20년 동안 회장을 하면서 다시 번창했습니다. 잭 웰치는 단위 사업체 사장들에게 강조했습니다. “내게 얼마의 돈을 벌겠다고 말하지 말라. 신선한 가치를 창조해 가져와라. 새로운 방법에 목말라 하라. 내가 창조했든 남이 창조했든 새로운 것을 가져와라. 모든 문제는 현장에서 토의를 통해 즉시 해결한다(workout).”
2004년부터 일본권 만엔에 초상으로 등장하는 시부사와 에이치는 1840년생입니다. 그는 1870년대에 일본 고유의 자본주의를 창조하였습니다. “모든 기업은 한 손에는 공자의 도덕률을, 다른 손에는 주판을 들어라, 주판은 오로지 도덕률 아래서만 두어라.” 오늘날의 일본기업 대부분이 이 가르침대로 경영을 합니다. 그는 일생에 500개의 기업, 600개의 사회사업체를 만들었지만, 그의 이름으로 등록된 것은 단 한 개도 없었습니다.
해방 이후 일본기업은 ‘개선’(改善:Kaizen)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습니다. “개선을 극대화하라, 그러면 이윤은 자동적으로 과일처럼 열린다.” 1920년대에 송하전기(松下電器:파나소닉)를 설립한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우리의 누이와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수명은 2배로 늘리고 가격은 절반으로 줄이는 제품을 만들라”고 명령하여 성공시켰습니다. 그는 그의 기업을 아래와 같이 정의했습니다. “송하전기는 인간을 제조하는 회사다. 아울러 제품도 만든다.” 일본의 젊은 벤처 사업자들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합니다. 금전적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가를 멸시합니다. 자기가 개발한 제품을 가지고 계속 수익을 올리는 것을 수치로 여깁니다. 개발 자체가 사업이고, 그것으로 수익을 올리는 것은 벤처사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업주가 이윤극대화를 기업가치로 내걸면 거의 모든 사원들은 “내가 겨우 기업주 돈 벌게 해주려고 내 몸 상해가면서 열심히 일해야 하느냐”며 저항합니다. 그래서 노조가 득세합니다. 하지만 인류의 숭고한 가치를 내걸면 모든 사원들은 일일이 지시를 받지 않더라도 열심히 일합니다. 기업 가치에 동의하면 모든 사원이 뭉쳐집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노조가 설자리를 잃게 됩니다. 일본은 개선을 극대화하기 위해 토의를 생활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으로 보면 우리나라에 가치를 추구하는 신선한 문화를 심는 운동은 참으로 중요하고 격조 있는 계몽운동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치에 역행하는 사회구조가 있습니다
1942년 IBM의 한 중역이 기업에 무려 천만 달러어치의 손해를 끼쳤습니다. 그는 기업주를 볼 낯이 없어 사표를 우송하였습니다. 창업자 왓슨이 그를 불렀습니다. “자네, 내가 바보인줄 아는가? 나는 자네에게 천만 달러를 투자했네. 잘못의 원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네일세. 분석가들을 붙여줄 테니 잘못의 원인을 찾아내게. 더구나 자네는 우리 회사에서 가장 근면하고 열심히 일하는 중역인 것으로 이름이 나 있는데,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일꾼을 한번 실수했다고 해서 자르면 그 누가 회사에서 공격적으로 일을 하겠나?” 반면 한국기업들은 어떻게 합니까? 대부분이 가차 없이 잘라냅니다. 잘못으로부터, 과거로부터 배우려는 노력이 없는 것입니다.
1979년, 영국에서 제브뤼헤(Zeebrugge)호로 명명된 초고속 여객선이 손님을 가득 싣고 떠났습니다. 몇 개의 문이 채 잠겨있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했고, 빠른 속도로 커브를 틀다가 많은 인명이 문밖으로 쏟아져 사망했습니다. 검찰이 누가 범인지를 찾아내려 했지만 딱 부러지게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이라고 단정할 수 없었습니다. 문단속을 책임진 직원들은 “그 날 승객이 원체 많아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다 배가 출발할 때까지 미처 문을 잠그지 못했다. 그 날은 평소에 비해 승객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선장이 이를 감안하여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고려해 줄 것으로 믿었다”고 항변하였습니다. 수사의 초점은 선장을 향했습니다. 하지만 선장에게도 죄를 물을 수 없었습니다. “여객선의 이미지 관리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시출발이며 선장은 정시출발이라는 원칙을 준수했다”고 항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고로 수많은 승객들이 참변을 당했지만 국가는 아무도 처벌할 수 없었습니다.
이로써 영국 정부는 사고의 원인이 시스템 부재에 있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선장과 문단속 요원 간에 의사를 전달하는 통신기기도 없었고, 출발 전에 체크해야 할 업무 매뉴얼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발견됐습니다. 이 사고를 계기로 영국 정부는 시스템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많은 인명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병원, 학교, 수송시설, 기업, 백화점, 호텔 등에 최소한의 안전과 품질을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의 설치를 강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국표준(BS) 5750이었고 이는 다시 국제표준인 ISO2000 시리즈로 채택됐습니다. 이 시스템이 지구상의 모든 제조업에 강요되었습니다.
