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5·18 왜곡세력이 지만원 광주재판에서 승리한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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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사논객 작성일23-01-13 22:48 조회2,835회 댓글8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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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광주대교구가 1987년 출간한 5·18사진화보집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광주의거자료집 2”는 북한 원전이라는 사실이 2015년 8월에 탄로나자 (https://www.facebook.com/photo/?fbid=1050317641648144&set=a.1052413104771931 ) 남재희 등 광주 신부들은 그들이 과거에 사용하였던 가짜 광주사태 사진들 대신 진짜 광주사태 사진들을 가지고 지만원 박사에게 전쟁을 선포하였다. 즉 아래 사진에서 원으로 표시된 할머니 정체에 의문을 품은 것은 할머니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해남 할머니 심복례씨를 사주하며 지만원 박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게 하였다.
2015년 9월 1일부터 광주신부들과 광주단체들로부터 그런 사주를 받은 심복례 할머니는 위 사진 속의 할머니가 자기라는 거짓말을 하며 그해 10월 20일 박남선과 더불어 지만원을 상대로 억대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때 심복례 할머니와 박남선의 만남은 운명의 만남이었다. 왜냐하면 1980년 5월 24일 그녀의 남편 김인태씨 사망사건의 가해자가 바로 박남선이었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에서 왼손에 M16유탄발사기를 든 박남선이 (김대중의 내란음모조직이 5월 19일 광주로 동원한 해남농민) 김인태씨 납치를 지휘하고 있다.
김인태씨 납치되자마자 전남도청 안에서 시민군들에게 인민재판을 받던 중 머리를 둔기에 맞고 사망하였다. 광주 신부들이 이 사건 가해자를 피해자의 처 심복례씨와 공동 고발인이 되게 하여 소송장을 제출한 후 문제가 생겼다. 왜냐하면 법적 증거물인 모든 5·18기록물은 심복례씨가 광주사태 기간 중에 광주를 방문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복례씨는 광주사태 끝난지 사흘이 지나서야 광주로 갔는데, 어떻게 그녀가 광주사태 기간 중에 무장시민군들과 함께 시민군 활동을 하였다는 광주단체들의 주장이 성립될 수 있겠는가? 5·18 묘지 기록물에만 그렇게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심복례 본인도 자기는 광주사태 기간 중에 해남에서 농사짓고 있었을 뿐 광주에서 시민군 활동을 한 적이 없었다고 증언한다. 그런데 어떻게 광주사태 사진 속의 인물이 자기라며 지만원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가?
이렇게 재판이 절벽에 부딪치자 광주 신부들과 광주단체들은 심복례 할머니가 광주사태 때 광주에 있었던 것으로 사건을 만들겠다며 또 한 장의 사진을 증거물로 제출하였다. 즉 힌츠페터가 5월 23일 광주 상무관에서 찍은 여성이 심복례였다는 것이다. 즉 아래 사진은 심복례씨가 자기 남편 김인태씨 관 앞에서 통곡하는 사진이라는 주장이었다. 김인태씨가 박남선 등 일군의 시민군들에게 납치당한 날은 그 다음 날이었는데, 관이 하루 전에 예비되었다는 주장인가?
1980년 5월 23일 오후 3시경 한민통 요원 김사복의 안내로 전남도청 맞은편 상무관에 들어오고 힌츠페터의 카메라가 자기를 향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갑자기 "아이고 내새끼 어째스가아 아이고 내새끼 어재스"라며 어설프고 아주 어색한 전라도 사투리로 통곡하는 여자가 있었다. 영상 속의 여자 얼굴로 보아 저 얼굴이 벌써 나이 30대의 시민군 아들을 둔 노년의 여인 얼굴이었을까? 입으로는 "아이고 내새끼 어째스가아 아이고 내새끼 어재스" 하면서 눈을 자기 아들 관을 향한 것이 아니라, 힌츠페터 카메라가 계속 자기 쇼를 찍어주고 있는지를 관찰하고 있었다. 광주 신부들과 광주단체들은 이 통곡 쇼하는 여자 얼굴이 아래 좌측 사진 원 속의 할머니보다 심복례 할머니와 더 닮았다고 생각하였는지 처음에는 이 사진으로 심복례 할머니가 광주사태 기간 동안에 광주에 있었던 것으로 사건을 만들려 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주장의 일관성이 없어진다. 심복례 할머니가 시민군 활동을 하였다는 것인가 아니면 통곡을 하고 있었다는 것인가?
