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가면서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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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만원 작성일25-07-27 17:12 조회50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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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가면서 삽시다
2차 대전 시대의 자유공간
2차대전을 지휘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1941년 의회 연설이 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가 누려야 할 핵심 자유를 4가지로 들었다. ① 표현의 자유(Freedom of speech) ② 신앙의 자유(Freedom of worship) ③ 결핍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want) ④ 공포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fear)였다.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고 싶다. 갑질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harassment). 소위 때 영화 [황양의 무법자]를 보면서 나는 내가 타인의 간섭이나 갑질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최고의 실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박정희 시대의 자유공간
빨갱이들은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두 대통령들이 억압한 자유는 빨갱이들의 공산화 표현에 대한 자유였다. 우리 국민을 기아로부터 자유롭게 한 위인은 두말할 나위 없이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 궁핍으로부터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는 이조시대로부터 새마을운동 이전까지 이 땅에 살면서 굶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자비로운 박정희 대통령이었지만, 그는 이광요 수상처럼 엄격했다. 간첩과 강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밤 12시 이후 통행을 금지시켰고, 빨갱이 자식들이 출세를 해서 공산주의를 확신할까봐 이승만 대통령이 유지해오던 연좌제를 풀지 않았다. 빈부간의 위화감을 줄이기 위해 컬러tv 생산을 제한했고, 사회기풍이 난잡해질 것을 우려해 장발을 단속하고 여성의 스커트 길이를 단속했다. 국산화를 장려하기 위해 무역장벽을 높이고 국내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기업보조금(Subsidy)을 지급하였다. 달러를 아끼기 위해 해외유학을 제한하고, 해외여행, 해외이주를 금지했다.
전두환 시대의 자유공간
개발도상국이라는 수치스러운 꼬리표를 떼어내기 위해 국력의 웅비를 꾀하고, 국격을 상승시키기 위해 그는 한국을 통제의 나라에서 자유의 나라로 판도를 바꾸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부자나라들의 갑질로부터 국가를 해방시켰다. 애국심의 상징인 ‘국산품 애용’을 폐기했다. 선진국에서는 SONY TV를 400달러에 사서 쓸 때, 우리 국민은 1,000달러에 아남/금성 TV를 사서 썼다. “외제품을 사지 않으려면 국산품도 외국에 팔지 말아야지” 떳떳하지 못한 얌체의식을 버리게 했다.
WTO 시대를 10년 앞에 두고 무조건 외국 제품을 수입시켰다. 아늑하게 보호를 받고 땅짚고 헤엄치기로 돈을 벌어오던 국내 업체들이 ‘나 죽는다’며 아우성을 쳤다. 하지만 전두환 대통령은 기업이 내는 우는 소리를 무시했다. 우리 기업이 국내시장에서 선진국 제품과 싸우려면 기업의 창의력이 절대적이었고, 창의력은 자유공간에서만 발산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억압됐던 모든 자유를 풀고, 기업을 꽁꽁 묶어왔던 규제를 풀었다. 국민 대부분의 반대를 무릅쓰고 12시 통행금지를 폐기했다. 풀면 위험하다는 연좌제까지 풀었다. 유학을 자유화하고 해외송금을 자유화하고 해외 이주도 장려했다. 우리나라 역사상 자유공간이 가장 넓었던 시절이 바로 전두환 시절이었다.
지금은 표현의 자유가 봉쇄된 분서갱유 시대
지금은 대한민국 역사상 자유공간이 가장 좁아져 있다. 전두환 시대의 자유공간이 100이었다면 지금은 10도 안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자유인 ‘표현의 자유’가 봉쇄되었고, 말하면 잡혀간다는 공포감에 [공포로부터의 자유]가 박탈당했다. 미약하고 순한 야생동물이 아나콘다의 입속으로 빨려들어 가듯 우리는 지금 그런 야생동물이 되어 공산당 조직에 삼켜지고 있다.
2025.7.27.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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