2017년 6월 14일, 런던의 공공 임대아파트인 그렌펠타워가 불에 타 72명이 사망한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메이’ 당시 총리가 조사위원회를 출범시켰고, 실무팀장에 도시계획 분야에서 34년간 일한 베테랑을 임명했습니다. 건축 관련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29명의 조사위원을 임명했습니다. 이들은 조사과정을 일일이 홈페이지에 공개했습니다. 조사의 주안점은 처벌이 아니라 시스템에 대한 진단이었습니다. 조사과정에서 피해주민들을 배제했고, 면회도 거절하면서 과학적으로만 조사했습니다. 잘못의 과학적 원인을 조사하여 이후 똑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는 것이 조사의 목표였고, 처벌은 부산물(by-product)이었습니다. 일부 주민들이 "런던소방대 간부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모든 조사가 마무리돼야 책임자들을 찾아낼 수 있다“며 거부했습니다. 46가지 권고 사항이 교훈으로 생산되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1995년 삼풍 참사가 발생했고, 그 전후로도 많은 사고가 연달았습니다. 삼풍 참사에서는 500여 명이 사망했고, 1,000여 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런 끔찍한 사고가 날 때마다 한국에서는 검찰이 가장 먼저 나서서, 누구를 처벌할 것이냐에 대해 조사를 했습니다. 사고의 원인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처벌받지 않으려고 문제의 원인을 숨겼습니다. 처벌은 연례행사가 되고, 사고의 과학적 원인은 땅에 묻혀 이후에도 똑같은 사고들이 반복돼 왔습니다. 이러한 문화권에서는 사회가 개선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역사로부터 영원히 배울 줄 모르는 국민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복지부동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복지부동은 시스템의 산물이지 공무원 의식 때문이 아닙니다. 이를 설명하려면 먼저 시스템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1990년에 이르기까지 은행 객장에는 질서가 없었습니다. 식자들은 이를 의식 탓이라고 진단했습니다. 하지만 국민은행을 시발로 순번대기 번호표 장치가 등장하자 객장 질서가 선진국처럼 좋아졌습니다. 무질서는 의식 탓이 아니라 시스템 탓이었습니다.
3대의 공중전화기가 나란히 있습니다. 선진국 사람들은 한 줄을 섭니다. 세대의 전화기 중 먼저 끝나는 전화기를 맨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차지합니다. 먼저 오면 먼저 서비스를 받습니다(first come first served). 하지만 한국 국민들은 세 줄로 섰습니다. 재수가 좋아야만 일찍 전화기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일찍 와야 소용없다. 재수가 좋아야 하고, 줄을 잘 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줄 시스템은 국민의식을 합리적으로 가꾸고, 세 줄 시스템은 요행의식을 심어줍니다. 이처럼 의식은 시스템의 산물인 것입니다.
공무원들이 복지부동하는 것 역시 의식 탓이 아니라 시스템의 산물입니다. 미국의 감사원(GAO)은 경영학도와 분석학도로 채워져 있습니다. 반면 한국감사원은 법률학도로 채워져 있습니다. 미국 공무원들의 마인드에는 1달러 소비에 1달러 이상의 가치를 창조라는 서약이 입력돼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 감사원의 감사목표는 ‘공무원들이 국가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 있어, 장애가 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기관장의 리더십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법률과 시스템 상의 문제가 무엇인가? 개선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감사관이 공무원들을 자주 방문하여 컨설턴트 역할을 수행합니다.
반면 한국 감사원은 케케묵은 체크리스트를 가지고 갑자기 공무원에 기습 접근하여, 업무 전체를 보지 않고, 업무내용을 살라미식으로 잘라 각 조각에 OX표를 치게 합니다. 경영학자의 눈으로 보면 상을 주어야 할 공무원을 처벌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공무원들은 감사관들을 소통할 수 없는 검찰로 인식합니다. 업무를 열심히 하면 말이 통하지 않는 감사관들로부터 더 많은 감사를 받아야 합니다. 살아남으려면 일하는 흉내만 낼 수밖에 없는 것이 시스템의 산물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는 사회발전에 가장 중요한 ‘개선’이라는 가치를 추구할 수 없게 하는 구조적 문제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시정되려면 이것을 문제점으로 인식할 수 있는 국민의식이 자라나야 할 것입니다.
가치문화 계몽운동의 중요성
독일이 나폴레옹 군대에 패배해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지배를 받으면서도 독일 국민은 수치를 모르고 향락과 이기심에 빠졌습니다. 1807년 피히테가 나섰습니다. “독일이 패망한 것은 군대가 약해서가 아니라 독일인 모두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을 통해 ‘국가혼’을 길러야 한다.” 그 후 64년이 지난 1871년, 독일의 영웅 몰트케 대원수가 프랑스를 점령하고 돌아오면서 연변에서 환호하는 국민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독일의 승리는 나와 군인들의 공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국가혼을 주입시켜 준 초등학교 교사들의 공이다.”