두 사진 속의 여인의 얼굴이 달라도 너무 달라 오히려 재판에 불리해지자 광주 신부들과 광주단체들은 2016년 5월에는 목포 김진순 할머니를 데리고 와서 위 사진이 자기 사진이라면 지만원을 상대로 소송을 걸게 하였다.
제1심은 '통곡 쇼' 사진 속의 여인이 김진순 할머니라는 주장은 황당하고 말도 안된다며 코웃음쳤다. 즉. 1심은 김진순 할머니가 지만원을 상대로 건 소송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2심과 대법원은 '통곡 쇼' 사진 속의 여인이 김진순 할머니 맞다고 판단하였다. 2심은 판결문 3) ③에서 이렇게 적시한다:
"피해자 김진순은 당심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사진 속 인물은 증인이 맞다', '증인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 아들 망 이용충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망 이용충이 1980. 5. 21. 2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고, 증인은 당시 아들을 찾으러 다니고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피해자의 나이가 고령이어서 세부적인 사정관 관련해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으나, 사진 속 인물이 본인이라는 점에 관하여는 분명하게 여러 차례 진술하였고, 달리 이와 모순된 사정은 보이지 아니하므로, 피해자의 진술은 신빙성이 있다. 따라서 사진 속 인물은 피해자라고 인정할 수 있다." (2심 판결문 32~33쪽)
그러나 '통곡 쇼' 사진 속의 여인이 김진순 할머니 맞다는 2심과 대법원의 판결은 법적증거물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이용충은 5월 22일 여러 시민군들과 함께 광주교도소를 습격하다가 그 날 오후 2시경 교도소 앞 도로에서 사망하였으며, 그의 시신 검시가 실시된 일시와 장소는 5월 30일 오후 조선대 부속병원이었고, 검시 후에 바로 망월동에 안장되었으며 그의 시신이 상무관으로 운구된 적은 없었다. 그의 가족도 5월 30일 이후에야 비로소 그의 사망 통보를 받았다. 따라서 김진순 씨가 5월 23일 상무관 자기 아들 관 앞에서 통곡하였다는 2심과 대법원 판결은 5·18을 크게 왜곡하는 판결이다.
피고 지만원이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법원이 사실 관계를 틀리게 아주 잘못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5월 23일 상무관 '통곡 쇼' 사진 속의 여자는 5·18 유족들도, 5·18 유공자들도, 광주단체들도, 80만 광주시민들도 누군지 모르는 여자이다. 따라서 그 여자의 정체에 대해서 5·18 연구가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정당한 것인데, 2심과 대법원에서 사실관계를 왜곡하여 목포 김진순 할머니라고 판결하였을 때 광주사태 사진 속의 인물 연구는 유죄로 인정된다. 그러나 도대체 법원의 아주 크게 잘못된 판결로 거짓이 사실을 지배하게 하여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원심은 김진순 할머니의 고소장에 증거능력이 부족하다고 인정하지 않았는데, 2심에서 증거 능력이 있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고,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며 2심 판결을 모두 그대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2심은 김진순 할머니의 고소장의 증거능력을 전혀 입증하지 못하였으므로 이제 이 재판은 재심 청구되어야 한다. 1월 12일의 대법원 판결이 잘못 되었다. 김진순 할머니 관하여 2심 판결이 잘못 되었으므로 대법원은 당연히 검찰의 상고를 파기 환송하여야 했다.
여기서 지만원의 광주재판 시발점이었던 맨위의 사진을 다시 보자. 이 사진 속의 할머니도 5·18 유공자들과 광주시민들은 누군지 전혀 알지 못하는 인물이다. 만약에 이 사진이 심복례 할머니가 민주화운동을 하는 사진이었다면 어째서 민주화운동 동지들 중 아무도 이 할머니가 누군지 알지 못하는가? 심복례 할머니는 광주사태 기간 중에 광주에 온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진 속의 할머니가 심복례라고 우기는 사기꾼들과 거짓말장이들을 우리는 5·18 왜곡세력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이처럼 허위주장을 일삼던 광주 5·18 왜곡세력은 어떻게 재판에서 승리하였는가? 무식하게 큰소리치기로 이겼는가 아니면 거짓말 10단 실력으로 승리한 것인가? 어쩌면 광주 5·18 왜곡세력은 지만원 광주재판 재판부 판검사들이 법적증거물도 읽을 줄 모르는 문맹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덕을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광주 신부들은 정말로 심복례 할머니의 명예를 위해서 지만원 박사에게 소송을 걸라고 사주하였는가? 자기 남편 사망사건 가해자와 더불어 소송을 걸면 심복례 할머니 명예가 올라가는가? 광주 신부들은 광주사태 기간 중에 광주에 간 적이 없었던 해남 할머니가 광주사태 사진 속의 인물이 자기라고 거짓말을 하게 하면 그녀의 명예가 올라간다고 생각하는가? 설사 그런 방법으로 그녀의 명예가 올라가고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기 위해서 진실의 가치를 희생시켜야 하는 것인가?
