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자 여사와 장태완의 12·12 증언으로 드러나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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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사논객 작성일23-01-08 21:49 조회2,781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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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2nVk5zPPYkc&list=PLy1djSD3FaRzS3QJXQYnNp-Wdi8h4BFai
0:00 이순자자서전 4장 4화 한남동 총소리 소식에 놀란 이순자
06:03 전화로 군사반란을 선동한 장태완의 12·12 육성통화
09:01 장태완의 하극상 사살 명령에 대한 신윤희 중령의 증언
18:02 12월 13일 노재현 국방장관 특별 담화문 발표 기사
18:04 12월 21일 제10대 최규하 대통령 취임식 영상 뉴스
28:23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헌정하는 설경 노래 영상
보안사령관의 원조는 김창룡 특무부대 대장이었다.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령부의 원조가 방첩대였고, 방첩대 대장을 특무부대 대장이라고 불렀었다. 6.25전쟁이 끝난지 2년밖에 안되었을 때에 장군들이 한국경제에 독이 되는 밀수로 부정축재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이승만 대통령이 김창룡 특무부대 대장에게 조사를 명령하자 장군들이 김창룡 특무부대 대장을 암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이 일어난지 몇년밖에 지나지 않았던 1962년에 전두환이 중앙정보부 창설요원이었기 때문에 군 수사기관 수장이 암살당한 사건을 잘 알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후 그 사건 수사를 맡게 된 전두환은 정승화 계엄사령관에게 김재규 공범 의혹이 있다는 보고를 받은 날로부터 연희동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였고, 온 가족이 거주지를 잠시 옮겼어야 했다. 전두환은 그 이유를 정승화측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수사를 막기 위해 자기를 제거하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설명했고, 훗날 전두환 전 대통령도 자기는 언제 암살당할지 모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술회하였다. 정승화쪽에서 자기를 암살하기 전에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수사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전두환의 목적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더욱 불안해한 쪽은 이순자 여사였다. 가뜩이나 불안한데 남편이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연행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니 한층 더 불안하였다. 장태완의 12·12육성통화를 들어보면 이순자 여사의 그런 불안감은 결코 기우가 아니었다. 군사력이라는 칼자루를 쥐고 있는 쪽은 정승화의 부하 장태완 수경사령관이었다. 장태완은 정승화가 수사 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고 수많은 사람들을 12월 12일 밤에 죽이려던 자였다.
https://www.youtube.com/@KoreanAudi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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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논객님의 댓글
시사논객 작성일12·12 사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한국 근현대사의 관점이 180도 달라진다. 정승화 연행 예정일이 12월 12일인지를 알지 못했던 이순자 여사는 한남동에서 한방의 총성이 울렸다는 소식을 들은 후 그날도, 그 다음날도 귀가하지 않는 남편의 신변을 몹시 염려하며 보낸 12월 12일 밤이었다. 전두환 사살 명령을 계속 내렸던 장태완은 이순자 여사와 정반대의 입장에 있었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으로부터 하극상 사실 명령을 받았던 신윤희 중령에게 12·12는 국가를 위하여 장태완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를 체포하여야만 했던 운명의 밤이었다.