1864년, 덴마크는 독일과의 전쟁에 패해 비옥하고 광활한 홀스타인 지역을 빼앗겼습니다. 망연자실, 모두가 허탈감에 빠져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그룬트비라는 목사와 달가스라는 예비역 대령이 나서서 시름에 빠진 국민을 계몽했습니다.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바다에서 불어오는 소금 바람 때문에 그리고 척박한 돌밭 때문에 나무도 곡식도 자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품종을 개량하고 낙농을 발전시켰습니다. 정신운동을 펼쳤습니다. 이런 덴마크는 오늘날 우리보다 2배 이상 더 잘 살고 있습니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박정희대통령의 업적에 대하여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박정희는 경제를 빠른 기간에 압축해서 급성장시켰을 뿐, 정신문화는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판에는 문제가 좀 있어 보입니다. 왜 모든 발전 임무를 박정희 대통령 혼자 다 짊어져야 하느냐에 대한 문제입니다. 비판하는 사람들은 사회발전을 위해 무슨 공을 쌓았는지 묻고 싶어집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은 그 자체로 지구 공간에 우뚝 선 국가발전역사의 모뉴먼트(monument)입니다. 새마을운동은 한국처럼 짧은 기간에 경제성장을 하고 싶어 하는 수많은 국가들의 로망이 되어 있습니다. 북한의 김정일도, 중국의 등소평과 후진타오까지도 부러워했던 정신운동이었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필요로 하는 정신운동은 피히테처럼, 그리고 그룬트비와 달가스 대령처럼 우리가 나서서 전개해야 합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국민의 수를 늘려야
북한 공산주의를 지탱하는 힘은 학습을 통해 미국에 대한 증오심을 공감케 함으로써 주민을 콘크리트처럼 뭉치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애국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가치가 공유돼 있지 않아 국민 에너지가 모래알처럼 분산되어 있습니다. 분산되어 있는 에너지를 뭉치게 하려면, 누군가가 나서서 가치를 공유케 하는 정신문화 운동을 전개해야만 합니다. 누구나 다 관(crown)을 쓴 리더가 될 수는 없습니다. 독일 국민의 정신적 DNA를 바꾼 피히테도, 덴마크 국민에 영혼 에너지를 공급한 그룬트비 목사도, 달가스 대령도 다 ‘무관의 리더’(uncrowned leader)였습니다. 일본 고유의 도덕적 자본주의를 심은 시부사와 에이치도 ‘무관의 리더’였습니다. 서구의 문물을 빨대로 흡입할 수 있도록 옥스포드 사전을 영-한문 사전으로 전환시킨 ‘후쿠자와 유키치’는 한문을 사용하는 모든 나라에서 ‘무관의 리더’입니다. 참고로 ‘후쿠자와 유키치’는 2024년 이전 40년 동안 일본 1만엔권에 초상이 올랐던 위인입니다. 이런 위인들처럼 우리는 무관의 리더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위와 같이 내일을 가꾸는 중차대한 일은 너무나 전문적이어서 정치인들이나 공무원에 맡길 일이 아닐 것입니다. 국가가 할 수 없는 일은 반드시 국민이 해야 할 것입니다.
운동전개 방법
가치문화 창조운동에는 추진 본부가 있어야 하고, 추진 목표와 전략이 있어야 하고, 장기간에 걸친 계몽활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운동’(movement)에는 운동을 리드하는 추진본부가 있어야 하고, 목표가 있어야 하고, 지속적인 계몽활동이 있어야 합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정치 사건들이 무슨 무슨 운동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새마을운동을 제외하면 ‘운동’이란 단어로 표현된 단기사건들 모두가 진정한 의미의 ‘운동’(movement)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가치문화 창조운동을 전개한다면 이는 새마을운동에 이은 대한민국 두 번째 국민운동이 될 것입니다.
전국에는 동창모임, 애국모임, 사회모임, 지역모임, 동호인 모임 등 수많은 모임들이 있습니다. 그 모임들의 에너지를 한곳으로 뭉치게 하려면 콘크리트 역할을 하는 가치가 공유돼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모임들이 가치문화 창조운동에 동참한다면 우리는 폭풍과 홍수가 휘몰아쳐도 암반처럼 동요하지 않는 ‘정신적 귀족클럽’, ‘대한민국을 지키는 정신적 야전군’을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기해 주십시오. 육사인의 정신이 무엇이겠습니까? 군복을 벗었다고 해서 조국수호에 대한 육사정신이 사라질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육사는 영원합니다. 조국이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최전방에서 국가의 존망을 책임져야 할 집단이 우리 육사인이며, 지금이야말로 모든 육사인들이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앞으로 나서야 할 시기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새로운 민주주의를 리모델링하는 일에 서까래 한 개씩이라도 날라야 한다는 심정으로 나서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것이 곧 기적을 낳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끝
202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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