Daeryeong Kim TV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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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jmok님의 댓글
jmok 작성일사진에서 여장 인민군 상장 이을설의 키는 남자들 키 정도이지만 심복례 여인의 키는 남자들 키의 70% 수준으로 현격하게 왜소하다. 신장에서도 심복례 여인의 키는 너무 왜소하여 이을설과 무장 남자들 키와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광주 판사들은 상대적 비교도 무시하는가 ?
jmok님의 댓글
jmok 작성일
리을설과 심복례 할머니는 키가 다르다. 동일 인물이 될 수 없다. 인민군 상장 이을설이 무장 군인들과 정면으로 짝은 다른 사진이 없는가 ?
리을설의 다른 사진(남성들과 정면사진)이 있으면 심복례 할머니의 남자들과 대비되는 왜소한 체구 사진 비교로 비교로 리을설과 심복례가 동일 인물이
아님을 과학적으로 즘명할 수 있을 것이다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5.18광주사태를 중요인물들을 쏙빼서감추고 둔갑을시켜 뒤집었다는것은
몰상신한 간첩 김대중무리들이나하는짓입니다.사실데로 공개헸다면
뒤집힐 일도없었겠지만들통날일도없었다는것!
어리석은 좌파들이 고도의 꼼수를 부려봤자 대한민국 반역자일뿐임니다
5.18은 절대 민주화운동이 될수없다는것!
북한군이 오지않았다면 시민군중에서 중요인물들이 나와야함!.
5.18당시 장례식은커녕 쓰레기차로 옮겼다는것!
꼬마상주 조천호의 사진도 합성사진이었다.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5.18부상자나 유공자들을 데리고 서울을 오가며
민주화운동이라고 부추키는자는 위사진의 김양래였습니다.
5.18로인하여 수사관들을속이고 감옥에도 간일이없는 자가
어찌 5.18유공자!상무이사란?감투를썼는지 아이러니함!
5.18재단설립자:윤한봉은 대한민국을 남조선이라는 좌익이었고.
5.18주동자:윤상원은 철저한 공산주의자!
김영철:5.18당시간첩으로몰려 고문을받아 정신병자가 되었다.
김영업:아시아자동차회사 노조위원이었다니
5.18당시 무슨짓을하였기에 그험하다는 삼청교육대를 다녀왔는지 조사!
5.18은 김상집님께서 명확히 증언해 주셨습니다.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5.18의핵심은 장갑차주인공 조사천씨를 감추었다가 홍보용으로 이용했다는것!
뒤늦게 제가 제보하였더니 들통이난것입니다.
5.18재단에서는 북한군이 오지않았다면 시민군중에서
조사천을 카빈총으로 쏜자는 누구인가!
장갑차를 태우고다닌 장갑차운전사는 누구인가!
시위대가 계엄군장갑차를 탈취하여 군인을 깔아죽인자는 누구인가!
광천신협경리직원 성암은 누구!언제.어디서죽었는가!
5.18에대하여 가장 잘알고있으니 고의적으로 죽였다는것!
이런자들이 가장 억울한 5.18피해자라는것!
이것이 5.18광주사태인가! 민주화운동인가!
호남의 초딩이나 바보멍충이들에게 물어보면 명확한 답이 나올듯함!
시사논객님의 댓글
시사논객 작성일
한겨레신문 기사에 따르면 김진순씨는 그해 6월30일에야 경찰한테서 장남의 사망 소식을 통보받았다.
https://www.facebook.com/photo?fbid=6110206942325830&set=a.1052413104771931
목마산성님의 댓글
목마산성 작성일대한민국 사법부 판사들 모두 썩은 인간들 뿐입니다. 권순일, 노정희, 이혜영 등등 판결을 양심에 따라 하는게 아니라 돈과 이념에 따라 판결을 하니 대한민국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재판을 거래하는 판사놈들이 있는 대한민국 법치는 없습니다. 윤석열이 혼자서 달 보고 짖는 멍멍이와 다를바 없습니다.
시사논객님의 댓글
시사논객 작성일
5.18 광주민주항쟁 유족회 회장 정수만의 동생 정지영씨도 광주인민재판 희생자
https://www.facebook.com/photo/?fbid=6114490231897501&set=a.23256874374444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